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받은 책입니다. 이번기회에 소련과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해 배워야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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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이란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적극 반대한다!

최근 미제국주의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중동에 위치한 국가 이란(Iran)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와 존 볼턴(John Bolton)과 같은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설정해놓은 패권에 저항하고 있는 국가 이란을 굴복시키기 위해 경제적인 제제를 가하고 있고, 심지어 군사적인 무력도 사용하고 있다. 비록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군사적인 압력을 통해 이란을 굴복시키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마치 지난번 미제국주의자들이 남미에 있는 국가 베네수엘라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의 부르주아 우익 정권인 문재인 정부는 지난번 베네수엘라 사태때 친미 제국주의자인 후안 과이도에게 지지를 표명했던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엔 미제국주의의 이란 파병에 대한민국의 청해부대를 보내 미제국주의의 이란 때리기에 적극 동참하고자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부르주아 정권이 아제국주의 국가로서 보여준 사태는 비단 이란 사태뿐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대한민국의 박정희 정권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와 경제 발전”이라는 명분하에 미제국주의가 일으킨 베트남 전쟁에 연 5만 명 이상을 파병했었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박정희의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대략 9000명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함으로써, 베트남 민중의 분노를 샀다. 그로부터 40년 뒤인 2003년 대한민국의 노무현 정권은 미제국주의자 부시가 “중동의 민주화 이라크 신무기 위협” 따위의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자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다. 이후에 이라크 파병이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적으로 문제가 되자 한때는 “이라크 파병은 제2의 베트남 전쟁”이라며 극찬했던 한나라당 파쇼 집단들 마져 파병을 비판하던 상황에서도 노무현 정권은 “한미동맹” 따위나 운운하며 군대를 철수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번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던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 정세 유지라는 것에만 매달려 미제국의 또다른 제국주의적 행위인 미국의 이란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50년 전 베트남 전쟁과 15년 전 이라크 전쟁 그리고 현재 미국의 이란 때리기에서 알 수 있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3개다 미제국주의가 일으킨 침략전쟁이자 약소국에게 가하는 제국주의적 억압 및 폭력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미제국은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그 나라의 민중의 불만을 사기만 했다. 베트남과 이라크에서의 역사적 교훈은 잊은 채 현재 문재인 정부가 미제국의 요구에 따라 호르무즈에 청해부대를 보내고자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문재인 정부 또한 외교적으로 아제국주의적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르주아 정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지지자들과 이란 파병 찬성론자들은 “이것이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무식하고 염치가 없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파병하지 않으면 우리가 손해볼 것이다”라며 이란 파병은 불가피하다고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그들에게 필자는 묻고 싶다. 그러면 왜 당신들은 강대국인 일본에 맞서 반일 시위를 하고 일본 불매운동을 하는건가? 당신들이 내리는 그런 결론은 “일본 불매 운동은 한국에게 경제적 손해고 불이익이다”라고 하는 수구세력들이 논리와 하등 다를게 없지 않은가? 이라크 파병에서의 교훈을 벌써 잊은 것인가?

만약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정부의 제국주의적 이란 때리기에 동참한다면 그것은 이라크 전쟁과 같은 재앙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이란 호르무즈 해엽 파병에 적극 반대해야한다!! 그리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환상 또한 버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아제국주의적 정책에 반대하고, 미제국주의의 폭력행위에 저항하자!! 그리고 미제국주의의 정책을 민중의 힘으로 분쇄시키자!!!

원문: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2356094697769523&id=10000107047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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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A.J.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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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이 왜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볼 좋은 기회인것 같습니다. 올해 2019년은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난지 80년이 되는 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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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위기 - 왜 발생했고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조셉 추나라.앤디 브라운.김준효 지음 / 책갈피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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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에 대하여

2019년 초 미제국주의자 도널드 트럼프는 예전부터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던 남미 국가중 하나인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제와 억압을 가해왔다. 2013년 베네수엘라의 위대한 지도자 우고 차베스(Hugo Chavez)가 사망한 뒤, 그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Nikolas Maduro)는 제국주의의 고립과 더불어 사회의 반혁명 세력들로부터 막강한 압렵을 받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경제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에는 미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던 후안 과이도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반동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베네수엘라 민중은 이를 저지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편에 선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무조건적으로 마두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후안 과이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따라서 과이도의 반동 쿠데타는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냉전 시기 미국의 남미 문제 개입은 사실상 남미 민중의 자결권은 커녕 이를 짓밟는 제국주의적 처사이자 침략이었다. 이와같은 미제국주의의 침략과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남미 민중은 반대했고, 그 대표적인 국가가 베네수엘라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베네수엘라에서 정권을 잡은 우고 차베스는 사회의 각계 분야에서 진보적인 정책들을 실행했다. 물론 차베스의 한계라 하자면, 자본주의적 국내 기업들과 베네수엘라에 들어와 있던 외국 기업들의 자본 투기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것이다. 이는 니콜라스 마두로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우익 반동 세력들이 언제든지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사실상의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차베스가 우익 쿠데타로 2000년대 중반에 죽을 뻔했음에도 말이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진보적 개혁 정책 및 사회주의 비전은 그런 한계도 있었지만, 그들이 성취한 업적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차베스 정권은 ‘미시온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판자촌에 사는 어린이와 청년들에게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줬고, 문맹 퇴치 프로그램도 거창하게 실행했다. 기초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쿠바에서 의사를 불러와 환자 1800만명을 치료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즉 차베스는 가난한 인민대중에게 복지혜택을 부여하고자 헌신했다.

