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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8년 10월
평점 :
Q. 이 책은 언제 샀나?
A. 책이 나오고 얼마 있지 않아 산 것으로 기억한다. 사 놓고 조금씩 읽다가 최근에 다 읽었다. 웬만치 관심을 갖지 않으면 신간은 잘 안 사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상하게 관심이 많이 갔다. 책 자체 보다는 작가에게 관심이 많이 간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이 작가의 활동을 접했다. 자신의 SNS에 구독자 모집을 하고 독자의 이메일로 한 달에 20번. 자신의 글을 월요일부토 금요일까지 전송한다. 그리고 구독료가 1만원이란다. 그게 꽤 흥미로웠다.
Q. 어떤 생각이 들었나?
솔직히 처음엔 좀 놀라웠다. 과연 한 달에 만원씩 내고 볼만한가? 책이란 서점에서 값을 치르고 사서 보는 게 일반적인데 굳이 만원씩이나 내고 이메일로 본다는 게 어떤 의민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작가가 그렇게 독자들에게 전송한 글들을 모아 책을 냈다. 어차피 이렇게 책으로 나오는데 책으로 사 보지 굳이 돈을 더 줘가며 이메일로 본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생각이 바뀌더라. 책을 사 보는 독자의 입장에선 그런 생각 당연한 것 같은데, 작가의 입장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한 번 내봤고, 한 때는 나도 연재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물론 블로그에 몇 번 하다 중단했지만.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다. 나는 그렇게 연재를 하다 중단했지만 이 작가는 그것을 무려 1년을 했다. 그것도 당당히 구독료를 받고. 이 작가는 했는데 왜 나는 못하고 중단했을까 갑자기 회의가 밀려오더라.
Q.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생각이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비록 하다 중단 했지만 내가 연재를 했던 때가 아마 10년도 훨씬 전이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올리고 댓글 호응 받는 것도 감지덕지지 어떻게 독자에게 돈을 받겠는가. 그땐 그런 생각에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정말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때나 이때나 책은 무조건 출판사를 통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어 있다. 조금만 뚝심을 발휘했다면 그렇게 연재했다 책으로 냈을 것이다. 물론 그후 비슷한 방식으로 나도 책을 냈지만 여전히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건 정말 새로운 패러다임 같다.
사실 이 책을 사기 전 작가에 대한 기사를 어느 무가지 잡지에서 보았는데 자꾸 보게 되더라. 어떻게 이런 작가가 있을 수 있을까? 자꾸 궁금해지니 결국 책도 따끈따끈한 신간일 때 사 보게 되는 것이다.
Q. 책을 꽤 오랫동안 읽어 왔다. 책에 대한 생각이나 기준 뭐 그런 게 있을 것 같은데...
A. 책을 꽤 오래 전부터 읽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책을 오래 읽기도 한다. 책 한 권을 읽는데 짧아야 일주일이고 열흘을 넘겨 읽는 게 보통이다. 그러다 보니 많이 읽지도 못했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 많이 오래 읽다보니 나름의 분류가 가능해졌다. 이를테면, 어려운 책, 쉬운 책, 객관적으론 좋으나 개인적으론 별로인 책. 남들은 그저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좋은 책, 남도 좋고 나도 좋은 책. 좋은지 나쁜지 남도 모르겠고 나도 모르겠는 책 등등이 있을 것 같다.
그중 가장 좋은 책은 나를 대변해 주거나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 더 나아가 행동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 같다.
솔직히 <안나 카레니나>나 <닥터 지바고>가 세계적인 고전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걸 읽고 심장이 뛰거나 무슨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책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오히려 남들한텐 별 것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객관적으로 보면 그냥 에세이다. 더구나 난 작가의 나이를 한참 전에 지나왔다. 작가 특유의 진지함과 재기발랄함, 요즘 2,30대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새롭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주 많이 감동스러운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확실히 나의 가슴을 뛰게 했고 뭔가 행동하게 만들었다.
Q. 그게 뭔지 말해 줄 수 있나?
A. 이를테면 나도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독자 직거래로 이메일 연재를 시작했다. 벌써 두 달째다. 다 이 작가 덕분이다. 작가가 아니었다면 난 그렇게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건 누가 최초로 했는지 모른다. 이슬아 작가도 어떤 작가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자신도 따라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쓰는 건 자서전? 자전 에세이 또는 자전 소설? 요즘엔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따로 두질 않으니 좀 애매하긴 한데 아무튼 그런 계통(?)의 글을 쓰고 있다.
제목은 <기억 수집가-유년시절>이다. 뭔지 감이 올 것이다. 그렇다. 자서전이든 자전 소설 에세이든 그건 쓰는 사람이 온전히 기억에 의해 쓰는 것이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붙여 보았고 현재는 유년시절에 관해서만 쓰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유년시절에 관한 것만으로도 결코 작지않은 분량이 될 것 같아서다. 그냥 어렸을 때 기억 나는대로 두서없이 자유롭게 쓰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시간순으로 배열되는 느낌이다. 아무튼 유년시절의 기억을 자유롭게 쓰는 중이다.
