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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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서에는 담당자 말고는 100프로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여성들은 절반은 비(非)혼이고 절반은 결혼을 했다. 간혹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결혼을 한 어떤 동료가 비혼인 사람들에게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잘 몰라.”라고 말하거나 “저러니 아직 결혼을 못했지”라는 말을 한걸 들은 적이 있다. 근래에 들은 가장 폭력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남 일에 끼어서 좋은 적 한 번도 못 봤기 때문에 나는 그런 말을 한 그 사람을 보면서 결혼이, 그렇게, 뭐가 좋은 것이냐고 당신은 결혼을 해서 뭐가 얼마나 크게 달라진 위상으로 살고 있느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남 일에, 특히 직장에서는 더욱더 끼어들면 이후 직장 생활이 고달파진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평범한 삶이라는 것이 깨진지 오래된 요즘 “왜 아직 결혼 못했어?”같은 촌스러운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주인공 “노인지”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 아니지만 사회 속으로 들어오면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인다. 다만 그가 속한 결혼은 1년으로 맞춰진 기간제 결혼이고 그 결혼을 통해 승급을 하고 다른 직장보다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 결혼 기간 동안 그녀는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자주 만나지 않고 출장을 간 것으로 해 둔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매년 계약 결혼 생활을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이해할 부모가 어디 있는가. 물론 친구에게도 그녀의 직장은 비밀에 붙여진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밝힐 수 없는 일이 직업이라는 것에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처음엔 노인지의 결혼이 낭만적으로도 보였다. 결혼을 하게 되면 양가 가족과 연결된 문제들에 이런 저런 노이즈가 끼게 마련인데 그녀는 자유롭다. 전혀 관섭할 이유가 없다. 서로의 집에서는 그런 계약 결혼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시어머니를 모실 필요도 없으며 시어머니보다 더 얄밉다는 시누이와도 언쟁을 할 필요가 없고 마음에 안 드는 예단을 가지고 왔다고, 부족한 예물에 대한 지청구를 들을 필요도 없다. 서로가 원한다면 잠자리에 들 수 있고 서로의 비밀에는 전혀 터치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주어진다. 하지만 주인공 노인지는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그저 직장의 연장선에 놓는다. 그녀는 자신에게 맞춰진 고객과 일 년정도의 삶을 부부의 관계로 살아가고 있는 것 뿐이라고. 그저 나는 돈을 받는 직장에 몸담은 사원이라고.



 

 

그녀의 직장의 연장선에 있는 결혼들은 매우 깔끔했다. 그래서 네 번째 남편과 다섯 번째의 결혼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계약상의 결혼은 평탄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친구에게 소개 받은 엄태성은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죽거리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을 쏟아 놓는 대사들이 다 어쩜 이렇게 혐오스러울 수 있을까. 매일 찾아와 자신의 집 앞에 놓고 가는 떡 케이크가 지긋지긋 할 정도로 그녀에게 달라붙는 엄태성의 역할은 현실의 결혼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판타지가 없고 리얼한 집착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녀의 직장으로 이어진 결혼 생활이 판타지속의 결혼이고 친구에게 소개받은 엄태성은 현실속 결혼이라면 당연히 그녀가 매년 꾸려 가지고 나가는 트렁크에 넣어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일년 결혼이 끝날 때 그간의 살림을 정리하면 늘 트렁크 하나만 가지고 나가면 된다고 했다. 그녀가 가져 왔던 몇 가지의 물건들만 다시 본래의 현실로 돌아갈 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녀의 트렁크에는 그런 물건들이 들어 있는 것일까. 그녀의 트렁크에는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모두 소모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까. 엄태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게 되는 현실을 통해 그녀는 더 빨리 떠 날 수 있도록 비어 있는 트렁크를 가지고 떠날지 모르겠다.

