알라딘 블랙슈가 블렌드 #4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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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미가 없어 좋았다. 단맛이 남아서 아메리카노를 즐기기에는 좋다. 바디감이 묵직하다는 느낌은 없고, 향도 진하지 않다. 오히려 내게는 라이트하다는 느낌! 요즘 우유넣어서 라떼로 즐기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음. 아메리카노와 초코케익, 또는 아메리카노와 얼그레이 스콘으로!^^... 그랬는데 식으니까 잔향이 너무 좋네요! 별 하나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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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6-01 13: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커피 맛과 어울리는 디저트 추천까지
그레이스님 별☄
하나 추가 히시니
전 카라멜 솔트맛 팝콘🍿
추가^^

그레이스 2022-06-01 14:13   좋아요 3 | URL
아이스로 먹어봐야겠어요 ^^
 
신곡 : 천국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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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ivina Commedia : Paradiso

브르통은 신곡을 저술한 단테를 초현실주의 작가에 포함시켰다. 윌 곰버츠는 발칙한 현대미술사에서 이런 초현실주의 명분을 끼워 맞추기 위한 작업은 뻔뻔스럽다고 비아냥댔지만, 브르통이 그렇게 주장할 만한 이유들이 있기는 하다. 지옥의 하강과 연옥과 천국의 상승은 환상적이기도 하고, 제자리를 떠난 단테의 육체나 변형된 영혼의 형태 등 초현실주의적 요소들이 있다는 생각이다.

 

천국에 오르기 전, 단테는 철학이나 신학의 교양이 부족한 독자에게는 <천국>이 어렵게 보일 수도 있다고 미리 말한다. 잘못하면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으므로 미리 돌아가라고 권한다.

 

, 귀담아듣고 싶어서 작은 쪽배에

앉아, 노래하며 나아가는 나의 배를

뒤따르고 있는 그대들이여,

넓은 바다로 들어서지 말고 그대들의

해변으로 돌아가시오. 혹시라도

나를 잃고 헤맬 수도 있을 테니까.”

(천국21~6)

 

넓은 바다해변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의 첫 번째 장 코스모스의 바닷가가 떠오른다. 지구는 그 무한한 우주의 해변이고, 인간의 탐험은 발가락 하나 담근 정도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테의 천국은 지상을 벗어나, 월천(月天)을 시작으로 한 단계씩 오르는 9개 하늘로 이루어져 있다. 9번째 하늘인 원동천(原動天)은 정화천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원동천은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가장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으며 그것은 세계를 움직이는 최초의 움직임이다. 정화천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을 따른 최고의 하늘 엠피레오(Empireo)이다. 월천, 수성천, 금성천, 태양천, 화성천, 목성천, 토성천, 항성천, 원동천, 정화천의 단계로 이루져 있는 하늘들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단테는 잘 알지 못한다. 단테는 계속해서 질문이 떠오르고 베아트리체는 신학과 철학과 물리학의 원리들로 설명해준다. 단테는 구도자이고 베아트리체는 진리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그것은 달을 향하는 불에도 있고,

그것은 동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것은 땅을 뭉쳐 하나로 만들지요.

그 활은 지성이 없는 창조물들만

쏘는 것이 아니라, 지성과 사랑을

지닌 창조물들까지 쏜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배려하시는 섭리는

가장 빨리 도는 하늘을 감싸는 하늘을

자신의 빛으로 언제나 평온하게 만들지요.”

(천국1114~123)

그것’, ‘’, ‘섭리모두 이 하늘들을 움직이는 원리를 가리키는 말들로 읽힌다.


나는 그 모습이 원과 어떻게 합치되고

어떻게 그 안에 들어 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내 날개는 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다만 내 정신이 섬광에 맞은 듯했고,

그 덕택에 내 소망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여기 고귀한 환상에 내 힘은 소진했지만,

한결같이 돌아가는 바퀴처럼 나의

열망과 의욕은 다시 돌고 있었으니,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덕택이었다.”

(천국33137~145)

 

끝까지 올라간 그는 완전히 이해하거나 설명해주지 못하지만(‘날개는 그것을 말로 구현할 수 있는 지성을 의미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이 사랑임을 알게 된다.

 

 

그 근원에 가까울수록 베아트리체는 얼굴에서 광채가 나며 변모한다. 그들이 최고의 하늘 엠피레오로 올라간 후 베아트리체는 더욱 아름답게 빛나며 자기 자리로 올라간다. 그가 새로운 인생에서 그리던 베아트리체의 모습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의 원천이신 주께서 기꺼이 내 목숨을 몇 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그녀에 관해 여태껏 어느 여인에 관해서도 써진 적이 없는 바를 쓰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그런 후에 은총의 주인이신 주님의 선하심으로 내 영혼이 이곳을 떠나 그 여인의 영광, 즉 세세 만세토록 축복을 받으실 주의 얼굴을 끝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 복된 베아트리체를 바라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107p 새로운 인생단테 알리기에리)

 

천국의 각 하늘들에서 본 사람들은 천국과 연옥들과 달리 신약의 사도들이나 후에 오는 신학자들과 성인들이며 개인적인 삶의 고백보다는 논리학,천문학, 형이상학, 윤리학, 신학 등을 통한 절제, 지혜, 용기, 정의의 4대 미덕이나 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단테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이탈리아의 부패,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고 있다. 단테가 미리 말한 것처럼 조금 어렵다. 하지만 친절한 주석 덕분에 그가 경고한 것처럼 길을 잃지 않았다. 인내심과 탐구심이 조금 더 요구된다.

