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한길로로로 18
하랄트 슈테판 / 한길사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히틀러와 나치즘

예전에 알라딘에서 산 <아돌프 히틀러>를 읽었다. 1990년대 한길사에서 인물 시리즈 중 하나로, 원서는 독일인이 쓴 책이며, 1983년에 나온 책이다. 히틀러는 전 세계적으로 비판받는 인물이다. 1939년 그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했고, 홀로코스트라는 아주 끔찍한 인종학살까지 벌어졌다. 히틀러가 많은 이들에게 비판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책은 그 당시까지 이어져온 히틀러에 대한 연구 흐름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히틀러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선전 부분에 보다 많은 집중을 기울였다. 따라서 책은 히틀러가 극단적 민족주의에 빠진 이유를 찾기 위해, 히틀러의 초기 생애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즘 이데올로기의 형성 과정 및 나치와 히틀러의 활동에 보다 초점을 맞추었다.

히틀러를 다루는 책 치고 결코 두꺼운 분량의 책은 아니지만, 제법 학술적인 부분도 보인다. 그러나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선 정말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는 수준이다. 인물 히틀러를 알기 위해선 그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에 대해 보다 깊이 다뤄야 하지만, 나치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고찰만 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짧게 다룬 느낌이다. 1942년 반제회의에서 유대인 절멸정책이 결정되어 실행되었다는 구절이 책 분량에 비해 짧게 들어가 있다.

또한 책은 나치즘의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히틀러의 편협한 이데올로기는 과연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나치즘의 영통팽창적 망상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이들은 왜 인종 이데올로기적 사회를 추구한 것일까? 여기에 대해 내가 짧게 할 수 있는 명쾌한 대답은 바로 ˝서구 제국주의에서 비롯됐다.˝라는 대답이다.

나치즘의 우생학적 이데올로기와 인종차별 그리고 팽창정책 등은 엄밀히 말해서 19세기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과 같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가지고 있던 이데올로기다. 나치즘 이데올로기에서 빠질 수 없는 반공주의 또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던 이데올로기다. 따라서 나치즘과 서구 제국주의는 이러한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그러나 책은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서구적 시각과 소위 자유주의적 시각의 치명적인 한계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히틀러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제법 추천해줄만한 책이다. 존 톨랜드의 책은 글이 어렵지는 않지만, 일반인들이 읽기에 너무 두껍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두꺼운 책을 읽기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추천할만 하다. 이 책은 제법 학술적이면서 분량도 적절한 편이고, 사진도 많이 들어가 있다.

히틀러에 대한 자료는 아주 많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밤하늘의 별만큼 자료가 넘쳐난다. 신비한 티비 서프라이즈의 소재로 나치와 히틀러가 자주 사용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서구의 학계는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가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즘과의 공통성에는 항상 외면한다. 앞으로의 히틀러와 나치즘의 연구는 이것을 바탕으로 확산되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은 프랑스 식민주의를 지지함으로써 영국의 낡은 동 수에즈 정책을 지지하는 자신의 지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냈다.”

 

출처일본제국 패망사 p.1321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미국은 유엔을 통해 팔레스타인(Palestine)을 아랍인과 유대인 거주 구역으로 분리하기로 결정했다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게 탄압을 받았던 유대인들은 전쟁이 끝나자과거의 땅을 되찾겠다는 이유를 들어 팔레스타인 영토에 자신들의 나라인 이스라엘(Israel)을 세웠다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결정은 당연하게도 아랍 민중에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탄생하자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1914연만해도 그 나라의 유대인 인구는 6만 명이었지만, 1948년에는 70만 명이 됐다당시 유대인들이 벌인 활동은 이른바 시오니즘(Zionism) 운동이었고당연히 영국과 미국은 이를 지지했다.

