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의 전성시대 (HD텔레시네) - [할인행사]
김호선 감독, 염복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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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은 많이 들어봤다. 유명한 조선작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 1975년도 작이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려 보지 못하고 이제야 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이 작품이 꽤나 야한 작품인 줄 알았다. 일명 포르노. 그런데  지금 보니 그다지 야한 영화도 아니다. 야하다면 때밀이를 하는 남자 주인공 창수(송재호 분)가 영자(염복순 분)를 자신이 일하는 목욕탕으로 불러 등을 밀어주는 장면 정도랄까? 그것도 앞에 가릴 건 타올로 다 가리고. 등급도 15세 관람가다. 하긴, 예전엔 포르노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등급이 세분화되지도 않았거니와 흥행을 생각해 의도적으로 야한 영화로 몰아갔는지도 모른다

 

포스터가 좀 조악한 것도 사실이지만 예전엔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의 포스터를 사람이 일일이 그리기도 했으니 당시로 저 정도의 그렸다면 잘 그린 축에 속한다. 또한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묘한 느낌도 들면서 여자를 상품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아니면 사회 분위기에 따라 영화 포스터를 보는 시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용은 야하다기 보단 오히려 사회 비판적 요소가 강해 보인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산업화와 더불어 페미니즘 또는 사회 불평등이란 관점에서 얘깃거리가 많아 보인다.


70년 대는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던 때이기도 하지만 그건 산업화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 산업화가 과연 좋기만 했던 것인가에 대한 단적인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왔고, 그에 따라 도시화는 한층 속도를 내기도 했다. 또한 거기에 편승에 시골 처녀들도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기도 했다. 그런 여자들이 가는 곳은 공단 아니면 버스 안내양이나 부잣집 가정부고, 번 돈은 쓰지 않고 시골집에 부쳤다. 그 역을 맡는 건 대부분 시골집 맏딸이 대부분일 것이고, 그들은 동생들이나 오빠의 학비를 대며 가정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못 견디거나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벌겠다면 술집으로 빠진다.  


어찌 보면 우리의 영자는 바로 이런 정 코스를 밟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잣집에 가정부로 도시살이를 시작했으나 주인집 망나니 아들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결혼을 꿈꿔으나 해줄 리 없어 그 집을 나와 버스 안내양으로 취직하지만 사고로 불구의 몸이 된다. 결국 자신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형질의 인긴이라는 걸 알고 그때부터 몸을 팔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막살 때마다 가정부 시절 우연히 알게 된 창수가 구원남으로 나타나곤 한다. 도시라고 해서 망나니 짐승만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알뜰히 돌봐주며 영자와의 결혼도 꿈꾸는 순정남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고아에 힘없는 주변인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그 시절 있을 법한 두 남녀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사회 고발적 의미도 있다. 왜 여자는 돈을 벌면 불행해져야 하는가. 요즘 같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지만 당시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여자는 그저 남편의 그늘에서 자식 낳고 가정 건사를 잘하는 것이 미덕인 양 했던 때가 있다. 하지만 산업화의 물결이 여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여자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이 영화엔 다분히 남성주의 시각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영자의 가정부 시절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요즘 같으면 성폭행을 성폭행이라고 말하겠지만 그 시절은 무조건 가해자 보단 피해자 더 피해를 본다. 문득 대척점에 있는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 생각났다. 톨스토이는 오히려 남자가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회개도 하더만, 문제작이라고는 하나 그런 양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역시 톨스토이는 톨스토이다 싶다.


엔딩도 그렇다. 창수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자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뭐 거기까진 그럴 수도 있다. 영자는 자기 자신을 너무도 잘 안다. 창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엔 자신은 너무나 흠도 상처도 많다. 자살의 충동을 이기고 자신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좋다. 그런데 동병상련이라고 신체부위는 다르지만 같은 불구자와 결혼을 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는 건 다소 억지스럽다. 과연 영화 어느 부분에 영자가 전성시대를 누렸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돈을 좇아 서울 상경을 했다는 죄로 지지리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을 창수란 구원남이 있어 전성시대라는 걸까? 아니면 천신만고 끝에 비록 불구라고는 하지만 착한 남자 만나 아이 낳고 잘 살게 된 게 전성시대라는 걸까.


정말 영자가 전성시대가 되려면 남자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 성폭력을 치료할 수 있며, 응당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법적인 제도가 이루어져야 하며 무엇보다 영자가 자기다운 삶을 살아야 전성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70년 대 영자들은 전성시대를 맞지 못했으며,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작품이 갖는 의의가 있긴 하지만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2천 년 대 영자의 전성시대는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옛날 영화를 본다는 건 묘한 매력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의 리즈 시절을 보는 재미도 있고,  지나간 시대를 엿보고 옛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염복순 배우를 기억할 사람이 있을까. 이름이 그래서일까? 나름 요염한 데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도 어릴 때 본 배우라 나는 이 배우가 한창 활동했던 끝자락에서 기억할 뿐이지만 나름존재감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조금 더 인기를 얻어도 좋았을 텐데 70년대 일명 여배우 트로이카라던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에 가려 스크린에서 일찌감치 잊힌 배우는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70년대 말 정도까지 활동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것 같다. 누구는 가수 이효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얼핏 비운의 배우 이은주 느낌도 난다. 물론 여성스럽기는 이은주이지만 선 굵은 연기는 염복순이 앞선다. 내친김에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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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8-27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본 적이 없어서 상품 페이지를 찾아 보았는데, 출연자 중에 송재호와 최불암이라는 요즘도 유명한 분들도 계시네요. 이 영화가 1970년대 영화라서 볼 기회가 없었고 잘 몰랐어요. 오래 전 영화니까 요즘 영화와 많이 다르겠고, 그 때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과 지금 사람들의 생각이 다른 것 만큼의 차이도 있겠지요. 그런 것들 생각하면서 보면 예전 영화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리뷰 잘읽었습니다.
stella.K님, 좋은 하루되세요.^^

stella.K 2019-08-28 14:59   좋아요 1 | URL
사실 요즘 영화를 생각할 때 되게 낮설고 어색한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그 시대의 정서나 감정들을 고려해서 보면 나름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송재호 최불암뿐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서니님 잘 모를지도 모르는데 도금봉과 박주아 아줌마도 나오죠.
70년 대 조연 전문 배우로 유명했습니다.
혹시 기회되시면 서니님도 함 보세요.^^

