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물리학 - 화살에서 핵폭탄까지, 무기와 과학의 역사
배리 파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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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왔다. 그 전쟁은 끝나지 않고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계속 현재진행형이다. 좀 더 많은 영토를 갖고자 하는 욕망과 욕심 또는 이념과 항쟁하며 싸우는 전쟁은 많은 살생이 따랐지만 꾸준하게 진화된 무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기는 싸움을 하기위해서 무기는 진화해야 했고 그 진화된 무기는 전쟁이후에 다른 용도 변경되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전쟁의 물리학]은 물리학을 기본 토대로 만들어진 무기들을 소개하며 전쟁의 이면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 책은 물리학의 거의 무든 갈래를 다루면서 군사적으로 어떻게 응용됐는가를 보여준다. 인간이 만든 활과 화살부터 전차를 거쳐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저자가 전쟁과 물리학이라는 책을 쓴다고 하니 주변에서 전쟁과 물리학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고 물었다고 했는데 사실 나도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그들과 같은 질문을 했었지만 읽으면서 느끼는 흥미로움은 상당하다.



 

책은 초기 영불 전쟁부터 다루지만 가장 근접했던 1차, 2차 세계대전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쓰인 X선과 가시광선, 적외선 활용 부분에서는 사실 이토록 과학적인 준비를 하고 전쟁을 치렀다는 것에 놀랐다. 너무 무지한 부분으로 전쟁을 바라보았다. 그저 오래전에 치러진 전쟁이라고 하면 중세 시대의 화약으로 쏘는 총, 대포 혹은 전차나 그 이후에 탄환을 넣은 총이나 탱크로 싸웠다고 생각했었던 부분인지라 이런 과학적인 활용으로 전쟁이 치러졌는지 몰라서 놀랐다고 할까. 앞서 얘기 한 부분에 말했듯 전쟁으로 쓰인 무기들은 다소 변형되어 다시 쓰이고, 그때 발명했던 것들은 새로운 산업의 주축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때로는 좋은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전쟁에 쓰이기도 했다. 비행기 또한 발명되자마자 없어서는 안 될 전쟁 무기가 되었다고 하니. 하늘을 날고자 해서 만들었던 비행기가 욕망의 그늘에 있는 전쟁을 도울 무기가 되고 말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맹렬하고 파괴적인 전쟁이었다는 2차 세계대전에서는 항공학이 발전을 했고 최초의 제트기를 만들어졌고, 대형 탄도 로켓이 등장하면서 점점 최첨단화가 되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원자폭탄이었으니 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전쟁의 결과물이 있을까. 히틀러가 더 강력한 무기를 가지지 못해서 다행인 2차 세계대전 또한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낳았는지.

 

과학자들만이 무기와 결부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예술가도 헬리콥터나 낙하산, 잠수복, 기관총과 같은 군사용품들을 스케치하고 노트에 기록했다고 하니 그저 과학자들만이 물리학과 연관 지어 무기를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늘 이후 간절한 소망은, 점점 넓고 깊게 물리학을 이해함으로써 전쟁 같은 대량 학살이나 이미 흔한 일이 돼 버린 살육 무기가 아니라,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갈등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는 일일 것이다.” P512


 

저자의 바람처럼 나 또한 소망한다. 간혹 뉴스에서 깜짝 놀라는 살인 사건 소식은 점점 잔혹해져만 가고 있다. 좋은 의미로 개발되었던 것이 잔혹한 욕망의 무기로 변질되질 않길 바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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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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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에게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사람은 자신에게 얼마나 진실 된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이 나의 온전한 기억은 맞는 것일까. 언젠가 본 홍상수 영화의 <오! 수정>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어떤 하나의 진실과 상황은 모두 나의 기준에 의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그 장면은 나에게 맞게 혹은 나에게 유리하게 바뀌어 기록되어 저장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하는데 간혹 내가 본 , 내가 느낀 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타인이 말했던 것을 부정하는 일은 없었나 반성하게 됐었다.

