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책을 다 가져가지 마오.



이사를 몇 번 하면서 견적을 보러 오신 분들은 나의 서재를 보면서 늘 같은 질문을 하셨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지금은 이사 오기 전, 천 오백권 정도의 책을 처분했고, 이사 와서도 오백권 정도의 책을 처분했지만 여전히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다. (소장하는 것이 맞다. 못 읽거나 안 읽은 책들이 절반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심정) 완전 유명한 파워 블로거는 아니었지만 네이버 블로그를 활발하게 할 동안 출판사에서 보내는 책이 일 년에 150권이 넘었다. 그렇게 쌓이고 사들인 책들이 삼면을 다 채우고도 넘쳐나는 책들이니 집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나 견적을 보러 오신들은 깜짝 놀라곤 하신다. 그러면서 물어보셨던 그 질문들. 뭐 하시는 분이세요?



책들이 너무 많기는 하죠...애매한 대답을 하니 견적 오신분들은 무거운 양장본의 동화책들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좀 가벼운 편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내시고는 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인들이 내게 너무 쉽게 하는 말이 있다.


“다 버리고 가”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애지중지 모아 놓은 컬렉션을 볼 때마다 흐뭇한 나의 모습을 모르고 있는 이들은 이런 얘기를 쉽게 하는 것 같다. 내 책장에 책 한 권 선물하지 않은 이들이 쏟아 놓는 얘기에 가끔 무례한 말들이라는 생각이 들고 화가 날 때가 있다.



맥시멀 라이프에서 미니멀을 꿈꾸었지만 포기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책들 때문이었다. 책들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집에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것도 아님에도 나는 진열하고 있는 이 책들을 버릴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사 놓고 읽지 못하고 쌓아 놓은 책들이 많다는 것도 있었다. 물건을 쌓아 놓고 버리지 못하는 호더는 아니지만 가끔은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할때도 있었다. 그러다 많은 책들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들을 읽으면서 위로 받았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는 이번생에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방치된 책들은 이사와 함께 다시 고민꺼리가 되었다.

서재가 꼭 있어야 한다며 나는 세 개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고 부동산 사장님은 조건에 맞게 집을 찾아주다가 집에 물건이 많냐고 물으셨고 책이 얼만큼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똑같은 말을 하셨다.



“아휴, 다 버리고 오세요”



때로는 아껴 읽으며 쌓아 놓은 책도 있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을 시리즈로 모아 놓고 장식하고 바닥에 누워 책장에 제목들을 읽으면서 좋았던 내용들도 떠 올리고 가끔은 소식이 뜸한 작가의 후작들을 기다리며 전작을 다시 읽어 갈때도 있었던 나의 책들이었다. 큰 의미 없는 책들을 골라내고 중고로 팔거나 더 이상 팔지 못하는 책들은 분리수거함에 넣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나의 선택이고 나의 결심이고 나의 결단인 것이다. 타인이 나의 무지막지한 책들에 대하 팔거나 버리라고 말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제발 내 책들은 내가 알아서 할 권한을 줬으면 좋겠다.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는 책들에게 나도 안경을 고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낳았던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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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8-31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얘기인줄 알았어요...^^;;

오후즈음 2026-08-31 21:37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에 계신 분들 대부분 저랑 비슷하실것 같아요 ㅎㅎ
 

그렇게 쉽게 핸드폰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시 이사 갈 일이 생겼다. 각자의 집에서 살고 있었던 엄마와 나는 이번에 전세금 인상을 통해 집을 합치기로 했다. 그동안 전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7호선 라인으로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전 직장이 없어졌기에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이유가 없어졌다. 나는 인프라 좋은 이곳을 옮기고 싶지는 않지만, 친구와 직장이 있는 엄마가 이동 할 수 없으니 내가 거주지를 옮기기로 합의를 한 후 집을 보러 전철에 올랐다. (작년에 자동차를 폐차 한 후 아직 자동차를 사지 않고 있어 2시간 30분 거리를 지하철로 달려야 한다)



상봉역에서 경춘선까지 환승 후 출발까지 15분 남았다는 것을 확인 했다. 또 먼 길을 달려간다는 생각에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 그날 유독 많은 짐이 있었다. 조카들에게 줄 물건들을 잔뜩 가져가느라 분주했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화장실 선반에 잠시 올려놓았고 나는 그걸 잊고 나왔다. 정말 30초 밖에 안됐다. 커피를 한잔 들고 타야겠다고 생각했고 주문을 하려다 보니 핸드폰이 없다는 생각에 화장실로 다시 달려갔다. 그 순간이 정말 30초에 불과 했다. 내가 썼던 칸의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문을 두드려 핸드폰의 유무를 물었는데 안에 계신 아주머니는 핸드폰이 없다고 했다. 혹시 나의 기억이 틀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봐도 나의 핸드폰은 없었다.



