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올해 7월 말 이탈리아와 폴란드를 여행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1박 2일 동안 머물면서, 소련군 묘역과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방물관, 바르샤바 문화과학궁전, 구 시가 광장을 방문했다. 이와 더불어 폴란드 사회주의 시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저항과 물건들을 전시한 폴란드 인민공화국 생활 박물관(Museum of Communism, Warsaw)도 들렸다. 박물관은 당연히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에 비해 훨씬 나았다. 사실 현재 폴란드의 경우 과거부터 존재해온 반러시아 감정과 이후 현대사에서 나타난 반소련 감정이 매우 강한 나라다. 한국의 경우 소련 깃발을 거리에서 들고 다닌 다해서 처벌받지는 않지만(북한 깃발 들면 처벌받겠지만), 2024년 폴란드의 경우 충분히 처벌받을 수 있다.
(감자잎벌레, 원래는 북미지역에서 살던 곤충이지만, 19세기 유럽에도 전파됐다.)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의 경우 소련이나 사회주의에 대한 묘사가 상식 이상으로 매우 악의적이고 적나라해서 너무나도 의아했다. 반면 폴란드 인민공화국 생활 박물관의 경우 1980년대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아 반체제 활동을 하던 자유노조 운동(‘솔리다르노시치(Solidarność)’라고 불림)을 약간 옹호하고 카틴 대학살을 소련의 학살로 규정하지만, 현재 폴란드라는 나라에서는 그게 최선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박물관은 폴란드 사회주의 시절의 경제성장과 문화발전 등도 제법 균형있게 다뤘다. 따라서 상당히 볼만한 박물관이었다. 필자는 이번에 바르샤바에 있는 폴란드 인민공화국 생활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정말 흥미진진하게 본 사건이 있었다. 그게 바로 폴란드 내에서 벌어진 반미 캠페인이었다.
이 반미 캠페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독일에 의해 폐허가 된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의 지원 아래 대대적인 전후재건에 나섰다. 소련이 접수한 동부 독일과 폴란드도 그러한 전후재건의 시대를 거쳤다. 당연히 농업생산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며 토지 국유화가 진행됐다. 그러던 중 1950년대 동독과 폴란드에서는 농업생산에 타격을 주는 해충들이 창궐한 것이다. 당시 창궐한 벌레의 종류는 감자잎벌레(potato beetle)였다. 감장잎벌레는 주로 북미대륙에 살던 종이고 1811년에 처음으로 서구인들에 의해 발견됐다. 유럽에는 1870년대에 퍼져 작물생산에 피해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감자잎벌레를 잡은 동독의 소년단원들, 이 사진에 나온 동독 소년은 하루에 2,000마리를 잡아 그 당시 벌레잡기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카트야 호이어는 2023년에 출간한 『장벽너머』라는 책에서 동독은 1950년 이후부터 병충해로 농작물 수확량의 20%가 피해를 봤다고 썼다. 그러면서 호이어는 “농산물 생산 목표가 무계획적인 토지분배와 토지국유화로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딱정벌레조차 동독인들의 식량을 죄다 먹어 치우려 들었다.”고도 서술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감자잎벌레가 동독 농업에 적잖은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다. 폴란드 또한 동독과 마찬가지로 감자잎벌레에 의한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폴란드 언론사인 폴스키 라디오(Polske Radio)의 기사를 보면, 주로 사회주의 국가의 캠페인을 비난하고 있지만, 1952년에서 1956년 사이에 이 해충이 폴란드의 농업 생산에 타격을 주었다고도 언급하고 있다.
(동독에서 해충박멸 캠페인을 전개할 당시 만들어진 반미 선전물, 당시 동독은 이를 미제국주의의 침략 및 간섭 행위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에서 해충박멸 캠페인을 전개할 당시 만들어진 포스터, 폴란드 또한 동독처럼 해충박멸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전개했다.)
