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大기자, 연암
강석훈 지음 / 니케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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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 스스로를 기자라고 한다고 했을 때 난 좀 얼떨떨했다. 

그렇다면 난 이제까지 그를 무엇이라고 알고 있었을까? 실학자겸 문장가 아니었나? 소설가라고도 하고. 그것은 또 허균과 얼마나 많이 헷갈리던가. 기자가 그리도 오래된 직업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기자는 우리나라엔 적어도 20 세기 초에나 생겨난 직업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연암은 무려 1780년 건륭제의 70회 생일을 맞아 진하 사절단으로 북경으로 갈 때 자칭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것은 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거의 1 세기나 앞선 것이기도 했으니 긍지를 가져도 좋을만하겠다. 기자라는 직업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기자가 쓴 글을 좋아해서 이 책을 읽었다.  

기자가 쓴 글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내가 읽은 건 문학이나 출판 분야에 한정되었으니 이렇게 역사적 인물을 대상으로 쓴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게다가 저자는 중국 특파원이(었)다. 그러니 기자로 본 연암 연구라고나 할까. 책이 제법 묵직하다. 저자가 왜 주제를 그렇게 잡았을지도 알 것 같기도 하다. 중국 특파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니 과연 기자로서의 연암을 추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불어 기자는 과연 어때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연암은 1737년(영조 13년) 음력 2월 5일 처사 박시유와 함평 이 씨(?)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부 박필균은 지평, 교리 등 벼슬을 했지만 아버지 박시유는 벼슬에 별 뜻을 두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때문에 연암은 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연암 역시도 과거를 포기하기도 했으니 그 점은 아버지를 닮은 듯도 하다. 또 그게 과거를 볼만한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는 과거 시험장에서 답안을 쓰긴 했지만 내지는 않고 과감히 그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고 한다. <과정록>을 보면 그가 쓴 고체시가 하도 기이하고 뛰어나 친구들이 그것을 외웠을 정도라고 하니 가히 천재급 아닌가.  



그는 왜 그랬을까. 원래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므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무언의 항거 수단이었고 그러한 저항을 통해 양반 사회의 이중성과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진정한 선비 정신으로 가다듬고자 했을 것이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 시절이나 이 시절이나 입신양명은 보통 사람의 한결같은 꿈인가 보다. 연암이 멋있는 건, 그는 타고난 배경과 학식이 있음에도 그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했다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연암이 생각하는 기자는 어떤 사람일까.  

읽다 보면 그가 술을 부어 먹을 갈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딱 이것만 읽으면 멋과 풍유가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렇진 않다. 그때 하필 물이 없어 급한 대로 술을 썼던 것이다. 급하게 기록해야 할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필수인 적자생존이란 말은 최근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아니구나 싶다. 그나마 가까이 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도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인간의 기억이 그리 오래지 못하고 누구는 7초 이상을 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던데, 먹이 어디 7초 안에 갈아지는 물건이던가. 휘발되는 자신의 기억력을 어떻게 부여잡았을지 말이 좋아 멋이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에 비해 현대에 들어와서 아날로그 시대 땐 수첩과 볼펜을 썼을 것이고, 지금은 스마트폰을 필수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과연 기자의 적자생존이 그 옛 시대보다 나아졌는지 기자들에게 물어볼 일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고사성어가 있긴 한가 보다. 말안장에서 붓과 벼루를 꺼내 술로 먹을 간다는 뜻의 손주마묵. (그런데 한자사전에선 찾을 수가 없다. ㅠ) 과연 낭만적이다. 연암이 풍유 정신과 적자생존의 정신은 모두 갑이었으니 둘 다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연암의 기자 정신과 글쓰기 정신이다. 

그중에서도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연암이다. 

기자들 사이엔, 'Something about everything, everything abdut something'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기자는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어떤 것은 모두 알아야 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 같기도 하다. '모름지기 기자라고 하면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어떤 분야에서라도 예측 불허의 뉴스거리가 발생하면 언제든 취재할 수 있는 일정 정도의 상식과 교양이 필요하며 달팽이 촉수처럼 늘 안테나를 세우고 기사를 취재할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너럴리스트로서의 기자다. 그리고 이것의 진가는 열하일기가 보여준다.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연암은 어떠한가. 앞서, 과거에서의 제출하지 않은 시험답안을 친구들이 외울 정도라고 했던 것처럼 연암은 박학다식 박람강기(다양한 책을 읽고 기억을 잘함)의 스페셜리스트였다. 대형 르포르타주인 열하일기의 큰 주제는 바로 신진 문물제도 도입과 이용후생을 통한 부민 강국을 모색하는 '조선의 국부론'이었다. 그런 만큼 연암은 탁월한 경제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기자는 과연 어떠한가. 연암 같은 기자 어디 없냐고 찾는 것이 아니다. 과연 오늘날의 기자에게 자기 전문분야는 있는지, 일부러 자기 분야 외엔 다른 것엔 일체의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우물 안의 개구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또 그것은 기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인이라는 사람일수록 외골수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통섭을 외치기도 한다.  



