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주역 공부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김승호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자기 운명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 점이나 사주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급격히 서양의 문물과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점이나 사주를 터부시 해 왔다. 그래서 그것의 대안으로 막연히 주역을 동경하기도 했다. 그것은 과학이라 하지 않던가? 즉 자기 운명은 알고 싶은데 점은 미신이라 볼 수 없고, 주역은 또 그렇지 않으니 그것을 통해 자기 운명을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주역이 어째서 과학이란 말인가? 

 

우선 주역은 너무 방대하다. 또한 그것은 동양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서양사상이나 과학은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해 동양사상은 너무 방대해서일까? 감히 대중화를 못하고 있다(아니면 안하고 있거나). 그래서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그냥 뜻이 있으면 그 사람이 들이 파는 것이지 누가 알아 달라고 보채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게 어쩌면 주역을 포함한 동양사상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질이 발달할수록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다 보니 요즘엔 서양의 그것보다 동양적인 것이 더 각광을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유명한 분석심리학자 칼 융이나 아인슈타인이 주역을 공부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공자는 주역을 공부하기에 자신의 생이 너무 짧음을 한탄했다고 하니 주역이 대단한 학문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역설했을까. 

 

그런데도 주역이 과학적 체계와 기틀을 마련했던 건 독일을 철학자 라이프니츠에 의해서라고 한다. 나는 여기서 서양이 분석이나 해석에 강하고, 동양이 통찰에 능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 오랜 학문이 라이프니츠에 의해서야 체계를 확립할 수 있었더란 말인가. 이후 서양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에 전해 졌고 그는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게 된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니 시야가 확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주역은 세상 만물을 범주화시키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될 것이다. 범주화가 가능하면 세상에 이해 못할 것이 없을 것도 같다. 그런데 또 문제는 이 범주화가 그렇게 만만하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엔 잘 따라 갈 것만 같은데 어느 순간 머리속에서 과부하가 일어났다. 그것은 저자의 괘의 설명에서 4괘까지는 별 무리가 없었다. 8괘까지도 잘 따라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6괘가 되고, 32, 64괘가 되자 뭔 말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64괘가 뜻하는 바를 잘 알고 있어야 주역의 기초를 알 수 있는데 무엇으로 64괘를 다 알 수 있을까? 외우는 건 조두라 어렵고, 틈틈히 자주 보고 익혀두는 것인데 워낙 귀차니스트라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저자는 이것을 설명하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열심히 관찰하면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아예 목숨을 걸었다면 모를까 나 같은 벽안의 사람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읽으면서 오래 전 내가 교회 청년부 시절 내게 성경공부를 가르쳤던 조장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그 언니는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동양 사상도 공부해야 한다고 했었다. 어찌보면 기독교와 동양 사상은 서로 상극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 4대 종교의 시조는 모두 동양에서부터 시작됐으며 동양 철학에 뿌리를 뒀다는 것이다. 동양철학은 자연과 범신론에 뿌리를 두는 것이라면, 기독교는 오직 그리스도라고 하는 한 인물을 연구하고 사랑하기 위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지향점이 다른 것이다. 그때 그 언니는 왜 기독교인가를 알기 위해 그 바탕을 이루는 동양철학을 알아야 한다고 봤던 것 같다. 

 

그 언니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때는 30이 채 안 됐거나 그 엇비슷한 나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언니가 무슨 동양철학을 깊이 공부하고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이치를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아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언니 말이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동양철학을 공부하면 자연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 수는 있지만 자칫 허무주의로 흐를 수가 있다. 한 사람을 무조건 맹신하고 따른다는 것 역시 위험할 수가 있다. 그것이 아무리 구원을 제시하는 신앙일지라도 말이다. 아마도 그 언니는 시야의 균형을 위해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니 그 언니가 했던 말이 나름 일 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의 이 말에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뭐 눈엔 뭐만 보이고, 믿음이 있으면 뭐든 그쪽으로의 해석과 사고가 가능한 법이니까.             