동독과 폴란드에서 감자잎벌레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 무렵이었다. 양국 다 이 벌레가 미국이 의도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발전과 전후재건을 방해하기 위해 살포한 것으로 규정했고, 이와 관련한 반미선전활동을 1950년대에 강화했다. 동독 정부와 폴란드 정부는 “미국 비행기들이 정해진 비행 구역을 침범하여 동독 지역에 감자잎벌레를 살포했다.”고 보도했다. 폴란드 또한 마찬가지로 미국 비행기들이 벌레들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동독과 폴란드 둘 다 반미주의 선전전을 진행했다. 양국의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현재 작물을 파괴 및 생산을 방해하고 있는 이 벌레를 바로 미국이 뿌렸고, 미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정권을 파괴하기 위해 이런 행위를 벌였다.”는 것이었다. 폴란드에서는 "Walka z stonką(딱정벌레에 맞서 싸우자!)"는 전 국민적 캠페인이 벌여졌고, 동독에서도 감자잎벌레를 ‘양키 딱정벌레(Amerikanischer Käfer)’라고 부르며 폴란드와 비슷한 전 국민적 해충박멸 캠페인이 벌어졌다. 동독에서는 소년단들이 앞장서서 감자잎벌레를 수집했는데, 한 소년의 경우 하루만에 2,000마리를 잡아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었다.
(미국의 딱정벌레 살포를 규탄하는 사회주의 시절 폴란드의 신문, 폴란드 또한 미국의 침략과 정치공작으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에 대한 서방의 입장은 동독과 폴란드의 반미 캠페인이이며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2013년에 BBC에서 쓴 관련 기사를 보면, “실질적으로 딱정벌레를 무기로 사용한 증거는 없다”는 주장과 더불어, 가이슬러라는 사람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당시 동독 농업부에서 작성한 목격자 및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포함한 보고서는 감자잎벌레 외의 다른 침입종에 대해서는 발표한 적도 없고 주로 과학자가 아닌 정치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신뢰할 수 없으며 동독 정부가 자신들의 무능을 가리기 위한 프로파간다다.”라고 썼다. 쉽게 말해 미국이 딱정벌레를 동독과 폴란드에 퍼뜨렸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선전으로만 보긴 힘든 측면도 있다. 우선 동독에 사는 한 농부인 맥스 트로거(Max Troeger)는 1950년 당시 미국 항공기 두 대가 자신이 경작하는 밭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고 알렸었다. 앞서 언급한 BBC의 기사에서도 인정한 것이지만, 실제로 미국 항공기들은 냉전시기 서베를린으로 가거나 물자를 지원하기 위해 동독 상공을 많이 다녔었다. 즉, 미국 항공기가 동독에 위장침입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기다 1950년 2월 당시 미국 하원의원인 맥클로이(McCloy)의 주도로 동독에 반대하는 정치활동과 선전활동을 조직하기 위해 정치경제계획위원회가 창설되었다. 이 위원회의 목적은 동독의 생산적인 기반을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1949년 색슨 섬유산업과 1952년 솔베이 기업프로젝트에서 그리고 1953년 크라이스 비츠스톡 지역 농업생산에서 생산파괴행위가 있었다.
(폴란드 서적에서 발견한 내용, 미군 항공기가 딱정벌레를 낙하산에 실어 보내는 묘사는 마치 한국전쟁 당시 세균전을 연상시킨다.)
(동독에서 나온 또 다른 반미 선전물, 이 또한 한국전쟁 당시 세균전을 연상시킨다.)
아직 밝혀질 것이 많지만,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과 중국을 대상으로 세균전을 감행한 것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현재까지도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북한을 대상으로 세균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한 사람들의 증언은 미국의 공식입장과는 다른 주장들도 많다. 세균전을 단순히 북한의 선전으로만 볼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2010년 중동 언론 알자지라가 미국 NARA에서 발견한 문서다. 이 문서는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세균전 실험을 명령한 문서”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았을 때, 1950년 당시 미국이 동독과 폴란드에 비슷한 행위를 했다고 의심하는 것은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 글에서 다룬 미국의 동유럽 생물학전은 깊이 연구가 되지 않았다. 만약 사료만 바탕이 된다면 미국의 동독 및 폴란드에서의 생물학전과 한국전쟁에서의 세균전을 비교한 연구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