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의 전성시대 (HD텔레시네) - [할인행사]
김호선 감독, 염복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영화 제목은 많이 들어봤다. 유명한 조선작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 1975년도 작이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려 보지 못하고 이제야 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이 작품이 꽤나 야한 작품인 줄 알았다. 일명 포르노. 그런데  지금 보니 그다지 야한 영화도 아니다. 야하다면 때밀이를 하는 남자 주인공 창수(송재호 분)가 영자(염복순 분)를 자신이 일하는 목욕탕으로 불러 등을 밀어주는 장면 정도랄까? 그것도 앞에 가릴 건 타올로 다 가리고. 등급도 15세 관람가다. 하긴, 예전엔 포르노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등급이 세분화되지도 않았거니와 흥행을 생각해 의도적으로 야한 영화로 몰아갔는지도 모른다

 

포스터가 좀 조악한 것도 사실이지만 예전엔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의 포스터를 사람이 일일이 그리기도 했으니 당시로 저 정도의 그렸다면 잘 그린 축에 속한다. 또한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묘한 느낌도 들면서 여자를 상품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아니면 사회 분위기에 따라 영화 포스터를 보는 시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용은 야하다기 보단 오히려 사회 비판적 요소가 강해 보인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산업화와 더불어 페미니즘 또는 사회 불평등이란 관점에서 얘깃거리가 많아 보인다.


70년 대는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던 때이기도 하지만 그건 산업화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 산업화가 과연 좋기만 했던 것인가에 대한 단적인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왔고, 그에 따라 도시화는 한층 속도를 내기도 했다. 또한 거기에 편승에 시골 처녀들도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기도 했다. 그런 여자들이 가는 곳은 공단 아니면 버스 안내양이나 부잣집 가정부고, 번 돈은 쓰지 않고 시골집에 부쳤다. 그 역을 맡는 건 대부분 시골집 맏딸이 대부분일 것이고, 그들은 동생들이나 오빠의 학비를 대며 가정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못 견디거나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벌겠다면 술집으로 빠진다.  


어찌 보면 우리의 영자는 바로 이런 정 코스를 밟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잣집에 가정부로 도시살이를 시작했으나 주인집 망나니 아들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결혼을 꿈꿔으나 해줄 리 없어 그 집을 나와 버스 안내양으로 취직하지만 사고로 불구의 몸이 된다. 결국 자신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형질의 인긴이라는 걸 알고 그때부터 몸을 팔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막살 때마다 가정부 시절 우연히 알게 된 창수가 구원남으로 나타나곤 한다. 도시라고 해서 망나니 짐승만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알뜰히 돌봐주며 영자와의 결혼도 꿈꾸는 순정남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고아에 힘없는 주변인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그 시절 있을 법한 두 남녀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사회 고발적 의미도 있다. 왜 여자는 돈을 벌면 불행해져야 하는가. 요즘 같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지만 당시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여자는 그저 남편의 그늘에서 자식 낳고 가정 건사를 잘하는 것이 미덕인 양 했던 때가 있다. 하지만 산업화의 물결이 여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여자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이 영화엔 다분히 남성주의 시각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영자의 가정부 시절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요즘 같으면 성폭행을 성폭행이라고 말하겠지만 그 시절은 무조건 가해자 보단 피해자 더 피해를 본다. 문득 대척점에 있는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 생각났다. 톨스토이는 오히려 남자가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회개도 하더만, 문제작이라고는 하나 그런 양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역시 톨스토이는 톨스토이다 싶다.


엔딩도 그렇다. 창수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자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뭐 거기까진 그럴 수도 있다. 영자는 자기 자신을 너무도 잘 안다. 창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엔 자신은 너무나 흠도 상처도 많다. 자살의 충동을 이기고 자신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좋다. 그런데 동병상련이라고 신체부위는 다르지만 같은 불구자와 결혼을 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는 건 다소 억지스럽다. 과연 영화 어느 부분에 영자가 전성시대를 누렸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돈을 좇아 서울 상경을 했다는 죄로 지지리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을 창수란 구원남이 있어 전성시대라는 걸까? 아니면 천신만고 끝에 비록 불구라고는 하지만 착한 남자 만나 아이 낳고 잘 살게 된 게 전성시대라는 걸까.


