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춘추전국이야기 11 -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ㅣ 춘추전국이야기 11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길고 길었던 춘추전국이야기가 끝났다. 지난 7년 동안 공원국의 책을 기다리며 지난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춘추전국 이야기가 한때 트랜드였는지, 1권이 나오던 그 시절에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책들이 꽤 많이 출간되었었다. 아마도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와 더불어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읽혔던 책이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였을 것이다. 그런데 12권으로 기획했다던 제자백가 시리즈는 2011년 2권 이후로 감감무소식이다. 여러가지로 많이 바빴다는 핑계를 대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일을 통하여 강신주는 진득하니 앉아서 무엇인가를 쓰는 학자 타입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 후에 여러가지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이 팟캐스트에 나와서 "야불놀이야(야부리라는 단어를 쓸 수 없어서 순화하였다.)"를 했던 것들을 엮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학자로서의 그의 저서로 취급하지 않는다. 강신주와는 달리 공원국은 매년 꾸준하게 책을 냈고, 7년 동안 11권의 책으로 끝을 맺었다. 꾸준하게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저자의 말에서 공원국은 의도적으로 춘추전국이야기의 처음을 관중으로, 마지막을 유방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약 500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관중이 춘추전국시대의 초기 사람이며, 유방이 춘추전국시대 이후 초한쟁패의 승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공원국에 따르면 둘 모두 당시 백성의 삶에 중요성을 두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애쓰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11권의 부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초한쟁패라는 말에서 영웅이란 유방과 항우를 말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유방과 항우가 모두 꾸었던 꿈이 무엇인가? 천하제패가 아니던가? 모두 같은 꿈을 꾸었지만, 서로 다른 진영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엇갈린다는 단어 속에서 어느 한 사람은 천하를 차지하고 다른 한 사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는 단순한 결과만을 도출해 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11권이라는 긴 분량을 통하여 공원국이 주장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의 엇갈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신념의 불일치에 기반한다. 국어 사전에서 "엇갈리다"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이나 주장따위가 일치하지 않다."라는 의미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의미에 기반하여 둘을 비교해 본다. 무엇이 일치하지 않았는가?
우선 국가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지 않았다. 항우는 진 이전의 봉건 체제로, 유방은 진 이후의 군현제로 국가 체제를 설계하였다. 물론 둘다 있는 그대로 따라간 것이 아니라 거기에 여러가지 제도들을 더하여 개량을 하긴 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항우와 유방의 사고 방식은 과거로의 회귀와 미래로의 나아감만큼이나 달랐다.
그러나 항우와 유방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다. 항우는 끊임없이 자기 주변에 있는 이들을 의심하고 깎아 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반면 유방은 최대한 사람들을 얻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항우는 죄를 지으면 가차없이 처단하고, 자기에게 반항하면 수십만명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매장해 버리는 위인이었다. 반면 유방은 죄를 지었어도 자기에에 필요가 있다면 용서한다. 종종 실제로 그렇게 지키지 못하더라도 그렇지 않은척 할 수 있는 위선이 유방에게 있었기에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이러한 유방의 태도는 천하를 차지하고도 변함이 없어서 법률이 있지만, 필요를 위해서라면 법을 어기면서라도 일을 진행했고, 그 결과 한은 사람을 얻었고, 400년의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잃는 자와 사람을 얻는 자, 이것이 항우와 유방의 엇갈린 삶이요, 그들의 미래가 엇갈린 결정적인 이유이리라. 그리고 공원국이 말한 진의 솔직함보다 한의 위선이 더 사랑스럽다는 말의 의미이리라.
사람을 얻는자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 오늘날 정치인들이 기억해야할 말이다. 한국의 보수가 왜 몰락하고 있는가? 그들은 사람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이익과 권력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익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항우처럼 수십만의 생명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고영주 전 MBC 이사장 같은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다 빨갱이고, 자기만이 애국자라는 논지의 말을 그리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진보는 어떤가? 마찬가지다. 생각의 진보는 조금도 없는데, 분열의 진보는 어마어마하다. 생각이 다채롭다는 의미의 분열이면 좋겠지만, 선을 긋고 나와 다르다, 그러니 너는 꼴통 보수다라고 선언하며, 청산의 대상이 적폐로 공격하는 것이 환상적이다. 그러니 이쪽도 사람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다스리고 싶다면, 정권을 창출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사람을 얻기 위해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함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한줌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서 젊은이들을 갈아넣는 세상이 아니라, 사랑이 소중함을 깨닫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실로 할 수 없다면 위선이라도 좋다. 사람을 얻는 자, 세상을 얻게 된다. 11권의 긴 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묵직한 한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