춘천행이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부동산 사장님과의 약속 시간 때문에 지하철에 올랐다. 허망한 마음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앉아 있는데 현실 같지 않는 나의 시간이 와 닿지 않는 순간이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핸드폰의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나도, 나의 핸드폰이 있었다면 그것을 보며 즐겁게 있었을 텐데. 이런 때를 대비해서 가방에 넣어 온 책을 꺼냈다. 단 한글자도 읽혀지지 않았다. 젠장. 이 책을 가방에 넣지 않았다면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을 것이고 또 그렇다면 핸드폰은 잃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가방에 책을 넣어 다니는 행위는 앞으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지하철에서 내렸다.




동생네 집에 도착 후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얘기했다. 3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동생 핸드폰으로 우선 분실 신고를 한 후 집을 보러 다니는데 멘탈이 나가 있는 상태라 집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핸드폰을 잃어버린 후, 많은 연락처들, 사진들, 일정들-특히 병원 일정 기록들, 그리고 오늘 전세계약을 한다면 바로 입금할 돈이 들어 있는 은행 어플등등 눈앞에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머릿속이 온통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총 4곳의 집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동생 집으로 돌아가 소파에 누워 조카들 핸드폰을 돌아가며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엄마까지 오셔서 전화를 돌아가며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한견에 쌓인 결정의 순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연락처는 핸드폰 바꾸기 전의 연락처를 이동시킨다. 핸드폰에서 결제 될 수 있는 것들은 모두....정지 한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다시 전화를 걸어 본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전화를 받았다.


나의 전화기는 오전 11시에 나와 헤어져 오후 6시에 구리 역무실에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30분의 시간이 지옥 같았다가 환희를 줬다가 왜 구리에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가 그렇게 나와 다시 만났다. 어디 하나 깨진 것 없이 탁자에 있는 핸드폰을 손에 쥔 순간 아, 이게 뭐라고 참...한숨이 나왔다가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며 알게 되었다. 분실신고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핸드폰은 데이터를 그 어떤 순간에도 허락하지 않는다는것....카톡도 전송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무료 사용인 와이파이에서는 그 어떤 것도 다 수용하여 모든 어플을 열어 준다는 것.



이제는 핸드폰이 내 손에 들어 왔지만 와이파이 없는 곳에서는 유투브도 틀어지지 않으니 이제는 무겁게 가방에 넣어 온 책을 꺼내 읽기로 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가슴 한편이 모두 검게 칠해져 있었다. 가방속을 무겁게 만들었던 그 책은 일주일이나 걸려 다 읽을 수 있었다. 마음 한켠이 무거우니 이토록 뭘 읽는 다는 것이 힘들었다.



 
















  이 책을 다 읽기가 이토록 어려줬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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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8-24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핸드폰 찾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내내 가슴 졸였어요 핸드폰 꼭 찾아야 할텐데 하면서요🤣 액땜하셨으니 이사하면 좋은 일만 가득하실 겁니다😄

오후즈음 2026-08-25 00: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ㅜㅜ 정말 너무너무 힘든 7시간이었습니다. 액댐했으니 좋은일은 많아 지겠죠? 그랬음 좋겠습니다.

cyrus 2026-08-25 0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폰 찾아서 다행입니다. 저는 술 마시고 새벽에 택시를 타서 집에 가다가 폰을 분실한 적이 있어요. 겉옷 주머니 안에 있는 폰이 택시 뒷좌석에 떨어진 것 같은데, 전화를 몇 번 했는데도 안 받았어요. 결국 찾지 못해서 폰을 새로 샀어요. 폰 없어진 사실을 알았을 때 술이 확 깼습니다. 하필 폰이 없어진 그날이 새해 첫날이라서 시작이 좋지 않았어요.. ㅎㅎㅎ

오후즈음 2026-08-25 09:20   좋아요 0 | URL
이런 ㅠ.ㅠ 저는 택시타고 버버리 코트에서 지갑이 빠져 잃어버린적이 있었습니다. 그 지갑은 저의 첫 명품 까르띠에 지갑이었습니다. 흑흑....심지어 그때 돈도 50만원 이상 들어 있어서 정말 한달을 울었던 기억.
사이러스님은 새해 첫날 잃어버려서 아마도 그해의 모든 액댐을 하신것 아니실지요...그쵸? ㅎㅎ

잠자냥 2026-08-25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조마조마 끝 다행입니다!

