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70 - Gogo70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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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최호
주연 : 조승우, 신민아

70년이면 지금부터 40년전 이야기다. 꽤 먼 옛날 이야기 같지만 나에겐 제법 친근하다. 

그 시절, 우리 가요계는 이봉조라는 걸출한 작곡가가 있었고, 파격적인 무대의 아마도 한국의 제니스 조플린쯤 되는 김추자가 있었고, 정훈희와 펄시스터즈의 독주체제는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 시절 김추자는 보는 것으로는 좋지만 감히 따라할 수는 없었고, 정훈희나 펄시스터즈를 더 좋아하고 따라하기를 즐겨했다. 워낙 그들의 아성은 웬만해서 깨지지 않을 것 같아 '데블스'란 그룹 사운드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땐 그룹 사운드가 빛을 보지 못한 때였다. 그나마 이를 대체할 팀이 있었다면 곽규석의 <쇼쇼쇼>에 가끔 출연했던 '봉봉 사중창단'이나 이에 필적할 '블루벨스'가 있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이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이중, 삼중으로 가려 '데블스'란 그룹은 철저하게 마이너리티에 속했는지도 모른다. 하긴 그땐 소울이란 장르가 막 형성되었을 때니 천하의 이봉조라도 감히 이 장르에 도전하지 못하고, 이들은 철저하게 남의 노래나 따라 부르는 정도가 다였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의 매니아들에겐 꽤나 인기가 있었던 그룹이었나 보다.  

사진에서 보듯 <플레이보이컵> 경연대회라는 노래 경연대회도 실제로 있었나 보다. 나 때로 치자면 <대학가요제>나 <국풍81(?)>또는 <강변가요제> 뭐 그런 것에 버금가는 대회는 아니었을까? 서울 변두리쯤에서 소울이 좋아 업소에서 노래나 불러주고 푼돈이나 버는 이들에게도 꿈은 있었다. 당시 서로 라이벌인 두 그룹이 한팀을 이뤄 대회에 나갔고, 1등은 못했지만 특별상인가 뭔가를 해서 밀가루 한 포대를 부상으로 받는다.  

어디나 그렇듯,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자다. 당시 1등을 차지했던 그룹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길이 없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알아줄만도 한데 오래 버텨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키지 않으면 누가 1등을하고, 2등을 하던 대중은 기억해 주지 않는다. 

무대 의상이 촌스럽긴 하지만 나름 파격적이기도 하다. 아무나 입상하는 것 아니지 않는가? 1등은 못했어도 어쨌든 입상은 했으니 어디든 이들은 불려나가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부상으로 받은 밀가루 포대가 다 떨어져 갈 무렵, 그들은 당시 잘 나가던 음악 프로듀서에 적극 자신을 어필해 '닐바나(오늘 날의 명칭으로 하자면 '니르바나'를 당시로는 그렇게 불렀나 보다)'로 환골탈퇴 시켜 성공가도를 달린다. 

나름 이 그룹 멤버들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돈만 많이 벌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멤버들과 진정한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상규(조승우)의 갈등이 제법 그럴 듯하다. 이들의 성공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되는 미미(신민아)의 백댄서 역할도 나름 볼거리다. 


무엇보다 이들이 주목을 받았던 때는 70년대는 유신 독재 시절이다. 당시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은 지금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해프닝 같다. 더구나 대통령에 의해 금지 가요가 선포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또한  당시로선 통행금지가 시행되고 있는 때였다. 하지만 파격적이고 당차게도 12시부터 4시까지 밤새도록 춤추고 놀라고 고고장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이들의 무대와 젊음의 열기를 발산한다. 

하지만 점잖은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 이를 순순히 보아 넘길리 없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도 단속했는데 그런 허섭쓰레기 같은 고고장을 단속하지 못할까? 왜 그런 곳을 단속하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대의명분은 없다. 그저 대통령이 싫어하면 그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깨끗히 수행할 뿐이다.  

