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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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 버린 사람들!!

  제목이 너무나 자극적이다. 어떤 형편의 사람들이기에 감히 신도 버렸다는 말을 쓰는 것인가? 힌두교의 나라 인도는 내게 너무나 생소한 나라이기에 제목만으로 언뜻 다가오지 않는다. 인도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라면 카스트 제도뿐이다. 카스트 제도에 대하여 내가 아는 것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이 존재하고 그 중 제일 밑바닥에서 온갖 궂은 일을 다해온 것은 수드라다." 이정도? 그저 세계사 시간에 한번 지나가는 말로 들었을 뿐이다. 시험에 나온다기에 달달 외웠을 정도? 계급의 이름가지 외우지만 그 계급이 뜻하는 바를 나는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수드라라는 억압받는 계급이 있다더라. 그들은 중세 시대의 농노와 같은 신분이었다더라는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으로 가진 생각은 "수드라에 관한 이야기"이구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펴고 저자의 머릿글을 읽는 순간 그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천외천이라고 했던가? 바닥 중에서도 바닥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같은 바닥에서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부터 다른 바닥이 존재했을 줄이야. 카스트 제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out of Cast! 그들의 삶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저 달리트라 불리우는 카스트에도 들지 못하는 계급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들에게 인간이길 거부 당하는 그들의 슬픔, 영혼의 분노! 이것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이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엇을까, 이들의 삶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 운명에 대항할 것인가? 어느새 나는 이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백조로 변하기 위하여 온갖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어느새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다무! 힘내야 해!"라는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달리트라는 그들에게 주어진 굴레를 부정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는 다무의 인생여정, 그의 자식 대에 이어지는 입신양명, 그의 손자대에 이어지는 카스트에 대한 완전한 자유! 이것이 그렇게도 꿈꾸었던 다무의 열망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불가촉천민이 아닌, 가축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 이것이 그가 평생을 꾸었던 꿈일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계속 홍길동전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이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길동이의 넋두리가 다무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서얼이라는 이유로 천대받던 이들, 재주가 아닌 출신 성분으로 인하여 온갖 멸시를 받던 천출들. 오죽하면 그들을 賤出이라 불렀을까? 그 신분의 굴레대문에 사장된 천재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왕가에서는 천출도 상관이 없으나 왜 그리 양반층에서는 천출을 구분해 냈던가? 왕가는 치외법권 지역이란 말인가? 또같이 한 사람의 목숨일텐데 왜 그리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평생을 꿈구었던 것은 입신 양명이 아닐 것이다. 벼슬이 아니다. 그들은 오직 사람이길 원했던 것이다. 그저 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 것이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닐까? 양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저 한명의 백성으로라도 취급받고 싶은 것이 그들의 열망이 아니었을까?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시대에는 달리트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한국에서는 불가촉천민들이 너무나 많다. 불가촉천민이라는 것이 눈에 띄는 사회 현상이 아니지만 우리의 의식 을 지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은 불가촉천민이다. 그들과 옷깃을 스치는 것만으로 병이 옮는 것처럼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규직에게 달리트는 비정규직이다. 기업가에게 달리트는 노동자이며, 상위 2%에게 나머지 98%는 달리트이다. 이들과 친분을 섞는 것도, 혼맥을 맺는 것도 절대로 피해야할 일들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서민들은 꼭 달리트 같은 존재이다. 허울 좋은 서민이라는 이름을 주고 그들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다. 듣는 것조차 금지해야 할 일들이다. 사회 시스템 자체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달리트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달리트는 가끔 운좋게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 학연을 통한 탈굴레는 이 시대 달리트들이 꿈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물론 그 대안도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물론 조만간 그 길도 유명무실해지겠지만.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에는 광풍이 몰아친다. 사교육이라는 망령이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이 시대의 달리트들에게 이 길만이 오지 그릇을 벗을 수 있는 길이라 속삭인다. 이 속삭임에 많은 이들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탈달리트라는 것은 인간화를 말하는 것이지, 신분의 상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탈달리트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이지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가 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 시대 탈달리트를 꿈꾸는 이들은 브라만이 되는 것을 탈달리트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2008년 대한민국이 처한 슬픈 현실이다. 탈달리트를 꿈꾸는 이들에 의하여 카스트 제도가 강화되는 아이러니가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이 시점 다무의 인생을 통하여 한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조선시대 천출들의 바램을 되짚어 본다. 그들이 꿈꾸었던 것은 계급없는 사회이다. 백조가 된다는 것은 오리를 짓밟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다무의 소원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대한민국 현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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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6
권성현 외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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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노라."

