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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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나는 시간이 날 때, 독서를 자주 즐기는 편이다. 내가 독서를 하게 된 이유에는 아마도 유전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독서를 거의 안했지만, 집에는 무수히 많은 책들이 서재에 쌓여있었다. 정치, 역사, 철학, 과학, 인문학, 사진, 바둑, 논어 등 아버지는 다독가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아버지가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다면, 아마 대학교 교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휴학생 시절 아버지가 나에게 제법 강력하게 추천했던 책이 있었다. 그 책 중 하나가 김명호 교수가 쓴 <중국인 이야기>.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는 현재도 계속 신작이 출간이 되고 있는 책으로써, 중국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 등을 일반인들도 읽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무엇보다 책이 현학적이지 않고, 재미있다. 마치 소설을 읽어나갈 때처럼, 문장이 정말 술술 읽히는 책이다. 김명호 교수가 이야기하는 형식처럼 구성된 책이기에, 책이 굳이 책이 출판된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따라서 1권을 먼저 읽든 8권을 먼저 읽든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집에는 7권까지 있는데, 내 눈에는 4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번에 4권을 읽었다.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제법 몰두해서 읽었다. 즉 그만큼 재밌게 읽었다는 것이다. 4권의 이미지는 문혁(문화대혁명) 시절의 포스터로 추정되지만, 4권에서는 문혁 관련 내용을 다루지는 않는다. 4권의 시작은 1936년 시안사건으로 명성을 떨친 장학량의 아버지 장작림의 가정교육부터이며, 1949년 혁명으로 탄생한 신중국의 외교관 형성에서 책은 종결된다. 4권에 포함된 내용들 하나하나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파트는 아마도 제2차 국공내전에서 혁명을 도왔던 북한에 대한 내용이다.

 

1950년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여 평양과 압록강까지 도달하자, 마오쩌둥은 북한을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보냈다. 최소 100만에서 150만 명 이상의 중공군 병력이 전쟁 당시 주둔했었으며, 이들의 사상자 또한 최소 수십만 명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승만의 북진통일이 실패한 이유의 원흉으로 중국의 존재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한국전쟁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주장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한국전쟁 시기 북한을 지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무시하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 4>를 읽으면, 당시 중국이 북한을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파병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나온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의 동북 지방에선 토호에 맞선 계급투쟁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당 공산당 간의 내전이 발발했다. 중국 공산당 휘하의 동북항일연군에 있던 조선인들은 토호에 맞선 계급투쟁을 성공적으로 지휘했으며, 소련 군정 하에 있던 북한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려 10만 정의 무기와 탄약 그리고 여러 보급품들을 중국 공산당에게 지원했다. 그 외에도 홍군은 북한 인근 지역의 야전병원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했으며, 이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아래의 내용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1946826, 남양철도 경비 대장이 탑승한 특별열차가 압록강 철교를 건너 단둥에 진입했다. 김일성은 10만여 정의 총과 탄약 외에 교량과 철도 폭파에 쓰라며 일제 폭약도 보냈다. 일제가 나진 질소비료공장에서 생산하던 황색 폭약은 당대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출처: 중국인 이야기 4 p.289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중국 혁명의 승리를 위해 헌신했다. 그 외에도 중국 공산당 휘하에서 무려 10만 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와 국민당 정권에 맞서 중국 혁명에 동참했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전쟁 당시 마오쩌둥이 무수히 많은 병력을 보내 김일성을 도왔던 이유이다. 물론 이러한 시각에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가진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 통일 세대를 준비하고 싶다면 이러한 역사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황포군관학교 관련한 내용도 재밌었다. 1920년대 손문의 지원을 받았던 장제스가 교장으로 있던 황포군관학교는 반제국주의 투사들을 길러낸 군사학교였다. 장제스 본인은 독재자로써 부정부패한 국민당 정권의 수장이었으며,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인물이었지만, 국민당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해 광저우에 황포군관학교를 설립했고, 또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혁명가들을 길러냈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2015년 영화 암살로 대중들에게 유명해진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 또한 동지인 오성륜과 더불어 황포군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후 김원봉은 1930년 레닌주의 정치학교를 세워 운영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총리였던 팜반동(Phạm Văn Đồng) 또한 황포군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적잖은 베트남의 독립운동가들과 혁명가들 또한 황포군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보았을 때, 황포군관학교는 말 그대로 반제국주의 투사들의 교육기관이었으며, 중국 공산당 인사들 뿐만 아니라 일제 치하 불제 치하에 있던 식민지 조선과 베트남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준 것이다. 굳이 황포군관학교게 중국 혁명에 크게 기여한 점을 따지자면, 아마도 린뱌오(임표)를 군사전문가로 거듭나게 만들어 줬다는 점일 것이다. 이 점은 국민당의 수장인 장제스 또한 인정하는 점이다. 당시 장제스는 린뱌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린뱌오는 전장과 초연, 선혈과 생명이 오가는 곳을 갈망하는, 당대의 한신이다. 다시 군대를 이끌고 전공을 세울 날이 멀지 않았다. 청사에 남을 공을 세울 테니 두고 봐라.”