오늘날의 기자를 두고 사람들은 기레기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기자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가짜 뉴스도 많아졌고, 직접 보고 발로 뛰기보다 인터넷 어디선가 있을 법한 기사를 자기 구미에 맞게 살짝 고치고 자기가 쓴 양 하는 기자도 많다고 한다. 또한 진실을 파헤친다는 미명 하에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거나 사람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보도도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내 주위엔 신문과 뉴스 안 보고 산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골치가 아프다는 거다. 그때마다 기자는 한숨을 지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 이런 기자만 존재하겠는가. 분명 좋은 기자도 많을 것이다. 매스컴이란 게 워낙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다 보니 부풀려지고 때문에 좋은 글을 쓰는 기자의 글이 묻힐 때도 많을 것이다. 어떤 기자가 됐건 기사의 기술만을 배우지 말고 기자의 정신을 배웠으면 좋겠다. 연암은 나라의 부국강병과 실사구시를 추구하며 글을 썼다. 어떤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항상 발로 뛰며 현장을 중시했다. 그저 지면이나 겨우 채우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은 기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로 연암에게서 배웠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기자 역시 여느 작가 못지않게 글 쓰기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연암은 법고창신의 작법을 강조했다. 즉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그는 법고만 있어도 안 되고, 창신만 고집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글을 쓰기를 격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암의 시대에도 남의 글이나 베끼거나 글의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사실 오늘 날도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노하우만을 전수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아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글 쓰기에 관한 책은 잘 골라야 한다. 가급적 노하우는 글 쓰기 초보 때 읽고 이렇게 옛 선인들이나 창작의 정신에 대해 다루어 놓은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이건 나도 잘 안 된다.ㅠ)



고백하자면 난 지금 이 책을 다 이해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한 3분의 1이나 이해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못한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두 마리 토끼를 염두했다. 기자의 글을 좋아한다고 했던 만큼 저자의 글을 즐기고 더불어 연암도 알게 되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건 저자가 글이 못 써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연암에 대한 이해가 일천해서다. (솔직히 저자가 조금 더 풀어썼다면 하는 욕심도 없지 않다.) 그래도 내가 저자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건 저자가 정말로 연암을 좋아하는가 보다. 그리고 그런 저자의 자세가 좋았다. 누군가 닮고 싶은 모델이 있어 그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건 단순히 기술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고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번 정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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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2-11-18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저도 무척 좋아해요. 20대부터 꾸준히 읽고 있는데 느낌이 매번 달라요. 박지원 선생은 문이과 통합형 천재가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의 작가도 박지원 선생을 사랑하시는 모양이에요. 이해가 됩니다.^^

stella.K 2022-11-18 18:2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박지원은 잘 몰라서 읽는데 좀 그랬습니다.
mokl2000님은 박지원을 좋아하시니
이 책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정말 저자가 연암을 많이 좋아하는 게 느껴집니다.^^

바람돌이 2022-11-18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지원 좋아해요. 그의 산문을 읽으면 정말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죠.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생각의 지평을 보여주는 분입니다. 고미숙선생인 박지원과 정약용을 비교한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서도 아무리 봐도 매력적인 사람은 연암 박지원입니다. ^^

stella.K 2022-11-18 20:27   좋아요 2 | URL
어련하시겠습니까? ㅎㅎ 그러고 보면 박지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찜만 했습니다. 분발해야겠습니다. 고미숙 선생이 그런 책도 썼군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찜합니다. 좋은 주말보내십시오.^^

희선 2022-11-19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다보니 읽지는 않은 책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연암처럼 써라만 생각났는데, 찾아보니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네요 stella.K 님은 연암한테 관심을 가지고 이런 책을 보셨군요 저는 이름만 압니다 그런 사람이 한둘은 아니군요 연암 박지원이 기자였다니 그 시대 기자였네요


희선

stella.K 2022-11-19 09:49   좋아요 1 | URL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제목 같네요. ㅎ 다산과 연암에 관한 책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연암이 기자였다는 건 이책에서 첨 알았네요. 연암도 연암이지만 기자가 쓴 책을 좋아해서요ᆢ😂
희선님, 좋은 주말요!^^

페크pek0501 2022-11-27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암에게서 문장을 배우는 책을 읽었었어요. 당대 문장가 어쩌고 하면서 홍보했던 책 같아요.
이젠 책 제목도 기억이 꽝, 이네요. 흐흐~~

stella.K 2022-11-27 20:27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그래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기껏 남이 애써 말한 것도 알아 듣지도 못해 딴소리하고.
뭐 이러면서 사는 거죠. 세월 앞에 장사 없다잖아요.
그냥 대충 살기로 했어요.ㅋㅋ
 

0. 조금 쌀쌀하고, 맑음


1. 책 이별식


오늘은 모처럼 동네 주민센터에 보낼 책을 추려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방 한쪽에 쌓아놓은 책을 톡하고 건드렸더니 일부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중에 다시 안 읽을 책을 추렸다. 그렇다고 표가 나지는 않는다. 