  이랜드 박성수 회장의 간증집 제목이다. 그는 사랑의 교회 장로요 성공한 크리스천 CEO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기업가이다. 이 사람의 간증을 예전에 테잎으로 접해본 기억이 있다. 워낙 간증이라는 것을 듣지 않는 나인데 후배의 차를 얻어타고 가던 길에 우연히 듣게 되었다. 정직하게 살지 못하는 크리스천 기업가들이 많고, 하나님이 아닌 이익에 휩쓸리는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러나 자기가 기업을 해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더라는 요지의 간증을 들으면서 속으로 한마디 했다. "웃기네." 그리고 후배에게 말 했다. 왜 이런 불온 테잎을 듣는지 모르겠다고 이런 거 들을바엔 텔레비전에 벗고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 노래나 하나 더들으라고. 그게 몇년전 일이다. 홈에버 상암점의 비정규직 투쟁이 일어나기 1년전의 일이가. 그때도 여전히 나는 박성수 회장의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었다. 예수님을 팔아서 장사하는 모습이 너무 눈에 드러났기 때문이고, 여기에 속아서 한때 이랜드 옷만 사입었던 어리석은 내 10대의 모습이 기억나서였다.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노라."라는 말은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철저히 정직한 자인척하는 이의 형통을 믿노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랜드 사태를 보면서 참 우리 예수님 안됐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분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욕을 덤탱이로 먹고 있으며 나는 또 무슨 잘못이 있어서 나와 상관없는 이 때문에 내 신앙에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작년 이랜드 파업 사태가 한참 진행되던 7월 초교파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상암 월드컵 운동장에서 평양 회개운동 기념 성회를 가졌었다.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를 기점으로 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날 분위기는 너무나 진지하고 뜨거웠다. 자신들의 회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모습들은 거기에 참석한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겼다.

  그러나 상암운동장 밖, 즉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라는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가 울려퍼진 그 바로 옆자리에서 또 다른 이들은 다른 의미에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라며 신음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려달라고, 자기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신 옥한흠 목사님께서 키워 놓으신 박성수 장로에 의하여 죽음으로 내 몰린 많은 비정규직자들이 "우리도 일하고 싶다, 살려달라."는 애원의 목소리를 거친 팔뚝질과, 농성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기자가 그러더라. 과연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으셨겠느냐고?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그냥 울었다는 표현이 아니라 정말 많이 울었다. 화장실에서 책을 보면서 울기도 하고, 혼자 방안에서 책을 읽다가 울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난다. 이랜드 비정규직자들의 삶이 안되서 울고, 그 가족들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겠기에 울고, 국가 공원력에 의해서 보호되는 재벌들을 겪으면서 그들이 맛볼 좌절감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에 울었다.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노라."는 박성수 회장의 말장난에 놀아나는 한국 교회가 안되서 울고, 박성수 회장을 강사로 모시고 특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는 사랑의 교회 신자들의 순박함과 오정현 목사님의 의도적인 침묵에 답답해서 울었다. 또한 내가 그렇게 붙잡고 믿고 의지해온,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교회가 싸잡아 욕먹는 것이 안타까워서 울고, 십자가를 지신 그분이 다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되서 울었다. 이래저래 이 책은 울게 만드는 책이다.