니르바나 2019-08-2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니르바나는 <영자의 전성시대>를 극장에서 관람하였습니다.
이장호감독의 <별들의 고향>과 함게 수십만명이 극장을 찾아
관객수를 시대 지수로 조정하면 천만 영화의 계보에 해당될 작품이었구요.
제 기억이 정확한지 자신없지만,
소설가 조선작이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을 극본화했던 작품입니다.
염복순은 그 후로도 여러편의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 작품이 워낙 유명해서 다른 대표작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알려주신 대로 소리 소문 없이 지내서 궁금합니다.
지금 연세가 꽤 되었을텐데요.


stella.K 2019-08-28 15:08   좋아요 0 | URL
염복순 배우를 아시는군요. 반가운데요?
나름 매력있는 배운데 잊혀져 아쉽더라구요.
그 시절 여자들은 결혼하면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라 그녀도 결혼하면서 그만두지 않았나 싶어요.
언제부턴가 왕년의 배우들이 활동을 안하는 게 못내 아쉽더라구요.
그런데 니르바나님 왕년에 충무로 좀 누비고
다니셨겠는데요?ㅎㅎ

hnine 2019-08-2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으로 읽었습니다 극장엔 출입할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에 ㅋㅋ
저 기억해요 염복순이라는 배우. 지금 뭐하는지 궁금하네요. 탈렌트로 TV에도 나오던 배우였는데요. 입가에 점이 매력적이던.
김호선 감독은 장미희가 나온 <겨울여자>의 감독이기도 할걸요 아마.
stella님, 옛날 영화를 종종 찾아보시는것 같아요. 덕분에 저도 stella님 글 읽으며 옛날 추억에 잠길 수 있어 좋습니다.

stella.K 2019-08-28 15: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거 개봉 당시엔 미성년자 관람불가였을 거예요.
저도 이번에 영화 보면서 책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엔 영화가 시큰둥합니다.
하다못해 그 유명한 <기생충>도 전 아직 안 봤어요.
그래도 아주 알 볼 수 없으니 올레 TV에서 보여주는
옛날 무료 영화들을 가끔씩 보고 있어요.
보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하죠.흐흐

cyrus 2019-08-29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자가 결혼한 남자가 장애인으로 설정한 점. 이 점이 흥미롭네요. 요즘 제가 하고 있는 페미니즘 공부의 주제가 장애학과 관련이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안 봐서 결말에 대해서 의견을 내기가 어렵네요.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장애인 남성과 비장애인 여성의 만남. 관심 가져볼만한 주제인 것 같아요. ^^

stella.K 2019-08-29 19:02   좋아요 0 | URL
아냐. 둘 다 장애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 하잖아.
장애자들끼리도 그렇게 하지. 사실 그건 엔딩에 잠깐 나올 뿐이고
그래도 이 영화는 여성사의 관점에서 봐 줄만한 영화라고 생각해.
글치않아도 보면서 네 생각 잠깐 났어.
기회되면 함 봐봐.^^

cyrus 2019-08-30 07:44   좋아요 0 | URL
제가 글을 제대로 보지 못했네요.. ^^;;

transient-guest 2019-08-30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영화나 책을 보면 그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당시의 성인식, 사회상, 사고 등등. 그려내고자 한 건 아마 산업화의 그늘 같은 주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만...

stella.K 2019-08-30 14:34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래서 가끔 옛날 영화 보면 옛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곤 하죠.
70년대 영화들이 산업화의 그늘을 다룬 작품이 많긴하죠.
안 그래도 그 시대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옛날 영화 안 본 것들이 많은데 보기가 쉽지 않네요.ㅠ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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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의 책을 읽으니 내 안에 책 읽는 뇌가 모처럼 세로토닌이 발산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읽으면서 문득문득 이윤기처럼 살면 좋겠다 싶다. 인생을 흔히 고해니 고통의 연속이니 하며 세상 못 살 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꼭 그러기만 하겠는가? 인생은 유레카다. 발견에서 기쁨을 누리고 희열을 느끼는. 그런 것 없이 재미없어 어찌 살겠는가.


그는 책에서 자신에겐 행복한 징크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꼭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과 환경이 생긴다고 했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작가와 번역가로서 어떤 책이나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꼭 출판사로부터 그 분야에 대한 번역이나 조사를 의뢰받는다고. 원서를 정독할 절호의 기회가 생기고,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즐거움에 출판사에선 돈까지 준다고 하면서 '책 읽기', '책 옮기기'에 관한 한 자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쯤 되면 그는 꽤 행운아처럼 느껴진다.


이왕 행운아란 말이 나왔으니 잠시 생각해 보자. 그거 왠지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만 같다. 그렇지 않은가? 남은 그렇게 좋은 일이 많이도 생기는데 나만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행운도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 이윤기는 자신이 그럴 수 있기까지는 어느 정도 떠들고 다닌다고 괄호 쳐 놓고 얘기한다. 작가의 괄호 친 말은 보통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참고로 밝혀둘 때 쓰이기도 한다. 우린 바로 이런 괄호 쳐 놓고 하는 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행운이라는 것도 그냥 가만히 있는데 굴러들어 오지 않는다. 그것도 알고 보면 준비된 자에게 들어온다. 그러니 행운을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떠들어라. 그래야 행운이 알아듣고 그 사람에게로 갈지 모른다.


