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 지옥 열린책들 세계문학 93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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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ivina Commedia : Inferno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거기서 본 다른 것들을 말하련다.”

(지옥편 제11~9)

 

신곡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단테가 말하고 있는 어두운 숲이란 베아트리체의 죽음일수도 있고 피렌체로부터 추방일 수도 있다.(보카치오의 단테의 생애에서는 신곡을 망명 이전에 시작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는지 전달하고 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곧 그 숲이 깜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려고 글을 쓰겠다는 의지에서 희망의 빛을 본다. 신곡이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어렴풋이 짐작한다.

 

표범과 사자와 늑대에 쫓겨 어두움으로 곤두박질하는 그의 눈앞에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난다. 글에 대한 영감을 받은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당신은 베르길리우스, 그 넓은 언어의 강물을 흘려보낸 샘물이십니까?”(지옥편 제179~80)하고 외치는 단테의 이어지는 고백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오랜 동안 그의 문학적 스승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다른 시인들의 영광이자 등불이시여,

높은 학식과 커다란 사랑은 유익했으니

나는 당신의 책을 열심히 읽었지요.

당신은 나의 스승이요 나의 저자이시니,

나에게 영광을 안겨 준 아름다운 문체는

오로지 당신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지옥편 제182~90)

 

베르길리우스는 이 어두운 곳에서 구해달라고 하는 단테를 인도한다. 마음 둘 곳이 없던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읽다가 다른 길신곡에 대한 영감을 얻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지옥문 앞으로 데려가고, 그들의 저승여행은 지옥문을 통과해 지하의 세계를 향하면서 시작된다.

 

지옥을 여행하며 등장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고 있는 죄인들의 모습은 참혹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지만 한편 단테의 천재적인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죄에 해당하는 형벌의 매칭은 놀라울 정도로 적절하다. 신화의 이미지들이 만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 현세의 이미지로 비유하고 있는 묘사들은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한 생생함을 경험하게 한다. 에리히 아우어바흐는 단테에서 이것을 단테의 미메시스 효과라고 지적한다.

18(canto)에서 뚜쟁이와 유혹자들이 악마들의 채찍에 맞으며 몰려다니는 모습을 희년이 선포된 로마에서 목격한 장관(壯觀)으로 비유한다. 이것은 생생한 그림을 전달하고 동시에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채찍은 그들이 휘둘렀던 거짓과 폭정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첫째 구렁은 그런 자들로 가득하였다.

벌거벗은 죄인들이 바닥에 있었는데,

이쪽으로는 우리와 마주 보며 걸어왔고

저쪽에는 같은 방향이지만 걸음이 빨랐다.

마치 희년(禧年)에 수많은 군중 때문에

로마 시민들이 다리 위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록 배려하여

한쪽으로는 모두 성쪽을 바라보며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가고, 다른

한쪽으로는 언덕을 향하는 것 같았다.

이쪽저쪽의 검은 바위 위에서는

뿔 난 악마들이 채찍으로 그들의

등을 잔인하게 후려치고 있었다.

……

(지옥1824~36)

 

이 장면에 대한 난하주를 보면 더욱 실감난다. 희년은 대사면을 선포하는 해를 말하는데, 희년에 로마를 방문하고 참회와 보속을 하면 사면을 받을 수 있었다. 100년마다 돌아오던 것을 25년으로 줄였다. 1300년 보니파키우스 8세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희년을 선포하고, 이에 수십,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그 군중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성 안젤로 다리를 통과할 때 한쪽은 성 베드로 성당으로, 한쪽은 로마 방향으로 가도록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지점에서 주석의 도움을 받으며 눈이 밝아지는 경험을 했다. 이런 경우 각주(脚注, footnote)가 편리하다.)

 

먼 친척, 친구, 풍문의 주인공 여인, 영웅들, 철학자들, 지도자들 등 그들 영혼의 모습은 형체를 잃어버리거나 비틀어져 있다. 거꾸로 땅에 박혀 있거나,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가 소개하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다. 끝까지 익명이기를 고집하는 영혼들도 있다.연옥편을 읽게 되면 아이네이아스가 저승여행에서 만났던 영혼들과 다르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된다. 『아이네이스』 속 영혼들은 존재가 아닌 지나치는 영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테가 만난 영혼들은 존재하고, 지상에서의 삶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기억을 통해 전하는 말들은 본질적이고 강하다. 무리들 속에서 마주친 한 영혼과의 대화는 몽타주 기법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옥 여행을 마치고 지상으로 나오게 되는 구조를 보며 단테에게 다시 감탄하게 된다. 아래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거꾸로 박힌 사탄의 다리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다. 지구의 3차원적 개념을 지옥도에서 실현시키고 있다.

 

휴식을 취할 생각도 없이 그분은

앞에서, 나는 뒤에서 위로 올라갔으며,

마침내 나는 동그란 틈 사이로 하늘이

운반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 별들을 보았다.”