 

출처: 중국인 이야기 4 p.163

 

반면에 황포군관학교 시절 장제스를 싫어했던 린뱌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황푸 시절에 본 장제스는 군벌에 불과했다. 항상 군림하려고만 했지 교관과 학생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화도 잘 내고 변덕도 심했다. 기분 내키면 잔정을 베풀었지만, 가끔 말 같지 않은 소리로 우리를 조롱했다. 그런 사람은 특징이 있다. 큰 일은 이룬 듯하지만 결국은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한다.”

 

출처: 중국인 이야기 4 p.156

 

책에 있는 내용들이 전반적으로 감명 깊었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신중국의 외교관 이야기도 정말 흥미로웠다. 1949년 혁명으로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이후 외교관들을 해외에 보냈다. 외교관으로 간 이들은 과거 중국 혁명에 동참하여 싸웠던 혁명가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혁명가의 부인들도 포함이 된다. 과거 혁명에 참가하여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활동했던 여성들은 외교관의 부인이 되자 분개했다. 그 이유는 서구 사회가 강조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이 지켜야할 규칙 중에는 다른 해외 외교관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에게 소리지르며 지적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 포함됐다. 그것 때문에 외교관의 부인이 되길 거부하고자 했던 여성들도 많았다. 나는 이 내용에서 혁명 시절 중국의 여성인권이 서구 사회보다 선진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부인들은 더 힘들어했다. 포성 속에서 성장한 전사들에게 파마와 얼굴 화장, 치파오와 굽 높은 신발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예절교육 담당자가 남편은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외교관 부인은 복장·행동·말투가 남달라야 한다. 남편이나 과거의 동지들이 좀 모자란 행동을 했다고 소리부터 버럭 지르는 교양 없는 행동은 정말 고쳐야 한다는 말을 하자 분노가 폭발했다.”

 

출처: 중국인 이야기 4 p.354

 

당시 현존하는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서 외교관의 부인이 이 만큼의 권위가 있던 나라가 과연 존재했는가? 나는 이점을 지적하고 싶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여성권리가 자본주의 보다 더 나은 점을 제공한 것은 주지의 사실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러한 사실을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번에 <중국인 이야기 4>를 읽으며 제법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시간이 날 때, 이 시리즈를 차근차근 읽어나갈 예정이다. 중국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적극 권하는 바이며, 이러한 내용을 통해 현재 중국을 혐오가 아닌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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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내 언론들과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라는 존재를 비난하기 바쁘다. 사실 대한민국 입장에서 국익을 고려하더라도 러시아의 존재는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와 전혀 관계도 없는 극우 국가 우크라이나가 지나치게 미화되고 피해자화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대한민국의 일부 좌파들과 우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결코 무고하지 않음에도 상당히 미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한민국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독도를 사실상 일본땅이라 표기하는데, 멍청한 한국은 멀쩡한 이름 키예프를 나두고 키이우라는 이름을 남발한다. 정말 한심할 따름이다.

러시아의 폭격과 일부 학살로 인한 죽음.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과거 아조프 대대 네오나치들이 돈바스 내전에서 15,000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것과 현재 전쟁과정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벌인 심각한 학살들은 축소되어 보도되며, 언급도 거의 안되고 있다.