 

 

 

 

 

그간 김려령의 작품을 하나도 안 빠지고 읽어온 독자로, 지난번 “너를 봤어”를 시작으로 그녀의 청소년 동화가 아닌 성인 소설의 복귀가 “완득이”를 사랑하는 한 독자로서 반갑지 않다. 지난번 책도 그렇고 이번 책 또한 급하게 마무리 된 듯한 결론이 답답할 뿐이고 무엇보다 그녀의 신선한 캐릭터들의 실종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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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7-3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직장생활하며 기혼자와 미혼자 사이에서 제일 부당한 이야기는 `아직 미혼이라 챙겨야할 부분이 기혼자보다 적으니 이 일은 네가해야지 않니`라는 인식과 그 인식을 당연시 생각하는 부분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로써 배려로써 생각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것을 당연시 생각해서 자꾸 의지하려는 모습 곁에서 지켜보기 화나더라구요 ㅎ 저두 오후즈음님 처럼 몇번의 경험으로 고달팠던 사정이 있던지라 한숨만 푹푹 쉬었던 일이 생각났어요 ㅎ

오후즈음 2015-07-31 17: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간혹 미혼인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면 애 키우는 자기들은 더 힘들다고 하기도 하구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피곤함을 늘 비교하더라구요. 물론 이것도 사람 나름의 얘기입니다만..
사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섞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과 거리를 두는 나를 보면서 속상 할때도 있어요.

꽃핑키 2015-08-0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박! 역시 우리 오후언니ㅋㅋ
글을 어쩜 이리도 잘 쓰나요? 대체 뭘 드시길래?ㅋㅋ
저도 트렁크 읽은 책이라 언니 리뷰 한글자 한글자 아주 정독하며 읽었네요ㅋㅋ
책 보다 언니 리뷰가 더 조으다!ㅋㅋ

오후즈음 2015-08-07 00: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나 정말 이번에 김작가님께 실망했음.
또 이렇게 쓴다면 난 이제 안 읽을테야!!ㅋㅋㅋㅋ
핑키가 읽은것 보고 나도 사 놓고 안 읽고 있다가 빨리 읽었다요~~
 
15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한동안 책을 읽을 수 없었던 날들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닥치는 갑작스러운 일들이 내게도 닥쳤고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누군가의 얘기가 귀에 들리지도 않고 눈으로 읽는 것도 힘들었다. 세상과 멀리 있고 싶었지만 그 멀어짐은 외로움이라는 친구와 함께 나를 힘들게 했다. 이번 기수를 하면서 부지런한 독자가 되겠다는 나의 결심은 사라졌고 그저 정해진 날짜를 채우며 꾸역꾸역 책을 읽어 나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라도 내가 책을 한 달에 몇 권이라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나간 달들이 아까워서 며칠 밤을 새며 놓친 달들을 보상 받으려고 했을 것이다. 고마운 평가단 활동이었지만 가장 성실하지 못했던 기수였다.

 

 

- 15기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금요일엔 돌아오렴

_ 광화문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었는데 왜 이토록 특별하게 되었을까.

 

 

 

 

- 15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떠나는 이유

-일년 내내 여행을 하고 싶은 내가 가장 공감하면서 읽었던 책이었다.

나는 주변 지인들에게 늘 그런 얘기를 했었다. 명품 가방보다 도장이 꽉찍힌 너덜너덜한 여권을 가지고 싶다고. 그것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2.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을 좋아하는 나로서 그들이 선택한 소설을 다시 읽어본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선택한 책들이 우리집에 다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줄이야.

 

 

 

 

 

 

 

 

 

 

 

 

 

3. 다정한 편견

_ 예전 알라딘 소설 신간평가단을 통해 만나게 된 손홍규의 에세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두 번이나 손에 들어오다니. 이런 행복이 또 어디있겠어.

 

 

 

 

 

 

 

 

 

 

 

 

 

4.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_ 두 사람의 편지를 읽는동안 한쪽 가슴에는 고흐를 떠 올리면 읽었다. 이렇게 영혼을 닮은 친구가 있었다니 그들은 행운아들이다.

 

 

 

 

 

 

 

 

 

 

 

 

 

 