 

단테가 만난 영혼들 중에 흐름을 환기시키는 이는 그의 고조부 카차구이다이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피렌체의 검소함과 십자군 원정에서의 순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마도 단테가 지옥편에서 고리대금업자들이 있던 구렁에서 금융업을 했었던 선조의 불분명한 형체에 대해 침묵했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망명자로서 피렌체에 오랫동안 이어진 가문과 거기에 뿌리를 둔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리고 카차구이다의 말을 빌어 자신의 망명의 의미를 확인한다.

 

그렇게 평온하고, 그렇게 아름다운

시민들의 생활, 그렇게 믿음직한

시민 의식, 그렇게 감미로운 집에다

큰 외침의 호소에 마리아께서 나를

보내셨으니, 오래된 너희 세례당에서

그리스도교인이자 카차구이다가 되었지.

모론토와 엘리세오가 내 형제였고,

내 아내는 파도 계곡에서 왔으니

거기에서 너의 성이 나왔단다.”

(천국15130~138)

 

신곡을 통해 단테는 그리워하던 베아트리체를 만남으로 그가 소망했던 사랑을 구현했고, 구도하던 진리에 다다르고, 스틸 누오보 작업으로 인생을 완성해갔다.

 

새로운 삶은 단테의 내면생활에 본질적 빛을 던진다. 단테가 스틸 누오보의 연애 신비주의로부터 사고방식의 구조를 추출해낸 사실과, 단테가 문학 동료들 사이에서 누린 지위를 잘 보여 준다.

……

베아트리체는 육신으로 오신 신성한 완벽함이라는 동방 교회의 모티프, 혹은 이데아의 파루시아(parousia: 임재)를 구현한다. 이 모티프는 모든 유럽 문학에 아주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진리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려는 열정적 기질과 지칠 줄 모르는 욕망 때문에, 단테는 이성과 행위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비전적 체험만 받아들였다.

……

신학적 지혜와 동일시되는 축복받은 여인 베아트리체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남자와 천상의 구원 사이에 서서 중개하는 여인이고 그 남자의 구원에는 그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137~138p 단테에리히 아우어바흐)

 

무엇을 쓴다는 것, 더구나 새로운 문체를 통해 새로운 정신을 찾아가는 것은 쓰는 사람에게 구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특별히 단테와 같은 망명자에게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테니. 작품의 완성과는 달리 그는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1321년 라벤나에 묻혔다. 1519년 단테의 유해와 유물을 라벤나로부터 양도받으려는 움직임이 피렌체에서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르네상스의 문을 연 단테의 작품들에 대한 복권이 이루어지고, 그가 생전에 찾으려했던 피렌체인으로서의 권리가 인정되었던 것 같다.

 

15세기 르네상스의 전성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에 머물던 시기, 길에서 만나 벌인 신경전에 단테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제 그는 피렌체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느 날 밀라노에서 돌아온 레오나르도가 길을 걷고 있는데, 모여서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레오나르도에게 단테의 글 중 난해한 부분에 관해 의견을 물어왔다. 이때 마침 미켈란젤로가 나타나자 레오나르도가 살짝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저기 미켈란젤로가 오고 있구먼. 저 친구가 말해줄 걸세.”라고 하자 까칠하고 성질 있는 미켈란젤로는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스스로 답하시죠. ()밀라노인들이 어리석어 당신을 믿었던 거예요!”라고 받아쳤다. 이에 뻘쭘해진 레오나르도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133p 르네상스민혜련)

 

단테는 문학과 독서의 역사에 긴 그림자를 드리고 있다. 지옥의 가장 밑바닥 온통 얼어붙은 주데카에서 천국의 가장 높은 하늘 불()의 정화천에 이르는 단테의 여행은 인생의 여정에 대한 은유와 알레고리와 영감을 전하고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맞닥뜨리게 될 광경 앞에서 나는 단테의 외침과 독백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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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27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테는 천재? 그레이스님 리뷰만 봐도 어려움이 확 느껴집니다~!! 지옥 연옥 천국을 다 읽고 리뷰도 쓰신 그레이스님도 👍 👍

그레이스 2022-05-27 16:45   좋아요 4 | URL
제가 리뷰를 어렵게 쓰나봐요
자책 중 !^^
단테는 천재 맞는듯요! ㅋ

새파랑 2022-05-27 17:01   좋아요 3 | URL
리뷰가 어렵다기 보다는 제가 이런 신화! 쪽을 너무 모르는거같아요 ㅜㅜ

미미 2022-05-27 17: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 책에서 읽은 어떤 구절에서
자신의 책을 쓴다는건 해방이라는 대목이 있었어요. 단테에게 신곡을 쓴 경험은 그야말로 해방과 천국의 다다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책 읽기전에 공부많이 해둬야겠어요^^;;

그레이스 2022-05-27 17:30   좋아요 4 | URL
맞아요. 해방.
저는 이 리뷰로 신곡으로부터 해방입니다.^^
그렇게 작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한개씩 두개씩 보다보니 책이 쌓이더군요ㅠ
미미님도 그러실듯;;

레삭매냐 2022-05-27 21: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문득 왜 <신곡>의 원제가
디비나 코메디아인지 궁금
하네요.

