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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아니한가 - Skeletons In the Close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유감스럽다. 무엇보다 영화가 잘 만들었는지 못 만들었는지는 관객 보다 그 영화를 만든 제작진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영화에 까지 관객으로써 리뷰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픔을 주는 것 같아 차라리 말을 안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악플 보다 견디기 힘든 건 무플이랬다고, 무관심이 되느니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게 더 나은 거라고 자위하고 싶다. 그리고 뭐 리뷰라는 게 본 것을 매개로 자기 얘기를 자유롭게 하자는데 의의가 있지 않은가?
어줍잖게 (잠깐) 시나리오 공부를 하고 드는 생각은, 앞으로 절대로 영화 만드는 사람들 생각해서 함부로 욕하지 않겠다고 다짐한적이 있다. 특히 시나리오 작가한테는. 이 공부를 하기 전에는 시나리오 쓰는 게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으니까. 그런데 요즘 개인적으로 골라보는 영화마다 실패를 해서 일까(몇편 보지도 않았지만), 불쾌지수가 높아서일까? 그 다짐을 깨고 욕을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또, 정윤철 감독하면 <말아톤>을 만든 감독이 아니던가? 그 영화는 그다지 영화적 기교는 없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영화였다. 그러니 그런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쉽게 불평을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듯 하다. 사람이 한때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는 거지, 영화 하나 잘못 만든 것 가지고 욕을 하고, 불평을 해서야 쓰나. 뭐 그런 생각도 들더란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관객들이 왜 잘못 만든 영화에 욕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건 그냥 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다. 영화를 찍을 때 드는 공력이 얼마인지 알기에 그것에 비하면 도무지 간지가 나오지 않으니, 잘 좀 만들지 이게 뭐냐?는 안타까움이 베어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물론 이건 또 내가 입장료를 내고 개봉관에서 보지 않은 이유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는 발상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한편 보는데 한 두 푼 드는 것이 아니고, 차비까지 포함한다면 젊잖게 넘어갈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영화 매니아일수록 더 하지 않을까?
영화는 사춘기 나래이션을 맡은 소녀의 읊조리는 수준. 딱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듯 하다. 이 영화는 감독 보다는 시나리오에 더 많은 결함이 있어 보인다. 미장센을 위한 영화도 아닌데 왜 그리도 사물이나 특정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부족하고 매 에피소드의 힘의 안배에서 균형을 잃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한 집안의 가장 그것도 교육자가 어느 날 한 여학생을 도우려다 원조 교제로 누명을 썼다. 부제처럼 또는 표어처럼, "쪽팔려도 고개를 들라. 우리는 가족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누명을 벗기위한 필사의 노력. 그야말로 쪽팔려도 황당 어드벤처 무비를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쪽팔려도 참자, 우린 가족이다." 는, 그저 어디에 붙혀도 어색한 페이소스 가득한 영화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쪽팔려도 참자. 우린 가족이니까. 하는 도덕적 이유를 강요하는 영화처럼 재미없는 영화가 또 있을까? 안 그래도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데, 영화는 그런 이유에서 해방을 줄 수 있는 판타지여야 하지 않는가?
조금 웃겼던 건, 집에서 키우던 잡종개와 동네 공터에서 고기를 구워 먹다가 어느 집 혈통 좋은 푸들과 거시기를 한 것 가지고 동네 패싸움이 벌어지게 된 것인데, 그것도 패싸움이란 군중신이 아니다. 우습게도 그래봐야 천상 개와 개끼리 하는 흘레 장면이 우스웠다. 그런데 비해 작위적인건, 고작 누명을 쓴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동네방네 큰 소리로 남편의 결백을 주장하며 그게 안 서서 못한다고 하니, 과연 그걸 영화 속 동네 사람이 믿어 줄지 의문스럽다. 동네 사람이 믿어주면 관객도 믿을텐데, 동네 사람이 의심스러우니 관객 또한 믿기 어렵다. 그러니 작위적이랄 밖에. 그래서 그 신은 해프닝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냥 아무 설득력 없이 그래? 그럼 믿어주는 수 밖에. 가 되어버린 것. 확인 불가능이니 말이다.