Q. 두 달째 이어 온다면 구독자가 꽤 있다는 말인데 직접 독자를 상대로 글을 전송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A. 구독자가 많은 건 아니다.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있고 없고의 차이인 것 같다. 난 정말 구독자가 한 사람도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구독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올렸을 때 많이 떨렸다. 나 역시 안 해 보는 일을 하는 것이고 파워블로거도 아니기 때문에 과연 구독자가 있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있었다. 그것도 9명이나. 광고에 그런 문구를 넣었다. 단 한 사람만 신청해도 그 사람을 위해서 쓰겠다고.
사실 이 문구는 이슬아 작가가 처음 시작할 때 썼던 걸 벤치마킹 한 것이기도 한데 지금이야 핫한 작가가 됐지만 처음 광고를 했을 때만해도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는가. 누구나 처음은 있지 않은가. 독자가 많고 적은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내 글을 읽어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적잖이 안도했고 기뻤다.
이슬아 작가는 일주일에 다섯 번을 보내준다는데 그건 너무 버거운 것 같고, 나는 거기서 하루를 뺀 4일 그러니까 목요일까지만 보내는데 처음엔 그것도 좀 버거웠던 것 같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해 볼만하다.
보내면서 순간순간 이 작가를 생각했다. 처음에 이 작가도 그랬을까? 나 보다 어리지만 당차고 배울 게 많은 작가란 생각이 든다.
Q. 아까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봤다고 했다. 지금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독자에게 연재를 보내고. 그 차이나 장단점은 뭔가?
음...작가중엔 연재를 싫어하는 작가가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하루키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그런 말을 했다. 매일 일정량을 써서 어딘가에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싫다고. 그 양반은 정말 그럴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꼭 해야하는 의무가 있지 않으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글을 쓰는 일에 있어서 마감이 있어야 쓸 생각이 난다. 그건 아마도 오래 전, 교회에서 연극 대본을 썼는데 마감에 시달리며 썼다. 그게 몸에 베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연재가 좋은 것 같다.
또한 작가와 고독을 거의 동의어로 보고 작가는 철저하게 고독속에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떤 작가는 적당히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취미 활동도 겸하면서 즐겁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도 철저한 고독속에서 글을 못 쓰겠더라. 아마 그래서도 대본 쓰기를 즐겨했던 것 같다. 대본은 어느 정도 배우들과도 소통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보기도 하는데 난 그게 좋다. 이를테면 이 일이 그런 것 같다. 독자와 간간이 소통하며 글을 쓴다. 난 그게 즐겁다.
하지만 이 방법이 꼭 다 좋은 건 아니다. 출판사를 통하면 일단 뭔가 보호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자와 교정을 봐주는 사람이 있어 다소 부족하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또 일정 원고료를 받기 때문에 손해 볼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비해 독자 직거래만으로 언제 돈을 모으겠는가. 유명한 작가가 되지 않는 이상. 게다가 편집이며 오타, 맞춤법 심지어 광고까지 작가가 다 해야한다. 피곤한 일이다. 오타나 맞춤법의 경우, 분명 세심하게 뜯어보고 전송을 했는데 다음 날 다시 보니 어떻게 내가 이런 글을 보낼 수가 있을까 해서 다시 문장을 다듬어 보낸 적도 있다. 특히 오타는 좀비같고 신출귀몰하기까지 한다. 이걸 독자에게 보냈다고 생각하면 경악할 정도고 정말 이 일은 오래 못할 일이다 싶다.
하지만 작가라면(또는 작가를 지망생이라면) 한 번 정도는 수련 삼아 꼭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작가의 마음은 독자를 향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출판사에 가 있고 기타 여러 문학상에 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서 소기의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건 당연한 것 같다. 시스템이 그러니까.
하지만 이 일은 온전히 독자만 생각할 수 있다. 마치 창호지 하나를 두고 글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물론 아주 모르지는 않지만) 그들의 실루엣을 앞에 두고 글을 쓰는 것 같다.
게다가 작가가 직접 원고지 한 장 팔아 보지 않고 작가의 삶을 논할 수가 없을 것 같다.ㅎ 정말 작가가 모든 것을 다 해 보면 조금 과장해서 출판사 하나 차리겠다 싶다. 실제로 이슬아 작가는 <헤엄>이라는 1인 출판사를 운영중에 있다.
그리고 공부도 정말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혹시 글 쓰는데 뭔가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영감을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하며 보게 된다.