코로나 전엔 괜찮은 책은 중고샵에도 팔곤했는데, 중고샵으로 보내든 주민센터로 보내든 꼭 해야하는 일이있다. 그건 책마다 다닥다닥 붙여놨던 북마크를 떼어내는 일이다. 읽을 당시에는 중요한 것 같아서 해놓지만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으니 떼어내야 하는데 그것도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이별식도 된다.   


알라딘제 북마크는 비교적 내구력이 좋아 저렇게 떼어 놓으면 다음 책 읽을 때 재활용이 용이하다. 그런데 재활용되는 북마크 저렇게 붙여놓으니 전선위의 참새 같다는 느낌 안 드나?  

나만 그러나...? ㅋ 




  


2. 기계치

그래서 저렇게 인증샷을 남겨 보았다. 그런데 흑백이다. 어떻게 흑백사진이 됐는지 모르겠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싱글테이크라는 게 있어 눌러 보았더니 여러 장이 연속해서 찍힌다. 그리고 뭐 하나를 눌렀더니 아마도 그때 흑백으로 찍힌 것 같다.

어째든 의도한 것이 아니라 휴지통에 버리려고 했는데 또 보니 나쁘지 않다. 솔직히 좀 폭격맞은 느낌이긴한데 컬러라면 더 적나라하지 않은가.ㅋㅋ 

그 와중에 프레이야님의 책도 보인다.

다시 흑백으로 찍으라면 못 찍을지도 모른다.ㅠ


3. 인기서재 재등극


한때는 인기서재에서 밀려나 본 적이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언제적 이야기던가. 그리고 언젠가 모르게 사라졌다. 그런데 얼마만인가? 재등극하기는. 하도 신기하여 캡처해 남겨본다. 

할렐루야!ㅋㅋㅋ   

   

 알라디너 인기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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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6 2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흑백사진이 분위기가 좀 있죠? ㅎㅎ 눈썰미 없는 저는 북마크 못보고 지나쳤다가 글 읽고 다시 봤네요. 근데 전선위의 참새같지는 않은데요. ㅎㅎ
인기서재 재등극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쭈욱 유지하시길 바라며 화이팅 한사발 보냅니다. ^^

stella.K 2022-11-16 20:28   좋아요 2 | URL
아, 그건 그래요. 컬러였다면 전선위의 참새처럼 보일 거예요.
그점은 좀 아쉽긴한데 저도 흑백사진 좋아해요.ㅋㅋ

에이, 뭐 새삼스럽게...
그냥 알라딘 서재에서 보이길래.ㅋ
예전 같은 열정은 없어진지 오래여유.
그래도 바람돌이님 화이팅 한 사발은 고맙구먼유.^^

북프리쿠키 2022-11-17 14: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네 주민센터 보내는 일도
귀찮고 번거로울텐데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텔라님을 보고 또 한번 절 돌아보게 합니다 ㅎ

stella.K 2022-11-17 15:02   좋아요 3 | URL
ㅎㅎ 아뮤, 부끄럽습니다.
그것도 코로나로인해 3년만에 하는 일인 걸요.
저도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중고샵에 나가 팔기도 할 텐데
이제 그짓은 못할 거 같습니다.
대신 낡은 책은 버리고 상태가 좋다 싶은 건 마트나 산책 나가는 길에
주민센터에 보내려구요.
그렇게 자리를 내야 또 새로운 책을 채우죠.
다 꿍꿍이 속이 있는 거랍니다.ㅋㅋ

페크pek0501 2022-11-27 14: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인기서재 등극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어떻게 아는 건지요?