파라디조는 시네마 파라디조
만이 생각날 뿐.

단테 알리기에리가 사방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지요.

그레이스 2022-05-27 22:13   좋아요 5 | URL
원제목은 Commedia, 희곡 또는 희극이었는데요, 비참한 지옥에서 천국의 행복으로 끝나기때문에 그렇게 붙였대요.
나중에 보카치오가 이 제목에 형용사 Divina를 붙였구요.
하늘의, 성스러운, 그런 뜻을 덧붙여서 신성한 희곡이 된거죠.
La Divina Commedia!
보카치오는 단테에 열광적인 듯요

서니데이 2022-05-27 2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신곡은 유명하지만 희곡이라서 읽기가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도 책 소개나 설명 등 해제를 읽으면 상당히 재미있는 소재나 스토리처럼 들려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좋은 금요일 되세요.^^

그레이스 2022-05-27 22:25   좋아요 4 | URL
예!
스토리로 엮어 놓은것도 있는데,,, 어차피 운율같은거는 원어가 아니어서 맞출수도 없으니....
그렇게 읽어도 상관없으나, 그런 경우 은유나 상징언어를 그나마 살리지 못하게 되면 단테의 맛이 살지 못하는 면이 있을듯요 ㅋㅋ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주말 되시길요

Redman 2022-05-28 1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테는 시로서 자신을 구원했다, 나는 무엇으로 나를 구원할 것인가. 작년에 한창 단테 공부할 때 든 질문이 떠올랐네요

그레이스 2022-05-28 14:43   좋아요 3 | URL
아!
적절한 질문이네요.
찾으셨겠죠?

희선 2022-05-29 00: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단테가 쓴 신곡을 다 보셔서 기쁘시겠습니다 이 책만 보신 게 아니고 여러 다른 책도 보시기도 하고... 이탈리아 사람은 단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겠네요 피렌체 사람이라 해야 할지... 오래전 글이 지금까지 읽히는군요 자신이 쓴 글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자신을 이끌어줘서 좋았겠습니다 다른 것도 단테한테 도움이 됐겠지만...

단테가 쓴 신곡과 투모로바이투게더 노래는 상관이 있을까요 상관없다 해도 단테 글을 보고 이 노래를 전과 다르게 들어도 괜찮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5-29 07:55   좋아요 4 | URL
^^
단테가 망명시 거쳐간 도시 사람들은 자부심이 더하다고 하네요.
투바투노래 신곡을 읽고 나니 가사가 달리 들린다는...!
저희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이어서 많이 들었거든요. 차 안에서!

얄라알라 2022-05-29 15: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서가에서 ˝명화로 보는 신곡˝(?) 이었나 (아!! 제목 바로 까묵했어요) 그림만 열심히 앞부터 끝까지 보다 왔어요
책 읽는 내내 그레이스님 서재 나중에 놀러가야지, 다시 읽어야지, 요러고 있었답니다

그레이스 2022-05-29 15:42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그 책 저도 있는데 워밍업으로 유익해요^^

scott 2022-05-30 11: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언젠가
단테의 그림자!ㅎㅎ
흔적을
이딸리아에서 찾으시길 바랍니다

젤라토 🍦손에 꼬옥 쥐공 ^ㅅ^

그레이스 2022-05-30 11:28   좋아요 3 | URL
예~
그러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mini74 2022-05-31 12: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몸살나서 이 더위에 전기장판끼고 헥헥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ㅎㅎ 이렇게 좋은 글이 딱! 코스모스 하늘 구도자와 안내자 이야기 넘 좋아요. 나름 자신의 사심과 욕망도 담긴 거 같아요. 어려움에도 재미있었던건 다양한 인간군상과 연관되는 처벌들을 거쳐 오르는 여정이 꼭 게임레벨업 하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레이스님 글 읽으니 단테 제대로 다시 읽고 싶어요 *^^*

그레이스 2022-06-02 10:19   좋아요 4 | URL
아프셨군요
고생하셨네요
빨리 회복되시길 바래요
제 막내딸은 지난주 수목금 3일 축제 미친듯이 즐기다가 코로나 걸렸어요 ㅠ
저도 언제 양성판정 받을지 걱정입니다.
무사히 지나기를.ㅠㅠ

mini74 2022-05-31 12:48   좋아요 3 | URL
아이고 ㅠㅠ 저희 아인 저저번주 확진받고 혼자 자취방에서 이틀 정도는 아팠다고 하더라고요. ㅠㅠ 그레이스님은 무서히 지나가시길~~

