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통과한 사람은 역사, 현상,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항상 깨닫게 된다. 특별히 수용소나 학살의 피해자였던 사람들의 경우 그 상처는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되어 인간됨이란 존재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을 보게 된다. 때론 그 경험이 굴레가 되기도 하고, 철학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홀로코스트는 반복되는 문학의 한 소재가 되었고, 여전히 적응할 수 없는 역사의 장면이다.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가장 충격적이었던 책은 엘리 위젤의 벽 너머 마을새벽이었다. 아침에 교수형을 당한 소년이 저녁까지 숨이 끊어지지 않은 모습을 보며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했던 누군가의 분노에 찬 신음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무리 중 누군가가 저 교수대에라고 했던 대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엘리 위젤이 194416살에 홀로코스트 수용소에서 경험한 내용이다. 지금도 게토, 인종청소, 수용소와 관련된 소설을 섣불리 잡지 못하게 한 책이다.

1945년 당시의 부헨발트 수용소 (아래쪽에서 2번째, 왼쪽에서 7번째가 엘리 위젤)




엘리 위젤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 임레 케르테스 역시 1944년 15살에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다시 부헨발트로 이감되고 거기서 1945년에 풀려난다. 자전적 소설인 운명에 담은 이야기는 엘리 위젤과는 결이 다르다. 엘리 위젤의 기록은 기사를 쓰듯 자세히 묘사되어있다. 반면, 임레 케르테스는 15살 소년의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다. 개인적인 고민에 빠져있던 십대 소년이 세상을 보는 가치관을 갖기도 전에 수용소와 같은 비참한 현실을 맞닥뜨리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너무나 잘 표현했다. 사유보다는 감각으로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종전과 함께 부다페스트로 돌아간 소년의 혼란, 그제야 어렴풋이 인식하게 되는 모습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임레 케르테스는 이 운명을 시작으로 4부작을 썼다고 한다. 좌절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그리고 청산. 결국 나는 『좌절』을 펼칠 수밖에 없었고,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이어붙이는 듯한 이야기 속에 갇혀버렸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지닌 작가가 외부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고 내면의 자아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과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이들이 작가의 자아인 듯하다. 읽다가 앞으로 가서 다시 읽기를 반복한 끝에 읽기를 마치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운명은 감동적이다. 좌절을 읽는다면 운명은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좌절을 읽지 않았다면 운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세 번째 책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펼치게 된다.



6월이라 그랬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전쟁관련 소설을 이어서 읽었다. 시작은 하인리히 뵐의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였다. 아마도 그 전에 읽은 다다와 초현실주의봄의 제전이 그 시작을 만들었을 것이다. 독일군으로 2차 대전에 참전했던 하인리히 뵐의 경험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그가 전범으로 비판 받을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는 전쟁 중 탈영과 같은 전쟁터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을 했다고 한다. 징병되어 원하지 않는 전쟁을 해야 했던 그의 삶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까지 이르게 한다. 전후(戰後) 그는 전쟁 경험과 폐허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썼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읽어야 했고, 다시 열차는 정확했다를 주문했다. 어느 어릿광대의 전설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까지 읽을 계획이다.


엘리 위젤과 임레 케르테스, 하인리히 뵐과 귄터 그라스, 피해 집단과 가해 집단의 문학가들이다. 같은 시대를 통과했지만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엘리 위젤은 노벨 평화상을 나머지 세 사람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은 글의 결은 다르지만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왜 이런 고통에 놓이게 되는가? 이런 비참함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가? 인간은 본래 선과 악 어디에 속하는가?


