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傳 3 -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 한국사傳 3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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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무엇인가? 비단 E.H.Carr의 책을 떠올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에게 있어서 역사란 특별한 존재이다. 인류가 살아 남는 이상 역사 또한 살아남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인류가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역사는 살아 남을 것이다. 역사가 인류에게 있어서 가지는 위상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역사가 재미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역사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랬던 경험이 있다. 종교개혁을 설명하기 위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배경을 설명을 하다가 고3 학생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아무리 말해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 녀석들에게 학교에서 안배우냐고 물었더니 당당하게 하는 말이 안배운다는 것이다. 상식인데 모르냐는 말에 그런건 시험에 안나온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설명을 포기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 역사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쓸데 없이 외울 것이 많다는 것이 역사에 대한 우리나라 문교부(지금은 과학 기술부)의 평가이다. 이공계의 위기라고 말하지만 순수 인문학은 이미 위기의 단계를 넘어 멸종의 단계로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역사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갖지 않으니 뉴라이트 도라에몽님들께서 그 말도 안되는 역사책을 펴내신 것이 아니겠는가?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묘사하는 도라에몽님들. 하나님의 이름이 그런데 사용된다는 것이 참 안타까울뿐이다. 그냥 자기들의 태생이 그러니 자기들은 이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노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곧 죽어도 자신들은 애국 애민하는 부류라고 말하는 것이 가소로울 뿐이다. 왜 그런가? 왜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역사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거 시험 점수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수학공식 외우듯이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다. 해석하고, 그 이면의 깊은 곳을 살펴봐야 하는 고등의 사고력을 요하는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대한민국 교육부의 정책이 가소로울 뿐이다.

  각설하고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가졌던 생각이다. 논어 팔일편에 이런 말이 있다.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자왈, "주감어이대, 욱욱호문재, 오종주!:공자가 말하길, 주는 이대를 살펴보아 그 문화가 찬란하다. 그래서 나는 주를 따르련다.)"

  또한 조선시대 대학자 徐居正(서거정1420-1488)은 동국통감을 지어 올리면서 箋(전- 책의서문)에 "나라의부흥과 패망에 있어서 이미 지난 것에서 거울삼을 것이니 , 거짓으로 미화하지 말고 악한 일도 감추지도 말아야 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줌이 마땅하다" 라고 밝혔다. 이 두가지 이야기는 역사의 역할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역사는 거울이다. 이 거울을 통하여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면 교사 삼고, 과거의 치적은 오늘날 어떻게 재해석 하여 본으로 삼을 것인가 판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과거 사관에 대한 왕들의 핍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실정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관들에게 압력을 가하였지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관들이 목숨 내걸고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다. 이만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가급적이면 후대에 남겨주려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다. 물론 거기에 정치적인 해석이 들어가 있지만 후대는 여러가지 사료를 살펴보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일단 사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에는 사료를 남기려 하지 않는다. 대통령들이 자기 정권이 끝나고 나면 모든 기록들을 말소하고 리셋하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5년후 리셋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정책이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오늘날 벌어지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한심한 작태를 바라보면서 사료조차 남기길 원하지 않는 파쇼라는 생각이 든다. 잘하든 못하든 후대에 기록은 남겨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파쇼를 하려면 적어도 박정희처럼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배포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박정희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배포도 없고,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아 배워온 검찰과 경찰을 움직이는 강압정치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정권의 한계가 아니던가? 답답한 마음 뿐이다. 도대체 역사에서 무엇을 거울 삼아 배웠는가? 이 책을 다시 한번 열어보길 바란다. 오늘날 논란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여기 다 들어 있다.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라는 부제에 맞게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어떻게 그런 언행을 했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 책은 바로 거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백제를 부흥스킨 무령왕, 개인의 아픔은 뒤로 하고 수렴청정하여 조선의 기초를 다진 정희왕후,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나 김성립과 결혼한 불운의 여인 난설헌, 왜가 아닌 조선 정부에 의하여 꺾여버린 곽재우, 닫힌 시대 자생 천주교의 리더이나 천주교로부터 배교자로 평가받는 이벽, 황제의 연호를 쓰면서 당대 최고의 제국 당과 맞짱 뜬, 그리고 당도 함부로 하지 못한 발해의 무왕과 문왕, 왕을 위하여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당쟁의 진흙탕으로 내려간 정철, 왕이 하늘인 시기에 밥이 백성의 하늘이라 말한 세종, 조선의 사대부들과 싸워서 한국의 소리를 뿌리 내린 세종!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지금가지 우리 역사 교육의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당장 세종만 해도 한글 창제와 집현전이라는 부분에만 집중했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장영실을 등용하면서까지 과학기술에 목메었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과만 놓고 달달 외우는 암기식 교육의 한계였을 것이다.

  당과 맞장뜨는 당당함과 국제 관계에서 적절하게 실리를 챙기는 외교는 오늘날 관료들이, 특히 농수산부 협상팀과 6자회담 실무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라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프렌들리 비지니스를 외치면서 기간 사업을 민영화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이미 남미에서는 이것들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좌파 정권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10년만에 다시 찾은 정권이라면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국민들의 밥을 빼앗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것이 국제화 시대에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은 무조건 외국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얼빠진 사대주의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여자라서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이들은 난설헌의 이야기를 거울 삼으면 된다.

  정말 주옥같은 책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다. 책의 내용이 쉬워 쭉쭉 넘어가지만 그 내용은 결코 그렇게 쉽게 넘어갈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두고두고 음미해볼 내용들이다. 책을 덮고 벌써 4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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