특히 이 영화는 중반까지는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다가 나중에 뒷심을 발휘한다. 지금도 인상적인 건, 군인들이 그 고고장을 진입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막는 공연장 관계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진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춤을 추고 공연을 한다. 하지만 마침내 군인들은 고고장 진입에 성공하고, 최루가스를 살포에 공연을 해산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닐바나'와 고고장에 온 사람들이 누군가? 한창 혈기방자한 젊은이들이다. 아무도 이들의 젊음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은 최루 가스 때문에 숨은 고사하고 눈을 뜨고 있기에도 괴롭지만 누군가 물을 끌어와 공중에서 살포하고 그로인해 다소간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누군가 "계속 가는 거야"하며 춤과 노래를 계속한다. 그때 이들을 성공시킨 프로듀서도 있었는데 외치는 한마디 "그래. 여기가 바로 닐바나야!"란 말이 참 인상적이다. 니르바나. 나도 잘 몰랐던 단어다. 열반이란다. 고고장 밖에서는 아수라장이어도 그안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것. 그것이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역시 독재도 이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다.  

누구나 젊음은 한때고 그때를 지나오지만, 그래서 지금의 젊은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도 기성세대가 되면 대부분 젊은이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으로서, 문화의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란 옛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나의 아버지도, 내가 한창 어리고 젊었을 때 팝송 듣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분명 아버지도 젊었을 때 들었던 음악이 있었을텐데도 말이다. 그러니 문화를 맞다 틀리다로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겠는가? 기성세대가 보기에 눈쌀이 찌푸려지면 무조건 잘못된 것인가? 그런 억측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독재체제는 그것을 서슴없이 행했다는 것이다. 문화 말살은 곧 인권 말살과 같은 것이다. 인권이 보장된 나라에서는 문화도 강성해 보인다. 물론 그에 대한 문제점도 없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빈대 잡자고 초가산간을 태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확실히 문화란 독재체제하에선 발전하기가 여간해서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문화는 또 여러가지 모양으로 환골탈퇴 후 살아 남기도 한다. 역시 변화에 능한 종이 오래 살아남는다란 말이 여기에도 해당이 되는가 보다.  

그렇게 인기를 구가했던 이들도 80년대 초 해산을 했다고 한다. 그때 그 멤버들은 지금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   

감독은 어떻게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역시 음악 영화는 흥미롭다. 단지 아쉬운 건 좀 더 짜임새 있고, 임펙트 강하게 만들 수도 있었던 것을 그저 그렇고 그런 소품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영화의 자잘한 재미와 사람들의 고뇌와 방황을 그리느라 이들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적게 배치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대체로 유쾌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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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1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1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0-03-0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윗글에 말한 이봉조라면 가수 현미의 전 남편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언제가 TV에서 말한것을 언뜻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나저나 신민아 정말 훌륭하네요^^

stella.K 2010-03-02 11:21   좋아요 0 | URL
네. 당시엔 이봉조랑 박춘석(?)이 작곡계를 꽉잡았죠.
쌍두마차겸 라이벌 뭐 그런...!^^

프레이야 2010-03-01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쾌하게 봤어요.
여기선 조승우보다 신민아 제 역할을 하더군요.
신민아가 여기서부터 좋아졌거든요, 전.^^
참, 알라딘에도 니르바나님 계신데요.ㅎ

stella.K 2010-03-02 11: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런데 조승우도 노래 꽤 하더라구요.
저도 그 생각했어요. 알라딘의 니르바나님 지금도 잘 계신지 궁금합니다.^^

프레이야 2010-03-03 22:58   좋아요 0 | URL
조승우야 뮤지컬도 하니까 정말 목소리 괜찮더군요.
좋아요, 둘다^^
 
다크 시티 - Dark Cit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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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난해 하지만 그로테스크한 비주얼이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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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 Sakw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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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강이관
주연 : 문소리, 김태우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 화면이 거친게 누군지 초짜 감독이 만들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확들었다. 어찌보면 다큐멘터리 화면 같기도 하고 암튼 노련미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자꾸 보면 볼수록 무슨 유럽의 어느 영화 보는 것 같고, 뭔가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내용은 좀 빤하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연애는 좋은데, 결혼은 왠지 김빠지고, 재미없고, 일상적인 것.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결혼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처음엔 누구든 신혼은 행복하고 좋다. 그러다 살다보면 서로 대화의 단절을 느끼고, 결국 내가 요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을 좋아해 결혼한 건가? 배우자에게 실망하고, 나에게 실망하고. 그런데 왜 또 하필 그 싯점에 헤어졌던 애인을 다시 만나서는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드는 걸까? 