만일 유대인과 독일군 신분이 서로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임레 케르테스가 좌절에서 징집당한 군인과 간수(看守)로서의 경험을 통해 던진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당신은 사형집행관입니까, 사형수입니까?"(417p,좌절』)


댓글(42)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2-06-26 21:0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는 몽상가ㅎㅎ🖐
이 글을 읽으니 <좌절>을 읽고<운명>을 재독해 봐야겠다 마음먹게되네요.
어제 로맹가리의 글을 읽었는데
게토에서 탄생한 유대인들의 유머에 대해 공격적이기도하고 고통스런 현실을 누그러뜨리는 일종의 혁명이라고 하더라구요. 거기선
솔 벨로,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맬러머드,브루스 제이 프리드먼, 필립 로스를 언급했어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갖게하는 끔찍한 전쟁이었음에도 이런 유머와 그들의 문학적 기록을 통해 인간의 무너뜨릴 수 없는 숭고함또한
보여주고 있는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2-06-26 21:13   좋아요 8 | URL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문학은 인류의 놀라운 발명품이고, 위대한 유산이란 생각입니다.

그레이스 2022-06-26 21:31   좋아요 4 | URL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시군요.^^
저도 로맹가리 읽어야하는데...^^

페넬로페 2022-06-26 21: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경험이라도 국가, 나이, 성별등에 의해 다 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그렇지만 모두 다 피폐해지고 트라우마가 평생 간다는 것은 공통적이겠죠~~

그레이스 2022-06-26 21:21   좋아요 7 | URL
그래서 폐허문학이라고 이름 붙였나봐요 ㅠ
15살 16살이 이런 사건을 어떻게 담았겠나 싶어요;;
하인리히 뵐만 9살 많고 세사람은 비슷한 나이예요. 다른 예술가들도 있겠지만 이 네 사람이 연결이 되네요.

새파랑 2022-06-26 21: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임레 케르테스의 <좌절>은 꼭 읽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첫번째 사진 너무 슬프네요 ㅜㅜ 그래도 왠지 저 속에서도 삶이라는게 느껴집니다~!!

그레이스 2022-06-27 08:05   좋아요 6 | URL
그리 잘 읽어지는 작품은 아니지만, 읽길 잘 했다는 생각입니다.
곧 리뷰하려구요^^

사진 너무 참혹한데 거기 엘리위젤이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 돋았습니다.
수용자번호로만 불리던 존재가 자기 이름을 다시 갖게 되는 순간이죠.

그레이스 2022-06-27 08:12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 <운명>을 먼저 읽어야하고 <좌절>을 읽으셔야 하는데,,,, 아마 <운명>은 읽으셨죠?

새파랑 2022-06-27 08:28   좋아요 4 | URL
운명은 읽었습니다~!!

mini74 2022-06-27 09: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ㅠ 소년이야기 너무 끔찍하네요 ㅠㅠ 운명 읽고 좌절 사놓고 읽다가 덮었다가 ㅠㅠ 덮밥도 아니도 ㅠㅠ ㅎㅎ 다시 힘내서 읽어봐야겠어요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2-06-27 09:09   좋아요 5 | URL
저도 <좌절> 오래 걸렸어요.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수월하게 읽히네요. 작가의 생각이 넘 가슴아프네요

레삭매냐 2022-06-27 1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엘리 위젤의 케이스는...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이 벌이는 폭압적인 통치에 대
해 옹호한 전력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네요.

하인리히 뵐의 <아담> 리뷰를
써야 하는데 선뜻 손이 나서질
않네요...

그레이스 2022-06-27 11:31   좋아요 4 | URL
그러게요
그래서 슬퍼요
인간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상처안에 갇혀서 세상을 보게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돼요.
그래서 묻게 되는것 같아요.
나는 사형집행관인지, 사형수인지...!

바람돌이 2022-06-27 1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후 문학들의 중요 지점은 피해자 가해자가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느냐, 그리고 그것을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애 또는 보다 근원적인 사유로 발전시킬 수 있느냐 하는거라고 생각해요.
저 작가들이 그런 성취를 어느정도 이루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저는 지금 그동안 독일인의 입장에서 쓴 글들은 못읽어봐서 하인리히 뵐 부터 한번 읽어보려구요.

