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or No 선택 단추 시리즈
스펜서 존슨 지음, 강주헌 / NEWRUN(뉴런)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난 자계서를 뽕이라고 표현한다. 가끔 삶이 지칠 때, 마음이 힘들어질 때 한번씩 힘을 얻고자 보면 좋지만 그 외에는 백해무익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요즘 베스트셀러 가운데 자계서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참 어렵게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펜서 존슨은 이 분야에서는 참으로 독보적인 존재이다. 청소부 밥, 부모, 멘토, 행복, 성공, 치즈 시리즈 등등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처세술을 강화하려는 사람들에게 한편의 멋들어진 동화를 통하여 가르침을 주는 면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그의 책이기에 정말 오랫만에 꺼내 들었다. 기대했던 대로 책은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느끼는 것은 "정말 아니다."라는 것이다. 예 아니오 시스템을 통하여 보다 건설적이고 효과적인 의사 결정 방법을 제시해 준다는 명목하에 내놓는 각 장의 주제들은 항상 그렇듯이 명쾌하지만, 그렇게 창조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스킬들을 나열해 놓고 있다. 이 정도까지만 해도 그냥 그런 책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겠지만, 원래 자계서는 그러하니까라면서 넘어가겠지만, 그 결정의 밑바탕에 깔린 생각이 자꾸 반감을 불러온다.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런거다.

 

  너는 항상 옳다.

 

  네가 항상 옳기 때문에 여러가지 정보를 취합하고, 네 생각에 맞추어서 판단한다면 그것은 항상 옳은 결론을 도출하게 될 것이다. 대체로 이런 내용들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음을 이미 경험으로 보지 않았던가?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산업혁명기를 겪으면서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인간성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다. 종교는, 특히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는 인간의 본성을 억압한다, 이러한 억압에서 벗어나서 인간 본연의 특성을 발현하면 이 사회를 좀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이것이 당시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다.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살아가면 이 땅은 천국이 된다는 것이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본적인 신학의 가치관이었다. 우리는 자유주의를 종교 다원주의와 착각하지만 자유주의는 인간성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신학적인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말 한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선하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살면 그 사회도 선하고 도덕적인 곳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은 1차 대전과 2차대전을 통하여 철저하게 깨졌고, 아렌트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악의 보편성과 평범성에 대한 역작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을 남겼다. 양차 대전을 통해 사람들은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악한 본성에 대해서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가지 교육법들과 학문적인 연구들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항상 역사가 한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듯이, 인간성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성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다시 대두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긍정은 과거에 비하여 더욱 강한 포지셔닝을 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러한 포지셔닝 중에서도 거의 극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난 항상 결정을 하면서 고민을 한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이 옳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최선을 택할 수 없어서 차악을 선택한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너는 항상 옳다니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누가 이러한 발언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인가? 스펜서 존슨이 책임을 질 것인가?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한 음식점 앞을 지난다. 그 집 음식이 꽤나 괜찮기 때문에 이사를 와서는 그 집을 자주 찾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음식 맛이 번해서, 주인이 바뀌어서? 아니다. 그 집 앞에 있는 간판이 자꾸 눈에 거슬려서이다. 커다란 입간판에 이렇게 써있다.

 

  "손님은 항상 옳습니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도 눈에 거슬리는데 손님이 항상 옳다니! 그 집을 택한 손님은 항상 옳다는 것인지, 손님이 하는 말은 어떤 불합리한 것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 한마디가 내 입을 쓰게 만든다. 나도 내가 옳다고 장담을 못하는데 무슨 근거로 그 집에 손님을 찾아가는 내가 옳다고 판단한단 말인가? 여러가지 이유로, 어찌보면 판단 내리기를 유보하는 살짝 비겁함으로, 그리고 껄쩍지근함으로 오늘도 그 집을 피하여 난 김밥 천국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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