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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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없을것 같아 [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미칠 수 있겠니, 이 삶에

대답이, 아직도 어렵다. 그래도 어떻든, 결국에는 한꺼번에 다 타올라 소멸해버릴 삶이니, 많은 부분에 용서가 되거나 위로가 된다.” P301

쓰나미의 현장에 그 여자와 그 남자의 만남은 이상하지 않았다. 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그 공간에 남겨진 두 남녀가 서로를 찾게 되는 상황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 여자 ‘진’은 남편이 정착하려는 섬을 찾아 지진을 경험했고 혼란의 시간에 갇히게 된다. 그 섬에서 드라이버로 살고 있는 이야나는 약혼자 수니와 헤어지고 그간의 날들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이야나가 만나게 된 진은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사람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이 소설의 주된 틀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인물들, 만이나 그의 이복 어머니의 얘기들도 주인공 이야나의 갈등의 폭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의 얘기에 집중 하게 되면 그런 의문이 생긴다. 이들의 사랑이, 혹은 이런 만남 때로는 그런 하루가 왜? 어쩌라고? 그런 생각들이 길을 걷는 순간 떠오르게 된다.

“ 당신은 닫힌 문 앞에 있다고 힐러는 말했다. 그 문을 내가 열어줄 거라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는 또 말했다. 그 문이 열리면 당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기억해야만 할 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우게 될 겁니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습니다. ” P46

어쩌면 진은 남편이 있는 그 섬으로 가게 된 것은 이런 부분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소설을 읽는 동안 답답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저 닫힌 문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문을 열아야 진의 과거가 나올 테고 잊고 싶었던 7년 전 살인사건을 마주 할 것이고 그것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야나 또한 그렇지 않을까. 자신을 무시했던 수니의 집안과 결국 이여지지 않았지만 그 내면의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상흔의 문턱에 늘 고통스러웠지만 문을 열고 나오지 못했으니까. 지진과 해일이라는 자연재해에도 살아남은 이야나는 알게 된다. 그가 이제야 문 밖에서 나와 있었다는 것을. 진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 되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을 여는 일이었다.

“문에서 문으로 가는 길이 낙엽으로 뒤덮여 온통 붉은빛이었다. 진이 그 낙엽을 한 잎 주었다. 열대의 섬에서 사는 남자, 이야나로서는 알지 못할 가을날의 낙엽이었다. 생명의 물기가 다 빠져 주름으로만 남은 낙엽, 그러나 그 마른 잎에서는 여전히 향기가 남아 있었다. 뜨겁던 여름날의 기억이 주름져 있는 낙엽을 들여다보는 진의 얼굴에 다시 바람이 지나갔다. 이야나의 생일이 곧 가까워오고 있었다. 진은 이야나의 선물 속에 그 낙엽을 끼워놓기로 한다. 누군가의 선물이 될 낙엽이 온몸을 흔들어 향기의 기억을 마지막까지 내뿜었다.” 299

지진과 해일을 겪고 살아남은 진과 이야나, 그리고 유진이 낙엽처럼 주름진 기억들을 가지고 잘 살아 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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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