더구나 그 애인이 예전엔 일방적인 통고로 헤어졌는데, 그때 그렇게 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며 반성까지 하며 다시 만나줄 것을 부탁한다.  

(사실 말은 쉽다고) 제3자가 볼 때 좀 찌질해 보인다. '헤어졌으면 쿨하게 헤어지는 거지 뭘 다시만나 찌꺼기로 남은 사랑에 불을 질러보려고 하는 걸까?'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무쪽 자르듯이 자를 수 있는 것이던가? 또 그러면 그럴수록 남편과의 대화는 점점 안되고 꼬인다. 왜 남자들은 뭐 하나를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독신 때처럼 자기 멋대로 결정하는 것일까? 그것도 나중에 알 것 다 알게되면 가족을 위해서라고 하고, 말했으면 못하게 말렸을 것 아니냐? 구구하게 변명을 한다. 뭐 여자도 그럴 수 있다. 결혼이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이 상대방에겐 상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처 받지 않으려면 사랑도 결혼도 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주인공 현정의 친정 역시 우리가 익숙히 보아 온 흔한 가정 형태다. 보통의 가정이 다 그런 모습 아닌가? 지나칠 정도로 스탠다드 하다는 느낌이다. 아버지는 명퇴를 했고, 동생은 취직이 안되 답답하고, 현정은 이혼을 결심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만 같은 엄마가 있다. 너무 비슷비슷해 웃음이 나올지경이다. 무엇보다 답답하고 우울한 현정이 아버지의 안경을 대신 찾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오는데, 아버지는 딸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 주며 울지 말라고 안경은 내가 찹아 보겠다고만 한다. 어느 아버지가 인자하고 마음이 깊어 이런 딸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준단 말인가?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아버지가 또한 우리 아버지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절대적 고독을 영화 속 현정은 치뤄내고 있는 줄도 모른다. 차라리 혼자라면 그 고독은 즐길 수도 있고 감내할 수도 있것 같다. 하지만 가족이 있고, 사랑으로 보듬어 줘야할 배우자가 있기 때문에 더 고독하고 답답한 건 어쩔수가 없다.  

이혼을 결심하고 남편 상훈에게 자신이 왜 이혼하자고 했는지 아느냐고 물어봤을 때, 상훈은 순순히 이혼에 동의하며 자신이 결국 거짓말 했고, 너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자책한다. 거기에서 또 한 번 답답함을 느끼는 현정.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혼자만이 느끼는 절대 고독은 누가 깊이 헤아려 주지 못한다.  

그런데 현정은 옛 애인과도 헤어지고, 이제 겨우 이혼을 결심한 남편 상훈에게 전화해서 뜬금없이, 나 그동안 옛날 애인 만났엇다고 고백해 버린다. 그때의 상훈의 반응은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다. 그에겐 정말 뜬금없어 보인다. 현정 역시도 뭐 때문이란 확실한 이유도 없이 "그냥"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싱거운 말인가? "그냥". 과연 인간이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설명 가능하게 말할 수 있는 게 몇개나 될까? 논리적으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훗날 의미로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실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밑도 끝도 없이 나의 있었던 일을 고백해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다. 그런데 현정의 고백은 동전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고백은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배우자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조심스러운 존재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 말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고백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 아니까. 그래서 결혼할 때는 결혼하기 이전에 있었던 일은 다 묻고 결혼하라지 않은가? 그건 맞는 얘기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항상 금기에 도전해 왔다. 그런 얘기 좀 하면 어때? 그것은 어찌보면 결혼 이야기를 다시 써 나갈 새로운 시발점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현정은 옛 애인과도 완전히 끝냈고, 과거가 되버린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는 것이다. 이미 과거가 돼버린 현정의 연애사를 남편이 받아줄 수 없다면 정말 이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 예전엔 애인의 일방적인 통고로 헤어져 혼란스럽고 그런 상황에서 결혼을 했지만, 지금은 현정이 확실히 "No"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도 이별도 내가 먼저하면 모든 것은 의외로 깨끗하고 단순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나지 누구도 아니지 않는가? 

