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기점으로 한국에선 이른바 페미니즘(Feminism)이라는 주제가 국가적 혹은 사회적으로 이슈가되었던 것 같다. 2016년에 나온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상당히 많은 인기를 끌었고, 그 이후 미투운동과 더불어 페미니즘이라는 담론이 우리 사회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앞에서 언급한 ‘82년생 김지영2019년 영화화 되어 개봉했었다. 나 또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싫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게 좀 거리감이 생겼었다. 뭐 그래도 몇몇 영화평론가들이 상당히 과학적 분석을 한 영화평들을 내놓다보니 나 또한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늦긴 했지만, 어제 저녁에 이 영화를 혼자서 보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김지영이 살고 있는 사회는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고, 매우 풍요롭다. 적어도 김지영의 삶은 좁지 않은 아파트와 적잖은 급여를 받는 공무원 남편 그리고 그의 가족과 일가친척들도 자신들 나름의 풍요로운 삶은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는 풍부하지만 주인공 김지영은 불편한 진실에 항상 마주치게 된다. 이것은 여자로서 가지게 되는 사회적인차별과 주변에서 느끼게 되는 차별적인 인식이다. 즉 능력이 되더라도 여성이기 때문에 사회에서의 신분상승이 제동이 걸리는 현실과 육아라는 부담 때문에 일을 망설이게 되는 현실 말이다. 일각에서는 남자들 또한 고생하는데 왜 여성이 겪는 것만 강조하냐 혹은 편향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도 있지 모르겠다. 물론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남성들이 겪는 현실에서의 문제도 있지만, 여성들이 겪었던 이러한 사회적인 한계와 제도는 지금까지 등한시 되어온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러한 문제제기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영화상에서 김지영이 겪는 차별은 육아라는 측면에서도 많이 나타났던 것 같다. 육아 휴가를 쓰고자 했던 남편이 결국 김지영의 시어머니 때문에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는 상황은 결국 육아의 문제를 여성에게만 전가시켰던 사회의 문제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문제제기를 했던 문제가 여기서도 겹친다. 즉 러시아 혁명 당시 혁명가들이 주장했던 그런 문제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는 82년생 김지영도 92년생 김지영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김지영의 삶은 절대로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다.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지영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여성 차별 때문일까?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인가? 가부장주의에 찌들어있는 남성들 때문일까? 많은 지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는 젠더의 관점에서 김지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젠더 혹은 페미니즘적인 관점 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즉 한 지배계급으로서 나타난 형태가 그러한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창조하고 재생산해냈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과거 우리의 교육에선 가정에 대해 배울 때 남성은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오고, 여성은 집에서 가정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을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그 예외의 사례에 대해선 알지 못하게 예외의 시선으로 보는 것 같고, 또 사회가 그렇게 조장하는 것 같다. 즉 이런 것이 바로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 김지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김지영의 엄마와 김지영의 남동생이다. 김지영의 엄마는 전형적인 박정희 시대 산업화의 피해자다. 어린시절 공부도 잘해서 교사가 되겠다던 꿈이 있었지만, 그 꿈은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 무너져 내렸다. 왜냐하면 오빠들을 우선적으로 대학에 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 학비를 젊은 시절 김지영의 엄마가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김지영의 엄마는 산업화 시기 가장 많은 핍박과 착취를 받던 여공으로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산업화 시기 교육의 균등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여 그래야만 했던 사람들이 생각이나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펐다. 결국 그 시기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건 돈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시절은 더 심했다.

 

김지영의 동생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과거 혹은 현재의 내모습과 오버랩 되는 측면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할머니나 중년여성들에게 예쁨을 받는 모습이나, 엄마와 친누나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역할이 상당히 내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거기다 운전까지 해서 심부름으로 물건을 갖다 주기까지 하니 최근 들어 운전을 시작한 내 모습과 겹쳤다. 거기다 친누나한테 조금 대드는 장면도 뭔가 나를 보는 것 같아 조금 찔리기 까지 했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김지영의 동생으로부터도 자연스럽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아마도 이것은 나또한 그런 현실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김지영의 남편은 정말이지 걷잡을 부분이 없는 아주 완벽한 남편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서로가 이해하려고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즉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걱정해주고, 보듬는 일말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안타까움을 느끼겠지만, 그런 남성은 이 세상에 많지 않다. 아니 찾기 매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남성 여성을 떠나서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감정과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엔 그러지 못한 가정이 많았다면 이제는 바꿔야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적잖게 슬펐다. 비단 김지영 뿐만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불편하고 편협한 틀 속에서 사회를 살아가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는 것에 따라서 누구는 페미니즘에 입각한 관점으로 혹은 다른 관점으로도 볼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 그리고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측면에서 많이 다가왔다. 결국 김지영이라는 인물도 자본주의 사회의 피해자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 자체를 내가 다 동의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나 또한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특성 및 한계를 못 벗어난 것일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떤 부분에선 조금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큰틀에서 보았을 때 영화상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무튼 사회를 살아가며 고통을 받는 한 여성의 삶도, 남편의 삶도, 남편, 아내 그리고 남녀 회사원의 삶이 슬펐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오랜만에 정말 의미 있는 영화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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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26 0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 제가 님이 쓰신 글에 대해서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하에 발생되는 계급에 대한 저항보다는, 한 사회에서 양산된 자본이 어떤 식으로 분배가 이루어지는 지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을 발생시키는 노동이나 서비스 형태가 남녀간의 차이가 있고, 그리고 그것들의가치를 부여하고 댓가로 수여받는 자본의 분배가 젠더간의 차이가 발생되어 진다는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의 크기에 따른 지배계급을 형성하는 자본주의의 자체의 문제라고 지적하기 보다는 자본의 형성과 분배과정중에 발생되는 불균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NamGiKim 2020-11-26 13:47   좋아요 1 | URL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죠. 결론적으로 문제는 분배의 문제인데, 분배의 문제에서 생기는 젠더의 갈등이니까요. 근데 그것은 남녀평등적이지 못하게 조성해온 사회의 문제도 크겠지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