5. 나는 왜 쓰는가

_ 한창훈의 글을 더 좋아하게 되었던 책이다. 그의 글 속에 담겨 있는 바다 내음이 참 기분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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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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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전에 어쩌다 우연히 기고한 글이 유명한 모 영화잡지에 실리게 되었다. 독자 투고란 비슷한 것이었다. 지금은 개인정보 때문에 전체의 주소가 올라가는 일은 없지만 그때는 개인 정보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인지 내 집 주소가 전부 올라가는 바람에 한 달 동안 편지를 끊임없이 받았다. 편지가 오기 시작한 첫날은 삼백 여 통이 넘는 편지가 와서 따로 집배원 아저씨가 큰 봉투에 넣어서 주고 가셨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편지는 어느 지방 도시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편지였다. 대학생이었던 나와 그는 십여 년의 나이차이가 있었는데 문학에 대한 나의 고민을 가장 잘 아는 친구처럼 느껴져 2년째 병원 생활을 하는 그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답장을 보낸 것이 시작이 되어 그가 서울로 올라왔던 그해, 그러니까 거의 5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간혹 시험기간이나 장기간 여행을 가게 된 달을 빼면 일주일에 한통씩 꼬박 편지를 썼었다. 아무런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그 때문에 편지가 온전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언젠가 편지에 내게 연락할 방법이 편지 말고 아무 것도 없어 혹 그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나는 어떻게 소식을 알 수 있을지에 대한 무서운 고민을 써서 보냈더니 그는 내게 전보를 보내왔다. 거기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던 것 같다. “걱정마라,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네게 소식을 전해줄 이가 내 옆에 있으니까.” 십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전보를 받지 않은 것을 보면 그가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병원을 떠나면서 편지는 중단되었고 핸드폰이 생기면서 서로 전화 연락을 하다가 이후에는 서로 소원해졌다. 그와 연락은 더 이상 되지 않지만 나는 그와 나눴던 수많은 편지를 간혹 떠 올린다. 누군가 내 이름을 쓰고 생각하면서 종이에 한자 한자 정성들여 단어를 골라 썼을 그 시간들과 내가 보낸 편지를 그런 마음으로 읽어줬을 그 순간들을 떠 올리면 그간 지내왔던 시절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나날들이 아니었을까. 편지란 이렇게 허튼 시간이 없고 간절하다.




[선생님, 요즘 어떠하십니까]는 이오덕과 권정생의 30여 년간 오간 편지를 묶은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를 떠 올렸다.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이유는 권정생과 같은 결핵 때문이었고 그가 입원했었기 때문에 나는 그와 오랫동안 편지를 쓸 수 있었다.

권정생의 동화를 읽고 그의 글쓰기가 계속 되기를 희망하면서 찾아간 이오덕은 1973년부터 이오덕이 생을 마감한 2003년까지 30여 년 동안 편지가 오갔었다. 평생 교회 종지기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권정생은 결핵으로 많은 시간을 병과 싸워야 했다. 그의 편지를 보면 그가 아프지 않은 날이 없을 만큼 오랜 시간 그는 잘나오지 않는 소변과 기침과 고열에 시달렸다. 고열에 시달리는 날은 하루 종일 누워 열이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했고 기력이 떨어져 밖에 나가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든 그를 위로 했었던 것은 오로지 동화와 이오덕의 편지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힘든 날들의 연속이지만 그는 한결같은 고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이들을 생각하고 글을 썼다.




“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P13

순수하지만 자신의 동화에 대한 열정은 크고, 강직하다. 그의 동화속의 등장인물의 이름이 일본어 인것을 출판사에서 바꿔 달라고 하니 그는 일본 동요곡을 어엿이 표절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문학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 이름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본 이름으로 등장되었다 해서 어려워하는 것을 (P72) 이해하지 못한다며 답답한 시국을 슬퍼했다. 하지만 적은 원고료에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이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의 삶은 처연하지만 그 순박함을 닮고 싶기도 하다. 그런 그를 가장 걱정해주는 사람은 역시 이오덕이었던것 같다. 그의 편지에는 늘 그가 밥은 잘 먹고 살고 있는지, 연탄은 떨어지지 않는지 걱정하며 그의 차디찬 방에 온기를 줄 수 있는 연탄을 살 돈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의 동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은 원고료를 받아주기 위해 애썼고 그의 책이 나오면 가장 기뻐했다. 지금도 출판 시장이 좋지 않지만 그 시대에도 좋지 않은 출판 시장으로 기획한 날짜에 책이 나오지 않자 불안해하는 권정생을 달래는 이도 이오덕이었다. 때론 그의 보챔을 보면서 짜증 한번 낼 법도 한 나이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이오덕은 편지에서 단 한 번도 아랫사람 다루듯이 그를 대하지 않고 늘 존칭을 쓰며 그를 대했다. 권정생의 시골에서는 그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교회 종지기였겠지만 이오덕에게는 한국 아동문학에 소중한 보물처럼 그를 대했다.