  만일 2008년 지금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시겠는가? 항상 예수님은 사회 가장 밑바닥에 오셨다. 소위말하는 막장 인생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2008년 대한민국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비정규직자의 모습으로 이 당에 오시지 않을까? 매일매일 똑같은 업무, 그것도 살인적인 강도의 업무와 정말로 쥐꼬리보다 못한 월급. 여기에 신음하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을까? 아마 그분도 팔뚝질을 하셨을 것이고, "무임금 무노동 노동자 탄압 총파업으로 맞서리라."고 쟁가를 부르셨을 것이다. 충분히 그러시고도 남을 분이다. 아니 이것을 위해 오셨을 분이다. 십자가에 비정규직 차별, 고강도 노동 저임금, 1%만을 위한 정책, 성차별, 가정경제 파탄 등 수없이 많은 짐을 지고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을 것이다. 비록 그를 따르겠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이 땅에 천만을 헤아린다고 자랑할지라도 구레네 시몬은 아마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정말 소박한 이들의 꿈이 절망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묻고싶다. 과연 노무현 정권이 개혁정권이였냐고 묻고 싶다. 진정 크리스천 기업가들이 예수의 정신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지 묻고싶다. 목회자들이 진자로 예수의 논리를 가르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까지는 묻지 않겠다. 그저 예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물어도 대답없는 질문에 마음이 속상하지만 나 혼자라도 응원하련다. 정말 해줄 것이 없지만 그저 책 한권 사고, 기회가 되면 누군가에게 이 책을 사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만이라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련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다. 나는 박성수 회장이 아니기에, 나는 정직한 자가 아니기에.

PS. 마지막 4부가 책의 감동을 많이 흐려놓았다. 먹물은 먹물로, 삶은 삶으로 놔야지 먹물이 들어나기 삶이 빛을 잃는다. 가장 아쉬운 점이다. 노동 운동이 어떻고 저떻고는 다른 책을 통해서 이야기했다면 좋았을 것을. 특히 김원씨의 글은 너무 어렵고 학적이고 딱딱해서 여기에 싣는 것이 에러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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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 중국 제국 시스템의 형성에서 몰락까지, 거대 중국의 정치제도 비판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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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책이 어렵다. 중국 사람이 중국 고사를 가지고 쓴 책이기 대문에 어렵다. 거기에다가 그 주제가 "과연 이 책을 역사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켜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사회정체에 관한 문제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에 훨씬 더 가까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어려운 고비를 한 순간 넘겼다라는 안도감임을 부인할 수 없다. 440페이지 분량의 책을 2주에 걸쳐서 읽었다는 것은(물론 요즘 바쁜 일들이 많아서 책을 잡고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이 책이 얼마나 일기 난해하고 진도가 안나가는 책인지 반증하는 예일 것이다.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읽기 어렵다기 보다는 읽기 싫다고 할까?

  책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참 박식한 사람이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국의 역사에 대하여 이정도로 꿰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랍고, 중국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는 제국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용기가 부럽다.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떠받들었던 것들이 사실은 백성을 착취하기 위해 고도로 발전된, 그리고 은밀한 계략이요, 통치술이라고 정면에서 비판하는 그의 식견도 존경스럽다.