물론 그것은 그때의 반성으로만 지나칠 뿐 더 달라지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성찰이 되지 않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유년시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스릴러 드라마를 본 후 며칠 밤을 잠을 자지 못했던 기억으로 남겨 있었던 작가 에거사 크리스티는930년에서부터 1956년까지 필명으로 총 여섯 권의 장편 소설을 썼다. 그녀가 필명으로 쓴 이 여섯 권의 작품 중 <봄에 나는 없었다>를 읽고 나면 그녀의 나머지 작품은 안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영국부인 조앤, 그녀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아늑했다. 그녀를 위해 애써주는 자상한 변호사 남편. 공부도 잘하고 자기 일은 알아서 잘하는 기특한 아이들. 평온한 집안에서 그녀는 부유한 부인일 뿐이었다. 이것은 그저 조앤이 생각하는 자신의 표면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그녀의 딸의 병간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바그다드에 발목이 묶이고 만다. 그녀가 출발해야 할 기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풍족하게 자랐던 그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날들의 시작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의 기대, 책 한권이면 집으로 올 시간은 충분히 버티겠지 생각했지만 문제가 생긴 기차 때문에 그녀가 읽을 책은 더 이상 없었다. 사막에 불어대는 모래바람처럼 마음의 공허했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모래바람만 그렇게 불었던 것이 아니었다. 우연치 않게 만났던 조앤의 친구를 통해 그녀는 바람 뒤에 헝클어져 있는 자신의 모습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문득 그녀는 애써 품지 않았던 의문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지나간 날들을 떠 올려 보기 마련일까. 그녀는 문득 자신이 딸의 병간호를 하기위해 떠나려 했을 때 자신의 남편 로드니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 로드니는 왜 기차가 역을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P76

 

그녀는 로드니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걸음을 서둘러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태운 기차가 역을 빠져나가는 광경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이 자신의 남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녀는 상상으로 자신의 입장에 맞게 남편의 행동을 맞춰보려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조앤은 그저 소란스러운 삶이 싫었을 수 있다. 그래서 농장을 가꾸며 농사를 짓고 싶은 남편에게 변호사로 남아 살아가길 원했고,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조앤의 바람대로 살아갔다. 그것 때문에 로드니는 모든 생활이 반짝이지 않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사인 아버지덕에 윤택한 삶을 살았지만 뭐든 자신의 기준대로 행동해주길 원했던 조앤, 엄마로 인해 자유가 없었고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앤은 부유하고 쾌적하고 윤택한 첫째의 사위와 집안이 마음에 들었고 그것으로 그녀의 지난 시간이 흡족했다. 하지만 그런 엄마를 피해 멀리 시집을 간 딸도 있고, 자신을 위로한 진짜 친구가 옆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조앤이 피하고 싶었던 것들은 그저 눈감고 이것은 진짜가 아니리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네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해준다면 그것을 어떻게 믿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조앤도 그렇다. 그녀는 좀처럼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에서 절대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래 바람이 일고 희뿌옇게 보이는 진짜의 모습에 눈 감아 버리는 것이다.

 

마지막 엔딩에서 화들짝 놀라게 하는 반전은 그런 것이다. 조앤은 그냥, 조앤으로 남는 것이다. 그녀의 쓸쓸한 모습이 불쌍하면서도 안타까웠다. 마치 어느 날 내가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도 그녀처럼 모른척하면서 보지 않을 있겠다는 생각. 한 영화의 장면들처럼 타인이 기억하는 그 장면에 어쩌면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얼마나 소중하게 나를 무장하면서 나를 변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한동안 떠 올렸다가 지웠던 그 말, 그 봄에 나는 없었다는 그 말이 어쩌면 나에게도 찾아올지 몰라 두려워진다.


