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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 Amad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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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서 요즘 흔히하기 좋아하는 '내 맘대로 좋은 영화 베스트'에 꼭 빼놓지 않고 들어가는 목록중의 하나다. 나는 이 영화를 국내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 3.5번쯤 본 것 같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영화도 영화지만 전편에 흐르는 모짜르트 음악의 절묘한 배치가 전율할 정도로 좋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상당히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는데, 어떻게 18세기의 사람이 이토록이나 세기를 뛰어넘어 세련된 음악을 구사할 수 있을까?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히 모짜르트 음악을 절묘하게 배치시켰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 영화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흔히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단연 살리에르와 모짜르트의 관계일 것이다. 살리에르에게 있어서 모짜르트는 경이의 대상이며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었음을 영화를 보는 사람 누구든지 공감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모짜르트를 좋아했다가 나중에는 살리에르에 감정이입을 하고 누구나 그를 공감하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모짜르트는 천재고 세상에 천재는 흔치 않으며 살리에르는 범재며 질투하는 인간이고 나 역시 평범하기 그지 없으며 동시에 질투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건 살리에르가 모짜르트에 비해 평범할 뿐이지 진짜 그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천재는 아니었지만 음악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으며 당시 궁정악장까지 지낸 사람이다. 어디 그것이 아무나 얻을 수 있는 명예던가? 


언젠가 아주 오래 전 라디오에서 그의 음악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영화가 주는 선입견 때문일까? 좋긴 좋은데 확실히 모짜르트 보다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 사내는 얼마나 비운의 사내인가? 평가를 받아도 음악 하나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꼭 꼬리표처럼 모짜르트와 비교해서 평가를 받으니.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항이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살리에르가 신과의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아름답게 쓰임 받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뒤 한가지 조건이 붙는다. 그러니 자신의 이름이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으며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얼마나 욕망에 찬 당돌한 기도란 말인가? 그런데 그 앞에 모짜르트라고 하는 작고 볼품없겠 생겼지만 큰 바위같은 존재가 자신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모짜르트는 자유로웠으며, 유쾌했고,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았으며, 늘 자신만만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고, 누구든지 그를 좋아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것이 살리에르를 자극했던 것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모짜르트는 방탕했다. 그런 자가 음악을 하며 하나님을 찬송을 하다니! 살리에르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저 방탕하고 음란으로 가득한 자의 찬송을 받으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위대한 음악가로 만들어 주시는 것쯤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어 주시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기꺼이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속에 던져넣고 만다. 신이 그를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신을 배반했다. 그리고 신을 배반한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이 볼 때 살리에르의 심정과 행동은 일부 정당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에게 있어 그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가 맨 처음 기도하였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이름이 더불어 높아지는 것이다. 그것은 교만의 다른 이름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그냥 보아 넘기시지 않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냥 보아 넘기셨다. 인간도 말할 가치가 없는 것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 역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뿐이었으리라. 하나님이 누구신가? 그런 인간의 얕으막한 감언이설적 거래에 쉽게 손을 내미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거래를 살리에르만 하겠는가? 오늘 날에도 살리에르적 거래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일일이 알 수가 없다.  이것 때문에 오늘 날의 기독교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대신 하나님은 모짜르트의 찬양을 받으신다. 알겠지만 모짜르트는 일부 종교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양 클래식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사실 살리에르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정숙해야하고 도덕적으로도 고결해야 한다. 그런 그의 눈에 모짜르트는 개망나니다. 그런 사람에게 천재적 재능이라니 그건 확실히 돼지목에 진주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런 사람의 찬양을 받으실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신비가 있다. 예수님은 당신을 정의하시길 과부와 고아와 세리와 창녀의 친구라고 하셨다. 그러니 그런 모짜르트의 음악을 못 받으실 이유가 없으신 것이다. 또한 그분은 성경 어디엔가 말씀하셨다. 돌들을 가리키시면서 너희들이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으면 이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고(맞나?). 비유적 말씀이긴 하지만 도덕적으로 얼마가 거룩하든 거룩하지 않든 하나님의 눈엔 그것이 그다지 다를 바가 없으시다는 것이다. 