  제국이 무엇인가? 누구나 제국을 꿈꾼다. 제국은 힘의 상징이다. 권력의 상징이다. 하늘로 대변되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지만 절대 권력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한번은 갖고 싶은 정말 달콤한 유혹이다. 물론 그 끝은 결국 죽음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치뤄야 하지만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제국은 농경민족이나 유목민족 같은 무력과 권력을 숭상하는 민족에게서부터 유래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을 점령하고 천하를 호령한 민족은 여지없이 농경민족이 아니면 유목민족이었다. 권력을 숭상하고 무력을 숭상하는 호전적인 사람들이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는 시스템이 제국이다. 물론 하늘은 황제에게, 혹은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제국은 하늘을 빙자하며 정당성을 획득한 절대 권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명천자라는 말 가운데 그 특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제국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대대로 우리 민족은 세계로 뻗어 나갈 수도 있고, 침략을 받을 수도 있는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인 위치를 점하고 살았다. 한반도라는 곳에 터를 닦고 살았다. 로마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반도 국가가 되었지만, 우리 나라는 세계로부터 침략당하는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대략 천번에 육박하는 침략을 당해왔지만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자위하고 살아가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것은 약소국의 설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민족에게 있어서 제국이란 꿈에서도 그리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중국이라는 제국의 밑에서 오랜 세월 관계를 맺어 온,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겨 본 경험이 있는 우리 나라는 본능적으로 제국을 그리워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하나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렇게 제국을 숭상하는 마음에 미국이 없으면 죽는 줄 생각하는 것 같다.

  이렇게 제국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때문에 우리나라 민족은 국익이라는 말 앞에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국익이라는 말 앞에서는 아프간 파병과 이라크 파병을 찬성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양심을 지키려고 하고, 윤리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도 국익이라는 말 앞에서는 황빠가 될 수밖에 없다. 강한 국가 제국을 희망하기 대문에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와 공존하는 것이 서툴기만 하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제국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미쿡 사람들이라면 돈을 주고서라도 친구를 만들어야 하고 코쟁이 말이라면 어린 시절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한이 있어라도 배워야 하며 쏼라쏼라 혀 꼬부라진 말을 잘 하기 위해서라면 어린 자식의 혀를 째는 수술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렇게 제국을 갈망하면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무엇을 위해 제국을 갈망하는가?

  제국이 될 수 없는 나라에서, 왜 그렇게 시대에 퇴행하면서 제국을 갈망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힘은 곧 생존이며, 돈과 무력은 자기를 생존시켜 주는 원동력을 오랜 세월 침략을 통하여 몸에 자연스럽게 익혀 온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절대 강자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장려하는 것이 아닐까? 미국과의 공조라는 미명하에 미국을 등에 없고 호가호위하기 위해서 미국에 돈을 퍼 주고, 국민 건강을 내어주고, 부시의 차를 운전해 주는 것이 이 나라의 실상이 아니던가?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면서 꼬부랑말로 큰소리로 외치며 기도하는 모습은 호가호위라는 말, 제국에 대한 충성이라는 말을 제외하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제국을 경험해 본 저자는 제국은 멸망을 늦추는 제도일 뿐 멸망하지 않는 제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뒤로 늦추는 만큼 멸망할 때에는 급속도로 망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제도라고 설파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공화를 이야기하고 민주의 길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디로 나가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과연 민주국가인가? 헌법이 모든 것 위에 있는 헌정국가인가? 일단 보여지는 모습은 그렇다. 그러나 그 내용을 조심스럽게 뜯어본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천자는 하늘의 뜻을 대변한다는 말로, 천하위공이라는 감언이설로 백성을 침탈하였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역사의 부름 앞에, 국민을 위하여라는 말로 사리사욕을 챙기고 국민을 침탈한다. 삼권분립이 법제화 되어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의 한마디가 국회를 움직이고, 사상을 검열하고, 국가의 부을 사유화한다. 인터넷을 검열하고, 국가 시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감옥에 넣는 것은 진시황이나 행했던 분서갱유가 아닌가? 측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자기 사람 심기가 아니던가? 그저 황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관리들을 만들어 내듯이 대통령의 은혜에 감지덕지하는 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던가? 그 어떤 법으로도 천자를 제어할 수 없듯이 그 어떤 법으로도 대통령을 제어할 수는 없다. 주권재민을 외치는 국가에서 국민의 의견으로도 말이다. 죄기조를 반포해 천자가 덕이 없어 하늘의 노여움을 사 천재가 발생했다는 정치 쇼가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풍랑이나 저항이 거세면 그저 죄송하다고, 덕이 없어서 그렇다고 국민의 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하며 조금 지나 가라앉으면 강경대응하는 것과 죄기조가 무엇이 다른가? 평화 시위는 보장하지만 불법 시위는 엄단하겠다 말하는데 평화 시위와 불법 시위를 가르는 심판은 누가 보는가? 결국 책임지지 않는 권력자가 아니던가? 이 모든 불만을 유학으로 통일시켰듯이 조중동으로 사상통일시키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니던가?

