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브 알고리즘은 나의 감정보다 훨씬 빠르게 내 앞에 설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나의 기분에 맞는 음악을 내게 보내왔다.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없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절룩거리네>가 수줍게 떠 있었다. 출근길 빡빡한 지하철 안에서 듣게 된 노래에 눈물이 맺혀서 천장을 한동안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에 속수무책이었다. 왜 하필, 이런 순간에 나를 울리는 것일까.



2018년 여름을 보내고 겨울이 왔을 때 내 20년 지기 대학 후배는 종적을 감췄다.



매년 1월 1일 아침이 되면 산에 올라 일출을 찍어 문자를 보냈던 녀석인데 왜 무슨일로 연락이 없을까. 원래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안 받거나 소통이 부재된 경우는 20년 동안 한번도 없었다. 그러니 후배의 부재가 이상했지만 현실은 그 이상함을 잊게 했다. 주변에 후배와 친한 후배들에게 물어도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아침해가 뜨면 아침이구나, 해가 지면 저녁이라는걸 느끼며 살던 시간은 후배를 또 잊게 했다. 새해가 되면 생각가는 그런, 녀석이었는데. 아니 생각해보니 나는 후배를 그냥 남자로도 좋아했던것 같다. 아마 결혼하자고 했으면 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나에게 특별했지만 그 특별함이 나의 하루를 다 가져가진 못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SNS에도 18년 9월 이후부터 포스팅은 멈춰져 있었다. 카톡도 확인이 없었다. 문자며 전화도 모두 단절된 상태. 그래, 부고 문자만 안온다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연락이 오겠지. 무소식이 정말로 희소식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해보자고. 그래도 그렇지. 왜 무엇 때문에 생존 반응이 하나도 없는 건가.



그렇게 6년이 흐른 어느 날 아침, 새로운 친구가 있다고 카톡이 알려줬다. 후배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후배의 이름 뒤에 부동산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아 후배의 번호가 바뀌었구나 생각했다. 확인해 봐야 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20년 지기인 후배를 놓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의 20년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렇게 멀어져 가고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됐구나. 어떤 이유를 안다고 한듯 그것이 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했다. 다만 한때 나의 가슴을 울렸던 그 목소리와 얼굴은 추억으로 남겨 두기엔 안타까웠다.



인연이 끊긴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시간의 흔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이렇게도 관계가 정리되기도 하는 것 아닌가. 때로는 나도 누군가를 이렇게 잊히게 했을 수 있다. 그리고 나도 또 이렇게 잊히는 것이라고

그런 생각의 정리가 되어 갈 즈음. 후배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 무슨 부동산으로 되어 있는 그 번호.


나는 이름을 물었고, 핸드폰의 주인이 당사자가 맞는지 묻고 학교와 동아리 이름까지 물었다. 맞다고 했다. 내가 찾았던 그 녀석.



6년 만에 들은 후배의 목소리가 어색했다. 6년 동안 우리는 긴 시간동안 늙고 있었고 그 시간의 간극은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을 안고 있다고 할까.



그렇게 3주 만에 만나 후배의 6년간 소식이 끊긴 이유를 듣고 한동안 멍한 상태로 앉아 있었고 술을 한잔 하는 순간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나왔다. 앞에서 눈물을 살짝 보였다가 이내 걷어두었지만 울고 온 나를 알고 있는 후배는 그렇게 담담하게 나를 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더니 오늘은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울어버린 노래에도 가슴이 아련했다.



노래 가사가 어쩜 이렇게 후배의 상황이랑 딱 맞을까 생각이 들었다. 후배가 이렇게 절룩거리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울지 말고 아침을 맞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잘 살아나가는 시간을 만들어 놓기를 바랄뿐. 간혹 바람처럼 후배에게 찾아가 또 맛있는 와인을 홀짝 거려야겠다. 사랑하는 내 후배, 잘 걸어가길. 잃어버린 그 6년의 시간을 잘 만들어가길 그렇게 뒤에서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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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힘든 날들의 시작이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6개월 이후의 검사가 있었다. 멀고 먼 아산 병원으로 3월에는 세 번이나 가야 했다. 병원을 가야 하는 스트레스보다 수술 후 수치가 안 좋아 질까봐 걱정 했었다. 왜냐하면 너무나 정상인으로 먹고 놀았기 때문이다. 나는 단 음식도 많이 먹으면 안 되고 인스턴트 고기 등등 멀리 해야 하는데, 아주 가깝게 살았다. 간혹 주변인들이 이런것 먹어도 되는 거야? 그런 음식도 먹고. 하지만 음주는 하지 않았다. 와인 한잔도 안 마셨다. 그것만큼은 멀리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그 이후의 음식들 특히 빵을 아주 가깝게 지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멀리 하기에 나는 빵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빵도 당분간은 끊었다.