오후즈음 2026-08-30 19:2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넵 찾아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ㅜㅜ

자목련 2026-08-26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사히 찾아서 다행이네요. 이사도 잘 하시길 바라요!

오후즈음 2026-08-30 19:26   좋아요 0 | URL
감사해여~~ 정말 파란만장한 8월이었습니다
 
소설 보다 : 봄 2026 소설 보다
김채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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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인 작가들 소설들은 이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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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다녔던 학원을 그만뒀다. 늘 그만두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던 그곳을 떠나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하게 되었다. 4개월 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내가 떠나 왔던 곳의 소중함과 안락함도 알았다. 사람은 이렇게 뭔가 하나를 놓치기도 해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는 것도 같다.




있었던 직장에서 늘 허기졌던 것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었다. 출 퇴근이 일반 직장인들과 조금 다르다보니 나름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늦게 출근하면 또 늦은 만큼의 게으름이 따랐다. 그리고 늦은 퇴근이 오면 또 집에 와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한스러워 했다. 책을 읽고 싶은 욕구는 많지만 늘 부족한 시간이라며 우선 사 놓고 보자 주문한 책이 식탁에 한가득 쌓였다. (책장에 책을 더 이상 꼽지 못하게 된지 벌써 3년이 흘렀다. 책들은 어느덧 책장 바닥에 식탁에 쌓이게 되었다)



새로 들어간 직장으로 옮기며 나는 그동안 미뤄왔던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직장이 집과 더 멀어지면서 1시간 출퇴근 시간이 2시간으로 바뀌며 책을 읽는 일은 더 할 수 없었다. 그동안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던 게임 캐릭터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지 3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4개월 프로젝트가 끝이 났고 드디어 내가 그토록 원했던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백수가 된지 5일이 흘렀다. 그런데 그 5일 동안 4일은 책을 못 읽었다. 사실 읽고 싶지 않았다. 프로젝트 일을 하느라 5월에는 2틀 밖에 쉬지 못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앉아서 일을 한 적도 많았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날들이라서 그냥 아무 일도 안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 우선 일주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침대에 누워 눈앞에 펼쳐진 책들의 무덤을 보는 것이 괴롭기만 했다. 아주 얇은 책을 골랐다. 그래, 이거라도 좀 읽어보자. 어때…….우선 읽는 거잖아. 얇은 것만 우선 다 읽자...그렇게 시작한 읽기가 이틀 이어졌다. 이 시작이 계속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유투브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던 아버지들이 첫 장부터 오열을 하기에 얼마나 슬퍼서 그런 것일까...싶어 나도 사 봤다. 음.....나는 다 읽는 동안 단 한 번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왜 안 슬픈걸까.  이런 마음이라면 그 어떤 것에도 공감하지 못하고 나 혼자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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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6-06-21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일을 했을 때 독서량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오히려 구매한 책이 많아졌고, 읽지 못한 책들도 늘어났어요. 정말로 일 때문에 지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지쳤다는 핑계로 독서와 서평 쓰기를 미뤘어요. 그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제 알라딘 서재가 더 썰렁해졌어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읽고 서평을 써보려고 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그냥 흘러버릴 수 없어서요. 혼자 책 읽고 서평 쓰는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고,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기록으로 꼭 남겨야겠다고 생각하니 나태함이 사라졌어요. 혼자 집안일을 하고, 늦게 퇴근하면 책을 안 읽거나 못 읽는 날이 생기지만, 크게 아쉬워하지 않아요. 느려도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마음이 느슨해지는 주말에 오후즈음님의 글을 읽은 덕분에 책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주 금요일과 일요일이 독서 모임 세 개가 있는데, 독서 모임 지정 도서 두 권은 아직 안 읽었거든요. ^^;;

오후즈음 2026-06-23 16:00   좋아요 0 | URL
그간 저도 제 서재에 잘 못왔었는데, 사이러스님의 서재 소식도 잘 못봤네요. 정말로 뭘 읽고 쓰고 싶은데 이것도 지속적이지 않으면 한문장 쓰기가 왜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ㅜㅜ

날이 더워지니 더욱 게으름이 옆에서 속삭입니다. 그냥 누워 있으라고....
그걸 박차고 일어나는 매일이 됐음 좋겠어요.