그런 것을 보면 난 왠지 작가가 인생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겸손하게 말해 '행복한 징크스'란 것이지 알고 보면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가는데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즉 좋게 말하면 책략가고, 나쁘게 말하면 꾀돌이라고나 할까.


거기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야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관심 있어하는 쪽은 늘 책이었다. 그는 60년 대 초 한 출판사에서 초등생을 겨냥한 각각 100권짜리 소설 전집과 위인 전기을 읽으면서, '일찍이 나에게, 장차 무슨 짓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고 술회한다. 그의 입말이 참 좋다. 무슨 짓을 하면서, 어떻게 사냐니. 


그러고 보면 꽤 일찍 발견한 것 같다. 그것을 발견하고 가슴은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그리고 그건 훗날 번역으로, 신화 연구로, 소설가로 아깝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직함으로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지만,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기는 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와 움베르고 에코의 여러 소설 그중에서도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희랍인 조르바>의 번역은 그 말고도 몇 명의 번역자들이 더 있다. 그리고 이윤기를 포함해 대부분 영역을 번역한 것으로 아무리 번역이 뛰어날지 몰라도 중역의 오명을 피하지 못한다. 게다가 완역본도 최근에야 나왔다. 물론 난 아직 그 누구의 번역본으로도 읽지 못했지만 그 누구의 번역본을 읽는다면 이윤기 번역본은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그의 번역본이 갖는 아우라가 결코 작지 않으며, 그 역시 그 소설은 자기 문학의 '성서'라고까지 했다. 그러니 이윤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번역본을 읽지 않는다면 그건 그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또 그래서일까? 이윤기에게서 왠지 조르바의 느낌도 나는 듯하다.(나는 책으로는 못 읽었지만 영화로는 봤다. 영화 속 조르바 역을 맡은 앤서니 퀸은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에서 조르바의 그림자를 느낀다는 건 엉뚱하게도 그가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 번역을 언급할 때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당연 이태리어로 글을 썼겠지만, 그는 이태리어를 번역했던 것이 아니고, 영어로 된 것을 번역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번역은 철학자 강유원 박사로부터 찬사와 오명을 동시에 받는다.


옛날 일제 강점기 아무리 유명한 작품도 영어나 일어를 중역으로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흉이 안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독자들의 욕구가 높아져 중역은 웬만해선 읽지 않으려고 한다. 게다가 우린 학(學)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가. 물론 학문을 중요시 여기고 그것에 완벽함을 기하는 거야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다가 사대주의에 갇힐 수도 있다.  


그도 자칫 그럴 뻔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말하는데 무엇으로 반박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으로 한쪽 구석에 조용히 있으면 그건 우리가 알던 이윤기가 아니다. 그는 에코의 소설을 비롯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독과 오역으로 인한 질타 속에서도 '중세 이후 유럽의 예술가들이 그토록 다양하게 변주하던 신화에 대해, '창'을 '도끼'라고 썼다고 해서 '문화를 오역한 자'로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111p)라며 반박했다. 그는 어쩌면 학적인 완벽함보다 사상의 자유로움이 더 중요함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그것이 문득 자유인으로 살았던 조르바와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는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일은 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우리나라는 단편이고 장편이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면 무조건 다 '소설가'라고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오직 장편을 쓰는 작가에게만 그 이름을 허락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라이터(글 쓰는 사람 정도)만을 허락할 뿐이다.  그는 거기서 충격을 받았을까? 나중에 기어이 장편소설을 쓰고 기어코 노블 리스트가 되었다. 그건 좀 우리나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 미국만 해도 그렇게 장편을 쓰는 소설가를 대우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장편을 꺼려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스스로 소설은 죽었다고 말하는 건 바로 이런 분위기가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쓰기도 전에 패배의식부터 갖게 되는 이 분위기는 언제쯤 걷히게 될지. 이윤기 작가는 그것을 결단코 허용하지 않는다. 소설 가지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생각을 하냐고 오히려 나무라는 듯하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 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이 책 곳곳에 깔려있다. 문득 답답해지거든 문학 선배로서의 그에 대한 생각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호기심이 많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싶다.


책을 읽으면 그가 글을 쓰는지, 말을 하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쉽게 쓴다. 한마디로 착착 감긴다. 그걸 두고 껍진껍진한 입말이라고 한다는데,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 대로 쓰는 구어체 즉 입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앞으로 글의 추세는 이렇게 갈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작가 박경덕은 생각하는 대로 글을 쓰지 않고, 말하고 싶은 대로 쓴다는 '말글'로도 설명하고 있는데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지식욕이 대단했다. 그것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욕구만으로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아 보인다. 지구의 한 귀퉁이에 틀어박혀 숨만 쉬고 살지 말자. 그런 욕구가 있어야 세상을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살 수 있다.


그런 욕구로 그는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오래 장수하며 살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 지금도 그는 책상에 앉아 번역에 몰두하던가, 지중해 어딘가를 헤매고 다닐 것만 같은데 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꽤 된듯하다. 아직도 그의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게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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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07-1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새 리뷰를 쓰셨네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노땅 소리 듣겠지만
분명 요즘 작가들은 스텔라님 어린 시절보다 넓이는 모르지만 문학적 깊이에서
작가적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시절 문학이 주는 감동을 퍼스널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고 나서
게임이나 스마트폰 검색 같은 생활 유희가 문학의 자리를 대체했기 때문이죠.

더 이상 이윤기 선생 같은 분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 문학적 토양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이윤기 작가의 부재가 더 아쉽습니다.
스텔라님도 공감하시죠.


stella.K 2019-07-16 15:05   좋아요 0 | URL
그리 말씀해 주시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이곳에 따로 글을 올리지 않아도
아깝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잘못 생각했네요.
그러면 니르바나님과 이렇게 안부 인사도 못하는 건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잘 지내시죠?