그레이스 2022-05-31 19:17   좋아요 2 | URL
혼자 있었으면 힘들었겠어요.ㅠ
고생했네...ㅠㅠ
 

오늘은 ‘지구의 날‘입니다. 지구의 날이 탄생한 배경에는 원유유출 사고가 있어요. 1969년 1월 28일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인근 원유 시추 시설에서 파열이 일어났어요. 폭발물을 이용해 시추 중이었거든요. 갈라진 틈으로 원유 10만 배럴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대 수백 제곱마일의 바다를 오염시켰습니다. 바다 오염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요? 바다에 사는 해양 생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끼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바다로 유출된 기름은 결국 가라앉으며해저 생물과 생태계에 두고두고 피해를 끼치게 된 거지요. 당시 이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은 자연 훼손과 환경오염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 한다며 지구의 날을 제정하도록 한목소리를 냈어요. 미국 내에서만 2,000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였다고 합니다. - P64

그렇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지구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진전을 이루고 있는지 돌아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2021년 4월 미국지구물리학회 American Geophysical Union. AGU에서충격적인 내용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중국과학원 산하 지구과학과천연자원연구소와 덴마크 공과대학교 등 국제공동연구 팀이 연구한 논문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빙하가 녹아내려 지구의 질량 분포가 달라지며서 1990년대 이래 남북극 이동의 방향이 박뀌고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 P64

자연과 인간이 본연의 생명력을 복원해가며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생태철학을 바탕으로생겨난 것이 퍼머컬처입니다. 영원하다는 의미의 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 두 낱말을 합해 만든 신조어입니다. 이 말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농사를 짓고 나아가 자립하는 삶을 사는 문화가 담겨 있어요. 퍼머컬처는 그저 씨를 뿌리고거두는 수확량에만 초점을 맞춘 농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농사지을 공간을 디자인하고 식물, 동물, 그리고 무생물까지 모든생태계와 더불어 지속 가능한 삶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퍼머컬처를 실천하는 이들은 밭을 원형, 세모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듭니다. 단순한 밭이 아니라 아름다운 작품으로 경관의 아름다움까지 더해주는 진정한 문화지요. - P86

우연히 물건의 생산과정을 살펴보다 선한 의도가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때가 있어요. 비단 물건뿐만이 아니에요.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한 고기와 우유 대신 아몬드우유를 고르면서 아몬드는 식물성이니 당연히 생태 친화적일 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런 짐작과는 많이 달라요. 세계 아몬드의60% 이상을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캘리포니아가 대표적인 아몬드 생산지입니다.  - P95

문제는 대규모 아몬드 농장을 거치면서 벌들이 자꾸 죽는다는 것입니다. 벌통을 싣고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벌이 스트레스를받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규모 아몬드 농장에서 뿌려대는 살충제와 제초제가 주원인입니다. 제초제 가운데 하나인 글리포세이트는 발암물질로 꿀벌에게도 치명적입니다. 비단 아몬드 농장뿐일까요? 목화 농장도 포도 농장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는 넓은 면적에 한 종류의 작물을 재배하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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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6-03 0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구가 넘 ㅎ 뜨거워져서 재난, 전염병이 끊임없는 것 같습니다
꿀벌도 이토록 소중한 존재 였다니 ㅜ.ㅜ

그레이스 2022-06-03 12:56   좋아요 2 | URL
요새 프로폴리스 애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벌들에게서 너무 많은걸 가져오고, 정작 그들을 지키는데는 무심한듯요.
암튼 목 붓는데는 프로폴리스가 효과 있습니다^^

mini74 2022-06-03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입병에는 프로폴리스 칙칙 뿌리고 이젠 복용까지 하는데 ㅠㅠ 꿀벌님께 감사하며 ㅠㅠ 목화가 더러운 작물이라고 불리더군요 너무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고.

그레이스 2022-06-03 18:19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렇더라구요
자연주의, 환경보호 이런것도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하는듯요
 
신곡 : 연옥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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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ivina Commedia : Purgatorio

 

연옥을 믿지 않지만 연옥편은 신곡의 세 편(지옥, 연옥, 천국)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이다.

