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사소함을 간직 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오래된 복도형 아파트의 젤 끝집에 살고 있는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세 곳의 집을 지나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 갈 수 있다. 늦은 퇴근이라 각자의 집에 도착한 택배 상자를 거의 못 보는데 늘 첫 집은 그 다음날까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끔은 이틀 혹은 삼일도 더 걸려서 택배 상자가 없어지곤 했다. 짐작하건데 그 집의 세입자는 이곳에 매일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말이나 한번 오는것 같았다. 오래 방치 된 택배 상자를 보면서 요즘은 집에 오지 않는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집에 오지도 않는데 왜 물건을 주문했을까 생각하며 지나쳤었다. 그런데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된 것은 택배 상자 중 하나가 무슨 김치라는 스티커가 크게 붙어 있는 아이스박스였다. 저렇게 오래 두면 발효 돼서 되어 신 김치가 될 텐데, 얼른 냉장고에 넣어야 할 텐데. 거슬렸던 그 김치를 담은 아이스박스가 늘 거슬렸던 날이 열흘이나 지났을 때, 무슨 일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날카롭게 쇠를 자르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잠옷 바람으로 현관문을 열고 무슨 일인가 보았다. 경찰관 두 분이 서 계시고, 한 아저씨가 잠긴 문을 열기위해 전동드릴을 돌리고 있었다. 그 소음이 복도형 아파트를 휘감고 있을 때 옆에 서 계신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주변 이웃이 고독사로 사망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출근 하면서 여전히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이스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첫 번째 집의 세입자를 위해 애도의 마음을 보냈다. 팽창되는 김치를 담은 비닐처럼 무언가 죄스러운 마음도 함께 팽창되어 일주일 정도는 마음이 힘들었다. 퇴근을 하며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늘 지나쳐야 했었던 그 집 앞,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며칠의 날들. 나는 내 주변의 어떤 사소함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소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은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허구라고 하지만 1996년에 문을 닫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일어난 일을 연상시킨다. 사실 이 부분에대 해한 기억이 크게 있지 않아서 나무 위키로 다시 찾아보았다.

<1922년 아일랜드에는 일명 막달레나 세탁소로 불리던 가톨릭 수녀회가 있었는데 가톨릭교회에서 지은 사회시설로, 이름과 같이 세탁소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이어서 오늘날의 일반 세탁소오 같은 호텔이나 정부기관, 군 관련 세탁물을 위탁받아 처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 일종의 외주업체였다. 이곳에 있었던 많은 미혼모와 고아들을 무보수, 무휴일로 강제 노역을 시킨 것은 물론이고 미혼모들의 자녀들을 돈을 받고 입양을 보내기도 했다. 매질을 당하는 것은 예사였고, 최악의 경우에는 성추행까지 당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식사도 제공되지 않아 굶주린 채로 착취당했고, 수많은 여성들이 인권을 철저하게 유린당하면서 죽어 갔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만행이 비교적 최근은 1996년 9월 25까지 약 74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나무위키 발췌) >

2002년 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는 그곳의 실상을 보여줬다. 베니스 국제 양화제에 출품되어 감춰진 많은 일들이 들어났고 대대적인 진상조사가 벌어지며 아일랜드 총리가 사과를 하게 되었다.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었던 작은 부분이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모두가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아일랜드의 소도시 뉴로스에 살고 있는 ‘빌 펄롱’은 석탄을 파는 석탄장이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펄롱이10대때 돌아가셨다. 그런 그를 외면하지 하지 않은 미시즈 월슨 때문에 1985년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는 시절에도 석탄을 팔며 딸 5명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열여섯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받아 준 것도 미시즈 월슨이었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었던 것들을 놓치지 않은 월슨은 두 생명은 살려준 사람이었다. 미혼모를 모른 척 하지 않았고, 고아가 된 펄롱을 거둬주었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 펄롱은 그날 만난 소녀를 잊기 어려웠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 둔 날 석탄을 수녀원으로 배달간 펄롱은 창고에 맨발로 헐벗겨져 있는 소녀를 보고 그녀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짐작만 하게 된다.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른 척 하고 자신의 밥벌이가 끊길 수 도 있는 일들에 선뜻 나서기 힘들었다. 자신의 딸들이 다섯 명이나 있고 그 딸들이 갖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해야 했다. 그가 놓인 1985년은 아일랜드에서 혹독한 현실에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척 했어야 했다. 소녀가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척 했어야 했다. 그냥 사소한 것들이라고 치부하며 석탄을 배달하며 집으로 돌아가 안락한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P99

펄롱이 다시 소녀를 찾으러 갔을 때쯤,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본 어느 한 청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만 18세가 되면 보호아동 종료가 되어 독립을 해야 하는데, 어찌 된 이유인지 그는 부천에서 광주 시설로 옮겨지고 그곳에 계속 남게 되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던 유군은 대학에 입학해 사회복지사 꿈을 꾸었다고 한다. 봉사 생활도 했다던 그가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잠긴 강의동 문을 열고 옥상으로 올라가 주저 없이 뛰어 내렸다고 한다. 열심히 살아 사회의 일원으로 남고 싶었던 그 청년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 사소한 것들을 발견해 주었다면 그 청년을 살릴 수 있었을까.

펄롱은 차디찬 바닥에 있었던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토록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나는 펄롱처럼 행동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비굴함, 마음과 다른 위선이 늘 주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어른으로 남아야 할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목련 2024-03-16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 님, 잘 지내시죠? 환한 봄 맞으시길 바라요!

오후즈음 2024-03-16 11:07   좋아요 1 | URL
자목련님 오랜만이예요. 그동안 몸도 아프고 이런 저런일로 이제야 책도 읽을 시간이 있네요. ㅋ 늘 한결같으신 자목련님 따뜻한 봄 맞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