고흐와 그의 동생 태오와 오갔던 편지를 묶은 책 [영혼의 편지]를 읽을 때 고흐의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았던 나들이 떠올라 책을 다 읽는 것이 그가 그림을 힘들게 그리는 것처럼 힘들었었다. 고흐에게 태오가 없었다는 그의 삶은 얼마나 더 괴로웠을까. 권정생에게 이오덕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게 태오는 고흐에게 용기를 줬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돈을 보내줬다. 이오덕은 권정생에게 콩팥에서 피가 쏟아지는 아픔을 줄때까지 동화를 쓸 수 있게 한 사람이었고 저기 어디쯤 자신의 편지를 가지고 오는 발자국을 기다리게 한 사람이었다. 그들의 운명의 끊을 부러운 마음으로 본다. 누가 이렇게 자신의 일처럼 작은 것 하나까지 반가운 마음으로 다듬어 줄 것인가.


두 사람의 다정한 편지 때문에 나는 한동안 서글펐다. 왜 이토록 오랫동안 나는 편지를 잊고 살았을까. 단 한 줄의 글이라도 내 마음을 전할 이들을 이렇게 많이 놓치고 살았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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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5-07-27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ㅁㅋ~
 

 

 

 

 

 

 

책장에는 더 이상 책을 꼽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쩌면 더 이상 진열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책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책들을 책장 앞에 다시 세웠다가 쏟아지고 말았다. 그 쏟아진 책들중 발견한 책을 보고는 마음이 섬뜩했다.

 

 

비닐 포장도 뜯기지 않을 채 숨어 있었던 책이 있었다. 물론 비닐 포장이 없다고 해서 다 읽은 책이라고 할 수 없는 읽지 못한 책들이 많다. 신간 평가단을 통해 얻게 되는 책도 많지만 그것보다 사들이는 책들이 훨씬 많다. 간혹 쇼핑 목록 중에 책이 있다는 것으로 이달의 쇼핑중 가장 바람직했다고 생각했던 날들을 반성해본다.

 

 

 

유독 뭔가에 빠지면 참 많이 사들인다. 그중에 원단이 있다. 옷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서 원단을 책만큼 샀던 달이 있었는데 다 읽지 못하고 책장에 들어가는 책처럼, 원단들도 옷으로 탄생하지 못하고 그저 천 조각으로 벽장에 채워지고 있었다.

 

 

서재에 책과 원단이 섞여 있으면서 나를 노려본다.

언제 다 만들어주고 언제 다 읽을 것이냐고.

 

 

그래서 석 달 동안 책은 사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알라딘 16년 기념으로 주는 사은품들이 왜 이렇게 좋은 것이 많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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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23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부터 느꼈지만, 출판시장이 더 안 좋을수록 사은품에 의존하는 출판사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알라딘마저 출판사의 마케팅 열기에 불을 지피고요. 알라딘 사은품만 소개하는 페이지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씁쓸했습니다.

오후즈음 2015-07-23 21:49   좋아요 0 | URL
그런 생각은 안해보고 그저 가지고 싶은것을 주는 사은품에 혹해서 저는 또 호로록 많이 샀네요. ㅜㅜ 아, 너무 단순하고 쉬운 여잔가 뭐 그런 자책을 ㅎㅎ . 여타 다른 인터넷 서점중에 알라딘이 사은품이 가장 후하고 많다는 느낌 간혹 받았는데 출판 시장의 다른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니 마음 아프네요.

AgalmA 2015-07-2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굿즈의 마케팅 효과를 다른 온라인 서점들도 이젠 간과할 수 없는 것 같더군요... 점점 비슷한 유형의 사은품이 다른 곳에서도 확산되어가는 걸 보며 씁쓸... 알라딘은 더욱 가열차 질테고;; 흐음....

오후즈음 2015-07-26 23:45   좋아요 0 | URL
씁쓸하네요...ㅠㅠ

Soul_Play 2015-07-24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중독 특히 양장본을 좋아합니다.

오후즈음 2015-07-26 23:46   좋아요 0 | URL
헉 저도 양장본! 진열_ 장식하기에는 양장본이죠 ㅠㅠ

붉은돼지 2015-07-24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책들 몇권 있죠,,
님의 경우처럼 숨어있다 나타나서 놀래키지는 않지만요..ㅎㅎㅎㅎ