검사가 있기 이 주전부터 극강의 식단을 짰다. 이렇게 먹다간 수도승이 될지도 몰라 식단으로 먹었다. 일주일이 고비였다. 정말로 아무 간이 없는 풀 때기를 먹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을 버티고 나니 먹을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느끼게 됐다. 그렇게 버틴 일주일 후 검진을 다시 하고 수술하지 않는 부위로 전의가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깨끗하다고 했다. 5년까지 가는 시간을 버티기에 첫 번째 관문을 잘 넘겼다.

그렇게 세 번의 병원행이 끝나고 나니 3월이 지고 있었다. 밖을 나가면 벚꽃들이 만발한데, 나의 3월은 이렇게 걱정과 고난의 먹거리의 전쟁으로 지고 있다니.

4월은 걱정을 내려놓고 즐겁게 지내야겠다. 3월은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정말로…….결과가 나올 때까지 피가 말랐다. 걱정의 산을 매일 오르며 나를 탓했던 시간이 그 언덕을 더 높게만 만들었는데 이제는 말랑말랑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3월에 책은 안 읽어도 차곡차곡 쌓아 놓은 책들을 쌓아 놓았다. 하지만 책도 잠시 내려놓고 그 시간에 꽃구경도 갔다 와야겠다. 시간이 또 빠르게 내 주변에 머물지도 않고 뛰어 가는 것 같은 날들. 언젠가 다시 바람처럼 내게 오기를 기다리며 3월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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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면 당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억하게될 겁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도 기억하게될 겁니다. 기억해야만 할 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우게 될 겁니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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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잘 도착하셨기를




오후 7시 넘어 타는 전철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숨이 막히는 그 전철역에 유일하게 아무도 자리가 비어 있는 곳은 임산부 배려석이었다. 빽빽하게 차 있는 전철 안에서도 그 자리가 비어 있던 그날, 전철의 문이 열리자 두 남자가 몸이 엉키며 급하게 들어 왔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와 어린 남자, 둘 다 멱살을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술자리에서 무슨 싸움이 있었나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술 먹고 어르신으로 보이는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는 어린 남자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다. 왜, 저러고 있는 거야. 멱살은 왜 잡고 있는 거야?



“제가 아빠예요. 아들이 자폐아라서 지금 이러고 있으니 오해마세요.”




아버지라고 말을 하자 큰 싸움은 아닌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멱살을 잡고 있는 순간을 어찌해야 하나 마스크 속에 짙게 그어진 주름살을 보며 걱정스러웠다. 하필, 내가 서 있던 자리가 두 남자의 바로 옆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려다가 말았다. 한손은 계속 아들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 손잡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오른손이 날카롭게 아들의 뺨을 향했다. 철썩, 철썩. 두 번의 소리가 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홍해의 물이 갈라지듯 반으로 갈라졌다. 나와 내 옆에 있는 한 남자만 덩그러니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따귀를 맞은 아들은 아프다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양해 손을 들었고 철썩 한 대 따귀를 날렸다. 두 번째 날아가는 아버지의 팔을 나와 옆의 아저씨와 함께 붙잡았다. 아버님, 이러시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육성이 터지고 아버지를 붙잡았다. 옆의 아저씨도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는 건너편 전철을 타야 하는데 문이 열리자 반대편 전철을 탔다고 했다. 내가 타고 있는 전철은 인천을 향해 가고 있는데, 그들의 집은 의정부라고 했다. 반대로 향하는 전철에 아들은 문이 열리자 본능적으로 들어 왔을 것 같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계속 다음 역에서 내리자고 했지만 아들은 대답을 안했다.