마지막 엔딩이 나름 인상적이다. 침대에서 늘어져라 자고 있는 현정. 반면 상훈은 바람 핀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얼떨떨과 벌레 씹은 중간 형상이다. 그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침대로 상훈을 끌어 들이는 그녀. 그녀는 남편을 꼭 끌어 앉으며 다시 혼곤한 잠에 빠져든다. 정말 별거 아니지만 나름 멋진 엔딩씬이라고 생각한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뭔가 해피 엔딩인 것만 같다.  

제발 남편이든, 아내든 한때 튕겨내도 참고 인내하고, 다시 돌아올 때 모른 척 슬쩍 받아줘라. 이혼이 뭐 별거냐? 한때의 바람. 한때의 과거사 가지고 공격하고 비아냥거리지 말아라. 그건 배우자가 불륜한 것만큼이나 치사하다. 인간은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현재를 사는 존재다.라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사과는 특별한 의미는 없어 보인다. 현정이 전 애인과 정말 헤어질 것을 결심했을 때 차안에서 먹으라고 사 준 것뿐이다. 스쳐지나가는 듯한 영화 소품에 슬쩍 의미를 부여했다. 왠지 마음에 든다. 이렇게 감독은 별 것 아닌 것들에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넌지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내가 가진 '초짜'라는 건 그 의미가 퇴색되어 보인다. 그런 것이 감독의 능력이고 재능이 아니겠는가?    

이 영화는 찍기는 오래 전에 찍어 놓고 빛을 못 보고 있다가 2007년 한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주목 받은 영화라고 한다. 정말 비운의 영화가 될뻔 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 MBC <파스타>에 나오는 이선균 정말 앳되게(?) 나온다. 주름이 어쩌면 저렇게 없을 수 있을까?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이 영화 역시 문소리를 위한 영화는 아닐까 싶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녀에게 무한 신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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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Slumdog Millionair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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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대니 보일
주연 : 데브 파텔, 프리다 핀토

 지난 연휴 TV에서 이 영화를 해 주길래 (졸면서)두번째로 보았다. 작년에 이 영화를 보고 리뷰를 썼던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또 한번 쓴다.(또 쓰면 어때?)  두번째로 보니 영화가 또 다른 새로운 의미로 다가 온다. 

이 영화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트레인스포팅>의 대니 보일의 영화다. 배우들을 끊임없이 뛰게 만드는 감독. 거기서도 그러더니 이 작품에서도 또 뛰게 만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뜀박질'은 어떤 의밀까?  



확실히 이 아이들은 뛰어야 사는 아이들이다. 신도 버렸다는 불가촉천민. 이 아이들은 뛰어야만 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자신을 쫓는 어른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주는 어둠의 세력으로 부터, 가난으로 부터 뛰고 또 뛰어야 했다.  

뛰어야 사는 또다른 영화가 있다. <말아톤>이다. 우리나라 영화고, 영화 속 초원이는 저 인도 아이들처럼 가난하지는 않다. 물론 부자도 아니지만. 하지만 초원이에게도 또 다른 의미에서의 결핍이 있다. 바로 지능이 낮다는 것. 바로 이것이 또 다른 결핍이라 그의 엄마는 아들 초원에게 마라톤을 가르친다. 그리고 이것은 초원이에겐 삶의 버팀목이자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영화로는 <맨발의 기봉이>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내가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의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늙고 병든 어머니를 위해 뛰었던 기봉씨.


그런데 참 그 이미지가 공교롭다. 왜 가난한 집 아이들은 그렇게 뛰어야 하고, 부잣집 아이들은 뛰지 않는 것일까? 부잣집 아이들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 느껴야 하는 물질적 결핍이 없기 때문에 뛸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확실히 불공평하다. 