(가말 압델 나세르)

 

1948년 5월 15일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선포하자분노한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에게 선전포고했다이집트시리아레바논이라크요르단 등이 이 전쟁에 참전했다당시 이집트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물론 당시 이집트의 참전은 파루크 왕의 독단적인 결정이었으며파루크의 목적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신의 정치적 최대 라이벌인 요르단 왕국의 압둘라가 팔레스타인을 점유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1차 중동전쟁은 1949년 3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다당시 제1차 중동전쟁에는 이집트의 장교로 참전한 이가 있었다그가 바로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나세르와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

 

1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왕정이 패배하자이들은 불신의 대상이 됐다따라서 이집트 내에서는 왕정을 타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됐다전쟁에 참전했던 나세르는 자유장교단을 중심으로 이 왕정을 타도하기로 결심했고이들은 1952년 7월 23일 거사를 단행했다쿠데타를 감행한 이들은 이날 아비딘 궁전에서 왕을 체포하는 데 성공하고국가의 모든 주요기관을 장악하거나 접수했다이미 국민들 간에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실망과 증오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쿠데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나세르는 1953년 6월 왕정제 자체를 폐지해버렸으며새로운 내각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집트는 영국으로부터 형식적인 독립을 얻었지만여전히 영국군은 자신들의 경제적으로 필요한 수에즈 운하를 독점하고 있었다결국 1954년 영국군 철수협상을 진행했고, 1956년 영국군 철수를 합의했다나세르는 1955년 최초로 비동맹 개념을 채택한 반둥(Bandung) 회담에서 아랍 세계를 이끄는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했고유고슬라비아의 티토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와 더불어 제3세계 진영에 가담했다. 1956년 7월 나세르는 영국군 철수한달 후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거기서 생기는 수입으로 댐 공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는 즉각 시행되었다이집트 군대가 수에즈 운하를 장악했으며여기서 나온 수입으로 아스완 댐을 건설하고자 했다영국 프랑스는 나세르의 이집트에게 선전포고했다이렇게 되면서 제2차 중동전쟁 즉 수에즈 위기가 발발했다.

(수에즈 운하 지도)

 

이러자 미국은 아스완 댐 건설에 대한 약속을 저버렸으며미국의 덜레스 장관은 나세르가 소련과 무기 거래를 했다는 이유를 들며영국 프랑스를 지원했다당시 나세르는 프랑스의 식민지이던 알제리에서 독립운동 세력인 민족해방전선을 지원했었다이 점에서 프랑스는 이집트를 응징하려고 했다영국과 프랑스는 자신들의 제국주의 우방인 이스라엘을 끌어들였다. 3국은 비밀 회담을 갖고 이집트를 침공하는 전반적 전쟁계획을 세웠으며,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은 계획대로 시나이 반도를 침공하여 5일 만에 가자 · 라파 · 알 아리쉬 등 주요 도시와 티란 섬을 점령했다.

(수에즈 위기 당시 전쟁을 표현한 사진)

 

10월 30일 영국과 프랑스는 시나리오대로 이집트와 이스라엘 양쪽에 선전포고를 하고 운하 양쪽 20마일 선으로 물러설 것을 요구했다이스라엘은 그 조건을 곧 받아들였지만이집트는 자국 땅 일부를 포기하라는 그 조건을 결코 수용할 리 없었다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 비행장들에 대한 공습을 가한 다음 11월 5일부터는 공수부대와 해상 수송부대가 상륙하고 운하를 향하여 진격했다그동안에 이스라엘군은 전 시나이 반도를 수중에 넣었다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자국제여론은 이들에게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이들은 결국 전황이 고착화되기 전에 휴전을 선언했으며영국과 프랑스는 철수했다이스라엘도 1957년 3월까지 철수했다.

(이집트인들에게 환영받는 나세르)

 

수에즈 위기 당시 미국은 서독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무기를 지원했던 반면소련은 이들에 맞서 이집트와 같은 아랍 국가에게 무기를 제공했다수에즈 위기에서 나세르의 이집트 군대는 군사적인 면에선 패배했지만정치와 외교적인 부분에선 승리를 거두었다이를 통해 나세르의 이집트는 19세기 영국 제국주의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수에즈 운하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이로써 이집트는 식민지 지배의 잔재를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었다나세르는 이집트에서 영웅으로 부상했고아랍 주권의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아랍인들에게 아랍 민족주의의 실현과 통일 아랍의 꿈을 심어주는 아랍 세계의 지도자로 급부상하기에 이른다.