 아버지는 무심한 혹은 걱정의 눈으로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들은 말을 못한다고 얘기 했다. 따귀를 때린 아버지를 우리가 어떻게 보고 있을지 아버지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말을 이어가셨다. 하지만 아들은 손잡이만 꼭 잡고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때릴까봐 내 옆의 아저씨는 계속 아버지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때 아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게 했다. 내가 아프니 이렇게 위로 해 달라는 듯.




집에 가기까지 두개의 역이 남았다. 나는 앞에 있는 아들에게 몸을 숙여 눈을 보며 말했다. 다음 역에서 내가 내리니까 같이 내릴래요? 다음 역에서 같이 내려요. 내가 같이 가 줄게요.



나는 손잡이를 꼭 잡고 있는 아들의 손을 잡았다. 처음에는 아들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손을 잡으며 같이 내리자고 했다.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철 문이 열리자 아무런 반항 없이 아들은 일어 났다. 그리고 아들과 아버지, 아버지의 팔을 잡고 있던 아저씨. 이렇게 네명이 역에서 내렸다.


아들은 내 오른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버지가 건너편 전철이 올 때까지 같이 있어 주실수 있냐고 하셨고 나와 아저씨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들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아들은 22살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매일 전철을 다니며 사람들과 섞여 사는 연습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닌다는 그 노고에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나와 아저씨는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전철이 왔고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서 아들과 아들을 앉게 했는데 문제는 아들이 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억지로 빼려고 하니 뭔가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전철역 문이 닫히고 나는 우리 집과 반대편으로 다시 떠나고 있었다. 

두 번째 정거장을 지나서야 나는 아들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아들에게 오늘 고생 많았고 아직 밥 안 먹었죠? 오늘 아빠랑 가서 맛있는 밥 먹어요. 고양이 좋아해요? 우리 집에 고양이가 나를 기다려요. 그래서 집에 가야 해요. 그때 아들이 살짝 손을 놓다가 다시 꽉 잡았다. 그리고 다시 손을 놓아 주었다. 처음에 손을 빼다가 가방의 철 고리에 손가락 살점이 살짝 뜯겨서 피가 났다. 패딩의 소매로 감사며 아들에게 인사를 했다. 잘가요.




나에게 고맙다며 인사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슬퍼보였다. 어쩜 그건 나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내일이라도 다시 만나면 인사를 할 것 같은 아들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 주말이다. 의정부까지 무사히 잘 도착하였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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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테크로 생각보다 많이 모았습니다 - 경제지 홍 기자가 알려주는 똑똑한 절약의 기술
홍승완 지음 / 가디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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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비용만 줄여도 부자가 될것 같아 [짠테크로 생각보다 많이 모았습니다.- 홍승완]

월초부터 화나는 일이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때 쇼핑 어플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많은 물건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다음 달 카드 값을 생각하면서도 이 정도는 나를 위로 할 필요가 있다며 결재를 했다. 4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집 앞에 택배 상자가 7개나 있었다. 마치 거대한 성을 이루고 있는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나를 위로했던 바로 ‘시발비용’이었다. 택배를 두 번에 걸쳐 집안으로 가져갔고 5분도 안돼서 상자는 모두 오픈되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것들도 있고 후회가 되는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만족했다. 나를 사 달라고 장바구니서 얼마나 애원을 하고 있었던 것들이 아닌가. 그리고 카드 금액을 카톡으로 확인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나의 ‘시발 비용’이 이렇게 비쌌다니. 

[짠테크로 생각보다 많이 모았습니다]의 저자 홍승완이 말하는 ‘시발 비용’은 화풀이 비용, 즉 화가 나서 감정이 폭발하여 쓰이는 금액을 말한다고 한다. 이런 얘기는 이런 저런 기사로 많이 익혔지만 화풀이로 스트레스를 받아 쓴 지출을 크게 생각 안했었는데 ‘시발 비용’으로 묶어 생각해보니 큰 지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홍승완 저자는 아주 경제 신문사의 기자다. 경제 관련 부분에 있으니 아무래도 더 많은 관심 분야였을지 모르겠지만 3년 동안 5천만 원을 모았다는 부분에서 그것 밖에 못 모았나 생각했었다. 기자들 월급이 얼만지 모르겠지만 대충 들었던 금액에서 3년 동안 5천만 원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하다 나는 어떤가 생각해보니 큰돈이었다. 

