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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욤비 토나.박진숙 지음 / 이후 / 2013년 1월
평점 :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과거에 보트 피플들이 우리 나라에 왔다가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간혹 신문으로 접해보기는 했지만 욤비씨처럼 난민으로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게다가 난민이라는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욤비씨와 같이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두산백과 사전에서 난민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
난민의 일반적 의미는 생활이 곤궁한 국민,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곤궁에 빠진 이재민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로 인종적, 사상적 원인과 관련된 정치적 이유에 의한 집단적 망명자를 난민이라 일컫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난민이 발생한 사례를 보면 러시아 혁명 기간에 약 150만의 난민이 러시아를 떠났고, 1934년 독일에 나치정권이 수립되자 반체제 인사들과 유대인을 비롯한 나치의 피해자 약 250만의 난민이 독일을 등지고 각지로 흩어졌다. 또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1947년 인도의 분열과 팔레스타인 분열, 1948년의 팔레스타인 전쟁, 1975년의 캄보디아와 라오스 및 베트남 등지에서 "보트 피플"로 유출된 인도차이나 난민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998년부터 시작된 코소보에 대한 세르비아군의 인종청소 때에는 78만에 달하는 주민이 학살을 피해 국외로 탈출하였다.
이러한 난민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출과 원조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혁명으로 인해 난민이 발생하자 국제연맹은 노르웨이의 탐험가 난센을 난민구제판무관으로 임명하여 외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신분증명서(난센여권)를 발급하였고, 1939년에는 국제연맹에 독일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를 두어 난민보호에 나섰다. 또 1946년 유엔은 산하에 국제난민기구를 설치하여 제2차 세계대전 때 피해를 당한 난민, 정치적 추방자의 보호와 구제를 행하여 난민을 자유의사에 따라 원하는 나라에 정주시키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그 역할이 끝나자 1951년에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를 설치하여 난민보호를 위한 유엔의 보조기관으로 삼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난민 문제를 그 역사가 꽤나 오래 되었다. 물론 위에 기록된 난민은 현대적인 의미의 난민일 뿐이지, 역사상 난민은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거의 무시되어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외국에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에서 난민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 한국에 욤비씨가 입국했다는 것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더군다나 그가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더 안타깝다. 그가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애를 썼던 이유가, 직장의 문제와 자녀 교육의 문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마음이 더 짠하다.
도대체 왜 한국에서는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이렇게도 지난한 일일까? 특별히 정치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그들에게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까다롭게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이유는 난민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게 마음이 더 아프다. 난민에 대해서 무관심한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보는 견해로는 크게 2가지가 아닐까 한다.
첫번째는 글로벌을 외치지만 우리의 의식 수준이 그 정도로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국어를 잘 배우기 전에 우리는 먼저 영어를 배우고, 일본어를 배우고, 중국어를 배우려고 애를 쓴다.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면 아이에게 수술까지 시키는 나라가 우리 나라다. 오렌지를 어린쥐로 발음해야 맞다고 하는 나라가 우리 나라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 수준은 아직 글로벌하지 않다. 우리의 사고 방식은 아직도 60년대 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어떻게 잘 먹고 살 것인가, 어떻게 수출해서 4만불 시대를 이룰 것인가는 목이 터져라 외치지만, 국제 사회 속에서 한국이 감당해야할 몫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정치인들은 오로지 경제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지, 국제 사회와의 공조에는 무관심하다. 온실가스 줄이기 위한 협약을 하면서 이산화가스를 입에 담는 대통령이 있던 나라가 우리 나라다. 그러다보니 아직 외국에서 원조를 받던 그 시절의 수준에서 한발도 못나가고 있다. 그러니 약자를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리가 없다. 의무와 권리는 함께 가는 것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배우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니, 약자에 대한 책임, 더군다나 난민같은 최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을리가 없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과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통역관을 넉넉하게 배치하지 못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둘째로 단일민족이라는 환상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아왔다. 시험문제의 답에 단일민족이라고 자랑스럽게 적던 것이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니,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그들이 오늘날 이 사회의 허리라는 것이 비극이겠지)이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로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사고방식 속에서 난민은 우리가 보호해야할 약자가 아니라 단일함을 깨뜨리는 이질적인 존재이다. 가능하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그런 껄끄러운 존재, 그것이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역설적이게도 욤비씨의 자녀들은 자신들을 한국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 콩고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싶은 욤비씨에게 꽤나 씁쓸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난민에 대해서 무관심한 한국에서 욤비씨의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법이 아니겠는가?
이 두가지는 결국 폐쇄성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사고의 폐쇄성, 구성원의 폐쇄성! 그러니 편가르기와 패거리 의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 아직은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어렵지만 1~2년 정도 지나서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혀주면서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기꺼이 감당하고 돌아보아야할 몫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이것이 난민들에게 시혜와 같은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우리의 자녀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난민! 신문에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