 

참고문헌

 

존 드상시김한경(), 인물로 읽는 세계사 30, 나세르대현출판사, 1999

 

손주영이집트 역사 다이제스트 100가람기획, 2009

 

정토웅세계전쟁사 다이제스트 100가람기획, 20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우크라이나가 포격했다

2. 다리가 폭격당하고, 지하로 도망쳤다

3. 우크라이나 병사 앞에서 우크라이나가 포격했다고 얘기하면 안된다

4. 러시아 지지한다고 하면 총맞는다

5. 러시아는 잘 해줬다고 한다

참고자료

https://m.youtube.com/watch?v=lg59FPbLENk&feature=youtu.b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게릴라들 : 총을 든 사제
엠마뉘엘 르파주 지음, 이성엽 옮김 / 씨네21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게릴라들 서평: 총과 펜을 들고 저항할 수 밖에 없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

1961년과 1979년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던 연도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포함한 군부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고, 1979년 10월 26일 18년간 장기 집권을 하던 박정희가 부하 김재규가 쏜 총에 맞고 사망했다. 비슷한 지구 반대편에 있던 니카라과에서도 1961년과 1979년에 상징적인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1961년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The National Liberation Front of Sandinista)이 창설되어, 미국에 지원을 받는 소모사 독재 정권에 맞서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9년에는 정치 및 무장투쟁 끝에 산디니스타들은 소모사 3대 세습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집권했다.

산디니스타들은 18년간 소모사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했고 승리했다. 과거 니카라과의 독립운동가 아우구스토 산디노가 미해병대의 식민지 정책과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했듯이, 산디니스타들도 자국의 경제를 착취하고 유린하는 미국의 자본과 친미 자본가들에 맞서 투쟁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산디니스타들의 투쟁은 결코 짧지 않았으며, 또 그만큼 고난과 역경이 많았다. 이들은 소모사 독재 정권에 맞서, 니카라과 밀림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촌락에 해방구를 건설했다. 소모사 정권과 미국은 산디니스타들의 무장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마을과 촌락을 불태우고, 약탈했으며 산디니스타로 의심되는 민간인을 체포하고 구금하며 사살했다.

스페인 내전과 그리스 내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우익들이 했던 잔혹행위와 학살극이 니카라과에서도 미국과 친미 정부에 의해 자행된 셈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소모사 정부는 찢어지게 가난한 사회였다. 1970년대 당시 니카라과의 실업률은 36%였고, 문맹율은 74%였으며, 60%가 영양실조였다. 말 그대로 대다수 민중은 빈곤과 가난에 고통받았다. 다른한편 미국의 지원을 받아가며 3대를 세습한 소모사는 1974년 기준으로 전 재산이 대략 9억 달러였다. 이런 모순이 분명했던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들이 집권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프랑스의 만화가 르파주가 만든 만화 <게릴라들: 총을 든 사제>는 당시 니카라과에서의 민중들의 삶과 게릴라들의 투쟁을 잘 조명했다. 만화는 주인공이 소모사 정부군에 의해 조사받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민중의 삶과 소모사 정부군의 폭력과 억압 속에서, 참된 그리스도의 길을 찾기 위해 각성해가며, 결국 혁명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 주인공의 이야기다.

주인공 또한 1967년 볼리비아에서 사살된 체게바라(Che Guevara)처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혁명군으로 각성해가는 과정을 거친다. 체게바라가 젊은 시절의 여행경험을 통해 각성을 했다면, 만화 주인공은 마을에서 참 예수의 길을 따르러 가는 과정에서 각성한다.

만화는 많은 부분에서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교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과연 우리 주변에 있는 교회는 남을 위해 희생하고, 로마 제국의 폭력에 맞서 민중을 위해 저항했던 예수의 길을 잘 따르고 있는지 말이다.

만화 주인공이 가지는 의구심도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종교인으로써, 단순히 돈많고 부를 축적하며 민중을 억압하는 이들을 위한 고귀하고 깔끔한 예수의 모습이 아닌, 민중을 위해 상부구조의 폭력에 맞서 저항하고 희생했던 예수의 모습과 고난을 교회 벽화에 표현하고자 한다.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이 무장투쟁을 위해, 실현하고자 했던 이데올로기가 당시 독재정권에 억압받던 니카라과의 기독교인들이 실천하고 싶었던 하느님의 말씀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니카라과에서는 민중신학으로 대표되는 종교인들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 투쟁한 것이었다.