반면에 러시아군이 떨어뜨린 정밀 포격은 하나 같이 극대화되어 보도된다. 사실 러시아군의 포격이나 폭격은 물론 적잖은 양민 피해가 나온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 상황이 바이든 정부가 비난의 화살을 퍼부을 이유가 될까? 과거 이라크 전때 미국은 수도 바그다드에 융단 폭격을 퍼부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그만큼의 폭탄을 퍼부었는가? 현재 키예프는 폭격의 피해가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자주 외치는 ‘슬라바 우크라이니‘는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한 반데라와 OUN 일당들이 외치던 구호였으며, 이게 현재까지 온 것이다. 이들은 당시 유대인과 폴란드인 그외의 수많은 양민을 포함하여 100만 이상을 학살한 이들이었다. 물론 젤렌스키는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현재 수천 명 규모로 있는 아조프 부대는 ˝우리가 필요하다면 젤렌스키도 유대인이니 제거할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보도에 대한 사진조작과 날짜조작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을 보도하는 국내 언론은 거의 없다. 이건 조선일보나 경향 한겨레 할거 없이 공통된 모습이다. 참으로 문제가 많다. 지나치게 서방 중심의 보도만 다루니, 바이든 행정부가 하는 프로파간다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어느 편을 들든 간에 최소한 이러한 사실관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점에 있어서 지나치게 미국 및 우크라이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여론이 그저 우려스럽기만 하다. 이제는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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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6-29 2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내 언론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사회주의 정당을 탄압하고 있다는 것과 노동법을 19세기 노예노동 수준으로 개악 내지는 퇴보(노동조합 권리축소 & 노동자 임금 및 해고 회사가 맘대로 결정)시킨 것도 보도하지 않고 있다죠!
 

11. 나찌 점령하의 우끄라이나

 

1931년 일본군은 만주를 점령했고 쏘련의 국경을 따라서 주둔했다. 히틀러는 1933년에 권력을 잡았다.

 

1928년에서 1933년에 쏘련이 착수했던 공업과 농업의 재조직화 계획은 시의 적절했다. 모든 힘을 총동원하는 희생을 치르며, 오직 그들의 성공만이 나찌에 대한 저항과 승리를 허락했다.

 

역사적인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는, 나찌가 우끄라이나인 대학살과 쏘비에뜨 체제의 허약함에 대해 자신들이 지어낸 거짓말을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사가인 하인츠 호네(Heinz Hohne)는 이렇게 썼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러시아에서 2년간 치러졌던 피의 전쟁47)(히틀러가 러시아인들을 비하하는 용어인 역자) 인간 이하 존재(sub-humans)에 대한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것을 잔인하게 증명했다. 일찍이 19428독일제국의 보고들에서 경찰보안대(SD, Sicherheit Dienst), 독일 인민들 사이에서 우리가 그동안 망상의 희생자들이라는 지각이 증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엄청난 양의 쏘련의 무기, 그들의 기술적 우수성, 그리고 공업화에 대한 쏘련의 거인과 같은 노력 등에서 깜짝 놀랄 만한 인상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쏘련에 대한 예전의 모습과는 뚜렷하게 대비되었다. “인민들은, 어떻게 볼셰비즘이 이 모든 것을 생산하게 했는지 자문하고 있다.” ’48)

 

1985, 미국의 교수인 윌리엄 만델(William Mandel)은 이렇게 적었다:

 

‘20년 동안 쏘련에 충성하던, 우끄라이나의 가장 넓은 동부 지역은 굉장히 활동적이었다. 50만의 쏘비에뜨 게릴라군이 있었다. .... 그리고 450만 명의 우끄라이나 민족은 쏘비에뜨 군대에서 복무했다. 만약 그 큰 집단 내에 근본적인 불만이 존재했다면, 명백하게 그 군대는 바탕에서부터 무력해졌을 것이다.’49)

 

역사가인 로만 스즈포룩(Roman Szporluk)조직화된 우끄라이나 민족주의의 활동 지역이 이전의 폴란드 영토에 국한되었다는 것을, 즉 갈리시아(Galicia) 지방에 국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폴란드의 점령 하에, 우끄라이나인 파시스트 운동은 1939년까지 자신들의 기지를 가지고 있었다.50)

 

우끄라이나인 대학살이라는 거짓말은, 히틀러주의자들이 우끄라이나 영토의 정복을 준비하는 일환으로서, 그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끄라이나 영토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나찌 해방자들은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다. 알렉세이 표도로프(Alexei Fyodorov)는 전시에 25000명의 나찌를 물리친 한 빨치산 부대를 이끌었다. 그의 책, 행동하는 지하 위원회(The Underground Committee Carries On)는 나찌에 대한 우끄라이나인들의 태토를 훌륭히 보여준다. ‘스딸린주의자의 우끄라이나인 대학살에 대해 말하는 이들에게, 해독제로서 이 도서를 읽을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51) (5부 끝) <노사과연>

 

번역 : 편집부

 

1) Douglas Tottle, Fraud, Famine and Fascism: The Ukrainian Genocide Myth from Hitler to Harvard (Toronto: Progress Books, 1987), pp. 5-6.

