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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 - Actr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의 한국판 창간 표지를 찍기 위해 우리나라에 나름 내로라 하는 여배우들 여섯이 모였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그것도 하필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계를 잘못 보고 약속 시간 보다 훨씬 일찍 촬영 장소에 나타난 윤여정. 처음 보는 디렉터 앞에서 그 실수를 만회해 보고자 하지만 거짓말엔 별로 능수능란하지 못한 윤여정이 고현정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한다. 하지만 고현정이 윤여정의 호출에 금방 가겠다고 말은 하지만, 전날 밤늦게까지 '무릎팍 도사' 촬영 하느라 말과 같이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최지우 역시 촬영 때문에 며칠 밤을 세우고 파김치가 된 상태라 촬영장 까지 가기가 쉽지않다. 더구나 성격 역시 소심하고 까탈스러워 누구와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다. 그 쟁쟁한 배우들과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냐며 걱정을 하고, 그래서 혼자 따로 찍어 합성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합성 사진은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과 다른 사람이 예쁜 옷은 다 입고 찌꺼지를 입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돌이켜 촬영장으로 간다. 그러고 보면 최지우도 천상 여자는 여자다.
이미숙은 아마도 '에덴의 동쪽'을 찍고 분장도 지우지 못한 채 나타나고, 김옥빈 역시 미적미적 거리며 나타난다. 그래도 가장 멋있는 등장은 김민희의 등장이 아닐까? 표범 무늬 자켓에 헬멧을 쓰고 모터 사이클을 타고 나타났다.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이중 가장 늦게 나타난 것은 사진 예쁘게 안나오면 어쩔까를 걱정했던 한류 스타 최지우. 그도 그럴 것이 일본 그녀의 팬들이 보그 촬영한다는 건 어떻게 알고 나타나 사인 공세니 어떻게 이를 마다하랴? 이를 두고 고현정이 질투 아닌 질투로 촬영 내내 최지우에게 비아냥 거리고 이죽거려 화를 돋군다.
사람들 몇명이 모이고, 어떤 사람이 모이건 저마다 태도나 행동 패턴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마냥 공주여야만 하고, 어떤 사람은 싸움 닭이고, 어떤 사람은 뺑덕어멈처럼 이죽대고, 어떤 사람은 이 모든 것과 상관없이 자기할말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겉도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도 영화 초반에 내 눈에 띄인 건, 그 모임의 막내, 김옥빈이다.
쟁쟁한 선배들이 모였던만큼 조금 주눅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딴엔 열심히 후배 노릇 하겠다고 선배가 커피 찾을 때 얼른 커피를 뽑아 오고, 담배를 피겠다고 라이터를 대령해 보지만 늘 누군가에 의해 한발이 늦는다. 행동이 아무리 재도 말을 따라갈 수 없는 법. 그럴 땐 말부터 하고 행동을 하면 좋으련만 그런 예쁜 짓도 쑥스러워 못하고 겉도는 분위기다. 그날의 컨셉이 '보석 보다 아름다운 그녀들(?)'이란다. 그날 촬영 일부를 끝내놓고 표지 촬영을 위해 그녀들이 착용할 악세서리가 와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일본에 폭설이 내려 시간이 지연 돼 한정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고만다. 그때 김옥빈이 우연히 윤여정과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게 되는데, 자기는 인생이 그냥 재미가 없고 말한다. 심지어 남자친구를 사귀었을 때도 재미가 없었다고. 그러니 김옥빈이 그 촬영장에서 그처럼 행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성 싶다. 그러자 윤여정은 벌써 그 나이에 인생이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한다. 물론 윤여정의 할머니 같은 걱정도 동감은 하지만, 그런 김옥빈을 어찌할 것인가? 단지 좀 아쉽긴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건 다만 그녀의 몫일 것이다. 또 누가 아는가? 그런 사람이 늦게 철들어 나이 40줄쯤 타면 인생이 너무 재밌다고 환호성을 칠지? 지금의 내 나이에 인생이 재미없는 줄 알았다면 그렇게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원래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된다고 하지 않던가? 김옥빈에게도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배우. 그것도 여배우. 확실히 멋있는 것 같다. 여자로 태어나서 한번쯤 배우해 보고 싶다는 생각 안해 본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도 어렸을 때 한때나마 배우를 꿈꿔 본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아는 누가 배우의 뜻풀이를 해 주는 바람에 새롭게 깨달았다. 배우할 때 '배'자가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를 쓴단다. 즉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 정말 그러네. 이것은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우'자가 또 넉넉할 우다. 넉넉히 또는 기꺼이 사람이 아니기를 선택한 것. 이것이 배우의 뜻일까? 즉 나는 없다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작품에 맞혀진 존재들. 