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국의 폭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소위 신대륙에 도착하여 저질렀던 침략의 역사부터 2020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결까지 총 27개의 주제로 나누어 미국의 제국주의 역사를 정리해보았다. 페이스북과 더불어 SNS에 ‘미제국주의 역사’라는 제목을 달고 몇 개월간 글을 올리면서 필자 또한 미국의 제국주의 역사를 보다 자세하게 공부할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 시작은 페친들에게 미국의 실체를 낱낱이 폭로하기 위해 간단히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집필할 거리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 올리게 된 미제국주의 역사는 단순히 미국의 팽창 혹은 침략의 역사만을 다루지 않았다. 주로 미국이 일으키거나 개입한 전쟁들을 위주로 글을 쓰긴 했지만 미국사회에서 억압받고 멸시받던 흑인들의 역사와 노동자들을 착취하던 미국 지배계급의 역사도 집필하고자 했다. 그래서 시리즈 중 일부는 흑인노예의 역사와 백인들의 인종테러 그리고 1950,60년대 흑인인권투쟁도 다뤘다.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의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위 자유주의 체제를 현재 유럽보다 더 많이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민낯을 너무나도 모른다. 19세기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위 기업가 계층으로 성장한 지배계급들은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인간 이하의 노동을 강요했고, 낮은 임금을 부여했다. 십일조를 안 기업인이라며 기독교인들에게 극찬을 받는 석유 재벌 록펠러는 1914년 콜로라도주에 있는 러들로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가 파업을 하자 개틀링 기관총으로 무장한 주방위군을 동원하여 이를 진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세기와 20세기 미국의 기업가들은 노동자에게 인간이하의 노동을 강요했고, 1889년에만 보더라도 최소 22000명 이상의 철도노동자가 죽고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미국에선 만약 노동자가 산업재해에서 팔이 잘리거나 다리가 잘려 가난을 면치 못하더라도 그것은 국가의 책임이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여겨졌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통령이 된 하버트 후버 또한 가난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받들었다.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뉴딜정책을 하기 이전까지 미국은 국가가 시장경제에 개입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역사에선 흑인의 역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17세기 초 북미 대륙에 소위 영국의 식민지가 건설된 이래로 버지니아주를 포함한 미국 남부에는 흑인 노예제도가 자리 잡았다. 그들이 북미 대륙에 오게 된 이유는 유럽에서 오던 계약 하인제를 대체하기 위한 노동력 확보였지만, 식민지 미국인들의 이윤 창출을 위한 목적으로 인하여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흑인들은 백인들의 노예가 됐다. 이런 노예제도는 독립전쟁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를 꽃피웠다는 건국의 아버지들 또한 그들의 처지를 전혀 생각지 않았기에 19세기까지 고스란히 유지됐으며, 남북전쟁 이전까지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노예제도에서 벋어나지 못했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흑인들에 대한 멸시는 계속됐고, KKK와 같은 인종주의 단체들은 20세기까지 린치라 하여 흑인들을 목메달아 죽이거나 십자가에 산채로 태워 죽이는 범죄를 저질렀다. 흑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차별받았고, 미소냉전이 한참이던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도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미국의 인종차별과 흑인 멸시는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역사는 침략의 역사다. 1803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부터 루이지애나주를 선물받은 미국은 영토 팽창에 나섰다. 1840년대에는 멕시코를 무력으로 침공하여 현재의 캘리포니아, 텍사스, 애리조나, 콜로라도 등의 광활한 영토를 강탈했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정복 전쟁에 나설 때 미국 또한 영토 팽창에 나섰다. 미국은 괌과 하와이등을 합병했고, 미서전쟁 이후 쿠바를 사실상 식민지 지배를 했으며, 필리핀을 합병한 뒤 대략 20만 이상의 필리핀인을 학살했다. 1900년 중국에서 일어난 의화단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미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등과 더불어 베이징에 간섭군대를 파병했고, 청나라의 의화단 운동은 잔인하게 진압됐다. 1차 세계대전이 있던 1910년대 미국은 니카라과를 침략했고, 도미니카 문제에 개입하여 8년 동안 그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전역에서 적백내전이 일어나자 미국은 반혁명 세력인 백군을 돕기 위해 12000명의 미군을 블라디보스토크와 아르한겔스크에 상륙시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미국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타국 문제에 개입하고 간섭했으며 때로는 침략을 자행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한국은 미군정이라는 이름하에 3년 동안이나 지배를 받았다. 미국은 해방 이후 전국적으로 건국사업과 치안 유지를 해나가던 여운형의 조직을 불법 단체로 간주하여 강제로 해산시켰고, 한반도 이남에 자신들의 패권 유지를 위해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게 결탁했던 친일 세력들을 그대로 등용했다. 친일세력들이 세력화하면서 한반도 이남에선 수많은 민간인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학살당했다. 친미세력들의 이러한 학살은 1950년 한국전쟁에서 최소 30만 이상을 학살한 국민 보도연맹사건으로 이어졌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은 남북한 할 거 없이 무차별 폭격을 퍼부어 최소 100만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그 외에도 미국은 1947년 그리스 내전에 개입하여 그리스 좌익의 씨를 말린 뒤 우익독재 정부를 수립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에서 시작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에서 미국은 반민중적인 장제스 정권에게 1949년까지 20억 달러를 원조했으며, 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한때 동맹이었던 호치민을 버리고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에게 전쟁 비용 80%를 제공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의 쿠바혁명이 성공하여 친미국가 쿠바에서 사회주의에 기초한 국가가 탄생하려 하자 미국은 쿠바를 경제적으로 봉쇄했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때는 핵전쟁을 운운하며 쿠바와 소련에게 막대한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제네바 협정에 따라 남북 베트남에서 통일을 위한 총선을 치러야 했지만, 베트남 민중 80%가 호치민을 지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 미국은 남베트남에 응오딘지엠을 내세워 친미괴뢰정권을 만든 뒤, 총선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정통성 없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남베트남에 군사고문단의 숫자를 점진적으로 증가시켰고, 여러 작전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전개하면서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남베트남이 무너질 기미가 보이자 1964년에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을 침략했다. 무차별적인 네이팜 폭탄 및 백린탄 투하와 고엽제 살포를 통해 미국은 수백만의 베트남 민간인에게 테러행위를 저질렀으며, 수백만의 베트남인을 학살했다.