 

그동안 스릴러 작가였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장편에 홀딱 반했다. 여섯 편중에 한편이 이런 퀼리티라니. 여섯 편중에 세편이나 나와 있으니 조만간 여섯 권은 다 만나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멋진 여자였다니. 놀랍고 부럽고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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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1-0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좋았어요. 나머지 두 권도 역시 좋구요. 빨리 다 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어린 시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후즈음 2015-01-10 23:19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나온 세권이 다 좋다는 평에 나머지 두권을 질렀습니다. ㅠㅠ
어린시절 그 드라마는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밤에 잠을 못잤던 며칠을 보냈다가 가끔 사실...지금도 좀 생각나면 소름이...ㅋㅋ 호러물을 싫어해서 말이죠..제가는 참 힘들었던 기억이네요. 같은 기억을 가지고 계시다니 좋네요 ㅋㅋ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크 상뻬 지음, 김호영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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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인들에게 책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물론 잘 빌려 읽지도 않는다. 오로지 내 소유의 책이어야 하며 내가 소장하고 있어야한다. 그런 이유가 생긴 것은 책을 읽을 때 간혹 줄을 치며 읽을 때가 생기면 줄을 치고 싶어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빌려서 읽기보다는 사서 읽고 있는데 내가 산책을 잘 빌려주지 않지만 간혹 빌려주는 책 중에 가장 빈번하게 지인들이 집에 놀러와 가지고 가서 돌려주지 않는 책은 장 자끄 상뻬의 책들이다. 집에 놀러 와서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읽겠다고 가져가고 서로 잊고 있다가 다시 읽기위해 찾다보면 지인들과 멀어져 있어서 책 때문에 연락하기 곤란한 상황이 되면 결국 다시 한권을 샀다.

그런데 며칠 전 내게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3권이나 돌아왔다. 돌아 왔다기 보다는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났고 그들이 잊고 있던 책들을 우연치 않게 가지고 왔는데 그것이 모두 다 똑같은 책이었다.



테이블에 놓인 책을 보면서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다시 만나게 된 두 소년이 내게 다가온 느낌이다. 




평범하다는 말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두 아이가 있다. 한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한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한다. 멀리서오는 두 아이의 모습만 보더라도 누군지 대번에 알 수 있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누군가 곁에 있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얼굴이 빨개져야 할 때는 정작 빨개지지 않는 마르슬랭은 왜 얼굴이 빨개지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이런 얼굴로 살아야 할지 모른 채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여름 태양에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있는 사람들과 함께일 때가 가장 좋다는 마르슬랭 까이유.

감기 증상이 없는데도 감기에 걸린 것처럼 재채기를 하는 르네 리토는 바이올린도 잘 켜고 훌륭한 학생이었지만 그도 혼자였다.

마르슬랭이나 리토가 대견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의 어떤 다름을 괴로워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우정이라는 것이 서로 교감에서 오는 소통을 그냥 이해해 준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까이유는 재채기를 하는 리토에게 감기에 걸렸냐는 말을 하지 않고 리토의 재채기가 멋있다고 생각하고 리토는 멋진 얼굴색으로 변한다고 까이유의 빨개지는 얼굴을 좋아한다. 아무 이유 없이 빨개지는 얼굴을 가진 친구가 멋있고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재채기를 하는 친구가 귀찮지 않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 따뜻한 다독임은 무엇일까. 



내게는 유독 땀을 많이 흘리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늘 허덕였다. 손수건을 두장 이상씩 가지고 다니며 땀을 닦았고, 땀에 젖은 셔츠가 민망하기 때문에 늘 짙은 색의 옷은 입지 않고 흰색의 블라우스나 티셔츠 차림으로만 밖을 나왔다. 이것도 이유가 있을때나 나오는 것이고 여름이 되면 밖을 거의 출입을 하지 않으려하고 술집이나 커피를 마시러 갈 때도 남들이 춥다고 피하는 에어컨 바로 앞에 자리를 하고 숨이 헐떡이면서 앉아 있다. 가끔은 더운 여름날 우리 또한 더위에 힘들어 선풍기 앞에 앉으려고 하면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는 친구 때문에 여름에는 그 친구만 빼고 몇 번 남녀가 만나는 모임을 가진 적도 있었고 여행을 간적도 있었다. 우리는 그 친구의 허덕임이 버거웠던 날들이 많았다. 문득 까이유와 리토를 생각해보니 그 두 친구들이었다면 더위에 허덕이며 땀을 흘리는,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도 땀을 많이 흘리는 친구와 어떻게 지냈을까. 