(지옥편 제34135~139)

 

그가 지옥을 통과해 드디어 바라본 별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칠흙같이 어두운 숲은 생성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안내자를 만난다면 그것은 구도의 숲이다. 빛은 구원이고  베아트리체는 그 빛에 가까이 있는 존재다. 장차 단테를 그 빛으로 이끌 안내자이다.

 

그가 그린 저승은 삶으로부터 단절된 세계가 아니라 연장선상에 있는 곳이며, 현재의 삶이 가리키는 방향이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연옥편을 읽으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삶의 이편과 저편을 오가는 단테의 사유! 로댕의 <지옥의 문>은 이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로댕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산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과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생각에 잠긴 사람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은 뒤, 지옥의 문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단테의 형상을 가져와 6미터 높이의 <지옥의 문>을 제작했다. 중앙 상단에 단테를 상징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고, 그 밑으로는 지옥으로 향하는 인간들의 고통과 번뇌가 표현되어있다.

지옥의 문 위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의 핵심은 발끝에 모인 긴장감에 있다. 잔뜩 구부린 발가락들은 지옥으로부터 받는 중력을 견디는 상황임을 알려준다.”

(15p 단테 x 박상진, 클래식 클라우드)

 

, 첫 매질에 그들은 얼마나 발뒤꿈치를 들어 올렸는지!”

(지옥18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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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21 20: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테가 그리는 지옥의 모습은 저런 모습이군요~!! 왠지 평소에 생각하던 지옥모습이랑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ㅋ

그레이스 2022-05-21 20:32   좋아요 4 | URL
예~
지옥의 모습은 낯설지 않아요^^
그런데 그 묘사에 탁월한 점이 있어요
천재적이라 생각되죠

희선 2022-05-22 0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죽으면 지옥이나 천국에 간다 하지만, 지옥에 살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단테는 살아서 갔으려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살아서 가면 더 힘들지... 그래도 거기에서 찾은 걸 많은 사람한테 전하려고 이걸 썼군요

그레이스 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5-22 10:47   좋아요 2 | URL
사는게 지옥같다는 말 많이 듣지요.
그것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형벌이겠죠.
죽음 이후 연속성이 있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희선님도 주말 행복하시길!

scott 2022-05-22 12: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거기서 본 다른 것들을 말하련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

그레이스님에게 5월은 단테의 신곡이 열어준
천국 같은 독서의 나날을 보내 실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2-05-22 12:58   좋아요 2 | URL
너무 좋은 것도 오래 지속되면 천국같지 않다는 아이러니!^^;;
왜 그럴까요?
지상에서의 영원은 그렇다는 점에서 테레비시아의 샘물이 생각납니다. ㅋ

레삭매냐 2022-05-22 1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속세의 방황하는 영혼인
단테는 우리 자신을,

가이드인 베르길리우스
같은 이를 속세에서 만나
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
지 않나 싶습니다.

정점에 있는 베아트리체
는 뭐랄까 구원의 상징
이 아닐까 싶네요.

시작은 했으나 냅다 팽개
쳐 버리고 다른 책들만
줄창 파고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2-05-22 15:43   좋아요 2 | URL
^^
언젠가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거예요
책 읽는것도 그런 것 같아요 ~^^

mini74 2022-05-25 0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블레이크의 그림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좀 덜 무섭기도 하고 ~~ 그레이스님 글 읽으니, 베아트리체를 가슴에 별처럼 품고 베르길리우스란 안내자와 함께 어두운 숲을 걸은 단테는 어쩌면 운 좋은 사내같단 생각도 드네요 그레이스님 글 읽으니 다시 신곡 읽고싶네요. 아 이런 구절이구나 이런 의미구나 ㅎㅎㅎ

그레이스 2022-05-25 15:54   좋아요 3 | URL
미니님 혹시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 아시는지요? 노래 중에 0×1=lovesong(I know I love you)이란 노래가 있는데, 얘네가 신곡을 아네?!했어요^^
작년에 나온 노랜데 애들이 좋아해서 저도 들어왔거든요. 가사도 달리 들리는 독서의 효과라고 해야할까요?

mini74 2022-05-25 09:59   좋아요 3 | URL
노래제목이 ㅎㅎ 저 찾아서 들어볼게요 ~

mini74 2022-05-25 10:06   좋아요 3 | URL
헉 잘 생기고 노래도 좋고. 그레이스님 말씀 듣고나니 오!!! 그렇네 싶고 ㅎㅎ 저 이 나이에 입덕하는건가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2-05-25 10:13   좋아요 3 | URL
빅히트 영업했네요^^

scott 2022-05-25 15:53   좋아요 3 | URL
0×1=lovesong
듣고 왔습니돠
오늘 부터 팬 할레여 ㅎㅎㅎ

그레이스 2022-05-25 15:57   좋아요 3 | URL
이번에 나온 곡들도 좋아요 ㅋ
춤이 예술이예요 ㅎㅎ
opening sequence

노래는 trust fund baby 넘 슬프구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