드라마든, 영화든 그속의 일부로 거듭나야 또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기에 배우는 작품으로만이 얘기되어질 수 있는 존재란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무릎팍 도사' 같은데 나가서 자신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를 쓰는지도 모른다. 이즈음 그런 배우의 꿈을 접고 영원한 시청자로 나앉은지 오래된 나는 그것도 하나의 컨셉이고, 트릭 같아 마냥 편하게만 봐지지 않는다. 왜 배우들은 카메라 밖에서 조차 멋있어 보이는 걸까? 질투난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관음증을 충족시켜주기도 하니 배우는 확실히 인간은 아니긴 아닌성 싶기도 하다. 그러니 그들은 또 얼마나 외로운 존재들일까? 남의 욕망에 붙어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영화는 아예 사람들의 그런 관음증을 속시원하게 까보이는 영화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리얼리티쇼. 그러면서 그속에서 출연진 역시 여배우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솔직하게 얘기하게 만들었으니 그들도 나름 작업을 하면서 재미있고, 속이 시원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최지우와 고현정이 신경전 끝에 싸우는 것도 볼만했지만, 역시 이 영화의 백미는, 악세서리를 기다리는 동안 즉석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면서 질펀하게 나누는 대화들이 아닌가 싶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건, 어떻게 앉는 대형이 이미숙, 윤여정, 고현정이 나란히 앉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자연히, 이혼한 여자가 배우로 살아 가기는 얼마나 어려운가를 얘기하다 눈물을 터뜨린다. 이 셋중 가장 오래 전에 이혼했을 윤여정이 영화내내 자신은 언제 이혼했는지 기억도나지 않으며, 지금은 자신이 처녀로 늙는 줄 착각하고 산다고 우기다가 결국 이 부분에서 자신을 오픈한다. 자기는 분명 (전 남편에게)차임을 당했는데 모든 사람은 내가 차버린 줄 안다고. 그것이 제일 억울하다고. 그런데 언젠가 한번은 극작가 김수현씨가 그랬단다. 못 생긴 놈한테 차였다는 말보다 네가 찼다는 말이 더 낫지 않냐고. 그러자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나도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거 당연한 거 아냐? 이렇게,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봐줬으면 하는 것과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는 건 거리감이 있다. 일반인도 그런데 하물며 배우들일까? 그래도 비교적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역시 이혼은 당차게 보이는 여배우들에게도 넘지못할 산인가 보다.
이 영화를 찍던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실제로 눈이 내렸었나 보다. 최지우와 고현정이 싸운 것 때문에 전체 분위기가 싸한데 눈이 온다고 어쩌면 그리도 좋아들 하는지 소녀적 감성이 그대로 베어나온다. 또한 그때 스텝 하나가 계단 복도에서 핸드폰으로 애인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을 넋을 놓고 지켜본다. 이들에게 이렇게 순간을 즐길 줄 아는 매력이 너무 예쁘게 보여 보는 나도 흐뭇하다.
오기로 한 보석은 끝내 오지 않았다. 분위기는 최고였지만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그녀들은 다음에 이부분만 다시 찍기로 하고 일단 헤어지기로 한다. 그것이 실제 상황인지 아니면 컨셉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석이 끝내 오지 않은 것은 확실히 잘한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악세사리는 그 사람을 빛나게 해 줘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경우가 너무 많지 않은가? 이 영화는 당연 여배우들이 빛나야 하기 때문에 보석이 나오지 않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헤어졌으니 끝이 아니라 ing다.
이 영화는 일종의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일종의 페이크다큐류일 것이다. 그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핸드 헬드 카메라를 사용했고. 배우들은 전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사실적'이 아닌 '사실의'연기를 한다. 솔직히 이제 고백하건데 내가 끝끝내 배우가 되지 못한 건 이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고, 하거나 말거나한 얘기지만.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멋있게 보여지기도 하겠지만 자연스럽기도 해야할 것이다. 그러니까 배우지.
촬영장이란 한정된 공간 안에서 보여줄게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100분여의 러닝 타임을 무리없이 보여주고 있다. 중간에 편집한 걸 보면 이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하루는 무한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재밌고, 유쾌한 영화다. 이들의 편집된 이야기도 궁금하고, 이들의 다음 이야기도 궁금하다.
끝에 촬영 후기로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인터뷰가 실렸다. 고현정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배우라는 움직임이 자유스럽지 못한 직업이라 이렇게 나와서나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 할 수 있으니 그래서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다고. 확실히 이들은 카메라 앞에 아름답고 사랑스러 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