저는 이달 초에 25권을 책장에서 빼서 버렸답니다. 다시 읽지 않을 책 같아서요.
그런데 버린지 모르고 찾을까 봐 ‘버린 책 리스트‘도 작성해 놨어요. 노트 뒤에. 이젠 제 기억력을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stella.K 2022-11-27 20:45   좋아요 2 | URL
앗, 모르셨어요? 알라딘 서재 들어가시면
왼쪽 중간에 ‘알라디너 인기서재‘ 나와요.
F5 새로보기 누르시면 조금조금씩 누가 인기서잰지
바뀌어요.
이날 이후 전 또 인기서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요.
제가 그렇지요 뭐.ㅋㅋ

저도 주민센터에 몇권 보내긴 했는데
아직도 다시 안 볼 책들이 많아요.
넘 오래된 책들은 버리고 상태가 괜찮은 책들은
또 보내려고요. 보내긴 하는데 밑줄친 책들이 있어
그게 좀 걸리긴 해요. 뭐 밑줄 거서 열람할 수 없다면
알아서 버리겠죠.
근데 오래 전 가서 보니까 제 책이 열람실에 꽂혀있긴 하더군요. ㅎㅎ

저도 버린 책 리스트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데
게을러서 안하고 있어요. 어느 날 문득 무슨 책이 필요해서
있나 찾다 없으면 보냈구나 하면 되는데 좀 놀라긴하겠죠?
그땐 뭐 다시 사던가 주민센터에서 빌려보던가 그래야죠.
정말 책이란 살 때만 좋지 애물단지어요.ㅠㅠ

mini74 2022-11-30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축하드려요. 뜸한 사이 이렇게 좋은 소식이 ~ 저도 흑백사진이 더 이별정서에 와닿는거 같아요 ~

stella.K 2022-12-01 13:24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하지만 뭐 제가 게을러서 다시 인기서재에
등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ㅠ
흑백사진 아련하고 좋죠?
그런데 저 사진은 흑백이어서 더 폭격 맞은 느낌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ㅋㅋ
 

0. 대체로 흐린 하루였으니 오후 들어 맑아짐.


1. 다롱이가 왔다. 진짜 온 건 아니고 꿈속에서. 꿈이 너무 생생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근데 두 번 다 모습은 볼 수 없고 녀석이 내 이불속에서 꼬물거리기만 했다. 


녀석이 어렸을 때 몇년간 밤이면 내가 데리고 잤다. 그러면 이불속에서 자다가도 꼬물대곤 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한 것이다. 자는 중에서 녀석이 어떻게 왔을까 신기했다. 그 꿈을 깨고 어찌나 허무하던지. 


그리고 이틀만에 또 다시 꿨다. 이번엔 녀석이 내 어깨있는데서 꼬물락 거린다. 그때는 꿈속에서 나도 알겠다. 이건 꿈이야. 빨리 깨어나야 한다고. 나 스스로가 말했고 다행히도 곧 꿈에서 깨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노모에게 말했더니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하는 말. "거 개꿈이네." 한다. 나는 조용히 밥을 먹었다. 내가 가을을 탄다.


2. 

무슨 책이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평소 기자의 글에 관심이 많아 겁없이 덤빈 책인데 깨갱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모처에서 협찬 받은 책이라 리뷰를 쓰긴 해야겠는데 뭐라고 써야할지 좀 막막하다. 딱 하나 인상 깊었던 건, 박지원이 취재를 의해 글을 써야하는데 지필묵은 있는데 물이 없다. 그러자 술은 있어 물 대신 술을 벼루에 부어 묵을 갈아 글을 썼다고. 이 대신 잇몸이라고 그런 기지를 발휘하다니. 괜히 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외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 아무래도 연암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는데 그건 욕심이었다. 아까 낮에 백탑파가 언급됐길래 못다 읽은 김탁환 소설이나 다시 읽을 걸, 내 주제에 무슨 조선 대기자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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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1-14 2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 대신 술이라니! ˝좀˝ 보다 더 많이 멋진데요^^ 박지원말고도 왠지 옛 시절, 그리했던 이들이 더 있었으리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

stella.K 2022-11-15 09:52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워낙 풍유를 좋아하는 양반이니 물은 없어도 술은 있었겠죠? 역시 멋있는 양반입니다.^^

초란공 2022-11-15 00: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말 잘 보내셨나요? 오래간만에 뵈요! ^^ 저도 연암 선생이 고북구 장성 어느 담벼락에 술갈아서 낙서한 대목을 가장 좋아합니다. 고북구 장성에도 가보앗는데 도대체 이 양반은 어디에다 낙서를 했을까요 ㅋㅋ

stella.K 2022-11-15 10:00   좋아요 3 | URL
앗, 오랜만에 오셨네요.^^
고북구 장성이면 전라도인가요? 대단하시네요. 거기도 다녀오시고. 저는 잊고있던 백탑파 나오니까 김탁환의 월하광인인가? 그게 읽고 싶어지더군요. 김탁환은 제가 유일하게 전작하고 싶은 작가거든요. 저도 가보고 싶네요. 고북구.😊

호우 2022-11-15 07: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흥미를 끌긴 하네요. 그런 경우가 종종 있는 거 같아요. 제목이 흥미를 끌어서 표지가 시선을 끌어서 펼치게 되는 책들. 막상 읽어보니 생각보다 재미가 없거나 지루하거나 해서 이걸 끝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물 대신 술을 부어 먹을 갈다니 좀 낭만적이네요.