 

그나저나 솔직히 난 이 책에 한 방 먹은 느낌이다. 나이가 드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또는 어떻게 살게될까 알고 싶어 이 책을 읽어 본 건데, (물론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다 알 리는 없겠지만) 오히려 주역이란 학문은 너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게 될까? 아무래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던 성경 말씀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봐야할 것 같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11-01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공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무료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 중에 `주역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이 있었어요. `기초`라는 단어만 믿고 강의 들으러 참관했는데, 충격 받았어요. 정말 어려웠어요. 더 충격적인 건 강의 들으러 온 사람 대부분이 연세가 많은 분들이었어요. ㅎㅎㅎ

stella.K 2015-11-02 10:52   좋아요 0 | URL
이걸 알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질텐데 말야.
이런 건 꼭 나이들면서 생각이 난단 말야.ㅎㅎ
너도 이담에 나이들 거 생각하면 지금부터 틈틈히
공부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나이들어 공부하면 후회될 게
이 공부인 것 같아.^^

아이리시스 2015-11-0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뭐였지, 작년인가 디따 두꺼운 주역책을 읽는데 충격먹었어요. 이 책도 나올 때 끌렸는데 아마 이것도 이해못하지 싶어요😔😔

stella.K 2015-11-02 13:56   좋아요 0 | URL
아이님 책 열심히 읽는 거야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주역책까지 접수하는 줄은 몰랐습니다.ㅎ
어떤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좀 쉽게 쓰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개론서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책이 몇 권 더 나와 있는데 기회있는데로 읽어볼까 합니다.^^

yamoo 2015-11-0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부에서 주역 강의를 나름 찾아 들었었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그냥 한문 해석하기 바빴는데, 나중에 <대산주역강의>를 보고 얼추 <주역>의 대개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역을 잘 이해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너무 어렵더라구요..ㅋㅋ 물론 그만큼 학문적 매력이 큰 책입니다. 주역에 빠져서 입산했다는 사람들이 많으니...ㅋㅋ

저는 개인적으로 <주역, 46가지 질문과 대답>이란 책이 가장 얇고 주역의 핵심만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역의 개론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읽으면 그야말로 주역의 핵심을 단시간에 습득할 수 있는 책인거 같습니다.

최승호의 책은 아직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신간이 단시간에 리뷰가 많이 달린 걸 보니 신간 리뷰 도서로 풀렸나 봅니다. 주역책은 종류가 많아서 책 선택의 어려움이 많은 책이라 신중한 선택을 해야할 책입니다. 도덕경도 그렇고 주역도 그렇고 사이비 학자들이 너무 많다네요. 제 말이 아니라 한 동양 철학 전문가의 푸념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원전을 풀어 설명했는지 서점에서 구경이라도 해 봐야 겠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5-11-04 13:22   좋아요 0 | URL
와우, 역시 야무님은 지적인 욕구가 상당하시네요.
주역이 어렵긴 어려운가 봅니다.
책에도 보면 나이 지긋한 어떤 어르신 주역 공부만 20년을 했다나
그런데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며 공부를 헛한 거라고 지적하더군요.

제가 주역은 이 책이 첨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나름 첨 접해보는 사람들한테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 분이 주역 가지고 소설도 쓰셨더라구요. 이쪽 계통에선 나름 인정 받는
학자는 아닐까 싶은데, 그래요. 나중에 서점 가시면 한 번 구경해 보시고
혹시 문제점이 발견되면 알려 주세요.^^

2015-11-06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7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09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주역 어렵죠. 공부는 안 했습니다만, 언뜻 봐도 외계 이론입니다. ㅎㅎㅎ. 제 주위에도 주역(정확히는 동양 철학)하는 분이 계신데, 이거 왠만해서는 알아듣지 못하겠더라고요..... 10년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파고들면 모를까..

stella.K 2015-11-09 18:25   좋아요 0 | URL
헉, 의왼데요. 곰발님은 적어도 오른쪽 엄지 발가락 정도는
담가 본 줄 알았는데요.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11-09 18:37   좋아요 0 | URL
주역 어렵죠. 이건 평생 공부입니다.
 