사실 나 역시 애석하게도 모짜르트 보단 살리에르에 더 가깝다. 나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길 원하며 나의 탈란트와 재능이 빛을 바라길 바라고 한때는 이것을 놓고 하나님과 딜을 하려고도 했을 것이다. 또 한때는 함께 일했던 주일학교 제자 녀석의 재능을 칭찬해 주기보다 오만방자함을 개탄하며 바로 저런 녀석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는 것이라고 나 자신의 열등감을 포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건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고 녀석은 최근까지 교회를 잘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다행인건 시간이 많이 흘러 줬다는 것이겠지.

그런데 내가 저 영화를 보면서 모짜르트의 다른 모든 것은 그렇지 않은데 꼭 한가지가 부러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죽기 전까지 그는 열정적으로 작곡을 했으며 한 번도 자신이 만든 곡을 의심없이 그대로 썼다는 것이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창작이 좀 어려운 일인가? 어떤 땐 자신이 쓰고도 그 쓴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 구겨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살리에르가 모짜르트를 놀라움의 대상으로 본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그는 무엇이든 자신이 생각한 바를 종이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는 것이다. 물론 창작의 세계에 있어서 황금률 같은 것이 있다. 즉 자신이 만족할 수 없다면 남도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이것을 내가 확신해도 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리고 곧 자책을 하기도 한다. 난 아직 덜 됐어 라고.   


가끔 천재에 대한 보고서를 접할 때까 있다. 그중 하나는 천재는 남이 그렇게 불러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려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됐던 그것을 확 들어내 보일 수 있는 자기 확신. 나는 이런 영화속 모짜르트가 부러웠고 또 그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물론 그것은 그의 천재성이 아니다. 자신감이다. 때로 이것이 없어 나 자신 초라하다고 느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또한 그는 일하다가 죽었다. 마지막 살리에르가 부탁한 곡을 작곡하다가 죽은 것이다. 젊은 나이에 죽은 건 안타깝지만(그가 죽은 나이는 35세라고 한다.) 그렇게 일하다가 죽은 건 확실히 나에겐 부러움이다. 나는 병원 침대에서 주삿바늘에 호스 꽂고 죽어가는 나의 모습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잘 사는 사람은 자기 죽는 것도 선택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정말일까?  

영화 속 모짜르트를 연기한 톰 헐스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모짜르트를 너무 강렬하게 연기해서일까? 그 이후 그는 출연하는 배역에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 불운하다면 불운하다고도 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 하나로 그를 기억해 주는 팬이 있다면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닐 듯 하다. 

아무래도 이 영화를 한 번 더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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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18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짜르트 역의 톰 헐스(스텔라님 덕분에 이름을 알게됬네요)의 연기는 정말 신 들린것 같았죠.하지만 제가 더 이상이 깊게 남는것은 tv에서 방영될때 배한성님이 더빙한것때문에 더 연기가 훌륭해 보이더군요^^

stella.K 2009-07-19 16: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배한성씨의 목소리 연기는 정말 딱이더군요!!

hnine 2009-07-18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이 영화는 보통의 영화가 아니었지요. 처음 보고나서는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범인에 비해 천재의 삶이 결코 더 행복하리란 법이 없다는 것을 왜 이제 와서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stella.K 2009-07-19 16:23   좋아요 0 | URL
저도 천재는 그닥...하지만 자신감은 배워보고 싶더군요.^^
 
가족 - A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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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가족처럼 질기고도 무시무시한 애증으로 묶인 관계가 또 있을까?  

사람이 좋다가도 싫으면 안 보고 안 만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가족은 그렇지가 않다. 가까이 있으면 가까이 있는데로 싫고, 멀리 있으면 싫은데도 걱정이 되는 게 가족이란 존재다. 

더구나 식구가 서로에 대해 늘 사랑하는 마음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면 더 바랄나위 없겠지만 오히려 서로에게 아픔을 주고 고통을 준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려서라도 그와의 관계를 잘라버릴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가족이다. 내가 가족에게 가족이 나에게. 