영화 속, 살림과 자말의 뛰는 모습은 정말 나름 귀엽기도 하지만 제법 날쌔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뛰고 뛰어서 도달한 형제의 길은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자말은 결국 부와 사랑을 차지 하지만 살림은 어느 허름한 아파트 욕조에 돈을 뿌리고 총으로 자신을 죽였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다시 봐도 참 놀랍고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말의 살아온 삶의 여정에서 퀴즈쇼의 정답을 얻고 부와 사랑을 모두 차지한다니. 이런 완벽한 플롯이 어디 있는가? 영화니까 가능했고, 또 영화이기 때문에 꼭 그렇게 해야 한다. 영화는 비루한 인간의 삶에 청량제 같은 구실도 해야하니까.  

어쩌면 이 영화는 어느 감상주의 감독이 만들었다면 부와 사랑. 둘 다는 차지할 수 없으니 일부러 틀린 대답을 하게 해 부를 이루지 못하는 대신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가던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대신 부를 차지하는 것으로 가야 한다고 박박 우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영화의 여운이 오래 간다고. 그건 확실히 클리셰이며, 예전엔 통했을런지 모르지만 그랬다면 구태의연한 영화가 될뻔 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관객의 의중을 한 발 앞서 갔다. 이를테면, 자말이 푸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제에서다. 문제가 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퀴즈쇼의 진행자가 A,B,C,D 사지선다의 문제 중 B를 선택하도록 화장실에서 자말을 유도한다. 하지만 자말은 그 또한 함정이란 것을 알고 D를 선택해 결국 마지막까지 도달한다. 이는 확실히 원작에 힘입은 감독의 노련한 연출력이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엔딩은 누가 봐도 그래야 했다. 즉 불가촉천민에서 퀴즈 영웅이 되는 것. 그리고 사랑의 영웅이 되는 것으로 말이다. 감독은 '관객을 감동시키는 것'이야말로 그의 존재의 궁극적 이유라는 말에 충실했다고 본다. 안 그랬다면 불가촉천민은 결국 불가촉천민이라며, 운명론자를 자체했다면 감독의 옷을 벗어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 영화에서 "뛴다"는 것은 어떤 의밀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처해진(줄도 모르는) 운명을 거부하고 희망을 향해 뛰어 가는 시지프의 원형은 아닐까? 비록 희망 그 뒤에 또 다른 절망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저 바위를 산 위에 올려놓겠다는 시지프스처럼.  

달려, 시지프스의 전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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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2-18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팠던 영화인데 놓쳤네요

프레이야 2010-02-1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연휴끝날 하더군요. 영화관에서 봐서 또 보진 않았어요.
영화 속 뛰는 장면은 그러고 보니 하나의 의미가 되네요.
추격신이라든지, 정신적 방황을 의미하는 뛰기, 어떤 의미의 탈출이라든지..
아니면 '말아톤'에서처럼 달리기가 하나의 목표이든지..
이 영화 속 저 어린 아이들의 골목 달리기는 역동적으로 보이기도 하더군요.
마지막 장면의 발리우드 스타일 때문에 좀 깨던 영화였어요.^^

stella.K 2010-02-1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인도 영화가 발리우드란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 같은 경우 배경이나 등장인물이 인도라는 것뿐 실제로 제작은
영국이 했을 거예요.
얼마 전, 본 '블랙'은 감독은 확실히 인도 감독인 것 같은데
스타일은 발리우드죠. 특히 영국풍이란 느낌인데
아마도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것이 그대로 영화에 반영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요즘엔 이런 인도 영화가 각광을 받고 있어서인지
익숙한 허리우드 영화 보는 것 보다 훨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양적 정서도 녹아 있어 깊이도 느껴지구요.
아, 그런데 프레이야님과 영화 얘기할 수 있어서 좋으네요. 흐흐

novio 2010-02-25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뛴다'는 의미의 분석에 예리하시네요. 즐감했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
 
7급 공무원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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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방면의 영화에선 턱걸이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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