만화는 소모사 군대의 병사들이 마을에 있는 민중을 체포하고 학살하며, 파괴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인다. 소모사의 군대가 라이터라는 물건을 통해, 산디니스타들을 색출해내는 폭력적인 과정도 잘 보여준다. 사실 소모사 군대가 이런 짓거리를 저지르게 된 이유에는 병사들의 급여를 제대로 주지 않은 점과 오로지 자신들 공장에서 나온 성냥만 판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소모사 정부는 군대, 땅, 산업 그 모든걸 손아귀에 장악하고 있었다. 산디니스타들의 투쟁은 바로 이런 전반적인 불의에 맞선 투쟁이었다.

만화에선 산디니스타에게 포로로 붙잡힌 미군 고문단이 나온다. 이 미군 고문단은 산디니스타들에게 ˝너희들은 너무 이상적이야.˝라며, 현재 자본가들이 사회주의 실패의 논리를 들이대는 것과 비슷한 주장을 한다. 만화에서 한 게릴라 전사가 반박했듯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현재의 비참하고 굴욕적인 모습 뒤에 감추어진 인간의 다른 면˝을 보지 못한다.

미군 포로와 게릴라의 대화에서 나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보고,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적 허점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소련은 1970년대부터 경제가 몰락하여, 결국 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지구 반대편에 있던 중남미에선 쿠바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들이 미국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민족해방과 더불어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쿠바의 카스트로와 체게바라, 과테말라의 아르벤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칠레의 아옌데,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 20세기 중남미의 역사는 진보를 향한 투쟁의 역사다. 나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사회주의자는 세계 혁명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화의 주인공은 사제지만, 현재 기독교 신자들이 매우 혐오하는 동성애적인 요소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기독교에선 동성애를 배척하지만, 과연 그게 옳은 일일까? 만화는 이러한 점에서 동성애를 다시한번 보게 만든다. LGBT로 대표되는 동성애자 또한 인간이며, 우리와 평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하나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이것 또한 만화가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게릴라들: 총을 든 사제>를 읽으며, 여러지점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미제국주의에 짓밟힌 중남미의 역사와 이에 맞서 저항한 중남미 인민들 그리고 성공한 혁명 등. 1979년 산디니스타가 정권을 잡자 바로 한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고, 집을 주고, 무상으로 치료하는 것이었다. 또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소모사 정부의 무차별적이던 사형제도를 폐지했으며, 인민의 권력을 강화했다. 미국이 산디니스타를 반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만화의 작화도 퀄리티가 높으며, 또 재미가 있다. 많은 이들에게 이 만화의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산디니스타의 국가 1절을 인용하며 마치겠다.

˝동지들이여 앞을 향해 전진하라.
혁명을 위해 앞으로 전진하라.
우리 인민은 그들 자신의 역사의 주인이며
그들 자신의 해방을 위한 건축가다.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전사들이여
미래를 위한 힘찬전진은 우리의 것이다.
빨강-검정색의 깃발이 우리를 감싸며
자유로운 조국을 위해 우리는 살거나 죽을 것이다.

산디노의 아들들이여
우리는 배신하거나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적인 미제(양키)에 맞서 싸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정당인 스보보다의 지도자 올레크 타니복과 조 바이든)


(2014년 유로마이단 집회 당시 거리 행진을 하는 스보보다 지지자들)


(히틀러 유켄트 사진을 들고 사진을 찍은 아조프 대대 인사들)


(아조프 대대 깃발을 들고 있는 네오나치들)


(심지어 탱크까지 몰고 있는 우크라이나 네오 나치들)


(아조프 부대의 탱크 사진 2, 자세히 보면 나치 문양이 보임.)


(위에 있는 탱크 사진과 네오나치들이 든 깃발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SS 전차 부대인 다스 라이히의 상징을 따온 것.)


(나치 깃발과 우크라이나 깃발 그리고 성조기를 든 네오나치들)


(우크라이나화 시킨 나치 깃발을 걸고 있는 아조프 부대 대원)


이것만 보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네오나치가 없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헛소리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네오나치 조직을 정규군으로 편입시킨 나라는 우크라이나 밖에 없다. 그런 나라가 우크라이나인데, 민주주의라고? 웃기는 소리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newdvs117 2023-06-2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과 서유럽(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과 한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