 

연옥에 이른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지체하지 않고 산을 오른다. 카토는 머뭇거리는 그들에게 호통을 치며 서둘러 오르라고 재촉한다. 달아나듯 서둘러 올라간 것과는 달리 길은 험하고 몸도 무거워 속도가 나지 않는다. 연옥의 아래쪽은 길이 비좁고 험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평탄해진다. 이 산을 오르는 영혼은 엄청난 무게 때문에 발걸음이 힘들다. 연옥은 7개의 죄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음란으로, 영혼들은 오르며 그의 죄를 씻는다.(영화 세븐을 떠올렸다.) 각 단계마다 단테의 이마에서 P라는 글자가 한 개씩 떨어지며 몸이 가벼워진다. P는 라티어의 죄(Piccati)의 첫 글자이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이 산은,

아래의 시작 부분은 아주 험하지만

위로 오를수록 덜 험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위로 오르기가 한결 가벼워져

마치 물결을 따라 배를 타고 가듯이

이 산이 아주 기분 좋게 느껴질 때면,

너는 이 길의 끝에 도달할 것이고

그곳에 고달픔의 휴식이 기다리니,

더 말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연옥488~96)

 

어딘가 현세의 삶을 닮았다가벼워지고 기분 좋아 질 때, 그 길의 끝에 다다른다는 것이. 그들은 영원히 한 장소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옥의 영혼들과 달리 이동하고 있고 상승하고 있다. C. S. Lewis의 환타지 소설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도 이런 장면들이 연출된다. 세상의 마지막에 사람들은 천국을 향해 걸어간다. 같은 길을 걸어도 세상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은 더 험하게 느껴지고 발걸음도 무겁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연옥의 영혼들에게는 육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현세에서의 마음과 삶의 경향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 경향은 잡아당기는 듯 영혼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그것들로부터 가벼워지기 위해 산을 오르며 씻어내야 한다. 현재의 삶은 사후세계의 예표이다. 마찬가지로 연옥은 현세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런 예표적 리얼리즘(피구라 리얼리즘)으로 그려진 연옥은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 삶의 결과로서 평행하는 세계처럼 다가왔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그곳의 어떤 모습을 가리키고 있을까? 그 연속성에 두려운 현기증을 느낀다.


단테는 저승을 여행하면서, “영혼들의 궁극적 운명을 표시하는 저승의 각 단계에서 그가 예전에 친히 알았던 혹은 그 생애에 대해서 들어 알았던 사람들의 영혼을 만난다. 그들이 살아있는 사람(단테)를 만났을 때 자신의 은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곡에 대해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도 그 상황을 잘 생각해보면, 그 만남이 환기하는 정서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 그 만남이 가장 진실하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인간적인 표현의 자연스러운 장이 되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다. 그 만남은 이승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승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우연하게 만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본질이 부분적으로만 표출된다. 또 활기차게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강렬한 속도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이 어렵고 그래서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만남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또 단테와 영혼들의 만남은 죽음의 그림자에 의해 개인들의 개성이 말살되어 버린 그런 저승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 저승은 이승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베일에 가려진 기억 혹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271p 단테에리히 아우어바흐)


기억이 현세의 생활로부터 어떤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든 간에 그것은 본질을 드러내 주는 포괄적이면서 결정적인 이미지이다. 심지어 자신의 내밀한 존재를 감추고 싶어하는 영혼들도 살아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하여 본심을 털어놓게 된다. 그들이 찾아내는 표현을 아주 날카로우면서도 아주 개인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과 지상 생활의 의미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저승의 궁극적 리얼리티 속에서 그들은 아무런 모순도 없이 자신의 개성과 일치하는 존재가 된다.”

(289p 단테에리히 아우어바흐)


그러므로 이승의 삶을 감출 수도 감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등 뒤에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은

내 모습 앞에서 부서졌는데, 나로

인해 햇살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앞에서만 땅이 그늘진 것을

보았을 때, 혼자만 남은 것이 아닌가

두려워서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고,”

(316~21)

연옥의 영혼들은 빛이 투과하는데, 살아있는 단테에 햇볕이 부딪쳐서 부서지고 그림자가 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홀로 있는 줄 알고 옆을 돌아보았다가 함께 동행하는 베르길리우스를 발견하고 놀란다. 연옥산을 올라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영혼들과 풍경을 그리는 단테의 묘사들은 탁월하다.

 

그리워하던 베아트리체의 눈을 바라보는 단테는 그녀의 눈에 비친 그리피스의 형상에 놀란다.

불꽃보다 뜨거운 수천 가지 욕망이

나의 눈을 빛나는 그 눈에 묶었는데,

그녀의 눈은 그리프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태양이 거울 속에 비치듯 그녀의

눈 속에서는 이중적인 동물이 빛났는데,

때로는 이런 모양 때로는 저런 모양이었다.”


단테는 돈호법으로 독자를 부르며 경이로운 광경에 초대한다.

독자여, 생각해 보시라, 사물 그 자체는

그대로 가만히 있는데, 반사된 모습이

변하는 것을 복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31124~126)

환타지 소설 같은 환상적인 장면이다.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연옥편에서 단테는 7가지 죄악과 병행시킨 성경과 신화, 역사, 신학, 과학, 예술 등을 추가하며 상상력의 베틀로 씨실 날실을 엮어간다. 사랑, 과학, 역사, 정의, 진리, 신앙, 심리 등의 모든 주제를 포괄하는 단테의 천재적 능력을 읽게 된다.

 

천국 문을 통과한 후 베르길리우스와 이별한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의 하늘들을 오를 것이다.