여기 해체된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다친 눈 때문에 인생을 비관하고 딸은 이런 아버지가 싫어 조직에 발을 들여 놓았다 교도소까지 다녀오지만 여전히 그 조직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한다. 또한 이 때문에 아버지는 딸을 미워하고 딸은 아버지를 미워한다. 그나마 이들 중간에서 숨통을 틔게 해 주는 존재는 늦둥이 아들이요 동생이다. 둘은 너무나 이 아들을, 이 동생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아들을 위해 딸이 교도소를 출감한 이후 독립할 것을 명령하고 딸은 아버지가 싫지만 이 동생을 위해서라도 집에 남길 바란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그나마 딸의 골수라도 이식해 생명을 연장하길 바랬지만 그마저도 좌절되고 만다. 그러던 중 딸은 아버지 친구를 통해 아버지가 왜 눈이 다치게 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사실 딸이 어렸을 적 실수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워낙에 어렸을 적일이라 이를 알리 없는 딸은 아버지가 그저 나쁜 사람들과 싸우다 다친 줄만 알았다. 그리고 그 울분을 평생 가족에게 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알고부터 부녀지간은 그전까지 냉담했지만 어느 새 어색한 애정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둘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앞으로의 생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작 딸의 조직과의 인연을 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딸은 마지막으로 조직의 보스를 살해하는 것으로 그 질긴 인연을 끊고자 하나 채 행동도 취해 보기도 전에 상황은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부성애의 십자가를 진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뭘 말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게 그저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15분이 영화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장렬한 느낌마져 갖게 한다. 



특히 아버지역의 주현 씨의 별로 힘들어가지 않은 연기가 정말 볼만하다. 

이즈음 그는 특유의 코믹스러운 이미지에 갖혀 많은 개그맨들이 앞다퉈 그의 이미지를 흉내내곤 했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에겐 좋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이미지에 갇히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새로운 모습과 묵직한 농익은 연기를 볼 수가 있어서 가히 한국의 막스 폰 시도우(이 사람은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 배우로서 최근 영화로는 <잠수종과 나비>가 있다.)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딸 역을 맡은 수애 역시 단아하면서도 연기적 몰입도가 좋은 배우란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를 보다가 드는 생각은 역시 모성애는 늘 잔잔히 흐르는 뭔가가 있지만 부성애는 평소에 수면 밑으로 숨어있어 있는 듯 없는 듯 확인할 수 없는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결정적일 때 있는 힘을 다 끌어 모아 분출시키는 강력한 힘을 갖는 그 무엇으로 말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인간은 긍정적인 기운을 부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흐름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도 있는 놀라운 존재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영화를 보면서 가족이란 평소 땐 지긋지긋 하다가도 결정적일 때 운명도 맞바꿀 수 있는존재들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어찌 가족을 천륜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은 그냥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짜임새도 좋고 강추할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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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08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해전에 봤던 영화에요.
수애, 좋더군요.
주현이 딸을 위해 무릎 꿇던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저 위 사진 보니 그러고보니 박원순도 나왔었군요.ㅎㅎ

stella.K 2009-06-09 16:44   좋아요 0 | URL
ㅎㅎ 프레이야님, 박희순이어요. 박원순은 변호사겸 녹색운동 하시는 분이죠.
맞아요. 무릎꿇는 아버지. 아버지는 그렇게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하는구나 싶더군요. 영화 의외로 괜찮았어요. 그죠?^^

프레이야 2009-06-09 17:18   좋아요 0 | URL
ㅋㅋ 제가 요새 잘 이래요. 치매(?)는 아닐테고..ㅎㅎ
왜 박원순님을 생각했을까요?

stella.K 2009-06-09 17:57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러는데요 뭐.^^

스파피필름 2009-06-08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만큼 영원히 숙제인 관계도 없을 것 같아요.. 물론 화목한 가정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요.. 이 영화 보고 싶어지네요.. ^^

stella.K 2009-06-09 10:49   좋아요 0 | URL
스파피필름님 오랫만이어요. 이 영화 시간 나실 때 한번 보세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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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 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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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많은 오류를 범하면서 산다. 

