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1
테네=>아테네
이걸 오타내는 것은 조금 당황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한복음 뒷조사 - 한국교회에 던져진 엄중한 질문에 요한복음이 답하다 복음서 뒷조사
김민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가르쳐 준다.


  첫번째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증언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쫓겨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축출된다는 것은 이들에게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하는 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택한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펜을 들어 그들의 선택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구주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7개의 선언을 통하여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것이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른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가르침을 우리는 오늘날 어덯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메게만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요한복음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힘과 용기를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위로를 던져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시대이다. 내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 내가 그리스도임을 나타낸다는 것은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고리타분하다는 것 같은 인신 공격에서부터, 교회가 썩었다는 합리적인 비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감당하고 손해를 보아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예전에 농담처럼 그런 이야기를 했다. 성경에 말한대로 산다는 것은 망하기로 작정한 것과 같다. 맞는 말이다.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고 세상에서 바보 취급 받기 딱 좋다. 그렇다고 명색이 그리스도인인데 약삭빠르게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맘모니즘, 종교다원주의, 유사 종교와 같은 여려가지 복잡한 가치나들이 혼재하고 이로 인하여 우리가 택한 길이 정말 옳은 길인가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요한복음의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 길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두번째는 우리가 세상에 파송받은 제자라는 것이다. 제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딛고 살아간다. 보수적인 교회 혹은 진보적인 교회는 우리에게 양단간에 결정하라고 한다. 세상인지, 아니면 교회인지. 그런데 이러한 강요는 잘못된 것이요 부당한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세상으로 파송된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다. 우리의 직장이고, 가정이고, 삶의 자리이다. 이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건강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이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교회 속에서 성경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던지는 이들이 실상은 세상 속에서 전혀 구별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너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그 사람들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묵직한 물음이다. 문득 이 책을 보면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건이 생각났다. 강남의 모 교회에서 담임자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출교조치를 하고 교회건물 무단 점거로 고발한 사건 말이다. 왜 이리 묘한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인지.


  세상 속에서 적절한 균형과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삶에서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거하지도 못한다. 파송받은 사람이라면 파송한 이를 위해서 온전하게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우리는 보낸 이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이 기승전연애라는 패턴으로 끝난 것이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요한복음에 대해서 묵직한 깨달음을 던져주는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꽤 재미 있어서 한번 잡으면 끝까지 단숨에 읽어 내릴 수 있는 가독성과 재미, 그 사이사이에 녹여 놓은 신학적인 고민과 신앙적인 물음들이 꽤나 유익했다. 다만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요한복음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깊이는 그리고 신학적인 논란들은 한권의 책으로 끝내기에는 꽤나 방대하기 때때문입니다. 저자라든지 기록 장소라든지 여러가지 신학적인 배경에 대해서 저자가 택한 학설을 중심으로 끌어가고 있음을 알고 읽는다면 꽤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멀리가는 향기 정채봉 전집, 생각하는 동화 2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남자는 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가 남녀 차별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안다는 말은 이 문구가 씌여있는 곳이 남자 화장실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여자 화장실에도 씌여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본 일이 없으니 알 방법은 없다. 그 글을 볼 때마다 생각을 해본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인가? 내가 머문 자리는 어던 모습일까?

 

  종이에 무엇을 쌌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종이의 냄새를 맡아보면 안다는 불경의 구절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불경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안다. "너는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 또한 너무 유명하기에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안다. 그런데 알기만 한다. 그 구절 앞에서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지는 않는다.

 

  어느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어떤 향기를 풍기고 있는가? 내가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어떤 냄새가 날까? 나의 말과 행동 속에서는 악취가 날까 아니면 향기가 날까? 멀리가는 것은 향기만이 아니다. 악취도 멀리간다. 그런데 멀리가는 향기라는 말을 쓴 것은 마땅히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속에서 향기가 나야한다는 매우 계몽적인 교훈이리라.