 

그 외에도 미국은 1960년대와 1980년대에 중남미 지역의 국가를 침략하고 친미괴뢰정권을 만들면서 무수히 많은 폭력을 저질렀다. 특히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미국 CIA가 진행한 콘도르 작전으로 5만 명에서 6만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됐으며,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혀 인간 이하의 고문에 시달렸다. 심지어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에 잡힌 인질들을 통해서 이란에게 무기를 판매했고, 그 무기판매대금을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콘트라 우익 반군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자금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미국은 1776년 워싱턴과 같은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에 의해 탄생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무수히 많은 침략전쟁과 내정간섭을 일삼아왔고, 자신들에 대항하는 세력들에겐 경제제제라는 가차없는 야만 행위를 하여 그 나라 국민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걸프전쟁 이후 최소 100만에서 150만 명이 아사했던 이라크가 그러했고,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던 북한 또한 그러했으며, 21세기 사회주의 사회를 꿈꾸던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가 그러하다. 필자가 미제국주의사를 SNS에 연재하기 전에는 미국의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후안 과이도라는 괴뢰를 내세워 반동 쿠데타를 획책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연재하는 와중인 20201월에는 이란의 장군인 솔레이마니를 암살하여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 관계를 극대화하는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 사건으로 미국과 이란은 전면전에 돌입할 뻔했었다. 따라서 현재도 미국의 전쟁 도발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이란 사태를 보며 필자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찬성하고, 미국의 군사적 도발 행위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극단적으로 찬양하는 친미극우주의자들이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실 필자가 이 글을 연재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한국인이 대체로 친미성향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제국주의 역사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 민주주의 혹은 자유주의라는 이름하에 미국이 보여준 폭력성에 대해 너무 간과하고 있다. 비록 필자의 능력이 못미쳐 많은 부분이 부족했지만, ‘미제국주의 역사를 통해 많은 사람이 보다 미국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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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2020-03-23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

NamGiKim 2020-03-23 21: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