다른 재테크나 투자가 아니라 월급만 가지고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적게 쓰는 것 말고는 없다. 그런 부분에서 지출을 줄이는 방법은 안 쓰면 된다 생각하면 쉽지만 실천 부분에서 가장 어렵다. 소비를 부르는 요정들은 어느 순간이든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시발비용이 매주 혹은 매일 생길수도 있기 때문이다.

“버는 돈보다 적게 쓰고, 나머지는 저축하기가 부자가 되는 길이라면, 평범한 직장인이 부자가 되기 위해선 더 벌기가 아닌 덜 써야 하는 것이 맞다. 우리의 수입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돈을 쓰는지 파악해야 한다.” P59

저자 또한 수입이 일정한 월급쟁이 이기 때문에 버는 수입을 일정부분 나누고 저축하여 돈을 모으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가계부를 쓰면서 수입의 방향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스마트 폰 어플로 그동안 가계부를 쓰긴 했는데 지출 내용이 축적되는 것으로만 썼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기록만 있었을 뿐이다. 내가 이런 저런 지출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뿐 지금의 지출을 줄이자 생각하지 않았다. 마트에서 지출하는 금액도 전체 금액이 아니라 조금 더 자세히 적어보고 가계부를 쓸 때 세 가지 신호등 색으로 칠하면서 적는다면 더 한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이 부분의 저자의 핵심 포인트가 있다. 

세 줄 핵심 포인트

1- 우리의 소비는 생각보다 들쑥날쑥하다.

2- 가계부에 비용을 세 가지로 구분하면 소비 감각이 생긴다.

3- 가계부는 번거롭지만 소비를 줄이는 데 특효약이다. P63

일정 기간 동안 얼마큼의 돈을 모을지 정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선 허리띠를 졸라 지출을 줄여 나가야 하는데 이런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가계부를 손으로 쓸 것, 어플로 그동안 나도 적어 봤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기록차원으로만 남아 버렸다. 중요한 목록 3가지를 나누고 형광색으로 구분하여 한 달 동안 어떤 색의 지출이 가장 많았는지 따져 본다면 반성의 기회나 지출이 많이 되고 있는 부분을 알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저자가 지출을 줄인 것도 있지만 월급 이외의 수입을 만들어 내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요즘 많이들 사용하고 있는 ‘당근 마켓’이었다. 더 이상 읽지 않는 책, 운동기구, 의류들을 나눠 처분하여 수입을 만들었다. 나 또한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없는 신간 책들을 사고 절반의 금액으로 팔 수 있게 빨리 읽고 있는 편이지만 사실 이 부분이 가장 게으르게 진행 되고 있다. 필요 없는 부분을 팔아 미니멀한 생활을 하고 수입도 만들 수 있으니 처분 할 수 있는 물건들 리스트를 만들어 작은 수입을 만들자. 저축을 하고 돈을 모으는 일은 부지런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었다. 

절약을 할 수 있는 부분 중 가장 큰 부분은 외식을 줄이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목표 저축액을 달성하기 위해선 당분간 밖에서 사 먹는 일을 줄여야 했다. 일종의 ‘집밥 우선주의’다.” P121

독일에서 몇 개월 사는 동안 외식을 많이 하지 않았다. 독일은 외식 비용이 아주 비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동안은 식빵과 잼을 사서 아침을 해결 했고 저녁도 그렇게 활용하기도 했다. 큰 식빵 하나가 우리나라 돈으로 2천원도 안해서 이틀 이상을 먹었다. 하지만 식당에서 스파게티 하나를 먹더라도 2만 원 정도의 팁 포함 금액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먹어야 할 음식이 있는 날 빼고는 거의 핸드메이드 샌드위치로 식사를 해결했다. 우리나라도 요즘같이 고 물가 시대에는 만원 한 장 가지고 먹을 점심 식사가 많지 않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그래서 집 밥 우선주의라는 말은 결국 외식을 줄이는 것이고 그 외식에는 배달 음식도 포함되어 있다. 