stella.K 2022-11-15 10:05   좋아요 3 | URL
네. 맞아요. 그런 책있죠.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이책은 잘 쓴 책 같아요. 근데 제가 워낙 연암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보니 이 사단을 맞은 것 같습니다. 나중에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또 그런 책 있잖아요. 당시엔 잘 안 읽혔는데 시간가서 읽으니 좋은거. 그렇게되길 바라며.^^

mini74 2022-11-15 0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씨가 취해서 비틀거리진 않았을까 혼자 웃어봅니다. 개꿈은 맞는데 그리운 개꿈이네요. 오늘날이 찹니다. 따시게 입고 다니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stella.K 2022-11-15 10:12   좋아요 3 | URL
ㅎㅎ 전 거기까진 생각 못했는데 역시! 전 오히려 먹이 제대로 갈릴까?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ㅋ
다롱이는 죽었을 당시엔 슬픔과 편안함이 교차했는데 지금은 온전히 그리움만 남네요. 가끔 녀석의 털 촉감이 그립더라구요. 목욕 막 씼기고 드라이로 말려주면ᆢㅠ
미니님도 따신 하루요~😊

프레이야 2022-11-16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구 다롱이 생각 많이 나시나 봐요. 몸이 기억하는 거죠. 고 작은 게 이불 속에 들어와 저의 맨발에 털이 닿는 촉감 넘 따시하고 부드럽고 그냥 사랑이지요. 울집은 냥이지만 비슷하겠죠 ^^. 가을 타시나 봅니다 ㅎㅎ
연암 안 그래도 멋진데 술을 물 대신. 전 술을 물 대신 마시는 걸루다가 좋아하는데 요샌 마시면 다리가 아픈 거 같아 와인 조그만 마십니다. 오늘도 날씨는 너무 좋으네요. ^^

stella.K 2022-11-16 13:3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 거겠죠? 녀석을 데리고 잔 건 그리 오래지 않죠.
처음 한 5,6년...? 버릇을 들여 놓으니까 밤에 지가 알아서
제 방을 찾아 오는 게 기특하고 신기했어요.
근데 제가 녀석한테 코 꿰었네요. 울컥~

술 좋아하시는군요. 역시!
하긴 우리가 갱년기잖아요. 몸조심해야할 때죠.
리뷰 써야하는데 이러고 있네요.ㅠ

레삭매냐 2022-11-16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이고 곧 겨울이네요.

리뷰의 압박!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읽고
쓰는 리뷰와 압박 리뷰는
차원이 다르지 않나 싶습
니다.

전 위화의 신간을 읽습니다.

stella.K 2022-11-16 14:08   좋아요 0 | URL
전 왜 겨울이 오지 않나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생각해 보니 아직은 11월. 가을이더군요.
모기도 안 죽어요.
그래도 11월 말 되면 정말 춥겠죠?
최근 몇년간은 겨울이어도 별로 춥지 않아 올해도
그러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위화의 신간이 나왔군요. 그레이엄 그린의 <코미디언스>
북펀딩하던데 안 하시나요?^^
 

0. 맑은데 미세먼지 나쁜 하루


1. 지난 주말 모처럼 친구들을 만났다. 요즘엔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신나고 즐겁다. 특히 그 모임엔 20여년만에 만나는 친구가 나왔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우린 교회 청년부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말하자면 청년부 동창회라고나 할까. 


이렇게 친구 하나가 새로 합류하게 되니 청년부 때 추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렸고 그렇게 옛일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린 정말 젊어지는 느낌이었다. 왜 그런 심리학 실험도 있다지 않은가. 서로 알고 지내는 노인들에게 젊었을 때 즐겨 입었던 옷을 입고, 젊었을 때 살았던 집에 살게 했더니 진짜 젊어졌다고. 당연한 거 아닌가. 뭐 꼭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젊었을 때 만났던 친구들과 옛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친구들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무슨 얘기 끝에 내가 요즘 애들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성격상 아이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엔 아이들을 보면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그러자 친구들이 하는 말이 참 다르다. 젊었을 때 이런 얘기를 하면 시집 갈 때가 돼서 그런 거라고 얘기하겠지. 그런데 지금은 너도 나이를 먹는구나 한다. 하긴 내가 지금 가임기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는 친구를 탓하랴, 가는 세월을 탓하랴. 


2.이태원 압사 사고 같은 사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겠지만 그건 그저 바람일뿐이지 그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늘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사고를 요리조리 피하고 무사히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 생각하기 싫지만 그래도 대비를 해야 한다.