Q. 정말 생활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A. 하루살이 인생이란 말도 있는데 정말 이 일에 있어서 만큼은 오직 이 달만 생각한다. 그 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한다. 첫 달은 그렇게 9명의 구독자가 있어 비교적 순탄하게 시작을 했다. 그리고 그 한 달이 거의 다 지나고 있을 때 다음엔 또 어떻게 하지? 막막했다. 무엇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번에 구독한 독자가 다음 달에도 여전히 구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재로 전달의 구독자 거의 반이 이번엔 구독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내가 뭘 잘못했나 약간 의기소침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빨리 떨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 사람을 위해 쓰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여전히 나에겐 독자로 남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새롭게 신청하는 독자들이 있다. 물론 새로운 독자들 거의 대부분은 나의 지인들이다. 내가 어디가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내 글 한 번 읽어 보라고, 딱 한 달만 읽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안 읽어도 좋다는 장삿꾼 같은 멘트를 하고 있다.ㅎ 그야말로 매문이다. 내 글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몇주 전, 거의 10년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마치 목적있어 만난 것처럼 내 글을 권했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나 순순히 그러겠다고 해서 오히려 내가 다 미안할 정도였다. 또 어떤 사람은 놀라워 하며 한껏 관심을 표명했지만 요즘 책도 별로 읽지도 않는데다 SNS 에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구독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또 어떤 독자는 읽을 때마다 거의 매번 짧은 피드백을 보내 오기도 한다. 그밖에 여러 이야기가 많지만 생략한다.
그런 일을 통해 내가 많이 달라졌다. 좀 더 적극적이 됐고, 이렇게 저렇게 독자의 소식을 알게되면 예사로 넘겨지지 않는다. 그를 위해 뭐라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결국 기도라도 하게 된다.
난 요즘 거의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 해 볼 수 있을까에만 골몰해 있다. 더불어 세상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다.
Q. 그밖에 무엇을 해 봤나?
A. 이슬아 작가가 이달 초부터 연재 시즌2를 시작했다. 작가가 거의 매일 보내주는 연재를 받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독자로 체험해 보고 싶어 구독을 신청했고 지금 받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확실히 작가의 글을 책으로 읽는 것과 이메일로 읽는 건 다른 것 같다. 거의 비슷할 것 같은데, 나의 메일함을 보면 청구서나 스팸 메일 또는 업무에 관한 메일이 전부다.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인터넷에 여러 많은 글들이 넘쳐 난다. 그런데 구독료를 내고 본다는 게 가능한가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구독료를 내고 보니 다른 글이 아무리 좋고 유익하더라도 내가 돈 내고 보는 글부터 챙겨 보게 된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보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공짜를 좋아하는 것 같아도 그 보다는 돈을 낸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만족하면 그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작가의 이메일 연재 시즌2에 적잖이 만족한다. 글을 정말로 진지하게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시즌 2는 지난 시즌과 달리 작가가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뷰도 하고, 시각 장애자를 위해 음성으로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도 하고,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도 하고, 동료 작가를 위해 자신의 지면을 내어 주기도 한다. 정말 기획이나 운영을 잘 하는 것 같다.
Q. 부럽다는 생각 안 드나?
A. 당연히 든다. 사람은 어차피 질투의 존재 아닌가. 특히 작가는 문화계 셀럽들과 인터뷰를 자주 시도할 모양인데 그게 참 부럽다. 발이 넓고 그야말로 발로 뛰는 작가구나 싶다. 작가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한창훈 작가는 왜 작가가 됐냐는 질문에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작가는 그렇게 생각 보다 쉽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도 그냥 웃자고 한 말일 것이다.
어쨌든 부럽다가도 포기가 되는데 딱 한 가지 안 되는 게 있더라. 언젠가 이 작가가 자신의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그 앞에서 폼 잡고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거의 만 부 가까이 팔린 것으로 안다. 넘었을지도 모르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느 싯점이 지나면 내 글을 구독해 보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구독 신청하고, 무사히 출판도 하고 그러면 좋겠다.
Q. 독자 직거래 이메일 연재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작가 보단 오히려 독자의 역할이 더 커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승자독식의 사회 아닌가? 작가의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청탁은 받는 사람만 받고, 책은 내 본 사람만 내는 것 같다. 더구나 문학계 카르텔과 성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느 특정인이 작가를 키운다는 생각은 이제 좀 없어져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의 비중이 더 커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중세 시대 호사가들은 단순히 예술작품을 사 들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그것이 당대 문예부흥을 이끌기도 했다. 독서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귀족이나 양반들만 할 수 있었던 시절 말이다. 그러나 이제 독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또한 후원은 작은 액수로도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난 독자들이 단순히 어느 작가의 책을 사 보는 것에서 작가를 후원하는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 직거래 이메일 연재는 단순히 독자가 작가의 글을 구독료를 내고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 작가를 후원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느 작가가 이런 또는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적어도 한 명의 작가만이라도 후원의 의미에서 구독을 했으면 한다. 이슬아 작가는 스스로를 연재 노동자라고 했는데 이 연재 노동도 해 보니 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