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욤비 토나.박진숙 지음 / 이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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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과거에 보트 피플들이 우리 나라에 왔다가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간혹 신문으로 접해보기는 했지만 욤비씨처럼 난민으로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게다가 난민이라는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욤비씨와 같이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두산백과 사전에서 난민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

  난민의 일반적 의미는 생활이 곤궁한 국민,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곤궁에 빠진 이재민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로 인종적, 사상적 원인과 관련된 정치적 이유에 의한 집단적 망명자를 난민이라 일컫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난민이 발생한 사례를 보면 러시아 혁명 기간에 약 150만의 난민이 러시아를 떠났고, 1934년 독일에 나치정권이 수립되자 반체제 인사들과 유대인을 비롯한 나치의 피해자 약 250만의 난민이 독일을 등지고 각지로 흩어졌다. 또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1947년 인도의 분열과 팔레스타인 분열, 1948년의 팔레스타인 전쟁, 1975년의 캄보디아와 라오스 및 베트남 등지에서 "보트 피플"로 유출된 인도차이나 난민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998년부터 시작된 코소보에 대한 세르비아군의 인종청소 때에는 78만에 달하는 주민이 학살을 피해 국외로 탈출하였다.

  이러한 난민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출과 원조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혁명으로 인해 난민이 발생하자 국제연맹은 노르웨이의 탐험가 난센을 난민구제판무관으로 임명하여 외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신분증명서(난센여권)를 발급하였고, 1939년에는 국제연맹
에 독일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를 두어 난민보호에 나섰다. 또 1946년 유엔은 산하에 국제난민기구를 설치하여 제2차 세계대전 때 피해를 당한 난민, 정치적 추방자의 보호와 구제를 행하여 난민을 자유의사에 따라 원하는 나라에 정주시키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그 역할이 끝나자 1951년에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를 설치하여 난민보호를 위한 유엔의 보조기관으로 삼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난민 문제를 그 역사가 꽤나 오래 되었다. 물론 위에 기록된 난민은 현대적인 의미의 난민일 뿐이지, 역사상 난민은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거의 무시되어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외국에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에서 난민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 한국에 욤비씨가 입국했다는 것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더군다나 그가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더 안타깝다. 그가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애를 썼던 이유가, 직장의 문제와 자녀 교육의 문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마음이 더 짠하다. 


  도대체 왜 한국에서는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이렇게도 지난한 일일까? 특별히 정치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그들에게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까다롭게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이유는 난민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게 마음이 더 아프다. 난민에 대해서 무관심한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보는 견해로는 크게 2가지가 아닐까 한다.


  첫번째는 글로벌을 외치지만 우리의 의식 수준이 그 정도로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국어를 잘 배우기 전에 우리는 먼저 영어를 배우고, 일본어를 배우고, 중국어를 배우려고 애를 쓴다.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면 아이에게 수술까지 시키는 나라가 우리 나라다. 오렌지를 어린쥐로 발음해야 맞다고 하는 나라가 우리 나라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 수준은 아직 글로벌하지 않다. 우리의 사고 방식은 아직도 60년대 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어떻게 잘 먹고 살 것인가, 어떻게 수출해서 4만불 시대를 이룰 것인가는 목이 터져라 외치지만, 국제 사회 속에서 한국이 감당해야할 몫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정치인들은 오로지 경제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지, 국제 사회와의 공조에는 무관심하다. 온실가스 줄이기 위한 협약을 하면서 이산화가스를 입에 담는 대통령이 있던 나라가 우리 나라다. 그러다보니 아직 외국에서 원조를 받던 그 시절의 수준에서 한발도 못나가고 있다. 그러니 약자를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리가 없다. 의무와 권리는 함께 가는 것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배우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니, 약자에 대한 책임, 더군다나 난민같은 최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을리가 없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과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통역관을 넉넉하게 배치하지 못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둘째로 단일민족이라는 환상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아왔다. 시험문제의 답에 단일민족이라고 자랑스럽게 적던 것이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니,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그들이 오늘날 이 사회의 허리라는 것이 비극이겠지)이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로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사고방식 속에서 난민은 우리가 보호해야할 약자가 아니라 단일함을 깨뜨리는 이질적인 존재이다. 가능하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그런 껄끄러운 존재, 그것이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역설적이게도 욤비씨의 자녀들은 자신들을 한국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 콩고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싶은 욤비씨에게 꽤나 씁쓸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난민에 대해서 무관심한 한국에서 욤비씨의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법이 아니겠는가?