 

2) The Nation 140 (36), 13 March 1935, quoted in Tottle, op. cit. , p. 8.

 

3) 역자 주 : 원문에는 월터(Walter)라고 되어 있으나, 워커(Walker)의 오타로 보인다.

 

4) 워커의 원문에 하르호프(Kharhov)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는 우끄라이나 도시인 하르코프(Kharkov)를 워커가 잘못 쓴 것을 피셔가 그대로 원문대로 표기했다는 뜻이다.

 

5) Tottle, op. cit. , p. 9.

 

6) James Casey, Daily Worker, 21 February 1935, quoted in Tottle, op. cit. , p. 9.

 

7) Tottle, op. cit. , pp. 13, 15.

 

8) Ibid. , pp. 19-21.

 

9) Ibid. , pp. 23-24.

 

10) Ibid. , p. 25.

 

11) Ibid. , pp. 4-31.

 

12) 역주: 원문에는 `communist barbary'로 되어 있으나,`communist barbarism'의 오기로 보고 번역했다.

 

13) Ibid. , pp. 38-44.

 

14) Ibid. , p. 41.

 

15) New York Times, quoted in Tottle, op. cit. , p. 50.

 

16) Tottle, op. cit. , p. 51.

 

17) Ibid. , p. 61.

 

18) Ibid.

 

19) Ibid. , pp. 69-71.

 

20) Ibid. , p. 71.

 

21) Ibid. , p. 74.

 

22) Ibid. , p. 79.

 

23) Ibid. , p. 86.

 

24) Conquest, The Harvest of Sorrow, op. cit. , p. 334.

 

25) Tottle, op. cit. , pp. 111-112.

 

26) Ibid. , p. 112.

 

27) Ibid. , p. 113.

 

28) Ibid.

 

29) Ibid. , p. 115.

 

30) Ibid. , p. 118.

 

31) 역자 주: 우끄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 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s)은 서부 우끄라이나에서 1929년 건설된 정치조직이다. 이 조직 산하에 무장조직인 UPA가 있다. 이후 OUN1940년 멜닉(Melnyk) 그룹과 반데라 그룹으로 분열된다. 주도권은 보다 전투적인 반데라 그룹이 쥐게 된다.

 

32) Ibid.

 

33) Ibid. , pp. 121-122.

 

34) Ibid. , p. 122.

 

35) Ibid. , p. 128.

 

36) Ibid. , p. 129.

 

37) Ibid. , pp. 58-59.

 

38) J. Arch Getty, Origins of the Great Purges: The Soviet Communist Party Reconsidered, 1933--1938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p. 5.

 

39) Tottle, op. cit. , pp. 93-94.

 

40) Ibid. , p. 94.

 

41) Ibid. , p. 91.

 

42) Ibid. , p. 92.

 

43) Ibid. , p. 96.

 

44) Ibid. , p. 97.

 

45) Ibid.

 

46) Ibid. , p. 100

 

47) 역자 주 : 1941622일 발발한 독-쏘 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48) Ibid. , p. 99.

 

49) Ibid. , p. 101.

 

50) Ibid.

 

51) Alexei Fyodorov, The Underground Committee Carries On (Moscow: Progress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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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혈맹. 평양, 하노이 그리고 베트남전쟁

베트남전쟁기 북한은 북베트남을 경제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지원군도 파견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였다. 따라서 베트남전쟁기 북한·북베트남 관계는 주목할 만한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북한·북베트남과 관련된 자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기에 양국 관계의 많은 부분이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으며, 이에 대한 충분한 해석과 연구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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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진짜 미국이야기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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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서평: 미국의 실체를 낱낱이 알 수 있는 명저

평창동계올림픽이 진행되던 2018년 나는 우연히 책 한권을 받았다. 그 책이 바로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였다. 당시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와 더불어 이 책을 읽었던 나는 미국여행을 하면서 책 한권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그렇게 해서 쓰게 된 책이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이었다.