나도 지난 월요일 아침 뉴스를 보다 알았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에 만일의 응급 상황을 위한 방책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즉 스마트폰 <설정>에 들어가면 '안전및 긴급'이란 항목이 있다. 그리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의료정보, 재난문자'라고 써 있다. 그것을 누르면 '의료정보'라는 것이 제일 먼저 뜬다.(나의 휴대전화는 그렇다. 갤럭시폰이라면 다 그렇지 않을까.) 거기에 자신의 기본적인 의료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이를테면 혈액형, 현재 무슨 약이나 치료를 받고 있는지. 무엇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지를 기입할 수 있다. 


또한 그 밑에 긴급 연락처가 있다. 거기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했을 때 누가 나를 대신해서 연락을 해 줄 수 있는 연락처를 입력할 수 있다. 난 우리집 전화번호와 가족중 한 사람의 이름을 기입했다. 물론 죽을 때까지 이런 연락은 하지 않게 되길 바라지만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일 아닌가. 이건 휴대전화가 잠겨 있어도 연락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연락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참사 사고에도 3백명 넘는 사상자가 났지만, 4천 통이 넘는 전화가 몰렸다지 않은가. 이런 거 미리 해 두면 혼선을 조금은 줄여줄 수도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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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9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휴대폰에 이런 기능이 있는줄 몰랐네요. 지금 제 휴대폰 보니까 있어요. ^^
남편한테도 얘기하면서 야 우리 이거 넣어놓자 이러고 있어요. 이걸 쓸 일이 없는게 제일 좋지만 정말 사람일이란걸 알 수가 없으니말이죠.

2022-11-09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22-11-09 2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기능 아이폰에도 긴급구조설정으로 들어가면 있어요. 전 지금 확인해 보니 해뒀네요. 사람 일 진짜 모르겠고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니 필요할 수 있겠어요.
청년부동창 만나 20년 젊어지며 즐거웠겠어요 스텔라님.

stella.K 2022-11-10 09:5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때 제가 그 뉴스를 봤기에 망정이지 저같은 기계치는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나이 드니 젊었을 때 기억이 간절할 때가 많더군요. 정말 즐거웠어요.^^

Falstaff 2022-11-10 0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혈액형 A+,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군요. ˝심폐소생술 하지 말아 주세요. 생명연장 시술 사양합니다.˝
긴급 전화번호는 아이들하고 며느리만. 아내는 뺐습니다. 너무 깜짝 놀라서 숨 넘어갈까봐요. ㅋㅋㅋ

stella.K 2022-11-10 09:58   좋아요 2 | URL
A형이라굽쇼? 저는 문트님 O형이실 줄 알았는데. 하긴 문트님 은근 까칠남이시잖아요.ㅋㅋ
저도 얼마전에 안 건데 생명 연장시술이 문제가 많더군요. 과연 생명연장시술을 안할지 모르겠지만 저도 추가해 놨습니다.
저도 노모가 계셔서 우리집 전화는 안 썼습니다. 집 전화는 무조건 울엄마가 받으시거든요.

페넬로페 2022-11-10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휴대폰에 이런 기능이 있군요.
당장 설정 들어가야겠습니다^^

stella.K 2022-11-10 18:03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도 모르셨군요.
잘하셨습니다.^^

레삭매냐 2022-11-16 1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방송에서 들으니,
바로 표가 나지 않는 예산
들을 모조리 삭감하고 있
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안전 비용 같은
거지요. 항상 드는 생각이
지만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못 막는 짓을
하고 있지 싶습니다.

옛친구들을 새로 만난다는
표현이 있더군요. 저도 지
난달에 오랜 친구들을 만나
니 그냥 좋더군요.

stella.K 2022-11-16 14:08   좋아요 1 | URL
지금 돈을 물 쓰듯 쓰고 있잖아요.
코로나도 그렇고, 이태원 참사도 있고.
그러니 그런 것에서 삭감 안하면 어쩌겠어요?
그렇게 써도 괜찮은 건지 그걸 모르겠더군요.

그날 식구들 밥만 아니었으면 더 있다오는 건데
밥 해 주러 가야한다니까 친구들이 막 웃더군요.
저한테 안 어울린다면서.
저는 손 끝에 물도 안 묻히고 사는 줄 아는가 봐요.
참말로 좋으셨겠어요.^^

mini74 2022-11-30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들어가보니 이미 되어 있네요 저도 기계치라 폰은 그저 전화 문자 검색 ㅠㅠ
 

이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눈물을 자아내는 영화일 것이 분명해 보이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의외성이 강했다. 우선 생각보다 최루성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고, 스토리는 그다지 새로워 보이진 않는데 담백하다. 새로워 보이지 않는 대신 과연 이런 엄마가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이를테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남아선호 사상에 남아 있지 않은가. 더구나 배경이 전라도 깡촌이다. 그렇다면 그 보수적 경향 때문에 여느 엄마라면 아들을 더 끔찍이 여겼을 법한데 영화는 반대로 딸을 더 끔찍이 여긴다.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불면 날아갈까 그런 애지중지가 없다. 