  이 두가지는 결국 폐쇄성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사고의 폐쇄성, 구성원의 폐쇄성! 그러니 편가르기와 패거리 의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 아직은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어렵지만 1~2년 정도 지나서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혀주면서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기꺼이 감당하고 돌아보아야할 몫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이것이 난민들에게 시혜와 같은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우리의 자녀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난민! 신문에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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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02-0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와로 국내에도 많은 난민이 들어오는데 난민지위를 받는 분은 극소수라고 하시더군요.

saint236 2018-02-03 11:09   좋아요 0 | URL
마음이 열리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두려워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해서 사각지대에 놓이신 분들의 마음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해보게 되었습니다.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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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같이 근무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소설책을 많이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느냐 물었더니 아직 안 읽었다고 한다. 책 빌려 줄테니까 한번 읽어보라고 읽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더니, 내용에 대해서 묻는다. 여러가지 평가가 많이 있는데 "과장되었다"라는 평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묻는거란다. 책 내용을 찬찬히 되새겨 보았다.

 

  "과장된 표현이나 내용이 어디 있었던가?"

 

  과장된 내용이라기보다는 아쉬웠던 내용이 있었다. 여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삶의 이야기들을 풀어 놓으면서 빙의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이다. 빙의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갈 때 멍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이야기를 빙의라는 말로 풀어갈 수밖에 없었을까? 아무리 소설은 작가 마음이라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그 아쉬움 때문에 저자가 이 모든 것들을 소설 안에서 풀어 나가기에는 내공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쓸데 없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었다.

 

  이 책의 내용이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 모든 내용이 단 한 사람에게 모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면 과장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내용은 김지영이라는 한 사람을 통하여 빙의라는 아주 특수한 설정을 가지고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김지영의 입을 빌려서 하고 있을 뿐이지 김지영이 이 모든 일을 겪은 것은 아니다. 설령 이 모든 일이 한 사람이 겪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가지고 성평등주의다, 기득권 층이다, 여혐이다, 남성 우월주의다 등등 이야기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지점들이 있다.

 

  첫번째는 저자가 빙의라는 특별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위에서 밝혔듯이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아쉬웠는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여성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나는 점을 감안한다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지 않고서는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없겠구나 생각한다. 주인공 김지영은 빙의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는 거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 이 설정 자체가 미치지 않고서는 자기의 이야기를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여성들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집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형제들과 어머니(시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조심스러워 한다. 혹시라도 내가 오해하고 받아들일까봐, 혹은 내 동생이나 어머니가 오해하실까봐 조심스러워 한다. 그것이 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한다. 우리 집은 이 부분이 상당히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이 은연중에 이야기해주는 것은 여인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미친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점이 아니겠는가?

 

  두번째는 가장 마지막 부분이다. 김지영을 상담하고 돌려보낸 의사가 자기 아내의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아내의 삶에 미안해 한다. 아이들 수학 문제 외에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아내의 말을 곱씹어 보면서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다. 그런데 출산으로 그만두는 간호사를 보면서 다음 간호사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으로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리다. 이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성적으로는 성평등을 이야기하지만, 그 일이 내 일이 아닐 때에는 마치 대단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받아들인다.

 

  내가 아는 분 중에 남자 분이 육아 휴직을 1년간 했다. 당연히 주어진 권리이다. 그런데 그분 이후로 그 직정에서 남자 육아휴직은 신청하지 않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하여 펑크가 났다는 것이다. 관리자야 그렇지만 그 권리를 같이 누릴 수 있는 직장 동료들도 마치 그 분이 큰 잘못을 한 것처럼 생각하더란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머릿 속에만 머물러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김지영이 나라면, 혹은 내 아내라면, 내 딸이라면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있을까?

 

  마지막은 이 책을 과연 소설로 분류해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주인공이 김지영이라는 82년생의 가공인물이어서 그렇지 내용 자체는 사실적이다. 나는 이 책을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르타주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이 책의 내용은 사실적이다. 심지어는 각주처럼 그 내용에 대한 기사나 출처까지 달아 놓은 부분을 보면서 이게 소설이야라는 생각도 했었다.

 

  과장이라는 말, 성갈등을 증폭시킨다는 말! 내가 보기에는 글쟁이들의, 혹은 남성들의 알량한 자존심이 아닐까? 혹은 그것을 문제로 여기지 못하고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 사회의 구성원들, 그리고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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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1-3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목조목 넘 잘 짚어주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saint236 2018-01-31 17:01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친구신청했습니다...서재들 둘러보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책꽂이를 발견하고 반가웠습니다.

[그장소] 2018-01-31 20:03   좋아요 0 | URL
저도 넘 반갑습니다~^^ 분명한 자기 목소리가 있는 리뷰구나.. 싶어 더 반가웠어요! 자주 뵈어요. 저두 친구신청 받고 콜!! ^^

북극곰 2018-01-31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전혀 과장이 아닌데...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피하는 건 아닐지. 이 책 읽으면서 저도 어릴 적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되게 당황스러우면서도 분노스러웠어요.