  이중텐 교수가 지적한 제국의 치명적인 약점을 정말 흡사할 정도로 품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니던가? 君貴民賤의 실상을 天下爲公으로 교묘히 감추었듯이 집권층의 사욕을 국민의 뜻이라는 말로 교묘히 감추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마지막으로 묻는다. 대한민국은 헌정국가인가? 제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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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3 -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 한국사傳 3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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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무엇인가? 비단 E.H.Carr의 책을 떠올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에게 있어서 역사란 특별한 존재이다. 인류가 살아 남는 이상 역사 또한 살아남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인류가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역사는 살아 남을 것이다. 역사가 인류에게 있어서 가지는 위상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역사가 재미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역사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랬던 경험이 있다. 종교개혁을 설명하기 위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배경을 설명을 하다가 고3 학생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아무리 말해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 녀석들에게 학교에서 안배우냐고 물었더니 당당하게 하는 말이 안배운다는 것이다. 상식인데 모르냐는 말에 그런건 시험에 안나온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설명을 포기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 역사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쓸데 없이 외울 것이 많다는 것이 역사에 대한 우리나라 문교부(지금은 과학 기술부)의 평가이다. 이공계의 위기라고 말하지만 순수 인문학은 이미 위기의 단계를 넘어 멸종의 단계로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역사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갖지 않으니 뉴라이트 도라에몽님들께서 그 말도 안되는 역사책을 펴내신 것이 아니겠는가?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묘사하는 도라에몽님들. 하나님의 이름이 그런데 사용된다는 것이 참 안타까울뿐이다. 그냥 자기들의 태생이 그러니 자기들은 이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노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곧 죽어도 자신들은 애국 애민하는 부류라고 말하는 것이 가소로울 뿐이다. 왜 그런가? 왜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역사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거 시험 점수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수학공식 외우듯이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다. 해석하고, 그 이면의 깊은 곳을 살펴봐야 하는 고등의 사고력을 요하는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대한민국 교육부의 정책이 가소로울 뿐이다.

  각설하고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가졌던 생각이다. 논어 팔일편에 이런 말이 있다.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자왈, "주감어이대, 욱욱호문재, 오종주!:공자가 말하길, 주는 이대를 살펴보아 그 문화가 찬란하다. 그래서 나는 주를 따르련다.)"