 

  사람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고 하는데 나는 아내에게, 가족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그리고 알라디너들에게 어떤 향기를 풍기고 있을까? 문득 지난 알리딘의 생활들을 돌아본다. 많은 사람들이 왔었고, 많은 사람들이 갔다. 초창기부터 알고 지냈던 분들 가운데에는 여러가지 안좋은 이유로 알라딘 생활을 접으신 분들도 있고, 오랫만에 다시 돌아오신 분들도 있고, 꾸준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의 글을 오랫만에 읽어보다 보면, 그리고 요즘은 북플에서 나의 지난 독서 기록을 보여주는데 그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자랑스럽고, 때로는 무시하고 싶을 때도 있다. 여기에 끄적거리고 있는 나는 10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나는 과연 이 세상을 살다가 떠날 때 무슨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내 삶에 대해서 겸허해지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인가부터 신문을 보면서 기사를 보고 신문사를 추측해 보거나, 신문사를 보고 기사의 내용을 추측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완전히 드러맞지는 않지만 70%의 비율로 맞추기 시작했다. 특별히 조중동은 거의 90%까지 맞추기 시작했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신문의 곳곳에 나오는 특정 단어들과 논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북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다룬다고 해보자. 대체로 조중동에서는 남북관계=안보불안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쓴다. 반면에 한경오는 남북관계=평화시대라는 내용의 기사를 쓴다. 같은 사건이라고 할지라도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그 글을 쓰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 어느 쪽의 기사를 택하든지 계속 그쪽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내 생각이 그들의 사고 속에 갇혀 버리게 된다. 조중동을 선호하시는 나이드신 어른들은 남북관계를 말하면서 안보불안, 남침의 위협, 핵전쟁을 이야기하신다.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이 분들이 남북통일을 하시자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맞는지 의심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나도 어느새 한경오의 프레임에 갇혀버렸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예전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토론회를 본적이 있다. 정동영 당시 후보를 보면서 도대체 저 양반은 왜 저러는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도대체 인물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냐 아니면 선거 참모들이 무능한 것이냐 안타까워 했었다. 자꾸 이명박 후보의 경제 논리를 따라간다. 그럴수록 돋보이는 것은 이명박 후보의 경제 논리 뿐이다. 할 이야기가 그것만은 아닐텐데 그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한다. 경국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만약 당시 선거 참모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조금은 나아졌을까? 아니다. 그 사람들도 경제 논리를 우선시 했으니 나아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꽤 선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남북통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온갖 프레임이 난무하고 있다. 누가 먼저 논쟁의 주제를 선점하느냐에 따라서 우위가 결정된다. 그렇게 본다면 정치력이란 끊임없이 논쟁을 생산하고 자기에게 맞는 프레임을 가져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약간 불안한 구석이 있다. 보수에서 경제 이야기를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진보에서 슬슬 따라간다. 최저임금=경제위기라는 프레임을 떠들어 대는데 진보에서 국민들에게 어필할만한 이야기를 꺼내놓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딴지걸기를 하고 있다고 반박하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최저임금은 위험하다는 경고밖에 주지 못한다.

 

  진보 정치를 꿈꾼다면 보다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프레임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당에 이러한 태도를 기대할 수 없어서 정의당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그 기대는 헛된 기대가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마음이 더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 두었던 책을 읽은 만족감(4년 동안 책을 읽었으니....)과 더불어 암울한 정치 무능에 답답한 마음을 괜시리 끄적거려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독의 힘
원재훈 지음 / 홍익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주변에 이제 막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이제 막 아빠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사람들에게 특징이 있는데 가정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가정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큰 문제가 된다. 목숨을 건다는 것의 의미가 약간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들을 가정과 함께 보낸다. 직장에서 끝나자마자 집에 들어가고,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너무 피곤하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이야기는 "너만의 시간을 가져라."이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아직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아이들이 어릴 때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어디든지 아내와 함께 가고, 어디든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느날부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힘겨워 지고, 내가 할 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자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카페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해야할 일이 있거나 시간이 있으면 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가페에 앉아서 혼자 책도 읽고, 알라딘에 끄적거리기도 했다. 처음에 서운해 하던 아내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이 시간이 내겐 무척 소중하다.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좋다. 그냥 나혼자 이런 저런 생각해 보고, 아무도 나를 몰라보는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게임도 하고, 때로는 웹서핑도 하고, 때로는 책도 보고, 때로는 멍 때리기도 하고, 때로는 잠을 자기도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시간에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 지친 마음을 추스리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화난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빈도 수도 줄어든다. 지금도 애들이 방학이라 집에 있는데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고 집을 나왔다. 병원에 들렸다가 카페에 앉아서 글도 쓰고, 책도 본다. 이렇게 리프레시를 하고 저녁에는 애들에게 유투브 영상을 찍어 주기로 했다.

 

  고독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이것이다. 개인만의 시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할 일만 하는 것,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도 좋다. 그곳이 대단한 곳이 아니라도 좋다. 자신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 곳,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곳, 내가 혼자서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고독의 장소이고, 그 시간이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도 방학이 짧은 것이 아내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살짝 옆으로 미뤄 놓는다. 아내에게도 아내만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