나름에 이유는 있다. 

엄마가 이 영화의 화자인 지숙을 낳기 전 얼굴도 모르는 언니를 낳았지만 얼마 안 있어 죽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자신이 태어났는데 엄마가 거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퍼붓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지숙의 남동생은 거의 학대에 가까운 수준으로 구박을 한다. (아들이야 구박은 해도 그 기저엔 남아선호가 깔려 있으니 그러려니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만하면 엄마의 딸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돈지 짐작이 갈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서사를 따라가기보단 인물에 집중해 보는 것이 좋다. 엄마 역의 김혜숙 배우의 연기가 단연 압권이다.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는 건 이미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입증한 바 있으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시골 깡촌의 촌부 역을 그야말로 찰떡 같이 소화해 낸다. 그녀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하다.


      

    우리네 엄마들은 왜 그렇게 바리바리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시는 건지...



이 엄마의 딸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하냐면, 원래 종교가 천주교다. 신부에게 고백성사를 하는데 딸을 그렇게 지켜주고 싶다면 묵주나 십자가 목걸이라도 해 줄 일이지 자꾸 부적을 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죄라는 걸 아니 자꾸 고백성사를 하는 것이다. 신부는 그러면 안 된다고 단단히 충고하려 하지만 답답증에라도 걸린 걸까? "아, 신부님도 아를 낳아 보쇼. 내 맴을 알텐께. 아참, 신부는 결혼을 안 하니 아를 못 낳제. 그러니 나 마음을 알리 없지." (뭐 이 비슷한 대사를) 하며 속죄소를 박차고 나간다. 



그만큼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나 같으면 그런 사랑 줘도 안 받고 숨이 막힐 것 같은데 적당한 사랑만 준 울 엄마가 얼마나 고맙던지. 솔직히 요즘에 과연 이런 엄마가 있나 싶다. 할머니라면 가능할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지숙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주니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 못지않게 엄마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정말 나만이 하는 사랑이다. 그렇게 사랑하면 누구에게 말해도 부끄럽지 말아야 하는데 지숙은 촌스러운 엄마가 자기 엄마라는 걸 차마 남에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학부모 참관수업을 위해 나름 학교에 조신히 차려입고 온 엄마를 거의 쫓아 보내듯 돌려보낸다. 문득 이 지점에서 난 그 옛날 나의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학급 환경미화를 위해 물품을 준비해야 했는데 조그만 나의 몸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 나는 학교에 먼저 가고 엄마는 마침 집에 와 계신 외할머니를 시켜 그 물건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퀵을 시켰겠지. '학교에 누구를 보내겠다고? 외할머니를...?'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내가 외할머니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누구한테 내보일 만큼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나름 오랫동안 한복에 쪽진 머리를 하고 계셨다. 

그때 외가가 부천에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곳은 꽤 시골이었다. 시골이야 나이 든 여성들이 한복에 쪽진 머리가 흔했으니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는데 문제는 할머니가 그다지 예쁜 스타일은 아니었다. 입도 크고, 코도 큰 그야말로 여장부 스타일이라 가끔 뵈면 어린 마음에도 놀라곤 했다. 물론 그건 할머니가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면 이내 가려지곤 했지만 그게 또 남의 눈도 가릴 만큼은 아니었으니 누가 할머니를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어린아이의 눈도 눈 아니겠는가. 


할머니는 학교에 5분도 채 계시지 않았을 것이다. 물건만 담임 선생님께 바로 넘겨 드리고 가셨으니. 그런데 왜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지. 아마도 그때가 내가 위선을 처음으로 경험한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날 집에 돌아와 할머니한테 얼마나 미안했던지.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가 떠오르면서 영화 속 지숙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사랑하면 신도 시샘을 한다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자신의 사랑으로 딸이 승승장구하고, 시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해 토끼 같은 손녀도 낳아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싶을 때 하필 딸이 췌장암에 걸린다. 처음엔 아무런 이유 없이 혼자 친정에 온 딸이 그저 반가울 뿐이었는데 사랑하면 직감은 더 예민해지는 법이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는 것도 수상하지만 결정적인 건 딸이 욕실에 들어간 사위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그 후 지숙의 투병과 이를 간호하는 엄마를 통해 모성을 보여주려 했다면 그렇고 그런 뻔한 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제 보면 다시 못 볼 엄마를 만나고 기차에서 헤어지고 바로 딸의 장례식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딸을 먼저 보낸 엄마의 절절한 슬픔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본지 하룬가 이틀 후에 이태원 압사 사고를 뉴스를 통해 접했다. 처음에 그 보도가 참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나름 치안이 잘 되어 있다고 하는 나라. 밤을 낮 삼아 돌아다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몇안 되는 (아마도 거의 유일할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16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났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차라리 세월호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람이 다니는 좁은 골목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압사 사고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다소 못 살고 후진 국가라면 이해할 것도 같다. 이런 선진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뉴스는 건조하라만큼 사고 경위와 사상자를 보도하고 있는데 눈에선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 흘렀다. 내가 이 정돈데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내가 이런 소식을 접하려고 그 영화를 봤던 걸까?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2, 30대의 피해가 가장 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생각이 전혀 도움은 안 된다는 걸 알지만, 하나 아니면 둘 낳는 시대에 그들의 부모는 어떤 자식에게서 이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을까. 그 자식을 가슴에 묻기까지 또 얼마나 가슴 쓰리고 참혹한 시간을 보내야 할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영화는, 엄마가 딸의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엄마의 일상은 이미 예전의 일상과 같지 않다. 이제까지의 일상은 사랑으로 충만한 일상이었다면 앞으로의 일상은 하늘나라에 간 딸을 만나기 위한 부서진 일상을 사는 것이다. 영화는 저 세상으로 간 딸에게로 가기 위한 첫날을 세는 것에서 끝이 난다. 

