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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내 부서에는 담당자 말고는 100프로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여성들은 절반은 비(非)혼이고 절반은 결혼을 했다. 간혹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결혼을 한 어떤 동료가 비혼인 사람들에게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잘 몰라.”라고 말하거나 “저러니 아직 결혼을 못했지”라는 말을 한걸 들은 적이 있다. 근래에 들은 가장 폭력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남 일에 끼어서 좋은 적 한 번도 못 봤기 때문에 나는 그런 말을 한 그 사람을 보면서 결혼이, 그렇게, 뭐가 좋은 것이냐고 당신은 결혼을 해서 뭐가 얼마나 크게 달라진 위상으로 살고 있느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남 일에, 특히 직장에서는 더욱더 끼어들면 이후 직장 생활이 고달파진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평범한 삶이라는 것이 깨진지 오래된 요즘 “왜 아직 결혼 못했어?”같은 촌스러운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주인공 “노인지”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 아니지만 사회 속으로 들어오면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인다. 다만 그가 속한 결혼은 1년으로 맞춰진 기간제 결혼이고 그 결혼을 통해 승급을 하고 다른 직장보다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 결혼 기간 동안 그녀는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자주 만나지 않고 출장을 간 것으로 해 둔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매년 계약 결혼 생활을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이해할 부모가 어디 있는가. 물론 친구에게도 그녀의 직장은 비밀에 붙여진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밝힐 수 없는 일이 직업이라는 것에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처음엔 노인지의 결혼이 낭만적으로도 보였다. 결혼을 하게 되면 양가 가족과 연결된 문제들에 이런 저런 노이즈가 끼게 마련인데 그녀는 자유롭다. 전혀 관섭할 이유가 없다. 서로의 집에서는 그런 계약 결혼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시어머니를 모실 필요도 없으며 시어머니보다 더 얄밉다는 시누이와도 언쟁을 할 필요가 없고 마음에 안 드는 예단을 가지고 왔다고, 부족한 예물에 대한 지청구를 들을 필요도 없다. 서로가 원한다면 잠자리에 들 수 있고 서로의 비밀에는 전혀 터치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주어진다. 하지만 주인공 노인지는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그저 직장의 연장선에 놓는다. 그녀는 자신에게 맞춰진 고객과 일 년정도의 삶을 부부의 관계로 살아가고 있는 것 뿐이라고. 그저 나는 돈을 받는 직장에 몸담은 사원이라고.
그녀의 직장의 연장선에 있는 결혼들은 매우 깔끔했다. 그래서 네 번째 남편과 다섯 번째의 결혼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계약상의 결혼은 평탄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친구에게 소개 받은 엄태성은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죽거리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을 쏟아 놓는 대사들이 다 어쩜 이렇게 혐오스러울 수 있을까. 매일 찾아와 자신의 집 앞에 놓고 가는 떡 케이크가 지긋지긋 할 정도로 그녀에게 달라붙는 엄태성의 역할은 현실의 결혼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판타지가 없고 리얼한 집착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녀의 직장으로 이어진 결혼 생활이 판타지속의 결혼이고 친구에게 소개받은 엄태성은 현실속 결혼이라면 당연히 그녀가 매년 꾸려 가지고 나가는 트렁크에 넣어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일년 결혼이 끝날 때 그간의 살림을 정리하면 늘 트렁크 하나만 가지고 나가면 된다고 했다. 그녀가 가져 왔던 몇 가지의 물건들만 다시 본래의 현실로 돌아갈 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녀의 트렁크에는 그런 물건들이 들어 있는 것일까. 그녀의 트렁크에는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모두 소모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까. 엄태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게 되는 현실을 통해 그녀는 더 빨리 떠 날 수 있도록 비어 있는 트렁크를 가지고 떠날지 모르겠다.
그간 김려령의 작품을 하나도 안 빠지고 읽어온 독자로, 지난번 “너를 봤어”를 시작으로 그녀의 청소년 동화가 아닌 성인 소설의 복귀가 “완득이”를 사랑하는 한 독자로서 반갑지 않다. 지난번 책도 그렇고 이번 책 또한 급하게 마무리 된 듯한 결론이 답답할 뿐이고 무엇보다 그녀의 신선한 캐릭터들의 실종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