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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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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참 따뜻한 소설을 만났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에 있는 아저씨가 운영하는 정육점이 배경이 된 <이슬람 정육점>속의 심성이 착하고 고운 주인공을 잊지 않고 있다. <완득이>를 읽으면서 작가가 지녀야 할 덕목은 착한 심성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잘 표현해준 김려령을 좋아하게 되었었다. <이슬람 정육점> 또한 그랬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작가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고 아직까지는 이런 따뜻한 얘기를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이 들어 그의 신작을 만나면 오랜 친구의 연락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약속장소에 나가는 떨림을 갖게 했다고 할까. 2008년에서부터 2015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들을 묶어 놓은 그의 일상의 얘기들은 여전히 그의 고향처럼 정겹다.



총 4부로 이뤄진 내용 중 그의 소설쓰기의 초창기 모습을 회상하는 부분이 가장 많은 1부의 내용들이 훨씬 마음에 가는 것은 그의 고생담이 안쓰럽다기보다 그의 하루가 문득 나의 하루와 오버랩 되었던 어떤 날의 모습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원고지 4.5매라는 분량으로만 써야 했던 그의 짧은 글속에 그가 골라내야 했던 단어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단어들을 골라내기 위해 애썼던 그의 모습들을 떠올려 보면 마치 하루일과중에 나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쉽게 쏟아진 말들에 가끔은 집에 돌아오면서 죄책감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계속 마음이 쓰여서 그 동료에게 혹 나의 말에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 문자를 넣었던 적도 있었다. 긴 얘기를 하기보다는 짧은 단문으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손홍규 작가의 글을 통해 느껴 본다. 그가 골라냈던 말들은 아마도 상처를 주거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들은 모두 걷어 들였을 것이다.


 

그의 짧은 글속에는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일들이 그의 하루를 지나갔는지 알 수 있다. 그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어떤 것인지, 서울로 올라온 후 스무 번이 넘는 이사를 한 그가 집을 더럽게 썼다고 투정하는 주인에게 멋쩍게 던진 “그동안 잘 살고 갑니다.”라는 말에 환한 얼굴로 그를 응대했던 주인의 얼굴처럼 서울이 때로는 쌀쌀맞다가 다정한 친구가 되어준 모습들을 떠 올리면 아직은 그래도 세상이 살맛은 난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다정한 글들 속에 “팔을 번쩍 드시오”의 에피소드가 가장 좋았다. 송년회에 지쳐 내키지 않아도 참석해야 하는 자리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그에게 찾아온 불알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을 때, 친구를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나가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이 훨씬 컸지만 막상 추운 겨울 외투를 여미고 있는 친구가 자신을 보자 팔을 번쩍 들며 인사를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화답하듯(작가의 표현대로) 팔을 번쩍 들어 반가운 마음을 보였던 그 순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만남이 불편했던 그 잠깐의 순간이 미안해지고 나를 한눈에 알아봐 줬던 친구의 눈빛이 고마워 졌을 것이다. 친구를 만나지 않으려 했었던 그 잠깐의 고민은 눈밭에 흩날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그려보니 가슴이 뜨거워 졌다. 문득 오래토록 만나지 못했던 나의 그리운 친구들도 생각이 났고, 나도 친구들을 기다리며 반가운 발걸음 소리만으로 기척을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의 소설가로 서울에서 살아가는 삶이 평탄지 않았지만 그는 모질게 이분법된 세상에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 치우침 없는 소식에 그가 말하는 다정한 편견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서 나는 그의 삶이 더 빛나 보였다. 비록 그가 살고 있는 곳이 강변이 보이는 최고의 멋진 아파트가 아닐지라도 그의 작은 방에는 분명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있는 작은 창이 있을 것이고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을 채워 나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언젠가 지금의 나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다음의 생은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봤는데 작가는 이런 얘기를 했다.

“바로 지금부터 다음 생이 시작되는 법이니까.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생에는 잘 살아볼 거야. 이렇게 투덜대던 벗이여 다음 생은 벌써 시작되었다.” P81

내게 몇 달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답해주는 것 같은 문장이었다. 매일 괴로웠던 날들을 생각해보니 나는 매일 시작되는 다음 생을 고통으로 끝내고 있었다니 정신이 번쩍 났다. 이제는 정말로 다음 생을 본격적으로 맞이해야 할 때 인가. 그러기 위해선 더운 여름날에도 심하게 열나는 파이팅이 필요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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