오늘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며칠에 해당하는 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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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1-04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보고 엄청 울었던 영화에요. 지금 일이 있어 시청에 왔더니 합동분향소가 있네요. 헌화했습니다. 많이들 찾으시네요.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보고 말하고 걱정하는 관점이 어찌나 제각각 다른지 놀랍고요. 그게 당연하겠지만요.

stella.K 2022-11-04 14:10   좋아요 1 | URL
역시 보셨군요.
전 의외로 담백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ㅠ
관점이 다르니까 할 얘기도 많은 거겠죠?
김혜숙 씨 연기가 참 인상적이더군요.

시청에 오셨군요.
그래도 슬픈중에 위로가 되는 건
이렇게 시민의 한 사람으로 알지도 못하지만 같이 슬퍼한다는 거겠죠.
현장에선 심폐소생술도 같이 했다고 그러고.
잘 하셨네요.^^

프레이야 2022-11-04 15:23   좋아요 0 | URL
아뇨 영화는 담백하고요. 이번 사건 사고를 두고 보는 초점과 하는 말들이 다양해요.

stella.K 2022-11-04 16:50   좋아요 0 | URL
이크, 제가 오독했네요. 제가 이렇습니다. ㅠ

바람돌이 2022-11-04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부님과 엄마의 대화가 재밌네요. 우리 옛날 어머님들 진짜 딱 저러셧을걸요.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은 어떻게 해도 극복이 안될거 같아요. 이태원사건 이후 계속 우울해서 무슨 말을 하기도 어려웠는데 아마도 제가 나이가 들어 희생자분들의 주 연령대가 우리집 애들 나이이다 보니 더 참담해지는듯 합니다.

stella.K 2022-11-04 16:57   좋아요 1 | URL
뭐 그만큼 딸을 사랑한다는 표현일텐데 재미있죠? 저는 이제 저의 엄마를 말리지 않습니다. 정말 이고 지지 못 할 때가 올 테니까. 대신 지난번처럼 정류장에 나가 있으려구요. 운동삼아서. ㅋ
맞아요. 다 비슷한 연령대 부모, 자식들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죠. 영화도 이런 식으로 연결이되고. 에고~ 그냥 한숨만 나오네요.ㅠ

라로 2022-11-04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뭐 그건 그렇고, 쭉 읽어 내려오면서 묵직하게 글을 쓰셔서 그런가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 생각은 못했는데 이태원 사고의 희생자들의 부모에겐
어쩌면 단 하나인 자식일수도 있겠군요.ㅠㅠ
자꾸 알아갈수록 참담한 마음입니다.

stella.K 2022-11-04 17:01   좋아요 0 | URL
자식이 열이 있어도 한 자식 없으면 다 마음 아픈거죠. 근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 죽어간 분들의 부모는 어떻게 사나 걱정이되더라구요. ㅠㅠ

페넬로페 2022-11-04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보면서 울 것 같아요.
자식을 먼저 보내는 상황은 언제나 슬프고 힘들잖아요.
세월호도, 이번 이태원 참사도 젊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안타까운 맘이 크지만 그들을 잃고 비통해 할 부모의 마음까지 생각되어 더 맘이 무겁네요^^

stella.K 2022-11-04 19:1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 영화 지금은 보지 마세요.
저는 사고 전에 봐서 그냥 담담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일이 있고 보면 슬퍼질 것 같아요.
울고 싶을 때나 덤덤할 때 보세요.
2, 30 때면 한창 예쁘고 보기 좋을 땐데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어갔다는 게 넘 마음이 아프네요.
다신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이죠.ㅠ

2022-11-07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7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