인간은 오해할 수 있으며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것들을 의심하고 실수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많은 실수와 오류를 범하고 때로는 그것을 쉽게 인정을 하면서도 결정적일 때 절대로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강철 같다.   

여기 한 엄마가 있다. 약재상을 하며 지능이 낮아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들을 데리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아들의 지능은 유치원생 수준이라 방금 자기가 한 말, 한 일을 너무도 쉽게 잊어 먹는다.  

이런 바보 아들이 어느 날 살인을 저질렀다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믿을 수 있겠는가?  

마침 이 아들에게는 질 나쁜 친구가 한 사람 있었다. 아들에겐 유일한 친구이겠지만 엄마는 평소 아들에게 이 친구와 놀지 말라고 틈만나면 타이른다. 하지만 아들은 그것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가 아들이 그 친구와 놀지 말기를 바라는 것은 단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 친구로 인해 아들이 악에 물들까 봐서이고 아니면 나중에라도 헷고자를 당하게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분명 이 친구가 사람을 죽인 범인이며 그 누명을 아들에게 씌웠다고 생각하고 그 증거를 잡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친구의 집을 잠입해 증거를 확보한다.  너무도 당당하게 그 증거를 경찰에 보이지만 왠걸 그것은 보기 좋게 불발이 되고 만다.  

엄마는 오히려 덤태기를 쓰고 명예를 훼손했다 하여 아들의 친구에게 돈을 물어주게 생겼다. 그뿐인가? 아들을 구명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지만 그 변호사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싸구려 변호사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엄마는 아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면 할수록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사람은 나락으로 떨어지면 떨어 질수록 날개가 생기는 법이다. 더구나 그것이 아들을 사랑하는 모성애 때문이라면 한층 더 높이 날수가 있는 것이다. 

평범한 촌부에 지나지 않았던 엄마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점점 더 똑똑해지고, 담대해지며, 영리리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그러나 그대 엄마여, 그렇게 단 날개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으며 당신의 날개는 거기서 부러지고 만다.  

설마 내 아이가? 그 바보 같고 사슴 같은 눈을 가짐 내 아들이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그것을 나더러 믿으라고? 

그것은 정말 엄마로서는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가 없었으며,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아들의 살인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인 고철장수 노인을 둔기로 찍어 살해를 하고 그 사실을 인멸하기 위해 노인의 집을 불 사른다. 그리고 엄마는 들판으로 나와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묘한 표정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무지한 모성애에 바치는 제의라고나 할까? 

카인만이 아벨을 죽여 놓고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하나님께 항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자지간에도 모녀지간에도 자매지간 또는 이렇게 모자지간에도 또 다른 모습으로 항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아이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믿는 엇나간 이 모성애도 궁극적으론 자기애의 다름이 아니지 않을까? 우리가 그렇게도 자애로워 마지않는 이 모성애란 것도 것도 말이다. 

옛적부터 지금까지 우리네 엄마들은 혹시라도 자식이 잘못되면 그것은 내 아이 탓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다. 그것은 친구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며 시대가, 상황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카인의 항변과 그 모양새만 다를뿐 그 이치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리고 또한 그것이 모성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아이를 지키고 싶은 게 모성이란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확실히 자기 안에 내재해 있으며 무지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것. 자신이 아는 것 외에 나머지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지극한 자기애. 그것을 보편적인 언어로 '자기애의 오류'라고 밖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오류는 이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감독은 경찰의 무능함을 조롱이라도 하듯 아들은 나중에 무혐의로 풀려나고 애꿎은 다운증후군의 청년을 살인범으로 몰아 죄인으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진실을 아는 건 '마더' 혼자일 뿐이다.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 또한 자신만이 안다. 이 무슨 천형이란 말인가? 아무에게도 고백하지 못하고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것은.  그것을 잊기 위해 마더는 스스로 자신의 혈자리에 침을 놓고 춤추는 관광버스 그 틈속에 자신을 숨겨버리고 만다.     


