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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70 - Gogo70
영화
평점 :
상영종료
70년이면 지금부터 40년전 이야기다. 꽤 먼 옛날 이야기 같지만 나에겐 제법 친근하다.
그 시절, 우리 가요계는 이봉조라는 걸출한 작곡가가 있었고, 파격적인 무대의 아마도 한국의 제니스 조플린쯤 되는 김추자가 있었고, 정훈희와 펄시스터즈의 독주체제는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 시절 김추자는 보는 것으로는 좋지만 감히 따라할 수는 없었고, 정훈희나 펄시스터즈를 더 좋아하고 따라하기를 즐겨했다. 워낙 그들의 아성은 웬만해서 깨지지 않을 것 같아 '데블스'란 그룹 사운드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땐 그룹 사운드가 빛을 보지 못한 때였다. 그나마 이를 대체할 팀이 있었다면 곽규석의 <쇼쇼쇼>에 가끔 출연했던 '봉봉 사중창단'이나 이에 필적할 '블루벨스'가 있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이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이중, 삼중으로 가려 '데블스'란 그룹은 철저하게 마이너리티에 속했는지도 모른다. 하긴 그땐 소울이란 장르가 막 형성되었을 때니 천하의 이봉조라도 감히 이 장르에 도전하지 못하고, 이들은 철저하게 남의 노래나 따라 부르는 정도가 다였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의 매니아들에겐 꽤나 인기가 있었던 그룹이었나 보다.
사진에서 보듯 <플레이보이컵> 경연대회라는 노래 경연대회도 실제로 있었나 보다. 나 때로 치자면 <대학가요제>나 <국풍81(?)>또는 <강변가요제> 뭐 그런 것에 버금가는 대회는 아니었을까? 서울 변두리쯤에서 소울이 좋아 업소에서 노래나 불러주고 푼돈이나 버는 이들에게도 꿈은 있었다. 당시 서로 라이벌인 두 그룹이 한팀을 이뤄 대회에 나갔고, 1등은 못했지만 특별상인가 뭔가를 해서 밀가루 한 포대를 부상으로 받는다.
어디나 그렇듯,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자다. 당시 1등을 차지했던 그룹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길이 없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알아줄만도 한데 오래 버텨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키지 않으면 누가 1등을하고, 2등을 하던 대중은 기억해 주지 않는다.
무대 의상이 촌스럽긴 하지만 나름 파격적이기도 하다. 아무나 입상하는 것 아니지 않는가? 1등은 못했어도 어쨌든 입상은 했으니 어디든 이들은 불려나가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부상으로 받은 밀가루 포대가 다 떨어져 갈 무렵, 그들은 당시 잘 나가던 음악 프로듀서에 적극 자신을 어필해 '닐바나(오늘 날의 명칭으로 하자면 '니르바나'를 당시로는 그렇게 불렀나 보다)'로 환골탈퇴 시켜 성공가도를 달린다.
나름 이 그룹 멤버들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돈만 많이 벌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멤버들과 진정한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상규(조승우)의 갈등이 제법 그럴 듯하다. 이들의 성공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되는 미미(신민아)의 백댄서 역할도 나름 볼거리다.

무엇보다 이들이 주목을 받았던 때는 70년대는 유신 독재 시절이다. 당시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은 지금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해프닝 같다. 더구나 대통령에 의해 금지 가요가 선포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또한 당시로선 통행금지가 시행되고 있는 때였다. 하지만 파격적이고 당차게도 12시부터 4시까지 밤새도록 춤추고 놀라고 고고장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이들의 무대와 젊음의 열기를 발산한다.
하지만 점잖은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 이를 순순히 보아 넘길리 없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도 단속했는데 그런 허섭쓰레기 같은 고고장을 단속하지 못할까? 왜 그런 곳을 단속하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대의명분은 없다. 그저 대통령이 싫어하면 그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깨끗히 수행할 뿐이다.
특히 이 영화는 중반까지는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다가 나중에 뒷심을 발휘한다. 지금도 인상적인 건, 군인들이 그 고고장을 진입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막는 공연장 관계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진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춤을 추고 공연을 한다. 하지만 마침내 군인들은 고고장 진입에 성공하고, 최루가스를 살포에 공연을 해산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닐바나'와 고고장에 온 사람들이 누군가? 한창 혈기방자한 젊은이들이다. 아무도 이들의 젊음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은 최루 가스 때문에 숨은 고사하고 눈을 뜨고 있기에도 괴롭지만 누군가 물을 끌어와 공중에서 살포하고 그로인해 다소간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누군가 "계속 가는 거야"하며 춤과 노래를 계속한다. 그때 이들을 성공시킨 프로듀서도 있었는데 외치는 한마디 "그래. 여기가 바로 닐바나야!"란 말이 참 인상적이다. 니르바나. 나도 잘 몰랐던 단어다. 열반이란다. 고고장 밖에서는 아수라장이어도 그안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것. 그것이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역시 독재도 이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다.
누구나 젊음은 한때고 그때를 지나오지만, 그래서 지금의 젊은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도 기성세대가 되면 대부분 젊은이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으로서, 문화의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란 옛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나의 아버지도, 내가 한창 어리고 젊었을 때 팝송 듣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분명 아버지도 젊었을 때 들었던 음악이 있었을텐데도 말이다. 그러니 문화를 맞다 틀리다로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겠는가? 기성세대가 보기에 눈쌀이 찌푸려지면 무조건 잘못된 것인가? 그런 억측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독재체제는 그것을 서슴없이 행했다는 것이다. 문화 말살은 곧 인권 말살과 같은 것이다. 인권이 보장된 나라에서는 문화도 강성해 보인다. 물론 그에 대한 문제점도 없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빈대 잡자고 초가산간을 태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확실히 문화란 독재체제하에선 발전하기가 여간해서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문화는 또 여러가지 모양으로 환골탈퇴 후 살아 남기도 한다. 역시 변화에 능한 종이 오래 살아남는다란 말이 여기에도 해당이 되는가 보다.
그렇게 인기를 구가했던 이들도 80년대 초 해산을 했다고 한다. 그때 그 멤버들은 지금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
감독은 어떻게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역시 음악 영화는 흥미롭다. 단지 아쉬운 건 좀 더 짜임새 있고, 임펙트 강하게 만들 수도 있었던 것을 그저 그렇고 그런 소품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영화의 자잘한 재미와 사람들의 고뇌와 방황을 그리느라 이들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적게 배치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대체로 유쾌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