맞아요. 이윤기 작가는 정말 아타까운 작가입니다.
언젠가 EBS에 나와 인문학 강의도 했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지금도 선명한지.ㅠ

2019-07-1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6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16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처음 자전거를 탄 딸을 위해 선생이 자전거를 뒤에서 밀어주는 일화가 나와요.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은 그 일화를 언급하면서 자신을 ‘신화를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천천히 뒤에서 밀어주는 존재’라고 묘사했던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중학생인 저를 신화의 세계에 갈 수 있도록 천천히 밀어준 분이 이윤기 선생이었어요. 그 분 아니었으면 신화에 대한 매력을 몰랐을 거예요. ^^

stella.K 2019-07-16 19:58   좋아요 0 | URL
맞아. 나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분을 통해 알게 되었지.
그리고 소설도 읽고, 에세이도 읽었는데 후회해 본적이 없어.
아직도 읽은 책 보단 안 읽은 책이 많은데
따님하고 쓴 플루타크 영웅전인가? 그게 여러 권 있더군.
근데 출판된지가 꽤 돼.
언제고 이분의 선집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도 따님이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어.
참 아까운 분이지.

서니데이 2019-07-18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선생은 번역서가 많지만,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닌 이윤기 선생의 책이네요.
오늘 날씨 많이 더웠는데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밤 되세요.^^

stella.K 2019-07-19 14:03   좋아요 1 | URL
직접 쓴 글이 생각 보다 많아요.
원기왕성한 분이죠. 전 항상 비실비실인데.ㅠ
여러모로 부러운 분이시죠.

페크pek0501 2019-07-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의 출현이십니다. 환영합니다!!!!!

이윤기 선생의 작품을 저도 몇 편 읽었어요. 그의 부고 소식에 안타까웠던 게 생각납니다.

stella.K 2019-07-21 19:54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잠깐 짬을 내어 올렸습니다.
읽기는 오래 전에 읽었는데. 올핸 이상하게 완독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그날 그날 내키는 대로 읽고 있습니다.
그래야 제 방에 쌓아둔 책들 손떼라도 묻혀 보겠더라구요.
물론 이 책은 완독했습니다. 오랜만에 이윤기님의 책을 읽으니
좋더군요. 더구나 이런 글쓰기 책을 좋아하거든요.^^

2019-08-13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3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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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책은 언제 샀나?

 

A. 책이 나오고 얼마 있지 않아 산 것으로 기억한다. 사 놓고 조금씩 읽다가 최근에 다 읽었다. 웬만치 관심을 갖지 않으면 신간은 잘 안 사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상하게 관심이 많이 갔다. 책 자체 보다는 작가에게 관심이 많이 간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이 작가의 활동을 접했다. 자신의 SNS에 구독자 모집을 하고 독자의 이메일로 한 달에 20번. 자신의 글을 월요일부토 금요일까지 전송한다. 그리고 구독료가 1만원이란다. 그게 꽤  흥미로웠다.

 

Q. 어떤 생각이 들었나?

 

솔직히 처음엔 좀 놀라웠다. 과연 한 달에 만원씩 내고 볼만한가? 책이란 서점에서 값을 치르고 사서 보는 게 일반적인데 굳이 만원씩이나 내고 이메일로 본다는 게 어떤 의민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작가가 그렇게 독자들에게 전송한 글들을 모아 책을 냈다. 어차피 이렇게 책으로 나오는데 책으로 사 보지 굳이 돈을 더 줘가며 이메일로 본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생각이 바뀌더라. 책을 사 보는 독자의 입장에선 그런 생각 당연한 것 같은데, 작가의 입장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한 번 내봤고, 한 때는 나도 연재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물론 블로그에 몇 번 하다 중단했지만.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다. 나는 그렇게 연재를 하다 중단했지만 이 작가는 그것을 무려 1년을 했다. 그것도 당당히 구독료를 받고. 이 작가는 했는데 왜 나는 못하고 중단했을까 갑자기 회의가 밀려오더라.

 

Q.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생각이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비록 하다 중단 했지만 내가 연재를 했던 때가 아마 10년도 훨씬 전이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올리고 댓글 호응 받는 것도 감지덕지지 어떻게 독자에게 돈을 받겠는가. 그땐 그런 생각에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정말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때나 이때나 책은 무조건 출판사를 통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어 있다. 조금만 뚝심을 발휘했다면 그렇게 연재했다 책으로 냈을 것이다. 물론 그후 비슷한 방식으로 나도 책을 냈지만 여전히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건 정말 새로운 패러다임 같다. 

 

사실 이 책을 사기 전 작가에 대한 기사를 어느 무가지 잡지에서 보았는데 자꾸 보게 되더라. 어떻게 이런 작가가 있을 수 있을까? 자꾸 궁금해지니 결국 책도 따끈따끈한 신간일 때 사 보게 되는 것이다.

 

Q. 책을 꽤 오랫동안 읽어 왔다. 책에 대한 생각이나 기준 뭐 그런 게 있을 것 같은데...

 

 A. 책을 꽤 오래 전부터 읽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책을 오래 읽기도 한다. 책 한 권을 읽는데 짧아야 일주일이고 열흘을 넘겨 읽는 게 보통이다. 그러다 보니 많이 읽지도 못했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 많이 오래 읽다보니 나름의 분류가 가능해졌다. 이를테면, 어려운 책, 쉬운 책, 객관적으론 좋으나 개인적으론 별로인 책. 남들은 그저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좋은 책, 남도 좋고 나도 좋은 책. 좋은지 나쁜지 남도 모르겠고 나도 모르겠는 책 등등이 있을 것 같다.  

 

그중 가장 좋은 책은 나를 대변해 주거나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 더 나아가 행동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 같다.  

 

솔직히 <안나 카레니나>나 <닥터 지바고>가 세계적인 고전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걸 읽고 심장이 뛰거나 무슨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책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오히려 남들한텐 별 것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객관적으로 보면 그냥 에세이다. 더구나 난 작가의 나이를 한참 전에 지나왔다. 작가 특유의 진지함과 재기발랄함, 요즘 2,30대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새롭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주 많이 감동스러운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확실히 나의 가슴을 뛰게 했고 뭔가 행동하게 만들었다. 