 

새로운 잎사귀로 새롭게 태어난

나무처럼 순수하게 다시 태어났으니,

별들에게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33143~144)


성 조반니 세례당은 단테가 세례를 받았던 곳이다.

당시 피렌체 경제의 중심축을 이루던 협동조합 길드 조직들(Arti) , 가장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양모 제조업자 길드와, 이와 쌍벽을 이루던 양모 무역업자 길드 조직 Arte di Calimala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Arte di Calimala1401년 새로운 세례당의 문(북문)을 만들기 위한 콩쿠르를 열겠다고 발표한다. 45x38의 동일한 사이즈, 재료는 청동, 그리고 이삭의 희생이란 성경주제로 샘플 작품을 제출하면 평가해서 1등을 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토스카나 출신의 뛰어난 예술가 7명이 참가를 했는데 파이널까지 간 두 명의 예술가가 바로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였다. 23, 24살 비슷한 또래의 혈기 왕성한 예술가들이었다.

……

우열을 가릴 수 없어 고민하던 감독관들은 기베르티의 손을 들어 주었다고 한다.……

1401년 콩쿠르에서 승리한 로렌초 기베르티는 25년 만에 피렌체인들이 고대하던 세례당 문을 완성했다. 엄청난 찬사와 함께 콩쿠르도 필요 없이 나머지 문도 기베르티가 27년 동안 완성하게 된다.……원래 천국으로 가는 문인 동쪽 문은 신약 성경을 담는 것이 정석이다. 사실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구약성서의 내용)은 원래 다른 쪽에 달려야 하는 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의 아름다운 문을 동쪽 천국의 문으로 놓자고 결정했다.”

(20~27p 피렌체 미술산책강화자)

 

피렌체에 갈 기회가 있다면 이 문 앞에서 신곡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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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5-23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성 조반니 세례당 문(복사판) 전시를 파리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막상 피렌체에 가면 구경할 것들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정작 단테의 신곡, 연옥의 문 찾아 다니기 힘드러여 ㅎㅎㅎ

피렌체는 오월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ㅅ^

그레이스 2022-05-23 22:44   좋아요 3 | URL
ㅎㅎ
볼게 많을것 같긴 해요
이런 도시는 한달쯤 살아야하는데...^^

새파랑 2022-05-23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연옥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습니다 😅 7개의 죄의 단계를 보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ㅋ

그레이스 2022-05-24 00:54   좋아요 3 | URL
댓글 달았는데 왜 사라졌을까요?
암튼 저도 반성 많이 했습니다 ㅋ

얄라알라 2022-05-24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단테] 겁없이 달려들었다가 뒷걸음질 쳤는데 지금 읽는다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레이스님께서는 평행세계, 우주, 시공을 넘나들며 상상하고 흡수하셨네요. 그레이스님의 멋진 리뷰로, [신곡] 맛 보기라도 다시 하고 갑니다.

˝산을 오르며 씻어내야 한다.˝ 이 문장, 오늘 종일 생각 날 것 같아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레이스 2022-05-24 12:33   좋아요 3 | URL
^^
감사합니다.
욕망하고 소유에 매여있는 마음 때문에 무거운 발걸음.
산을 오르며 씻어낼수록 가벼워지죠.

저는 얄라알라님 댓글을 읽으니 산을 오르며 늘어난 체중을 덜어내야한다로 읽히네요. 늘어난 제 몸무게가 요사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있어서 그런지. ..😂

얄라알라 2022-05-24 1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곧 여름이니 절로 몸이 가쁜, 가벼워지지 않을까 저는 몸도 안 움직이면서 그런 막연 기대를 합니다. 실제, 엊그제 책 읽다가 마음이 힘들어 산을 오르면서 숨 쉬고 읽고 그랬더니 좀 가벼워지더라고요. 지금 이 댓글을 달고 있는 공간에서도 50미터만 가면 바로 산이랍니다! 자외선이 어마무시하지만 않았던들!

그레이스 2022-05-24 12:41   좋아요 3 | URL
50미터!
산속에 사시는 군요 ^^
부럽습니다.
저도 썬크림 두껍게 바르고 도전해야겠어요 ㅋ

mini74 2022-05-25 08: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적 지옥 참 무서웠어요. 할머니가 밥 남기면 나중에 죽어서 다 먹어야 된다. 혀를 쭉 빼서 자른다 등등 완전 고어영화 ㅎㅎ 유럽의 지옥도 만만찮더군요. 지금은 지옥이란 그저 신의 은총이 없는 곳 , 그래이스님 말씀처럼 연옥같은 모습일거란 생각들어요.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 이야기 재미있어요 *^^*

그레이스 2022-05-26 07:34   좋아요 2 | URL
^^
맞아요 할머니들은 왜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셨는지...??

저는 연옥은 없다!
이승의 삶이 저승과 연속된다는 생각!
가보지 않았으니 죽음 이후는 믿음의 영역이란 생각입니다. 그 근거는 성경!