  또한 조선시대 대학자 徐居正(서거정1420-1488)은 동국통감을 지어 올리면서 箋(전- 책의서문)에 "나라의부흥과 패망에 있어서 이미 지난 것에서 거울삼을 것이니 , 거짓으로 미화하지 말고 악한 일도 감추지도 말아야 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줌이 마땅하다" 라고 밝혔다. 이 두가지 이야기는 역사의 역할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역사는 거울이다. 이 거울을 통하여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면 교사 삼고, 과거의 치적은 오늘날 어떻게 재해석 하여 본으로 삼을 것인가 판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과거 사관에 대한 왕들의 핍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실정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관들에게 압력을 가하였지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관들이 목숨 내걸고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다. 이만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가급적이면 후대에 남겨주려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다. 물론 거기에 정치적인 해석이 들어가 있지만 후대는 여러가지 사료를 살펴보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일단 사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에는 사료를 남기려 하지 않는다. 대통령들이 자기 정권이 끝나고 나면 모든 기록들을 말소하고 리셋하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5년후 리셋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정책이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오늘날 벌어지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한심한 작태를 바라보면서 사료조차 남기길 원하지 않는 파쇼라는 생각이 든다. 잘하든 못하든 후대에 기록은 남겨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파쇼를 하려면 적어도 박정희처럼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배포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박정희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배포도 없고,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아 배워온 검찰과 경찰을 움직이는 강압정치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정권의 한계가 아니던가? 답답한 마음 뿐이다. 도대체 역사에서 무엇을 거울 삼아 배웠는가? 이 책을 다시 한번 열어보길 바란다. 오늘날 논란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여기 다 들어 있다.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라는 부제에 맞게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어떻게 그런 언행을 했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 책은 바로 거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백제를 부흥스킨 무령왕, 개인의 아픔은 뒤로 하고 수렴청정하여 조선의 기초를 다진 정희왕후,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나 김성립과 결혼한 불운의 여인 난설헌, 왜가 아닌 조선 정부에 의하여 꺾여버린 곽재우, 닫힌 시대 자생 천주교의 리더이나 천주교로부터 배교자로 평가받는 이벽, 황제의 연호를 쓰면서 당대 최고의 제국 당과 맞짱 뜬, 그리고 당도 함부로 하지 못한 발해의 무왕과 문왕, 왕을 위하여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당쟁의 진흙탕으로 내려간 정철, 왕이 하늘인 시기에 밥이 백성의 하늘이라 말한 세종, 조선의 사대부들과 싸워서 한국의 소리를 뿌리 내린 세종!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지금가지 우리 역사 교육의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당장 세종만 해도 한글 창제와 집현전이라는 부분에만 집중했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장영실을 등용하면서까지 과학기술에 목메었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과만 놓고 달달 외우는 암기식 교육의 한계였을 것이다.

  당과 맞장뜨는 당당함과 국제 관계에서 적절하게 실리를 챙기는 외교는 오늘날 관료들이, 특히 농수산부 협상팀과 6자회담 실무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라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프렌들리 비지니스를 외치면서 기간 사업을 민영화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이미 남미에서는 이것들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좌파 정권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10년만에 다시 찾은 정권이라면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국민들의 밥을 빼앗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것이 국제화 시대에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은 무조건 외국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얼빠진 사대주의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여자라서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이들은 난설헌의 이야기를 거울 삼으면 된다.

  정말 주옥같은 책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다. 책의 내용이 쉬워 쭉쭉 넘어가지만 그 내용은 결코 그렇게 쉽게 넘어갈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두고두고 음미해볼 내용들이다. 책을 덮고 벌써 4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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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3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벽 틈에 난 잡초, 출처:http://photohistory.tistory.com/3398)

  지식 e가 나올 때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인가? 어떤 내용으로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것인가 기대를 품게 된다. 그리고 그 기대는 항상 충족되었다. 노란색의 1권, 빨간색의 2권, 파란색의 3권을 접하면서 편집부의 말 대로 지식이란 암기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것임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마음이 따뜻해 짐을 느끼면서 한권의 책을 서재에 꽂고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빨강과, 노랑과 파랑은 세상의 기본 색이다. 거기에다가 세 가지 색은 신호들에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파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 사용되지만 우리는 그런 구분 없이 파란불이라 부르곤 한다. 세권의 책으로 나온 지식e가 세상의 신호등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의 지식의 기본 요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두근대는 기대감을 품고 책을 열었다. 첫장을 열고 에필로그를 보는 순간 활칵 눈물이 났다. 다음의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화성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태양 전지판에 먼지가 쌓여 3개월 후면 수명을

 
 

다할 것이다.

