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콩나물 잡채



10년간 같이 일한 팀장이 발령이 났다. 세 번의 자리 이동이 있었지만 팀장은 가지 않고 우리들과 함께 했다.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였을 때는 왜, 안 갔을까 궁금했고 세 번째 거절 의사를 들었을 때는 화가 났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절이 싫어도 떠나지 못하는 중은 절이 사라져 버리길 원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팀장이 이곳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늘 지점 발령을 원하고 있었다. 네 번째의 권유에는 팀장이 가겠다고 했고 이번 주 마지막 근무를 하고 떠났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 나는 팀장이 떠나기 전날 콩나물을 무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콩나물은 팀장의 단골 반찬이었다. 콩나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반찬들을 만들어 왔던 팀장의 반찬들이 떠올랐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콩나물 잡채를 더 이상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울컥한 감정이 차올랐다. 언젠가 어디서 콩나물 잡채를 만난다면 그녀가 떠올라 눈물이 차오르겠지. 누군가 헤어지는 일이 이렇게도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꼈다.




헤어지는 날은 우리 모두 같이 울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겪어야 할 일들을 같이 겪었고 위로해주었다. 그 날들을 떠 올리고 나니 절이 없어지길 바랐던 중의 마음에 자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가는 그녀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참, 유난 떤다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시절 인연속의 만남은 어쩌면 마지막 만남일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하여도 그녀가 행복하길 바르는 마음.



그렇게 떠나보내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12월 3일 이후 정말로 잠을 잘 못 잤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쓴다는 행위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잠은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당신이 타인에게 행한 모든 악행들을 다 겪어 보길 바란다. 자신이 찌를 칼날이 얼마나 날카롭고 고통스러웠는지 당신도 느껴보시길. 





이제 책을 읽을 시간이 온다. 




우선 세인트 영멘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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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하루 일과는 뭔가를 찾는 것부터 시작된다. 출근 후 매일 하는 일이 어느 나라가 좋을까 구글 지도를 살펴보는 일이다. 나는 지인들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감당하는 것이 힘들겠다 싶으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떠나겠다고.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 수 있는 어느 나라가 있을 것이라고. 그 나라에서 남은 재산을 모두 쓰고 사라지겠다고. 뭐 큰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동남아시아의 나라에서 아끼면 10년은 살 수 있지 않을까...아니 5년? 아니 1년? 뭐 어찌되었던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살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목포를 다녀왔다. 목포는 50살 이후에 내가 살기로 작정했던 도시였다. 후배가 정착해서 살고 있는 도시에 내려가 보겠다고 한 것이 5년 전인데 이제야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가지 못할 이유는 많았지만 어쩌면 그건 다 핑계일지 모르겠다. 언젠가 한번 내려갈게라고 한 그곳에 도착해서 나는 1시간 만에 나의 도시가 그리워졌다. 해변 없는 바다에서 불어대는 바람을 견디며 걸어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들던지.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누가 말한 건가 싶을 만큼 추웠고 습했다. 나 도시 여자였나?




1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함께 간 후배에게 말했다. 난 서울 여잔가 봐. 서울이 좋네. 물론 지금은 경기도 외곽에 살지만 말이야. 도시가 좋네....목포에서 사는 건 없던 일로 해야겠다. 후배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는 선배가 목포로 내려가서 산다고 했을 때 안 믿었어요. 함부로 나를 간파하지 마라, 후배님아.

도시를 이렇게 좋아하는 난데, 그래서 목포도 포기한 나이지만, 여전히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처럼 워홀을 갈수 있는 나이도 아니지만, 분명 한국이 싫어서 떠나게 될 것이다. 시인과 촌장의 <풍경>의 노래처럼 제발 모든 것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 놓고 책도 읽고 다시 여행을 떠나는 날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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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 이야기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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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 이야기 _ 조경란





책장에 쌓여 있는 책들을 꺼내고 읽고 있다. 사 놓고 읽지 않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책을 꺼낼 때마다 반성의 시간을 잠시 가졌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시리즈 책들을 모두 모아 놓고 즐거워하며 읽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혹은 20년이 지난 책들을 이제 이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꺼낸 책들이 조경란의 책들이다.




96년 등단한 저자가 2004년에 내 놓은 단편 소설집 [국자 이야기]는 저자의 초기작들이 많이 들어 있다 보니 저자의 자라온 환경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묘사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봉천동에서 산다>를 기준으로 그녀가 살아온 환경, 그 속에 우울한 가족사의 삶.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판타지적 환상으로 뭉쳐진 단편 아닌 장편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살았던 1990년대의 봉천동은 관악구의 언덕이 많은 산동네의 한 곳이었고 그곳에서 살고 있던 풍경은 지금은 없는 모습이다. 그곳은 대부분이 아파트로 바뀌었고 높은 아파트 가격을 자랑하고 있다. 그녀가 살았던 그곳은 높은 언덕에서 밤이면 반짝이는 별빛들을 수놓은 아름다운 밤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없는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 살았던 그녀의 자매들은 아버지가 원하는 서울대를 가지 못했지만 나름 S대를 나왔고 아버지의 기대와 다른 이후의 삶을 살아갔다. 그런 아버지의 실종, 그리고 다시 돌아온 아버지의 만남. 이후 어머니의 이별들이 단편 속에 녹아 있다.



소설 속의 ‘나’는 작가와 동일시되어 읽히지만 어쨌거나 소설이기 때문에 저자와 다른 ‘나’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옥상에서 침울하게 앉아 있는 그녀가 그려진다. 기린처럼 키가 큰 아버지가 정말로 저자의 아버지 같은 느낌. 그래서인가 아버지의 모습에서 저자의 우울한 느낌이 깃들여져 보인다.



빼곡하게 써진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졌다. 누군가의 상흔을 같이 느낀다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당신의 슬픔을 나도 공감 할 수 있다는 그 공간적 상상이 와 닿을 때 느껴지는 따스함, 모처럼 기온이 높아진 3월의 시작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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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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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상흔에 나도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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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빛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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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도에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상페가 그리워지는 그림들의 향연.
더이상 그의 새로운 그림이 없다는것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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