영화 내내  신들린 듯한 연기를 했던 김혜자. 그녀 외에 누가 이 연기를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왠만한 수사관 못지 않은 냉철함과 영혼이라도 맞바꿀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 그 간극을 두려움과 공포, 광기로 스크린을 꽉 채웠던 그녀에게 정말 가슴에서 울어나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과연 그녀는 우리의 국민 어머니란 찬사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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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1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1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1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6-0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러가야 하는데요..
잘 읽었습니다. 꾸욱!

stella.K 2009-06-01 10:49   좋아요 0 | URL
대체로 영화에 대한 반응은 좋은 편 같습니다만
어떤 사람은 무슨 영화가 이러냐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뭐 그다지 유쾌한 영화는 아니죠.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역시 프레이야님은 명품 리뷰를 볼 줄 아시네요. 음하하하~
어제 유난히 공들여 쓴 리뷰걸랑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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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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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보니 이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하긴 내가 제때 요즘 잘 나가는 영화를 몇 편이나 챙겨 보겠는가? 거의 대부분 철지나 보고 뒷북치듯 야, 그 영화 어떻더라, 저떻더라 떠드는 게 내 일인인 것을... 

이 영화가 처음 걸렸을 땐 그렇고 그런 삼류 양아치 영환줄 알았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반응이 좋아 보였다. 

과속 스캔들이라...약간 촌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뭔가 궁금하게 만드는 어정쩡함이 있다.  

그래도 역시 제목에선 그다지 좋은 점수는 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 정말 제대로 잘 만들었단 생각이 든다. 기획이나 컨셉. 배우들의 연기력 나무랄 때가 없다. 

보는 내내 웃었고 즐겁게 보았다. 

사실 코믹 가족극 몇 번 보진 않았지만 그냥 그만 그만하게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허리우드 공식에 딱 맞아 떨어지게 만들었다.  정말 영화가 업그레이드 됐구나 싶어 흐뭇함이 느껴졌다.  



특히 박보영의 연기가 정말 빛나 보인다. 이렇게 연기를 잘할 줄이야! 노래도 직접 불렀을까?  

애늙은이 같은 왕현석의 연기도 과연 볼만했다. 차태연의 연기야 그냥 녹슬지 않았다는 점에서 봐줄만 하지 않았을까? 

사실 저런 가족 형태가 없으란 법은 없겠지. 

젊은 할아버지에 젊은 엄마. 그리고 이들에게 어울릴 법한 아들겸 손자. 

이번엔 부전여전인가? 어린 날 순간의 실수로 애를 갖게 했고 가졌지만 참 이들에게 낙태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이 아니겠는가? 

작년에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나의 사부님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영화 작품을 볼 때 이 영화가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우리가 보는 영화는 스캔들이 사랑 이야기로 둔갑시킬 수 있으며, 세태나 사회 현상을 담아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을 계몽하려고 까지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보다보면 약간의 씁쓸함도 없진 않다.  

미성년의 성행위와 그로인한 출산. 미혼모는 사회적으로 부각이 되지만 부혼부는 상대적으로 가리워져 있다는 것. 

그들이 낙태하지 않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책임져 나가려는 노력에 사회가 뒤따르지 못하는 것. 

이렇게 미성년의 아기 출산은 빨라지고 있는데 한쪽에선 아기를 낳지 않으려하는 것 때문에 출산장려책을 써야하는 이 사회의 불균형이 영화엔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자연 떠올리게 만든다. 

이제라도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뒷바침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미성년의 임신과 출산은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지 오래다. 

미국 같은데서는 고등학생도 아기를 않고 당당히 학교에 공부하고 오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 하지 않는 시대를 맞이한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선 학교부터 그만 둬야하고 쉬쉬하며 자기 호적에도 올리지 못하고 부모의 호적에 올린다. 물론 미성년이라 자신의 호적에 올릴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쉬쉬한다고 문제해결이 되는 건 아니다. 

옛날에 열일곱, 열여덞에 애를 낳는다고 하면 그들의 나이는 결코 이른 나이도 아니다. 그러는 동안에 사회는 고도화 됐다고 하면서도 이런 문제는 뒷걸음만 치고 있으니 이 사회 높으신 분들은 뭐 하시나 씁쓸할 밖에. 

