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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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 버린 사람들!!

  제목이 너무나 자극적이다. 어떤 형편의 사람들이기에 감히 신도 버렸다는 말을 쓰는 것인가? 힌두교의 나라 인도는 내게 너무나 생소한 나라이기에 제목만으로 언뜻 다가오지 않는다. 인도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라면 카스트 제도뿐이다. 카스트 제도에 대하여 내가 아는 것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이 존재하고 그 중 제일 밑바닥에서 온갖 궂은 일을 다해온 것은 수드라다." 이정도? 그저 세계사 시간에 한번 지나가는 말로 들었을 뿐이다. 시험에 나온다기에 달달 외웠을 정도? 계급의 이름가지 외우지만 그 계급이 뜻하는 바를 나는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수드라라는 억압받는 계급이 있다더라. 그들은 중세 시대의 농노와 같은 신분이었다더라는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으로 가진 생각은 "수드라에 관한 이야기"이구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펴고 저자의 머릿글을 읽는 순간 그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천외천이라고 했던가? 바닥 중에서도 바닥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같은 바닥에서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부터 다른 바닥이 존재했을 줄이야. 카스트 제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out of Cast! 그들의 삶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저 달리트라 불리우는 카스트에도 들지 못하는 계급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들에게 인간이길 거부 당하는 그들의 슬픔, 영혼의 분노! 이것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이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엇을까, 이들의 삶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 운명에 대항할 것인가? 어느새 나는 이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백조로 변하기 위하여 온갖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어느새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다무! 힘내야 해!"라는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달리트라는 그들에게 주어진 굴레를 부정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는 다무의 인생여정, 그의 자식 대에 이어지는 입신양명, 그의 손자대에 이어지는 카스트에 대한 완전한 자유! 이것이 그렇게도 꿈꾸었던 다무의 열망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불가촉천민이 아닌, 가축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 이것이 그가 평생을 꾸었던 꿈일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계속 홍길동전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이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길동이의 넋두리가 다무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서얼이라는 이유로 천대받던 이들, 재주가 아닌 출신 성분으로 인하여 온갖 멸시를 받던 천출들. 오죽하면 그들을 賤出이라 불렀을까? 그 신분의 굴레대문에 사장된 천재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왕가에서는 천출도 상관이 없으나 왜 그리 양반층에서는 천출을 구분해 냈던가? 왕가는 치외법권 지역이란 말인가? 또같이 한 사람의 목숨일텐데 왜 그리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평생을 꿈구었던 것은 입신 양명이 아닐 것이다. 벼슬이 아니다. 그들은 오직 사람이길 원했던 것이다. 그저 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 것이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닐까? 양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저 한명의 백성으로라도 취급받고 싶은 것이 그들의 열망이 아니었을까?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시대에는 달리트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한국에서는 불가촉천민들이 너무나 많다. 불가촉천민이라는 것이 눈에 띄는 사회 현상이 아니지만 우리의 의식 을 지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은 불가촉천민이다. 그들과 옷깃을 스치는 것만으로 병이 옮는 것처럼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규직에게 달리트는 비정규직이다. 기업가에게 달리트는 노동자이며, 상위 2%에게 나머지 98%는 달리트이다. 이들과 친분을 섞는 것도, 혼맥을 맺는 것도 절대로 피해야할 일들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서민들은 꼭 달리트 같은 존재이다. 허울 좋은 서민이라는 이름을 주고 그들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다. 듣는 것조차 금지해야 할 일들이다. 사회 시스템 자체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달리트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달리트는 가끔 운좋게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 학연을 통한 탈굴레는 이 시대 달리트들이 꿈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물론 그 대안도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물론 조만간 그 길도 유명무실해지겠지만.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에는 광풍이 몰아친다. 사교육이라는 망령이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이 시대의 달리트들에게 이 길만이 오지 그릇을 벗을 수 있는 길이라 속삭인다. 이 속삭임에 많은 이들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탈달리트라는 것은 인간화를 말하는 것이지, 신분의 상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탈달리트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이지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가 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 시대 탈달리트를 꿈꾸는 이들은 브라만이 되는 것을 탈달리트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2008년 대한민국이 처한 슬픈 현실이다. 탈달리트를 꿈꾸는 이들에 의하여 카스트 제도가 강화되는 아이러니가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이 시점 다무의 인생을 통하여 한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조선시대 천출들의 바램을 되짚어 본다. 그들이 꿈꾸었던 것은 계급없는 사회이다. 백조가 된다는 것은 오리를 짓밟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다무의 소원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대한민국 현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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