자크 르 코프의 <연옥의 탄생>은 그 배경을 잘 설명해줄 듯요^^

브루넬레스키가 열받아서 로마로 갔다가 피렌체로 돌아와 피렌체의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당시 피렌체 미술가들 이야기 재밌어요^^
 
신곡 : 지옥 열린책들 세계문학 93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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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ivina Commedia : Inferno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거기서 본 다른 것들을 말하련다.”

(지옥편 제11~9)

 

신곡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단테가 말하고 있는 어두운 숲이란 베아트리체의 죽음일수도 있고 피렌체로부터 추방일 수도 있다.(보카치오의 단테의 생애에서는 신곡을 망명 이전에 시작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는지 전달하고 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곧 그 숲이 깜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려고 글을 쓰겠다는 의지에서 희망의 빛을 본다. 신곡이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어렴풋이 짐작한다.

 

표범과 사자와 늑대에 쫓겨 어두움으로 곤두박질하는 그의 눈앞에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난다. 글에 대한 영감을 받은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당신은 베르길리우스, 그 넓은 언어의 강물을 흘려보낸 샘물이십니까?”(지옥편 제179~80)하고 외치는 단테의 이어지는 고백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오랜 동안 그의 문학적 스승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다른 시인들의 영광이자 등불이시여,

높은 학식과 커다란 사랑은 유익했으니

나는 당신의 책을 열심히 읽었지요.

당신은 나의 스승이요 나의 저자이시니,

나에게 영광을 안겨 준 아름다운 문체는

오로지 당신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지옥편 제182~90)

 

베르길리우스는 이 어두운 곳에서 구해달라고 하는 단테를 인도한다. 마음 둘 곳이 없던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읽다가 다른 길신곡에 대한 영감을 얻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지옥문 앞으로 데려가고, 그들의 저승여행은 지옥문을 통과해 지하의 세계를 향하면서 시작된다.

 

지옥을 여행하며 등장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고 있는 죄인들의 모습은 참혹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지만 한편 단테의 천재적인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죄에 해당하는 형벌의 매칭은 놀라울 정도로 적절하다. 신화의 이미지들이 만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 현세의 이미지로 비유하고 있는 묘사들은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한 생생함을 경험하게 한다. 에리히 아우어바흐는 단테에서 이것을 단테의 미메시스 효과라고 지적한다.

18(canto)에서 뚜쟁이와 유혹자들이 악마들의 채찍에 맞으며 몰려다니는 모습을 희년이 선포된 로마에서 목격한 장관(壯觀)으로 비유한다. 이것은 생생한 그림을 전달하고 동시에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채찍은 그들이 휘둘렀던 거짓과 폭정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첫째 구렁은 그런 자들로 가득하였다.

벌거벗은 죄인들이 바닥에 있었는데,

이쪽으로는 우리와 마주 보며 걸어왔고

저쪽에는 같은 방향이지만 걸음이 빨랐다.

마치 희년(禧年)에 수많은 군중 때문에

로마 시민들이 다리 위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록 배려하여

한쪽으로는 모두 성쪽을 바라보며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가고, 다른

한쪽으로는 언덕을 향하는 것 같았다.

이쪽저쪽의 검은 바위 위에서는

뿔 난 악마들이 채찍으로 그들의

등을 잔인하게 후려치고 있었다.

……

(지옥1824~36)

 

이 장면에 대한 난하주를 보면 더욱 실감난다. 희년은 대사면을 선포하는 해를 말하는데, 희년에 로마를 방문하고 참회와 보속을 하면 사면을 받을 수 있었다. 100년마다 돌아오던 것을 25년으로 줄였다. 1300년 보니파키우스 8세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희년을 선포하고, 이에 수십,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그 군중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성 안젤로 다리를 통과할 때 한쪽은 성 베드로 성당으로, 한쪽은 로마 방향으로 가도록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지점에서 주석의 도움을 받으며 눈이 밝아지는 경험을 했다. 이런 경우 각주(脚注, footnote)가 편리하다.)

 

먼 친척, 친구, 풍문의 주인공 여인, 영웅들, 철학자들, 지도자들 등 그들 영혼의 모습은 형체를 잃어버리거나 비틀어져 있다. 거꾸로 땅에 박혀 있거나,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가 소개하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다. 끝까지 익명이기를 고집하는 영혼들도 있다.연옥편을 읽게 되면 아이네이아스가 저승여행에서 만났던 영혼들과 다르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된다. 『아이네이스』 속 영혼들은 존재가 아닌 지나치는 영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테가 만난 영혼들은 존재하고, 지상에서의 삶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기억을 통해 전하는 말들은 본질적이고 강하다. 무리들 속에서 마주친 한 영혼과의 대화는 몽타주 기법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옥 여행을 마치고 지상으로 나오게 되는 구조를 보며 단테에게 다시 감탄하게 된다. 아래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거꾸로 박힌 사탄의 다리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다. 지구의 3차원적 개념을 지옥도에서 실현시키고 있다.

 

휴식을 취할 생각도 없이 그분은

앞에서, 나는 뒤에서 위로 올라갔으며,

마침내 나는 동그란 틈 사이로 하늘이

운반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 별들을 보았다.”