리토의 이사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의 특별한 부분으로 알아보고 만나게 되는 과정의 장면에서는 가슴이 찡하다. 어쩌면 지금은 자주 연락이 안 되는 그 친구가 어느 날 추운 겨울날 지하철을 타며 덥다고 계속 부채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반가운 인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삶이란 대개는 그런 식으로 지나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고, 매우 기뻐하며, 몇 가지 계획들도 세운다. 그리고 다신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기 때문이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며,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수많은 이유들로. 


그러나 마르슬랭과 르네는 다시 만났다. (110P)”



서로 핸드폰 번호가 여러 번 바뀌면서 만나지 못하고 있는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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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랑이 말을 걸면
정용실 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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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을 하라는 거였구나. [언젠가 사랑이 말을 걸면]


노희경의 책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꼈지만 때로는 너무 관념적인 사랑론에 지칠 때가 있다. 공감을 잃은 사랑은 그저 술자리에서 잠시 흘렸던 지나간 사랑에 대한 얘기 할 뿐이다.

네 명의 여자가 말하는 [언젠가 사랑이 말을 걸면] 또한 이런 관념적인 얘기에 다소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분명 네 명의 여자의 다른 사랑에 대한 얘기를 풀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장을 덮으니 한 사람이 자신의 사랑관에 대한 얘기를 쏟아 놓은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

이중의 가장 공감이 많이 갔던 얘기는 솔로와 유부녀의 이야기였다. 십 수 년 전에 내가 본 단막 드라마 중에 “타인의 거울”이라는 것이 있다. 그 두 여자 주인공이 그렇다. 한명은 꿈을 포기하고 부잣집 남자한테 결혼을 했고 한명은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뤘지만 공허함에 빠져 있다. 어느 날 두 여자가 만나서 서로의 모습, 즉 타인의 거울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결혼한 여자는 당연히 자유롭고 성공을 이룬것 같은 솔로인 여자가 부럽겠고, 솔로인 여자는 안정된 가정에서 직장 상사의 꾸지람을 듣지 않고 아늑하게 살고 있는것 같아서 그 모습이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거울이 아닌 타인의 거울 속에서만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나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보인다는 것.



이런 부분을 얘기한 에피소드가 가장 어떤 모습이건 지금의 나를 가장 사랑하라는 마지막 구절 때문이었다.

혹은 지금의 모습이 쓸쓸해서 여태 내가 잘못 살아 온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안정부절 살아가지만 그것 또한 인생을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녀들도 말하지 않던가. 사랑에는 그 어떤 정답이 없으니 지금 하는 사랑에 의심하지 말고 지금을 즐기라고. 후회하는 사랑을 하지 말라고. 그 후회를 낳지 않기 위해 더 뜨겁게 치열하게 살아가라고.

한 에피소드 중에 참 마음에 드는 가족 얘기가 있었다. 한 가족은 주말이면 각자 원하는 책을 한권 골라서 카페나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부분에서 정말 낭만적인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부분을 수용하지 못하는 남자를 혹은 여자를 만나게 되면 낭만적인 (이 낭만은 오로지 나의 관점에서만 그렇게 느껴 질 수 있는 것이고) 것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 같이 공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 주변에 결혼을 하지 않는 직장 동료들이 많은데 나 또한 이 얘기를 가장 많이 한다. 어느 날 극장에 갔는데 부부가 보고 싶은 영화가 각각 다르다면 어떻게 할까 물어 봤더니 다들 상대방에 맞춰 보겠다는 것이다. 나는 달랐다. 각자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만나서 서로가 본 영화를 얘기해주면 더 좋지 않을 까였다. 같이 보고 그 얘기를 서로 공감한다면 좋겠지만 서로 피하고 싶은 영화를 참아가면서 같이 볼 이유가 있는 것이냐고 했더니 다들 나의 생각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되는 것이고. 그들은 그들의 방식에 맞게 영화를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의 취향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면 사랑 따위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무엇이든 구원할 수 없는 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랑이 주는 간절한 안식은 아직 모른척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마음의 위안을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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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는 단 하루도 허투로 쓴 날이 없기를 그러하여 나날이 보람찬 날이 되기릴 그래서 늘 내가 나를 칭천해주며 다독이며 때로는 반성하며 스스로 못난 사람이라고 힘들게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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