정말 영자가 전성시대가 되려면 남자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 성폭력을 치료할 수 있며, 응당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법적인 제도가 이루어져야 하며 무엇보다 영자가 자기다운 삶을 살아야 전성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70년 대 영자들은 전성시대를 맞지 못했으며,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작품이 갖는 의의가 있긴 하지만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2천 년 대 영자의 전성시대는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옛날 영화를 본다는 건 묘한 매력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의 리즈 시절을 보는 재미도 있고,  지나간 시대를 엿보고 옛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염복순 배우를 기억할 사람이 있을까. 이름이 그래서일까? 나름 요염한 데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도 어릴 때 본 배우라 나는 이 배우가 한창 활동했던 끝자락에서 기억할 뿐이지만 나름존재감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조금 더 인기를 얻어도 좋았을 텐데 70년대 일명 여배우 트로이카라던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에 가려 스크린에서 일찌감치 잊힌 배우는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70년대 말 정도까지 활동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것 같다. 누구는 가수 이효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얼핏 비운의 배우 이은주 느낌도 난다. 물론 여성스럽기는 이은주이지만 선 굵은 연기는 염복순이 앞선다. 내친김에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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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8-27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본 적이 없어서 상품 페이지를 찾아 보았는데, 출연자 중에 송재호와 최불암이라는 요즘도 유명한 분들도 계시네요. 이 영화가 1970년대 영화라서 볼 기회가 없었고 잘 몰랐어요. 오래 전 영화니까 요즘 영화와 많이 다르겠고, 그 때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과 지금 사람들의 생각이 다른 것 만큼의 차이도 있겠지요. 그런 것들 생각하면서 보면 예전 영화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리뷰 잘읽었습니다.
stella.K님, 좋은 하루되세요.^^

stella.K 2019-08-28 14:59   좋아요 1 | URL
사실 요즘 영화를 생각할 때 되게 낮설고 어색한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그 시대의 정서나 감정들을 고려해서 보면 나름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송재호 최불암뿐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서니님 잘 모를지도 모르는데 도금봉과 박주아 아줌마도 나오죠.
70년 대 조연 전문 배우로 유명했습니다.
혹시 기회되시면 서니님도 함 보세요.^^

니르바나 2019-08-2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니르바나는 <영자의 전성시대>를 극장에서 관람하였습니다.
이장호감독의 <별들의 고향>과 함게 수십만명이 극장을 찾아
관객수를 시대 지수로 조정하면 천만 영화의 계보에 해당될 작품이었구요.
제 기억이 정확한지 자신없지만,
소설가 조선작이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을 극본화했던 작품입니다.
염복순은 그 후로도 여러편의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 작품이 워낙 유명해서 다른 대표작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알려주신 대로 소리 소문 없이 지내서 궁금합니다.
지금 연세가 꽤 되었을텐데요.


stella.K 2019-08-28 15:08   좋아요 0 | URL
염복순 배우를 아시는군요. 반가운데요?
나름 매력있는 배운데 잊혀져 아쉽더라구요.
그 시절 여자들은 결혼하면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라 그녀도 결혼하면서 그만두지 않았나 싶어요.
언제부턴가 왕년의 배우들이 활동을 안하는 게 못내 아쉽더라구요.
그런데 니르바나님 왕년에 충무로 좀 누비고
다니셨겠는데요?ㅎㅎ

hnine 2019-08-2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으로 읽었습니다 극장엔 출입할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에 ㅋㅋ
저 기억해요 염복순이라는 배우. 지금 뭐하는지 궁금하네요. 탈렌트로 TV에도 나오던 배우였는데요. 입가에 점이 매력적이던.
김호선 감독은 장미희가 나온 <겨울여자>의 감독이기도 할걸요 아마.
stella님, 옛날 영화를 종종 찾아보시는것 같아요. 덕분에 저도 stella님 글 읽으며 옛날 추억에 잠길 수 있어 좋습니다.

stella.K 2019-08-28 15: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거 개봉 당시엔 미성년자 관람불가였을 거예요.
저도 이번에 영화 보면서 책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엔 영화가 시큰둥합니다.
하다못해 그 유명한 <기생충>도 전 아직 안 봤어요.
그래도 아주 알 볼 수 없으니 올레 TV에서 보여주는
옛날 무료 영화들을 가끔씩 보고 있어요.
보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하죠.흐흐

cyrus 2019-08-29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자가 결혼한 남자가 장애인으로 설정한 점. 이 점이 흥미롭네요. 요즘 제가 하고 있는 페미니즘 공부의 주제가 장애학과 관련이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안 봐서 결말에 대해서 의견을 내기가 어렵네요.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장애인 남성과 비장애인 여성의 만남. 관심 가져볼만한 주제인 것 같아요. ^^

stella.K 2019-08-29 19:02   좋아요 0 | URL
아냐. 둘 다 장애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 하잖아.
장애자들끼리도 그렇게 하지. 사실 그건 엔딩에 잠깐 나올 뿐이고
그래도 이 영화는 여성사의 관점에서 봐 줄만한 영화라고 생각해.
글치않아도 보면서 네 생각 잠깐 났어.
기회되면 함 봐봐.^^

cyrus 2019-08-30 07:44   좋아요 0 | URL
제가 글을 제대로 보지 못했네요.. ^^;;

transient-guest 2019-08-30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영화나 책을 보면 그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당시의 성인식, 사회상, 사고 등등. 그려내고자 한 건 아마 산업화의 그늘 같은 주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만...

stella.K 2019-08-30 14:34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래서 가끔 옛날 영화 보면 옛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곤 하죠.
70년대 영화들이 산업화의 그늘을 다룬 작품이 많긴하죠.
안 그래도 그 시대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옛날 영화 안 본 것들이 많은데 보기가 쉽지 않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