 

Q. 그게 뭔지 말해 줄 수 있나?

 

A. 이를테면 나도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독자 직거래로 이메일 연재를 시작했다. 벌써 두 달째다. 다 이 작가 덕분이다. 작가가 아니었다면 난 그렇게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건 누가  최초로 했는지 모른다. 이슬아 작가도 어떤 작가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자신도 따라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쓰는 건 자서전? 자전 에세이 또는 자전 소설? 요즘엔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따로 두질 않으니 좀 애매하긴 한데 아무튼 그런 계통(?)의 글을 쓰고 있다. 

 

제목은 <기억 수집가-유년시절>이다. 뭔지 감이 올 것이다. 그렇다. 자서전이든 자전 소설 에세이든 그건 쓰는 사람이 온전히 기억에 의해 쓰는 것이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붙여 보았고 현재는 유년시절에 관해서만 쓰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유년시절에 관한 것만으로도 결코 작지않은 분량이 될 것 같아서다. 그냥 어렸을 때 기억 나는대로 두서없이 자유롭게 쓰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시간순으로 배열되는 느낌이다. 아무튼 유년시절의 기억을 자유롭게 쓰는 중이다.

 

Q. 두 달째 이어 온다면 구독자가 꽤 있다는 말인데 직접 독자를 상대로 글을 전송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A. 구독자가 많은 건 아니다.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있고 없고의 차이인 것 같다. 난 정말 구독자가 한 사람도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구독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올렸을 때 많이 떨렸다. 나 역시 안 해 보는 일을 하는 것이고 파워블로거도 아니기 때문에 과연 구독자가 있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있었다. 그것도 9명이나. 광고에 그런 문구를 넣었다. 단 한 사람만 신청해도 그 사람을 위해서 쓰겠다고.

 

사실 이 문구는 이슬아 작가가 처음 시작할 때 썼던 걸 벤치마킹 한 것이기도 한데 지금이야 핫한 작가가 됐지만 처음 광고를 했을 때만해도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는가. 누구나 처음은 있지 않은가. 독자가 많고 적은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내 글을 읽어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적잖이 안도했고 기뻤다.    

 

이슬아 작가는 일주일에 다섯 번을 보내준다는데 그건 너무 버거운 것 같고, 나는 거기서 하루를 뺀 4일 그러니까 목요일까지만 보내는데 처음엔 그것도 좀 버거웠던 것 같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해 볼만하다. 

 

보내면서 순간순간 이 작가를 생각했다. 처음에 이 작가도 그랬을까? 나 보다 어리지만 당차고 배울 게 많은 작가란 생각이 든다.

 

 

Q. 아까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봤다고 했다. 지금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독자에게 연재를 보내고. 그 차이나 장단점은 뭔가?

 

음...작가중엔 연재를 싫어하는 작가가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하루키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그런 말을 했다. 매일 일정량을 써서 어딘가에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싫다고. 그 양반은 정말 그럴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꼭 해야하는 의무가 있지 않으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글을 쓰는 일에 있어서 마감이 있어야 쓸 생각이 난다. 그건 아마도 오래 전, 교회에서 연극 대본을 썼는데 마감에 시달리며 썼다. 그게 몸에 베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연재가 좋은 것 같다. 

 

또한 작가와 고독을 거의 동의어로 보고 작가는 철저하게 고독속에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떤 작가는 적당히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취미 활동도 겸하면서 즐겁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도 철저한 고독속에서 글을 못 쓰겠더라. 아마 그래서도 대본 쓰기를 즐겨했던 것 같다. 대본은 어느 정도 배우들과도 소통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보기도 하는데 난 그게 좋다. 이를테면 이 일이 그런 것 같다. 독자와 간간이 소통하며 글을 쓴다. 난 그게 즐겁다.  

 

하지만 이 방법이 꼭 다 좋은 건 아니다. 출판사를 통하면 일단 뭔가 보호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자와 교정을 봐주는 사람이 있어 다소 부족하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또 일정 원고료를 받기 때문에 손해 볼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비해 독자 직거래만으로 언제 돈을 모으겠는가. 유명한 작가가 되지 않는 이상. 게다가 편집이며 오타, 맞춤법 심지어 광고까지 작가가 다 해야한다. 피곤한 일이다. 오타나 맞춤법의 경우, 분명 세심하게 뜯어보고 전송을 했는데 다음 날 다시 보니 어떻게 내가 이런 글을 보낼 수가 있을까 해서 다시 문장을 다듬어 보낸 적도 있다. 특히 오타는 좀비같고 신출귀몰하기까지 한다. 이걸 독자에게 보냈다고 생각하면 경악할 정도고 정말 이 일은 오래 못할 일이다 싶다.

 

하지만 작가라면(또는 작가를 지망생이라면) 한 번 정도는 수련 삼아 꼭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작가의 마음은 독자를 향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출판사에 가 있고 기타 여러 문학상에 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서 소기의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건 당연한 것 같다. 시스템이 그러니까.

 

하지만 이 일은 온전히 독자만 생각할 수 있다. 마치 창호지 하나를 두고 글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물론 아주 모르지는 않지만) 그들의 실루엣을 앞에 두고 글을 쓰는 것 같다.

 

게다가 작가가 직접 원고지 한 장 팔아 보지 않고 작가의 삶을 논할 수가 없을 것 같다.ㅎ 정말 작가가 모든 것을 다 해 보면 조금 과장해서 출판사 하나 차리겠다 싶다. 실제로 이슬아 작가는 <헤엄>이라는 1인 출판사를 운영중에 있다.

 

그리고 공부도 정말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혹시 글 쓰는데 뭔가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영감을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하며 보게 된다.