밥 사 먹는 일을 최대한 줄이기로 하면서 체면을 내려놓으며 실행한 저자의 방법 중 하나는 ‘남은 음식 포장주의’였다. 회식을 하거나 지인들과 만나서 주문했던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아 아깝다고 말하며 일어섰던 날들이 많았었는데 저자는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알뜰하게 한 끼의 식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모든 돈은 푼돈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그 푼돈을 모으는 방법은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다못해 영수증을 통해 돈을 버는 방법도 있었다. 네이버 ‘MY 플레이스’에 영수증 리뷰를 남기면 포인트를 지급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수많은 영수증들은 쓰레기 통으로 갔었는데 알뜰하게 사는 방법을 또 하나 얻었다. 

3년 동안 모은 5천만 원의 금액은 저자에게 그냥 5천만 원은 아닐 것이다. 그 돈이 모이기까지 저자의 짠테크의 방법도 노고가 얼마나 많았을까. 무엇보다 사고 싶은 욕구를 누르며 시간을 보냈던 그 순간을 본받고 싶다. 문득 나의 시발 비용이 떠오른다. 아, 그 비용만 절약이 되었어도 나는 분명 저자 보다 더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부자가 되지는 못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절약은 궁상이 아닌 생존 방식이 되어 간다지만 그 궁색이 주변을 힘들게 하지 말았음 좋겠다. 십여 년 전인가 몇 억을 만들었다는 책을 낸 어떤 저자의 책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의 돈을 아끼기 위해 주변인들의 지갑을 들추며 살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홍승완 저자의 이 책에 애정이 가는 부분이 주변을 힘들게 하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며 돈을 모았다는 부분이었다. 저자의 짠테크 10계명을 읽으며 돈을 모아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짠테크 10계명 

1. 10만 원 벌기보다 10만 원 아끼기가 쉽다. 

2. 신용카드는 외상이다.

3. 하루 만 원도 사치다.

4. SNS를 끊어라.

5. 소비습관을 바꿔라.

6. 선 저축 후 지출

7. 절약은 게임처럼 해라.

8. 하루 지출 ‘0’원을 만들어라

9. 마음속 질문을 외워라

10. 모든 돈은 푼돈에서 시작한다. 

나는 여기에 하나 더 추가를 하고 싶다. 

11. 시발비용은 욕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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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2-28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년에 오천이면 진짜 엄청 절약한 겁니다. 제 지인중에(지금은 아니지만) 아버님이 한달 사백을 저금을 하신대요. 그래서 그럼 뭐 먹고 살어? 라고 했더니 친정 아버지랑 같이 사는 집이라 자식들 월급으로 살고 연금 이백 그리고 월세 이백 나오는 돈을 생활비로 전혀 안 내놓고 저축을 하신다길래, 그럼
너네는 이년마다 일억을 모으는 거야!!!! 라고 말했더니 그렇다고 대신 너무나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게 생각나네요. 삼년에 오천이면 한달에 백육십을 저축해야 하는데…다른 누군가의 최저 임금을 저축하는 셈이니 대단한거죠!!! 전 요즘 애들 등록금이 있어서 진짜 안 쓰고 노머니데이로 살려고 하고 있어요…. ㅠㅠ

오후즈음 2023-03-09 09:34   좋아요 0 | URL
처음에는 기자의 연봉을 생각해서 큰 금액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따지고 보니 정말 절약하면서 살았던 돈이더라고요. 애쓴 5천 만원이었어요.
친구분의 부모님들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저는 3년에 1억 모으긴가? 여튼 그런 종류의 책을 쓴 저자의 직장 동료였던 분을 알 고 있는데, 그 주변 사람들이 너무 피가 마른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정말 자신의 자산을 위해 주변인들을 돈을 탐하면서 사는거죠. 얻어 먹는 일상이 많아서 힘들었다고 해요. 그렇게까지 돈을 버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지인분의 가족도 그런 부분이 있을것같아요.

등록금...요즘 정말 너무 비싸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