그레이스 2022-06-27 12:34   좋아요 4 | URL
예 맞습니다.
바람돌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로 발전시키는 것!
작가의 일이기도 하고, 독자의 일이기도 하단 생각입니다.
👍

서니데이 2022-06-27 2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속 사람들 너무 말랐어요.
수용소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공포심을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밤되세요.^^

그레이스 2022-06-27 21:36   좋아요 3 | URL
예!
비참하죠!
서니데이님도 좋은밤 되세요.

scott 2022-06-27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임레 케레데스가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직시 하는 관점이 좋았는데
막상 헝가리에서는 대다수 인들이 임레를 좋아 하지 않다는 거에 놀랐습니다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이렇게 끊임없이 전세계에서 문학과 음악 영화로 재 탄생 시키는 문화의 힘이
부럽고
한 편으로 우리의 아픔은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슬픈 ㅜ.ㅜ

그레이스 2022-06-28 10:38   좋아요 2 | URL
홀로코스트는 아무래도 더 오랫동안 예술의 주제가 되겠죠?
저마다 생각이 다르긴 하겠지만....
독일가서 소녀상 철거하라고 시위하시는 분들 ㅠ
집에 가서 더 배우라고 말을 들었다고 바뀔것 같지는 않고,,,
마음이 답답합니다.

희선 2022-06-28 0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해자와 가해자 처지는 바뀔 수도 있었겠지요 어릴 때 그런 일을 겪고 살아 남은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나이를 먹은 사람도 그때 일을 다 잊지 못하더군요 지금 사람은 그때 일을 소설이나 다른 글로 보기도 하네요 그 사람들이 썼기에... 썼다고 해도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습니다 그런 걸 보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는데...


희선

그레이스 2022-06-28 05:16   좋아요 3 | URL
한 세대 모두가 겪는 트라우마죠
모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그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말아야하는데 반복되는 슬픔!
안타깝습니다

서니데이 2022-06-28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도 비가 오고 습도 높은 하루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6-28 17: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세요 ~~^^

2022-06-29 0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9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7-08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임레 케르테스 =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

그레이스 2022-07-08 19:4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이 페이퍼였네요
저도 뭔지 몰라서...
노트북 켰습니다. ㅎㅎ

수하 2022-07-08 2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

전 2차대전이 한참 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유대인 홀로코스트 관련한 문학이 많은가 했는데.
그걸 직접 겪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더라고요. 그분들이 지구상에서 다 사라진다 해도 문학 덕분에 후세 사람들이 그 일을 기억할 수 있겠죠..

그레이스 2022-07-08 21:40   좋아요 1 | URL
예 그렇겠죠
오랫동안 문학과 예술의 주제가 되어 왔으니...

mini74 2022-07-08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ㅠㅠ 제가 좀 그래요 ㅎㅎ *^^*

그레이스 2022-07-08 21:42   좋아요 1 | URL
ㅎㅎ
아녜요
저도 몰랐는걸요
ㅋㅋ
덕분에 정신차렸습니다

alummii 2022-07-08 2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7-08 21: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7-08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 중 두 개의 축인 독일과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의 사실을 철저하게 해부하고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한 편과, 그런 사실의 존재조차 은폐해버리려는 다른 쪽. 이러한 상이한 대처들 또한 어떻게 보면 거시적인 폐허문학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2-07-09 22:43   좋아요 1 | URL
예, 그렇죠
문학의 기능이 바로 그런 것일텐데,,,
일본의 경우 그런것 조차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일본의 전체주의, 군국주의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22-07-09 0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도 잊지 않아야죠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전쟁이 세계에서 아주 사라지지 않아서 안타깝네요 그래도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님 글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할 겁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7-09 22:39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전쟁과 함께 찾아온 여러가지 힘든 상황이 있죠. 어서 끝나길 바래 봅니다.

bookholic 2022-07-09 0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즐거운 주말되시고요~~^^

그레이스 2022-07-09 22: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 봤네요^^
북홀릭님도 즐거운 주말과 휴일되시길 바랍니다~

scott 2022-07-1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더블 당선 축하 합니다

이곳은 폐허가 아닌
그레이스님 표 리뷰 맛집 ^ㅅ^

페넬로페 2022-07-11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축하!
임레 케르테스의 작품도 읽어야 하는데 언젠가는 읽겠죠~~

독서괭 2022-07-1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드려요!
이 글 못 읽었었네요. 임레 케르테스 작품들,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언젠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