 

Q. 정말 생활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A. 하루살이 인생이란 말도 있는데 정말 이 일에 있어서 만큼은 오직 이 달만 생각한다. 그 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한다. 첫 달은 그렇게 9명의 구독자가 있어 비교적 순탄하게 시작을 했다. 그리고 그 한 달이 거의 다 지나고 있을 때 다음엔 또 어떻게 하지? 막막했다. 무엇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번에 구독한 독자가 다음 달에도 여전히 구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재로 전달의 구독자 거의 반이 이번엔 구독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내가 뭘 잘못했나 약간 의기소침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빨리 떨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 사람을 위해 쓰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여전히 나에겐 독자로 남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새롭게 신청하는 독자들이 있다. 물론 새로운 독자들 거의 대부분은 나의 지인들이다. 내가 어디가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내 글 한 번 읽어 보라고, 딱 한 달만 읽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안 읽어도 좋다는 장삿꾼 같은 멘트를 하고 있다.ㅎ 그야말로 매문이다. 내 글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몇주 전, 거의 10년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마치 목적있어 만난 것처럼 내 글을 권했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나 순순히 그러겠다고 해서 오히려 내가 다 미안할 정도였다. 또 어떤 사람은 놀라워 하며 한껏 관심을 표명했지만 요즘 책도 별로 읽지도 않는데다 SNS 에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구독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또 어떤 독자는 읽을 때마다 거의 매번 짧은 피드백을 보내 오기도 한다. 그밖에 여러 이야기가 많지만 생략한다.

 

그런 일을 통해 내가 많이 달라졌다. 좀 더 적극적이 됐고, 이렇게 저렇게 독자의 소식을 알게되면 예사로 넘겨지지 않는다. 그를 위해 뭐라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결국 기도라도 하게 된다.  

 

난 요즘 거의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 해 볼 수 있을까에만 골몰해 있다. 더불어 세상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다.

 

Q. 그밖에 무엇을 해 봤나?

 

A. 이슬아 작가가 이달 초부터 연재 시즌2를 시작했다. 작가가 거의 매일 보내주는 연재를 받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독자로 체험해 보고 싶어 구독을 신청했고 지금 받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확실히 작가의 글을 책으로 읽는 것과 이메일로 읽는 건 다른 것 같다. 거의 비슷할 것 같은데, 나의 메일함을 보면 청구서나 스팸 메일 또는 업무에 관한 메일이 전부다.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인터넷에 여러 많은 글들이 넘쳐 난다. 그런데 구독료를 내고 본다는 게 가능한가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구독료를 내고 보니 다른 글이 아무리 좋고 유익하더라도 내가 돈 내고 보는 글부터 챙겨 보게 된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보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공짜를 좋아하는 것 같아도 그 보다는 돈을 낸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만족하면 그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작가의 이메일 연재 시즌2에 적잖이 만족한다. 글을 정말로 진지하게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시즌 2는 지난 시즌과 달리 작가가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뷰도 하고, 시각 장애자를 위해 음성으로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도 하고,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도 하고, 동료 작가를 위해 자신의 지면을 내어 주기도 한다. 정말 기획이나 운영을 잘 하는 것 같다.

 

Q. 부럽다는 생각 안 드나?      

 

A. 당연히 든다. 사람은 어차피 질투의 존재 아닌가. 특히 작가는 문화계 셀럽들과 인터뷰를 자주 시도할 모양인데 그게 참 부럽다. 발이 넓고 그야말로 발로 뛰는 작가구나 싶다. 작가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한창훈 작가는 왜 작가가 됐냐는 질문에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작가는 그렇게 생각 보다 쉽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도 그냥 웃자고 한 말일 것이다.

 

어쨌든 부럽다가도 포기가 되는데 딱 한 가지 안 되는 게 있더라. 언젠가 이 작가가 자신의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그 앞에서  폼 잡고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거의 만 부 가까이 팔린 것으로 안다. 넘었을지도 모르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느 싯점이 지나면 내 글을 구독해 보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구독 신청하고, 무사히 출판도 하고 그러면 좋겠다.

 

Q. 독자 직거래 이메일 연재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작가 보단 오히려 독자의 역할이 더 커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승자독식의 사회 아닌가? 작가의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청탁은 받는 사람만 받고, 책은 내 본 사람만 내는 것 같다. 더구나 문학계 카르텔과 성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느 특정인이 작가를 키운다는 생각은 이제 좀 없어져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의 비중이 더 커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중세 시대 호사가들은 단순히 예술작품을 사 들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그것이 당대 문예부흥을 이끌기도 했다. 독서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귀족이나 양반들만 할 수 있었던 시절 말이다. 그러나 이제 독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또한 후원은 작은 액수로도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난 독자들이 단순히 어느 작가의 책을 사 보는 것에서 작가를 후원하는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 직거래 이메일 연재는 단순히 독자가 작가의 글을 구독료를 내고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 작가를 후원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느 작가가 이런 또는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적어도 한 명의 작가만이라도 후원의 의미에서 구독을 했으면 한다. 이슬아 작가는 스스로를 연재 노동자라고 했는데 이 연재 노동도 해 보니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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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큰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 4
조정래 지음, 김재홍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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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위인 전기 꽤 읽고 자랐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어린이 위인 전기는 그 구성이나 디자인이 나 때와는 확실히 다르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림도 다채롭고 흥미 돋게 만드는지.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이니 이런 책은 좀 의도적으로라도 읽어줘야 할 것도 같은데 역시 게으른 나는 어떤 필요에 의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결국 일이 무산되는 바람에 의도적으로 읽어 준 셈이 됐으니 부끄러움은 면했다고나 할까? 그것도 이 책 완독 20 페이지 정도를 남겨놓고 무산이 된 것을 알았으니 그렇다고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어린이 위인 전기로 읽어도 이렇게 뭉클한데 성인용으로 읽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더구나 이달부터 S 본부에서 아침 방송 때 김구의 증손과 모 탤런트가 그 옛날 증조할아버지 의 상해 임시정부 루트를 따라가는 방송을 했다. 그것과 겹쳐 이 책이 주는 감동이 배가가 됐다. 