(지옥편 제34135~139)

 

그가 지옥을 통과해 드디어 바라본 별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칠흙같이 어두운 숲은 생성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안내자를 만난다면 그것은 구도의 숲이다. 빛은 구원이고  베아트리체는 그 빛에 가까이 있는 존재다. 장차 단테를 그 빛으로 이끌 안내자이다.

 

그가 그린 저승은 삶으로부터 단절된 세계가 아니라 연장선상에 있는 곳이며, 현재의 삶이 가리키는 방향이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연옥편을 읽으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삶의 이편과 저편을 오가는 단테의 사유! 로댕의 <지옥의 문>은 이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로댕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산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과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생각에 잠긴 사람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은 뒤, 지옥의 문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단테의 형상을 가져와 6미터 높이의 <지옥의 문>을 제작했다. 중앙 상단에 단테를 상징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고, 그 밑으로는 지옥으로 향하는 인간들의 고통과 번뇌가 표현되어있다.

지옥의 문 위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의 핵심은 발끝에 모인 긴장감에 있다. 잔뜩 구부린 발가락들은 지옥으로부터 받는 중력을 견디는 상황임을 알려준다.”

(15p 단테 x 박상진, 클래식 클라우드)

 

, 첫 매질에 그들은 얼마나 발뒤꿈치를 들어 올렸는지!”

(지옥18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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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21 20: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테가 그리는 지옥의 모습은 저런 모습이군요~!! 왠지 평소에 생각하던 지옥모습이랑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ㅋ

그레이스 2022-05-21 20:32   좋아요 4 | URL
예~
지옥의 모습은 낯설지 않아요^^
그런데 그 묘사에 탁월한 점이 있어요
천재적이라 생각되죠

희선 2022-05-22 0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죽으면 지옥이나 천국에 간다 하지만, 지옥에 살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단테는 살아서 갔으려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살아서 가면 더 힘들지... 그래도 거기에서 찾은 걸 많은 사람한테 전하려고 이걸 썼군요

그레이스 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5-22 10:47   좋아요 2 | URL
사는게 지옥같다는 말 많이 듣지요.
그것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형벌이겠죠.
죽음 이후 연속성이 있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희선님도 주말 행복하시길!

scott 2022-05-22 12: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거기서 본 다른 것들을 말하련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

그레이스님에게 5월은 단테의 신곡이 열어준
천국 같은 독서의 나날을 보내 실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2-05-22 12:58   좋아요 2 | URL
너무 좋은 것도 오래 지속되면 천국같지 않다는 아이러니!^^;;
왜 그럴까요?
지상에서의 영원은 그렇다는 점에서 테레비시아의 샘물이 생각납니다. ㅋ

레삭매냐 2022-05-22 1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속세의 방황하는 영혼인
단테는 우리 자신을,

가이드인 베르길리우스
같은 이를 속세에서 만나
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
지 않나 싶습니다.

정점에 있는 베아트리체
는 뭐랄까 구원의 상징
이 아닐까 싶네요.

시작은 했으나 냅다 팽개
쳐 버리고 다른 책들만
줄창 파고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2-05-22 15:43   좋아요 2 | URL
^^
언젠가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거예요
책 읽는것도 그런 것 같아요 ~^^

mini74 2022-05-25 0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블레이크의 그림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좀 덜 무섭기도 하고 ~~ 그레이스님 글 읽으니, 베아트리체를 가슴에 별처럼 품고 베르길리우스란 안내자와 함께 어두운 숲을 걸은 단테는 어쩌면 운 좋은 사내같단 생각도 드네요 그레이스님 글 읽으니 다시 신곡 읽고싶네요. 아 이런 구절이구나 이런 의미구나 ㅎㅎㅎ

그레이스 2022-05-25 15:54   좋아요 3 | URL
미니님 혹시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 아시는지요? 노래 중에 0×1=lovesong(I know I love you)이란 노래가 있는데, 얘네가 신곡을 아네?!했어요^^
작년에 나온 노랜데 애들이 좋아해서 저도 들어왔거든요. 가사도 달리 들리는 독서의 효과라고 해야할까요?

mini74 2022-05-25 09:59   좋아요 3 | URL
노래제목이 ㅎㅎ 저 찾아서 들어볼게요 ~

mini74 2022-05-25 10:06   좋아요 3 | URL
헉 잘 생기고 노래도 좋고. 그레이스님 말씀 듣고나니 오!!! 그렇네 싶고 ㅎㅎ 저 이 나이에 입덕하는건가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2-05-25 10:13   좋아요 3 | URL
빅히트 영업했네요^^

scott 2022-05-25 15:53   좋아요 3 | URL
0×1=lovesong
듣고 왔습니돠
오늘 부터 팬 할레여 ㅎㅎㅎ

그레이스 2022-05-25 15:57   좋아요 3 | URL
이번에 나온 곡들도 좋아요 ㅋ
춤이 예술이예요 ㅎㅎ
opening sequence

노래는 trust fund baby 넘 슬프구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