자주 보아요 사이러스님!!!!!!!!!!!!
 

첫사랑을 길에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몇 달 만에 동창을 만났다. 그녀는 나의 유일한 고등학교 동창이며 친구다. 모든 지인들과 정리를 했지만 그녀만큼은 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로지, 그녀의 부지런함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오는 연락이 훨씬 많았던 탓에 우리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잊을 만 하면 그녀에게서 날아오는 카톡으로 서로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게 아직 이런 친구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 그녀의 부지런함에서 오는 인맥 관리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가 부지런 한 것은 이런 인맥 관리뿐만이 아니라 자기 관리에서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기 5미터전, 얼굴을 보자 나는 빵 터졌다.


면접이라도 보러 오는 사람처럼 차려 입은 그녀가 내 앞에 섰다.



​"나 만나고 어디 가냐?"

"어딜가, 요즘 체력이 떨어지니 약속 하나 있음 바로 집으로 간다."

"그런데, 왜? 이런 차림이지? 너를 보니 내가 뭔가 잘못 한 느낌이랄까"


​면접보다는 맞선이 맞을 것 같은 차림으로 온 친구에게 미안한 차림으로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다 헤어졌다. 그리고 식사를 하며 친구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늘 한결같이 이런 모습으로 나오는지, 집 앞 마트에 갈 때도 이렇게 나간다고 하던데, 왜 그러는지 물었다. 친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 있잖아. 이런 경험 딱 한번 뿐이긴 했어. 주말에도 아침에 일어나 씻고, 가벼운 화장하고 살았던 내가 그날은 정말 너무 정신이 없었던 거지. 둘째가 좀 느려. 걔는 뭐든 느려. 지 아빠 닮아서. 정말 속이 터져. 그날도 그랬어. 둘째가 그날은 더 늦는 거야. 밥도 한 숟가락을 10분 먹더라고. 애를 거의 보쌈 하듯 데리고 나왔어. 나는 하필 그날 아무것도 쳐 바르지도 못한 거야. 그렇게 나와서 애들 유치원 버스 태워 보내고 한시름 놓고 나를 보는데 슬리퍼도 짝짝이로 신고 나왔더라. 그런데 건너편에 어떤 남자가 나를 한 참 보기에 안경 닦으며 나도 봤어."

"누구였어?"

"너 알지, K대 다녔던 그 S말이야..."

"아, 네 첫사랑? 알지. 건너편 남자가 걔였어?

"응.... 나 그때부터 밖에 나올 때마다 매일 면접 보는 느낌으로 산다."




​어디서든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늘 한결 같은 모습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일까. 나는 그런 마음보다는 20대에 만났던 그때의 사람들이 마흔을 넘어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는 모습이 궁금하다. 너도 나처럼 흰머리가 늘고 얼굴에 주름이 늘고, 열심히 운동해도 줄지 않는 체지방을 간직하고 있는지. 부지런해도 늘 한결 같다고 생각하는 나의 외형적인 모습은 이럴지라도 다른 부분은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무엇보다 나는 길을 가다가 여태 단 한 번도 사귀었던 남자들을 다시 마주친 적이 없다. 어쩜 나와 같은 경우의 수가 현실적인 수치가 아닐까.



​그녀가 여전히 예쁜 얼굴로, 단단하게 자리 잡은 날씬한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늘 존경스럽지만, 나는 그렇게 못 살 것 같다. 내 첫사랑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도 나처럼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집에서 뒹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매일 늘어나는 흰 머리가 신경 쓰이지만, 염색 따위 귀찮아서 하지 않고, 늘어나는 체지방이 걱정 되지만 그만큼의 인격과 인성이 단단해 지길 바라며 독서를 더 많이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으로도 반갑게 만나면 인사하고 싶다. 너도,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었구나...그런 마음으로.


하지만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젊은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다는 이 아이러니한 마음속의 결말은 뭘까.





언젠가 유투브 알고리즘이 보내온 이 영상을 보고 길을 걷다가 한참을 울었다. 30년이 지난 어느 가수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첫사랑을 만난 기분이었다. 젊은 시절의 모습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오로지 백발이 된 그의 나이든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친구가 말하는 그 첫사랑을 길에서 만나게 되는 그런 기분이 이런 것일까. 뭔가 어른답게 늙어 있는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위해 헬스클럽 회원 등록을 하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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