그래도 영화는 시종 밝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한마디로 얄밉게 잘만든 영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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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5-09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제목도 좋고..내용도 많이 와 닿네요.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밝고 코믹한 영화긴 하지만..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결말부분이 좀 아쉬웠어요.
그래도 이 영화, 현호 낳고 처음으로 웃으면서 본 영화라 기억에 많이 남을 듯 해요. ^^

stella.K 2009-05-09 20:03   좋아요 0 | URL
그랬구나. 현호 저 꼬마애 보다 더 귀엽게 자라고 있겠지?^^
 
싸이코 - Psych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요즘 뜻있는 몇몇과 함께 히치콕 스터디를 하고 있다. 뭐 그냥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그런 모임이다. 

모르는 사람은 고리짝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를 봐 뭐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공부해 두는 것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여기 저기서 많이들하고 있고 우리도 뒤늦게 이 행렬에 뛰어든 셈이라고나 할까? 

히치콕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스릴러의 아버지라 불릴만 하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이라면 이 '싸이코'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사춘기 무렵에 보고 몇 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제 다시 보게 됐는데 역시 다시봐도 섬짓한 게 가히 모든 스릴러의 교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 유명한 욕조에서의 살해씬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명장면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저 씬을 과연 누가 감히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난 아직 못 봤지만(볼 가능성 또한 희박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리메이크 시도를 한 감독들이 몇 있어왔나 보다. 하지만 역시 히치쿡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던 것 같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하지 않는가. 

어렸을 때 봤을 땐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지만 지금 다시보니 약간의 어색함 내지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장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졸이게 만들고 충격으로 압도한다. 하지만 약간의 지루함은 어쩔 수 없다. 하긴 그것은 히치콕만이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옛날의 영화들 보면 장면전환이 요즘만큼 빠르지 않다. 그러니 그것을 문제 삼지는 못할 것이다. 

사이코는 히치콕의 거의 말년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여타의 다른 작품 보다 완숙미가 있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재밌는 건, 내가 첫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건 발견했는데 그것이 뭔줄 아는가? 영화를 보다 보면 중간 어디쯤 보면 안소니 파킨슨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가 여자처럼 유난히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올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우스웠던지 우리는 두번씩이나 그 장면을 돌려 보았고 볼 때마다 쿡쿡거렸다. 그것은 어쩌면 유심히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안소니는 왜 갑자기 그렇게 걸을 생각을 했을까? 영화를 찍다 지루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장난기가 발동해서 이렇게 걸어서 올라가보자고 생각했고, 그 찍은 장면을 히치콕도 보니 우스워 좋다고 오케이 사인을 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혹시 기회가 되면 확인해 보시길...! 

사실 히치콕은 몇 개의 특징을 가지고 그만의 일관된 작품 세계를 이루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하나는 그가 금발의 미녀를 좋아해 그런 머리를 타고난 배우, 그레이스 켈리(이창) 같은 배우를 쓰기를 즐겼다는 말이 있고, 지금이야 흔한 일이지만 그가 만든 영화마다 까메오로 출연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매우 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그가 키우던 개를 사랑했다는데 그것이 가정적인 것과 뭔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개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못 봤으니까 일맥상통이야 있겠지. 


히치콕의 생전의 모습이다. 
능청이 덕지덕지 하지 않은가? 그러니 오히려 안소니 퍼킨슨에게 계단을 그렇게 올라가 보라고 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히치콕의 능청스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도 처음에는 무척 긴장된 마음으로 메가폰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다 차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겠지. 사실 그는 사람을 놀래키는데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것을 거의 배제했던 감독이기도 하다. 즉 순수히 사람만으로 작품을 완성해 갔다. 그래서 그토록 후대의 영화 매니아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는 누구보다 인간의 이상심리를 잘 이용했던 사람이다. 당시 누가 다중인격 또는 관음증이나 죄책감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자기 일에 어느 만큼의 경지에 올라서면 여유가 생긴다. 그것은 나태함은 아니다. 여유를 갖다보면 모든 프레임과 연출된 상황을 넓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 같다. 그것은 또한 의연함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능청스러움도 발휘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나는 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에게 또 한번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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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4-2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창,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에요.^^

stella.K 2009-04-25 13:34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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