하워드 진 선생이 쓴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는 4년 전에 읽은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의 개정판이다. 이 책은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규정하며, 미국이 역사적으로 무수히 많은 범죄와 살인을 저질렀음을 보여준다.

자국의 자본과 기업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범죄와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그런 악행을 통해, 많은 이들의 생명을 잃어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 무수히 많은 군 기지를 소유하고 있고, 그 나라 보호를 명분으로 타국에게 막대한 주둔비를 요구하기도 한다.

1898년 미국이 쿠바를 독립국으로 만든다는 거짓 명분으로 일어난 미서전쟁은 미국의 쿠바 식민지 건설과 필리핀 식민지 건설로 이어졌다. 특히나 미국은 필리핀에서 수십만 명의 필리핀인을 학살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고, 10세 이상의 필리핀을 죽여도 된다는 기준을 세워놓고 저지른 학살이었다.

특히나 미국의 중남미 정책은 정말 잔인했다. 니카라과에서의 콘트라 반군 지원과 엘살바도르에서의 친미정부에 의한 민간인 학살 등 미국은 자유라는 이름 하에 중남미의 독재자들과 학살자들을 지원했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유엔 헌법의 기준을 운운했지만, 미국은 절대로 이를 지키지 않았다. 뻔뻔스럽게도 레이건은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사일 몇기만 팔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2,000기 이상 팔았고,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미사일을 팔지 않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미사일을 팔았고, 콘트라 반군에 자금을 주었다. 레이건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미국은 자국민에게 있어서도 폭력적이고 억압적이었다. 사업가 조지 풀건은 경제 불황을 핑계로 노동자의 임금을 25%나 삭감했지만, 주주에 대한 배당금은 올렸다. 이에 저항한 노동조합 운동가 유진 뎁스는 결국 감옥에 구금됐다. 1889년에만 22,000명의 미국 철도 노동자가 사고로 죽거나 다쳤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이윤축적을 위해 이러한 현실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었다.

미국은 냉전초기 스탈린의 독재 체제로부터 나라를 지킨다고 운운하며, 자국 국민을 매카시즘으로 탄압했다. 또한 중국의 국공내전과 그리스 내전 그리고 전후 필리핀 문제에 개입하여, 각국의 민족 반역자들을 지원했다. 그리스 내전에서 미국이 지원한 세력은 과거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반역자들이 대다수였다.

우리는 미국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아마도 단편적으로 알 것이다. 특히나 외교와 정치 그리고 역사부분에 있어서, 6.25 전쟁과 함께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비판은 ‘종북좌빨‘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전쟁을 전개하고 있을 당시, 미국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화 하기 위한 전쟁에서 프랑스의 전쟁비용 80%를 지원했고, 이란의 지도자 모사데크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자 그를 쿠데타로 축출하여 이란에 친미왕조 경찰독재국가를 세웠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때 미국의 정책이 과연 민주주의적이었는가? 하워드 진 선생이 쓴 책은 이점에서 많을 걸 생각하게 만든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쟁 이후 이라크에게 경제제재를 가하여, 125만 명의 이라크인을 아사시켰으며, 이런 경제제재를 통한 범죄행위는 현재 이란과 베네수엘라 북한 등에서 자행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워드 진 선생의 지적처럼 미국은 절대로 대외적으로 폭력적인 것이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단순히 미국의 제국주의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미국이 베트남을 불법적으로 침략했지만, 미국인들은 전쟁에 반대하여 반전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차별받던 흑인들은 마틴 루터 킹을 포함한 인권운동가들과 더불어 민권운동을 전개했고, 많은 부분에서 권리를 쟁취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의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은 미국 민중이 함께 병행한 투쟁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투쟁과 불의에 대한 저항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하워드 진의 주장이다. 최근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한국인들이 신경쓰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즘 세력을 버젓이 지원하고 있다. 단순한 인도적 지원이 아닌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미국이 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얻으려는 목적이 뭘까?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국은 현재 러시아를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의 가난에 허덕였던 러시아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극심한 경제제재와 국제적 및 군사적 압박을 할 이유가 없다. 거기다 우크라이나 탈산업화 이후 이득을 본 것은 바이든을 포함한 미국의 군수산업과 민간기업들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았을때, 미국에 대한 비판은 매우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미국에 대한 비판이 너무 약하다. 하워드 진의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는 왜 우리가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해야하는지 그 답을 제공해 줄 것이다. 몇년만에 다시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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