오후즈음 2015-07-26 23:46   좋아요 0 | URL
올해는 저 비닐포장된 책을 모두 읽는것이 목표입니다. ㅠㅠ

서니데이 2015-07-24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그렇지만 원단도 한 번 사면 있는데도 계속 사게 되는 것 같아요,
오후즈음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오후즈음 2015-07-26 23:47   좋아요 1 | URL
그쵸...특히 원단...저, 정말 걱정일만큼 많아서요...부지런히 좀 만들어야 하는데
봉틀신이 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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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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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참 따뜻한 소설을 만났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에 있는 아저씨가 운영하는 정육점이 배경이 된 <이슬람 정육점>속의 심성이 착하고 고운 주인공을 잊지 않고 있다. <완득이>를 읽으면서 작가가 지녀야 할 덕목은 착한 심성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잘 표현해준 김려령을 좋아하게 되었었다. <이슬람 정육점> 또한 그랬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작가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고 아직까지는 이런 따뜻한 얘기를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이 들어 그의 신작을 만나면 오랜 친구의 연락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약속장소에 나가는 떨림을 갖게 했다고 할까. 2008년에서부터 2015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들을 묶어 놓은 그의 일상의 얘기들은 여전히 그의 고향처럼 정겹다.



총 4부로 이뤄진 내용 중 그의 소설쓰기의 초창기 모습을 회상하는 부분이 가장 많은 1부의 내용들이 훨씬 마음에 가는 것은 그의 고생담이 안쓰럽다기보다 그의 하루가 문득 나의 하루와 오버랩 되었던 어떤 날의 모습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원고지 4.5매라는 분량으로만 써야 했던 그의 짧은 글속에 그가 골라내야 했던 단어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단어들을 골라내기 위해 애썼던 그의 모습들을 떠올려 보면 마치 하루일과중에 나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쉽게 쏟아진 말들에 가끔은 집에 돌아오면서 죄책감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계속 마음이 쓰여서 그 동료에게 혹 나의 말에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 문자를 넣었던 적도 있었다. 긴 얘기를 하기보다는 짧은 단문으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손홍규 작가의 글을 통해 느껴 본다. 그가 골라냈던 말들은 아마도 상처를 주거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들은 모두 걷어 들였을 것이다.


 

그의 짧은 글속에는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일들이 그의 하루를 지나갔는지 알 수 있다. 그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어떤 것인지, 서울로 올라온 후 스무 번이 넘는 이사를 한 그가 집을 더럽게 썼다고 투정하는 주인에게 멋쩍게 던진 “그동안 잘 살고 갑니다.”라는 말에 환한 얼굴로 그를 응대했던 주인의 얼굴처럼 서울이 때로는 쌀쌀맞다가 다정한 친구가 되어준 모습들을 떠 올리면 아직은 그래도 세상이 살맛은 난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다정한 글들 속에 “팔을 번쩍 드시오”의 에피소드가 가장 좋았다. 송년회에 지쳐 내키지 않아도 참석해야 하는 자리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그에게 찾아온 불알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을 때, 친구를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나가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이 훨씬 컸지만 막상 추운 겨울 외투를 여미고 있는 친구가 자신을 보자 팔을 번쩍 들며 인사를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화답하듯(작가의 표현대로) 팔을 번쩍 들어 반가운 마음을 보였던 그 순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만남이 불편했던 그 잠깐의 순간이 미안해지고 나를 한눈에 알아봐 줬던 친구의 눈빛이 고마워 졌을 것이다. 친구를 만나지 않으려 했었던 그 잠깐의 고민은 눈밭에 흩날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그려보니 가슴이 뜨거워 졌다. 문득 오래토록 만나지 못했던 나의 그리운 친구들도 생각이 났고, 나도 친구들을 기다리며 반가운 발걸음 소리만으로 기척을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의 소설가로 서울에서 살아가는 삶이 평탄지 않았지만 그는 모질게 이분법된 세상에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 치우침 없는 소식에 그가 말하는 다정한 편견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서 나는 그의 삶이 더 빛나 보였다. 비록 그가 살고 있는 곳이 강변이 보이는 최고의 멋진 아파트가 아닐지라도 그의 작은 방에는 분명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있는 작은 창이 있을 것이고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을 채워 나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언젠가 지금의 나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다음의 생은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봤는데 작가는 이런 얘기를 했다.

“바로 지금부터 다음 생이 시작되는 법이니까.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생에는 잘 살아볼 거야. 이렇게 투덜대던 벗이여 다음 생은 벌써 시작되었다.” P81

내게 몇 달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답해주는 것 같은 문장이었다. 매일 괴로웠던 날들을 생각해보니 나는 매일 시작되는 다음 생을 고통으로 끝내고 있었다니 정신이 번쩍 났다. 이제는 정말로 다음 생을 본격적으로 맞이해야 할 때 인가. 그러기 위해선 더운 여름날에도 심하게 열나는 파이팅이 필요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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