몇 년 전에 1년 육아휴직을 했었는데,‘작년에 육아휴직을 낸 사람은 승진시키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기 돌았었지요. (승진 못했어요. ㅠ.ㅠ) ^^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회사인데도 그랬어요. 육아 휴직도 쓰는 사람이 많을 수록 사회도 변할 수 밖에 없겠지요. 서지현 검사 소식들을 접하면서 정말 편치 않은 요즘입니다.

[그장소] 2018-01-31 20:05   좋아요 0 | URL
선례를 아예 나쁘게 만들어서 내내 쓸 수없게 누군가 악의적으로 애쓰는게 아닐까 싶었어요. 듬성듬성한 징검다리에 돌하나 더 놔주지는 못하면서 있는 디딤돌마저 치우려는 사람들을 .. 생각하니 참..마음이 그렇네요..에휴~~

saint236 2018-02-01 10:53   좋아요 1 | URL
법과 현실의 간극이 심하지요. 이런 것을 무시하면서 법으로 보장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하지요
 
이슬람 전사의 탄생 - 분쟁으로 보는 중동 현대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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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

  우리에겐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다. 생물교회 사건과 김선일씨 사건으로 관계를 맺은 중동의 단체들은 우리에게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더군다나 미국의 우방 국가인 우리에게 있어서 이슬람 단체의 테러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존재입니다.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 기독교, 무교 등 여러 종교에 열려 있는 곳이 우리 나라이긴 하지만 무슬림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슬람권에서는 우리 나라에 전략적인 포교 정책을 벌이고 있다고 기독교계에서 들고 일어난다. 중동과 관곌르 맺을 일이 우리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중동이란 그저 과거에 일을 하러 갔던 곳, 그래서 모 드라마에서 쿠웨이트 박이라는 이름으로 최주봉씨가 나온 그런 나라일 뿐이다. 가끔 리더십을 강의하는 사람들이 두바이의 지도자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정도이다. 그저 운이 좋아 기름이 나는 곳에 자리 잡은 축복받은 대상 정도로만 여겨지는 것이 중동에 대한 전부이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 무장 세력에 의하여 테러가 일어날 때마다 막연한 두려움을 품을 뿐이다. 그들이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들이 왜 그렇게 과격한 무장 단체로 성장하게 되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곳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왜 이슬람교도들이 무장 활동과 테러라는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지를 가르쳐 주는 소중한 자료가 이 책이다.


  오늘날 이슬람의 무장 단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서구의 식민지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들이 과격한 무장단체로 성장하게 된 것은 그들이 특별히 공격성을 가지고 태어나서가 아니라 미소의 냉전이라는 역사적인 사건, 더 나아가서는 서구의 제국주의라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모든 무슬림 과격 단체의 요람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탈레반에 의한, 알 카에다에 의한 911테러와 이에 대한 미국의 보복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인 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를 막기 위한 미국의 공작정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오늘날 IS라는 역사적인 사건의 맥락을 따라가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들이 왜 미국에 대해서 그렇게 적대적인 입장에 있는지, 그들이 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지도 불사하는지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해묵은 종파 갈등, 이를 부채질 하며 중동을 분할하여 통치하려던 서구의 셈법, 그리고 그때 뿌려둔 씨앗들이 오늘날 IS라는 결과물로 도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주하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말로 할 수 없는 씁쓸함을 준다. 왜 이스람 무장 단체들은 AK-47이라는 소련제 소총을 들고 나타나는지,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는지, 그리고 말도 안되는 샤리아라는 율법으로 통치하는지에 대해 소상하게 밝혀 준다. 더불어 만약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만약 그 때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조금만 현명한 생각을 하였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번더 해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사건이 오버랩된다. 오늘날 트럼프에 의한 북한 공격에 대한 메시지 말이다. 북한에 대한 강경 노선은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과격한 정책으로 대응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된다. 이슬람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북한이라는 이름을 집어 넣는다면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약간의 차이는 나겠지만,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레이건과 부시에 의하여 이슬람 전사가 탄생했다면 부시와 트럼프에 의해서 북한 전사가 탄생한다는 말을 한다면 지나친 논리적인 비약일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꾸 만약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며, 이와 비슷한 매커니즘을 통하여 북한이 강격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의 분쟁과 무장 단체의 탄생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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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1 -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춘추전국이야기 11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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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길고 길었던 춘추전국이야기가 끝났다. 지난 7년 동안 공원국의 책을 기다리며 지난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춘추전국 이야기가 한때 트랜드였는지, 1권이 나오던 그 시절에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책들이 꽤 많이 출간되었었다. 아마도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와 더불어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읽혔던 책이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였을 것이다. 그런데 12권으로 기획했다던 제자백가 시리즈는 2011년 2권 이후로 감감무소식이다. 여러가지로 많이 바빴다는 핑계를 대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일을 통하여 강신주는 진득하니 앉아서 무엇인가를 쓰는 학자 타입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 후에 여러가지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이 팟캐스트에 나와서 "야불놀이야(야부리라는 단어를 쓸 수 없어서 순화하였다.)"를 했던 것들을 엮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학자로서의 그의 저서로 취급하지 않는다. 강신주와는 달리 공원국은 매년 꾸준하게 책을 냈고, 7년 동안 11권의 책으로 끝을 맺었다. 꾸준하게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저자의 말에서 공원국은 의도적으로 춘추전국이야기의 처음을 관중으로, 마지막을 유방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약 500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관중이 춘추전국시대의 초기 사람이며, 유방이 춘추전국시대 이후 초한쟁패의 승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공원국에 따르면 둘 모두 당시 백성의 삶에 중요성을 두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애쓰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11권의 부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초한쟁패라는 말에서 영웅이란 유방과 항우를 말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유방과 항우가 모두 꾸었던 꿈이 무엇인가? 천하제패가 아니던가? 모두 같은 꿈을 꾸었지만, 서로 다른 진영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엇갈린다는 단어 속에서 어느 한 사람은 천하를 차지하고 다른 한 사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는 단순한 결과만을 도출해 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11권이라는 긴 분량을 통하여 공원국이 주장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의 엇갈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신념의 불일치에 기반한다. 국어 사전에서 "엇갈리다"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이나 주장따위가 일치하지 않다."라는 의미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의미에 기반하여 둘을 비교해 본다. 무엇이 일치하지 않았는가?