로봇 팔의 관절 이상, 복구 불능

망가진 몸으로 고산 등반, 소프트웨어 이상

생존을 위해 이틀 동안 66번 재부팅

화성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160'C의 일교차 속에서 16만장을 전송하며

2008년 6월 현재

 
  아직 살아 있다. (에필로그 중에서)

  "아직 살아 있다." 이 말은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지식 e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까지 지식 채널은 세월의 많은 부침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 속에서도 여전히 지식 채널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존재해 왔었고 이들의 목소리는 "17년 후"라는 방송을 통하여 무한대로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언론을 장악하려는 모습들이다. 여전히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자기 주위에 있는 인사들을 방송계에 낙하산을 태워 언론사 사장으로 꾸준히 내려보내고 있다. 얼마전 YTN의 날치기 주주총회와 KBS 정연주 사장 퇴진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급기야는 KBS를 좌파 방송이라고, 빨갱이 방송이라고 몰아 붙이는 코메디를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식채널은 이명박 정부에게 눈엣 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정책들을 정책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난 "17년 후"라는 방송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이것 때문에 지식채널은 사상 초유의 일을 경험한다. 외압에 의한 방송금지라는 아픔이다. 만일 김진혁 PD가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침묵했더라면 아무것도 모른채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게 외쳤고, "17년 후"는 방송되었다. 그리고 그는 징계성 인사라는 시비 가운데 지식채널 PD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지식 e 시즌 3은 김진혁 PD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작품을 내 놓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직접적인 거론은 없지만 "아직 살아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하고 많은 것 중에서 왜 하필 사형선고 받은 화성 탐사 로봇의 이야기를 에필로그로 선택했을까? 어떤 이들은 음악이 좋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가운데 "아직 살아 있다."는 절규를 발견했다.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속삭이는 세상이 사실은 디스토피아라는 진실을 말하면서 위협당하지만 오늘도 살아 있다는 그들의 외침이, 그리고 절규가 내 마음에 저릿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소망한다. 지식 채널이 몇 년 후에도 "아직 살아 있다."고 당당하게 외출 수 있기를 말이다. 물론 그 길이 수십번씩 재부팅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하고 열사의 사막을 고장난 다리로 올라가야 하는 순례자의 고행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아픈 몸 하나 추스리지도 못하면서도 세상에 사람 중심, 진실이라는 사진을 계속적으로 전송하기를 소망한다.

  지식 e 3은 아직 살아 있다는 절규로 시작하여 우리가 간직해야 하는 그러나 지금은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아직 살아 있는 이유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지식 e의 정신을 지키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일까 다른 책보다 더 사회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인다. 성매매 여성, 뉴타운에서 소외된 원주민, 그라바비차의 아이들, 떡볶이 아저씨 등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지만 그렇게 가볍게 치부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 시킨다. 그러나 무슨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묻고 있을 뿐이다. 특정한 색깔을 지니고 있지도 않고 법적인 태도를 가지고 정죄하거나 강제하지도 않고 그저 인간 양심에, 인간적의 도의에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인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묻고 잇을 따름이다. 그런데 새로운 오른손잡이들은 빨간 왼손이라고 맹공격을 퍼붓고 있다. 참 웃기는 짜장이다.

  이 책의 마지막을 행동하는 사람으로 한 것 또한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가 난 아직 살아 있다는 절규하면 행동하는 사람은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각오라고 생각이 든다. 이 각오는 직식 채널 편집부의 각오이고, 기진혁 PD의 각오이고, 우리의 각오이고 인간의 각오이어야 할 것이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상실해가는 인간성 회복에 대한 각오가 정말로 필요한 시기에 이 책을 만나 마음이 따뜻하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과 이 따뜻함을 공유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국제 기구의 첫 한국인 의장(반기문이 아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덩치가 큰 기구라면 사족을 못쓴다. UN이라면 사족을 못쓴다.)이었던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해본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故 이종욱

 

PS. 벽에 뿌리를 내리고 오늘 하루도 버티는 끈질김이 지식 채널팀에게 있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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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08-08-06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빠가 어떻게 이런 글을 쓸수있는지..참..^^ 새로보임..(소라)

김이진 2008-08-13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많은 힘을 얻고 갑니다

saint236 2008-08-13 10:02   좋아요 0 | URL
님에게 힘이 되었다니 감사하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