 

최근 <스카이 캐슬>이란 드라마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까발리기도 했지만 선생이 살았던 시절에도 못지 않았나 보다. 천한 신분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천출도 공부만 잘하면 입신양명할 수 있다는 기대에 과거 시험을 보지만 그는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그것도 그가 실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온갖 입시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과거에 선생 같이 천한 출신은 아무리 똑똑해도 꿈도 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마음을 추스리고 관상 같은 돈도 벌 수 있는 실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공부를 하기로 했는데, 그는 그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관상이 얼마나 안 좋은 상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비록 관상은 안 좋지만 마음만큼은 넉넉하고 큰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 먹는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운명을 뛰어 넘는 뭔가의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는 무엇보다 교육 사업에 힘을 썼다. 나라가 일본의 손에 넘어갔는데도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것은 인간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인간의 무지함을 깨우쳐 국민의 주권을 되찾는 일에 평생을 바친다. 또한 그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 사상에 심취했고 후엔 기독교 신앙을 갖고 독립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그의 인생을 보면 역시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하늘(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 같다. 그는 몇 번의 투옥과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름도 몇 번을 바꿔 우리가 기억하는 김구로 남는다. 하지만 가장 뭉클한 장면은 상해로 넘어가 당대 쟁쟁한 독립 운동가들 이를테면 안창호와 안중근, 이봉창과 윤봉길 등과의 교우와 활약상은 정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뭉클한데가 있다. 특히 이봉창이 일본 천황 암살에 실패 하지만 이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훗날 윤봉길 의거를 돕는 과정은 어떻게 이런 영화같은 장면이 있을 수 있을까 읽으면서도 가슴이 찡했다.

 

의거가 있기 전 둘은 식사를 함께 한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윤봉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임에도 그는 너무나 태연하게 밥을 먹었고, 김구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를 지켜봐야 했다. 이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지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한 사람은 이미 속세를 벗어났고, 한 사람은 나라를 구해야 하는 대의명분하에 동지의 죽음을 그저 지켜봐야만 한다. 이들의 마음의 거리는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안에서도 우주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것이다.

 

또한 둘의 시계를 바꿔 갖는 장면. 즉 윤봉길은 그 무렵 마침 새 시계를 갖고 있었고, 김구는 낡은 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윤봉길은 자신은 이제 몇 시간 후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 새 시계가 필요 없다며 기꺼이 김구의 낡은 시계와 바꿔 갖는다. 그리고 죽어서 다시 만나자는 말도 남긴다. 하지만 실제로 김구가 윤봉길을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서 만나기까지는 얼마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문득 이즈음을 읽고 있는데 김구를 비롯해 당대 독립운동가들은 그렇게 정말 조국의 독립에 몸을 바친 걸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을까? 갈등이 없었을까? 순간 순간 몰려오는 두려움과 피곤함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런 인간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들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순간 순간 연약한 존재다. 그때마다 다 잡고 이루어냈을 독립이었을 테니 그들의 희생이 어찌 값지다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얘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나라면 얼마를 버텨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런 독립운동가의 말할 수 없는 희생이 있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란 또는 한국이란 국호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매일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비리와 파벌 싸움 등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라는 그냥 지켜지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하면 그들의 희생에 값하며 후손으로 사는 것이 될지 매일 매 순간 생각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만 같다.

 

김구는 그토록이나 바라던 조국해방의 그날을 보긴 했지만 그 이후 하나된 조국을 보지 못해 포효하는 듯한 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것도 부족해 안두희의 총탄에 암살을 당해야 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서글픈 불행이랴. 또 어쩌면 그가 그렇게 갔기 때문에 그의 행적과 뜻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그는 나에게 '마음 넓게, 우직하게' 살아간 분으로 기억됐다. 제발 그를 비롯해 독립 영웅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가 잘 살아내야 한다고 이 독립 운동 100주년이 되는 싯점에 그분들의 영혼에 머리숙여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더불어 이 뜻이 어린 후손들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작가나 독자들이나 노력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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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03-25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혹시 왜수만복(倭水滿腹)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이 단어를 쓰시고 나서
임진왜란 상황을 설명하신 이야기인데 너무 끔찍해서 잊혀지지 않는 말입니다.

이순신장군, 김구선생, 안중근의사 같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없었다면
악마의 얼굴을 한 일본 놈들의 치하에서 아직도 종노릇하고 있을겁니다.
얼빠진 뉴라이트들은 일본이 조선 근대화에 도움을 주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지만
그 놈들은 구한말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이후 그 밑에서 마름질하던 놈들의 후손들이 틀림없습니다.

지금도 잘 나가는 정신나간 현역국회의원이 일본자위대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던 일이 있습니다.
이런 인간들이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면 국민들이 탄 배가 침몰되고 있는데
또 다시 머리를 만지고 마사지나 받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보수, 진보를 떠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초개같이 던지며
독립운동, 아니 독립전쟁을 치른 김구선생님의 높은 뜻을
후손된 우리는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stella.K 2019-03-25 18:1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 옛날 독립 선조들은 자신을 이렇게 헌신했는데
과연 나라가 어려움에 빠지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제발 조상의 뜻에 누가되면 안될 텐데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는 스스로 나라를 팔아 먹은 적전 또한 있는지라
앞으로 그런 정신나간 일을 하지 말라는 법 없죠.
부지런히 이런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구 선생 이야기는 가슴 저미면서도 너무 멋있는데
왜 영화를 안 만드는지 모르겠어요.ㅠ
긴 글 고맙습니다.^^

syo 2019-03-26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사 공부하면서, 요런 책들을 더 잘 읽을 수 있는 소양이 쌓이고 있는 중이에요. 흥미도 막 생기구요. 그야말로 주입식 암기 교육의 혜택(?)입니다.....

stella.K 2019-03-26 10:26   좋아요 0 | URL
ㅎㅎ역사는 시큰둥 하다더니 잘 됐군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요 시대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지더라구요.
어린이 위인 전긴데도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어른도 혹할만큼...^^

2019-03-29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30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레이] 레옹 : 극장판 & 감독판 - 풀슬립 일반판 - 부클릿 없음
뤽 베송 감독, 장 르노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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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짜 오랜만에 본 영화다. 내용도 거의 가물가물 했다. 다시 보니 아, 이런 내용이었어? 거의 새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확실한 건 난 이런 폭력적인 영화를 안 좋아한다는 것. 그래도 영화가 위대한 건 싫어도 보게 만든다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보게 만드는 건 거기에 사람이 있고, 음악이 있고, 인간 저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욕망을 건드려 대리만족을 하게 만드는 뭐 그렇고 그런 이유 아닐까?