 

  우선 국가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지 않았다. 항우는 진 이전의 봉건 체제로, 유방은 진 이후의 군현제로 국가 체제를 설계하였다. 물론 둘다 있는 그대로 따라간 것이 아니라 거기에 여러가지 제도들을 더하여 개량을 하긴 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항우와 유방의 사고 방식은 과거로의 회귀와 미래로의 나아감만큼이나 달랐다.

 

  그러나 항우와 유방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다. 항우는 끊임없이 자기 주변에 있는 이들을 의심하고 깎아 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반면 유방은 최대한 사람들을 얻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항우는 죄를 지으면 가차없이 처단하고, 자기에게 반항하면 수십만명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매장해 버리는 위인이었다. 반면 유방은 죄를 지었어도 자기에에 필요가 있다면 용서한다. 종종 실제로 그렇게 지키지 못하더라도 그렇지 않은척 할 수 있는 위선이 유방에게 있었기에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이러한 유방의 태도는 천하를 차지하고도 변함이 없어서 법률이 있지만, 필요를 위해서라면 법을 어기면서라도 일을 진행했고, 그 결과 한은 사람을 얻었고, 400년의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잃는 자와 사람을 얻는 자, 이것이 항우와 유방의 엇갈린 삶이요, 그들의 미래가 엇갈린 결정적인 이유이리라. 그리고 공원국이 말한 진의 솔직함보다 한의 위선이 더 사랑스럽다는 말의 의미이리라.

 

  사람을 얻는자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 오늘날 정치인들이 기억해야할 말이다. 한국의 보수가 왜 몰락하고 있는가? 그들은 사람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이익과 권력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익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항우처럼 수십만의 생명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고영주 전 MBC 이사장 같은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다 빨갱이고, 자기만이 애국자라는 논지의 말을 그리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진보는 어떤가? 마찬가지다. 생각의 진보는 조금도 없는데, 분열의 진보는 어마어마하다. 생각이 다채롭다는 의미의 분열이면 좋겠지만, 선을 긋고 나와 다르다, 그러니 너는 꼴통 보수다라고 선언하며, 청산의 대상이 적폐로 공격하는 것이 환상적이다. 그러니 이쪽도 사람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다스리고 싶다면, 정권을 창출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사람을 얻기 위해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함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한줌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서 젊은이들을 갈아넣는 세상이 아니라, 사랑이 소중함을 깨닫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실로 할 수 없다면 위선이라도 좋다. 사람을 얻는 자, 세상을 얻게 된다. 11권의 긴 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묵직한 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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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찾기 열한번째
춘추전국이야기 11

방법 활동 => 방범 활동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를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오타가 이렇게 많은 것은 아쉽다. 아마 편집 기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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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건 2020-05-09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읽다가 오타가 너무많아서 너무너무많아서 의심하다가 진나라 두개를 잘못적을 정도니... 찐나라와 친 나라를 구분못하고 찐 문공의 진나라가 나중에 진시황의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라고 하질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