남편과 아내가 오래 살면 그냥 가족 같고, 오래된 가구 같다고 한다. 오죽하면, 어떤 여자는 남편의 키스를 받고 싶어 입술을 오무리고 다가가는데 남편이 하는 말이, "쉿! 가족 끼리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냐."라고 했다며 흐흐대고 웃을까? 그런데 그런 남자가 실제 그럴 의도는 없다지만, 꽃봉오리 같은 여자애와 여관방에 있었다는데 끝까지 무슨 믿음이 있어 끝까지 남편을 옹호한단 말인가? 그것을 옹호한다면 불구라는 것을 인정하는 딜레마적 상황 아닌가?
가족은 알아도 모르는 척, 어딘가 빠지는 듯한 사람을 끝까지 감싸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완벽한 가족이 어딨겠는가? 명망있는 재력가나 권력가도 감방을 드나들어 가문에 먹칠을 하는 마당에 쪽팔려도 견디는 게 가족이 아니던가?
꼭 이 영화 같지는 않은데, 영화의 패싸움을 벌이는 그 군중신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가 동네 싸움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나 어렸을 적에 살았던 동네는, 시절이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동네가 그래서 그런 건지 가끔씩 싸움 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원래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 제일 볼만하다지 않는가? 어느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다 하면 동네 사람들이 벌떼 같이 모여서 그 싸움을 구경하거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런 싸움에 엄마가 주인공이 된 것이다. 발단은 별 것도 아니었다. 여름에, 동네 야채를 파는 젊은 아줌마한테서 고구마를 샀는데 너무 퍽퍽해 다른 것으로 바꿔 줄 수 없겠냐고 했다가 이 여자로부터 돌팔매질을 눈을 다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자칫 실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텐데 다행히도 상처만 냈을 뿐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마침 외할머니도 와 계셨는데 분한 마음에 여자를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고 그 사이 예의 동네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와 대문앞에 장사진을 친 것이다.
지금이야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당시로는 얼마나 황당하고 창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한창 자라느라 먹성 좋은 우리 4남매만 아니었다면 엄마는 그런 여자에게서 고구마 같은 것은 사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 폭력은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외할머니 역시 노구에 딸의 역성을 들어주시겠다고 육탄전을 벌이며 일순간 슬리퍼가 벗겨져 나가고, 땅바닥에 주져 앉아 고래 고래 고함을 치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두 분 다 그 점잖은 성격에 말이다. 그야말로, 쪽팔려도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본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히고 하고 받기도 한다. 그들은 다 어느 집 가장이고, 딸이고, 아들이다. 자신 혼자면 상관이 없는데, 그 여파는 가족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그럴 때면 내가 그 사람의 가족이고 보면 '쉬바, 가족이고 뭐고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벅찬데 왜 내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 안아야 거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은 울타리임에 틀림없다. 가족이 없으면 세상에서 받는 온갖 학대와 부당함을 당할 수 있다. 가족이 없으면 외로움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가족 중엔 못 난 사람도 있지만, 잘난 사람도 있다. 또한 못나고 힘 없다고 해서 언제나 약한 존재로 있는 것도 아니고, 잘난 존재가 늘 가족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되는 게 가족간의 영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어느 때는 죽일 것처럼 싸우다가도 어느 순간 보듬는 것이 아닌가?
영화가 일견 재밌는 건 아들내미가 난 분명 어디선가 주워왔을 거란 상상 속에 사로잡혀 산다는 것이고 그건 금세 나 역시 동화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난 정말 어렸을 때 언뜻언뜻 그런 상상을 많이하며 살았었다. 그러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게다가 알고 봤더니 어느 부잣집 핏줄이었다는 드라마 같은 상상. 그건 분명 나의 가족을 배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인간성을 가진 내가 우리 엄마의 딸이고, 언니, 오빠의 동생이고, 한 사내 녀석의 누이라면, 그래도 그들은 나를 받아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그들의 가족이니까. 가족은 그런 것이다.
별 두개 이상 줄 수 없는 영화에 내가 봐도 리뷰는 참 야물딱지다. 그래도 이 영화 보지 말라고 할 참이다. 차라리 정윤철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