오직 자본주의만이 최고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베네수엘라는 당연히 전복되고 없어저야할 국가였다. 따라서 미제국은 베네수엘라에게 극심한 경제적 제제를 가했고, 우익 반동들의 차베스 전복 쿠데타도 지원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인도적 지원‘하겠다는 주장은 말그대로 위선이다. 그리고 그 위선은 제국주의적인 정권전복을 뜻하는 것이다.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가 미국 정부의 지원을 수용하든 거부하든 간에 이를 베네수엘라 개입 사태의 명분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말 미국이 인도적 지원을 생각했다면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적 제제를 해제하면 될일이다.

따라서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미제국이 주장하는 ‘인도적 지원‘ 따위의 위선에 속지 말아야 한다. 책갈피에서 출간한 이 책은 베네수엘라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필자는 이책에서 상당 부분 공감했다. 아무튼 베네수엘라가 만약 반동들에 의해 전복된다면 결과는 최악일 것이다.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투쟁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들은 미제국주의에 맞서 승리할 것이다. Viva La Venez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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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사변(Japanese Invasion of Manchuria)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20분 펑톈 시 외곽 북쪽으로 7.5km 정도 떨어진 류타오후에는 뤼순과 펑톈 그리고 창춘을 연결하는 만철(만주 철도)이 관통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게 없이 만주의 황량한 벌판을 달리는 특급열차가 그 곳을 통과하는 순간 정체불명의 폭발음이 일어났다. 다행히도 열차는 파괴되거나 탈선하지는 않았고 제 갈 길을 달렸다. 사실 철도 주변에는 관동군 소속의 공병들이 숨어 있었다. 폭발 직후 그들은 일본군 특무기관과 일본군 제2대대 본부 부대에 무전기로 “동북군이 만철 철로를 파괴했다”고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좌는 관동군 사령관의 명의를 제멋대로 사칭하여 일본군 제2대대와 제5대대에게 펑톈 교외에 있는 장학량 휘하의 동북군을 일제히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이것이 바로 9.18 사변 즉 만주사변의 시작이었다. 일본군 제2대대와 제5대대에게 공격을 받게된 장학량 휘하늬 동북군은 혼란에 빠졌다. 1931년 9월 19일 오전 8시 30분 일본 관동군은 경성의 조선군 사령부에 전보를 보내어 신속한 병력 증파를 요청했다. 당일 오전 관동군 주력은 펑톈 성 외곽을 포위하였고, 중포를 앞세운 관동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장학량측 동북군은 패주했다.

주요 정부 청사를 비롯해 펑톈 항공국, 병기창, 동대영이 잇따라 일본 관동군에게 함락되면서 20일 새벽까지 펑톈 성 전역이 관동군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1931년 9월 20일 관동군 2개 보병대대와 1개 포병연대가 창춘을 공격하였고, 오전 7시쯤 그 지역을 완벽히 점령하였고, 다음 날에는 지린 성으로 진격하여 전투 없이 그곳을 장악했다. 일본의 관동군은 9.18 사건 후 겨우 2~3일도 안 되는 기간에 남만주 전역을 장악했다. 사실 만주는 일본의 반식민지였다. 자본, 금융, 철도, 산업 등이 일본에게 예속된 상태였고, 군사적으로도 일본 광동군은 만철과 주요 철도 그리고 요충지들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만주사변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규율을 위반한 행위였다. 그러나 이미 힘을 잃은 국제연맹은 일본의 만주사변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국제연맹을 이끄는 열강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계산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서구 열강들은 1929년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경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으로 인한 실업 및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시아에서의 일제 침략보다 더 중요했다. 그들은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기를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제연맹은 일제의 만주침략을 그냥 외면했던 것이다.

1931년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은 결과적으로 일본을 군국주의화 시키고, 전쟁국가로 이끌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무단통치에 대한 대안으로 문화통치를 펼쳤던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조선에서 펼치던 문화통치 정책을 폐기하고, 황국신민화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1932년 2월 5일 하얼빈이 일본 관동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만주 전체가 일본 손아귀에 넘어갔다. 당시 제1차 국공합작이 파기되어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을 치르고 있던 중국은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침략을 상대해야 하게 되었다. 당시 만주사변을 신경쓰지 않았던 국제연맹의 주요 회원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941년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이 자신들의 아시아 패권주의적 관할에 큰 영향을 끼치자 결국 일본 제국주의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렇듯 1931년 일본이 일으킨 만주사변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고, 일본을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팽창으로 나서게 만든 사건이었다. 당시 만주 전역을 아주 손쉽게 점령한 일본은 앞으로 있을 중국과의 전쟁이 얼마나 장기전이 될 줄 예상치 못했고, 그로부터 몇 년 뒤 일본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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