 

이건 정말 만화다. 레옹이 얼마나 실력있는 살인청부업자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오로지 살인하는 그의 비상한 능력만을 극대화 했다. 특히 초반 시퀀스에서 스파이더맨처럼 천장에서 목에 올가미를 씌워 살해하고,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뒤에서 목에 칼을 겨누는 등  당시로는 나름 파격적인 액션을 보여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레옹과 마틸다가 끈끈하게 얽키는 밑밥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영화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구도가 특이한 건 부패 경찰을 응징하는 살인청부업자의 대결이라는 것. 또 그런 구도가 가능한 건 몸만 성인일 뿐 자아는 아이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레옹이 몸은 비록 아이이나 내면은 어른인 마틸다를 사랑하면서 생긴 구도라는 것.

 

언제나 그렇듯 사랑은 독이 든 성배고, 촛불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 같은 것이다. 특히 살인청부업자란 위험한 직업에 사랑은 가당치 않다. 괜히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했다가 둘 다 위험해질 수 있다. 물론 이 영화의 경우 레옹은 끝까지 마틸다를 지켜주고 자신은 장렬히 전사하는 쪽을 택하지만. 애초에 레옹이 마틸다를 알지 못했다면 그는 그냥 살인 청부업자로 늙거나 교도소 몇번 드나들면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더구나 마틸다는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었으니 레옹에게 더 집착했음은 당연하다. 그런 사랑은 위험하다.

 

그런데 난 왠지 사랑을 위해 죽는 죽음도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다. 물론 사랑하면 위험하고, 상처도 받고,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생의 속성이 그런 거라면 사랑을 모르고 살다 죽는 것 보다 그렇게 살다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생이란 이해될 수 있는 것 보다 이해 못할 부조리가 더 많지 않은가? 

 

그렇다고 한다면 비록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가 꽤 볼만하긴 하다. 어차피 부조리한 상황을 부조리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영화 아닌가? 벌써 25년된 영환데 지금 다시 봐도 꽤 스타일리시하다. 영화가 뭐 있나? 똥폼이라도 확실히 보여주면 그게 영화인 거지. 게다가 마지막 엔딩 때 흐르는 스팅의 노래란 가히 뭐라 형언할 수가 없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허리우드 영화가 시큰둥해 지면서 유럽 특히 프랑스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제작을 프랑스와 미국이 합작해서일까? 좀 그 정서가 섞여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아마도 그래서 나쁘지 않게 봤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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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3-20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영화(액션영화로서)지만,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레옹의 경우 지금 시각에서 본다면 롤리타 영화라고 비난을 받을수 있단 생각이 드네요^^;;;

stella.K 2019-03-20 18: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주인공이 유아 성욕자란 말도 있었죠.
그래도 뭐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롤리타는 아예 설정부터가 그랬고.
난 롤리타가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라구요.
책을 못 읽겠더군요.
영화야 욕 한마디 하면 그만이지만 원작가가 워낙에
유명해 그럴 수도 없고. 과연 명성만큼 감동스러울지 모르겠더라구요.ㅠ

moonnight 2019-03-2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틸다@_@;;;; 어린아이의 모습에 어른의 눈빛을 하고 있어서 놀랐지요. 스팅의 음악이 좋았고요. 저도 영화로서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네요.

stella.K 2019-03-20 20:30   좋아요 0 | URL
그냥 뭐 똥폼잡는 영화였죠.ㅎㅎ
저도 스팅의 음악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레옹 보단 그랑블루가 좀 낫지 싶은데
그걸 다시 못 보고 있네요.ㅠ

레삭매냐 2019-03-2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좋아하던 뤽 베송이
맛이 가기 시작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뭐 그래도 재밌긴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오프닝은 정말 쵝오였던 것으
로 기억합니다.

stella.K 2019-03-20 20:30   좋아요 0 | URL
오, 뤽 베송을 그전에도 많이 보셨나 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랑블루와 제5원소까지 봤지만
역시 제 취향의 감독은 아니었습니다.
오프닝씬은 정말...!

cyrus 2019-03-20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영화를 보면 중년과 소녀의 로맨스를 ‘낭만’으로만 포장할 수 없어요. 실제로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를 찍고 난 후에 중년 남성들의 팬레터를 많이 받았대요. 그런데 팬레터라기보다는 중년 남성들의 더러운 성적 욕구를 노골적으로 보여준 종이쪼가리였어요. 그녀를 성희롱하는 내용의 편지였거든요.

stella.K 2019-03-20 19:36   좋아요 0 | URL
그런 적이 있었니? 처음 알았네.
영화에서도 레옹 보단 나탈리가 열심히 유혹하잖아.
거기에 레옹은 그냥 우정, 의리로 포장하고.
그런 코드가 있긴 했을 거야.
요즘 같은 미투운동에선 결코 용납되지 않겠지.
글치 않아도 뤽 베송 성추문 있지 않았나?
요즘엔 워낙 많아서 헷갈릴 정도다.
게다가 연일 버닝썬과 정준영, 승리 때문에 더 정신이 없고. ㅠ

2019-03-21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2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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