피카소처럼 생각하라 - 과학적 사고와 수학적 상상력의 비밀
오가와 히토시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피카소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건 중학교를 들어가고 나서였다. 그때 세종문화회관이라고 기억하는데 그것에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단체 관람을 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더라면 결코 가 보지도 않았을 그 전시회를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갔다가 완전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모름지기 미술 작품이라면 대중이 이해 가능하고 좋아할만 해야 하지 않는가? 뭔지도 모를 그림을 그려놓고 어떻게 이걸 예술이라고 하는 것인지? 사람들의 눈이 삐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망 정도가 아니다. 은근 화가 났다. 그래 이걸 보자고 버스 타고 힘들게 여길왔나 싶고, 피카소의 얼굴은 더 화가 났다. 날카롭고 고집불통 같이 생겨 가지고 친절하지도 않게 이해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라는 식인 것 같았다. 그 이후 난 한번도 피카소를 좋아해 본적이 없다.

 

좋아하지 않기로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이해 못할 그림을 예술이라 부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보면 볼수록 기하학적으로 생긴 것이 이렇게 그리기도 쉽지 않을거란 생각을 한참 뒤에 했다. 이해 가능하고, 친밀한 그림을 그렸더라면 그는 이만큼 위대한 화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친절한 큐레이터나 미술 교사쯤 됐겠지. 하지만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혁명 그 자체였다. 

 

요즘들어 부쩍 예술가들(물론 주로 작가들에 국한되있긴 하지만) 그들의 삶이나 작업 방식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들의 생각을 훔치랬다고, 예술가가 되고 싶으면 예술가의 생각을 훔쳐야 할 것이다. 특히 그들의 작업 패턴, 방식 등을 아는 것은 나름 유용해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피카소를 심도있게 파헤치기 보다 자기계발류의 하나다. 뭐 굳이 말하면 피카소의 일에 대한 철학과 작업 방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다.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이 필요한 사람들이 참고해서 볼만하다. 

 

하지만 자기계발이 필요한 사람에겐 유용하긴 하겠지만 나 같이 예술가의 그것에 관심은 많으나 자기계발은 별로인 사람에겐 당장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나와 같은 욕구가 있다면 차라리 피카소 평전을 읽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도 작가가 허투로 쓰진 않았다. 난 이런 실용서는 우리나라 보단 일본이 좀 더 앞서 있지 않나 싶다. 더구나 저자가 철학을 전공하고 이런 책을 썼으니 그 재능은 가히 인정해 줄만 하다. 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자국의 철학을 옹호한다든지 자기 자랑도 살짝 곁들여 있어서 글쎄 나도 어느 새 반일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점은 약간 김이 빠져 보인다. 마치 자국의 철학과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닐 텐데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피카소가 어떤 작업 방식으로 자신의 미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는지는 일단 이 책의 목차만 보아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읽다 눈에 띈 건, 피카소가 작업을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하고 다음으로 전진해 나갔다는 것(79p~)이다. 우리는 흔히 한 가지 일을 끝내야 다음 일도 할 수 있다는 묘한 강박관념이 있다. 그런데 피카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완성하지 못한 것은 못한 것 대로 놔두고 다음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다음 작품 역시 완성하지 못할 거라는 일말의 불안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는데 그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데 왜 그리도 마음이 편안해지던지. 또 주위에서 그렇게 조언한다. 하나를 붙들었으면 끝장을 봐야지 끝장도 보기 전에 또 새로운 일을 벌이면 이도저도 안 된다고.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메일 것도 아니다.

 

그 부분을 읽는데 문득 고운 시인의 작업 방식이 생각났다. 그는 오래 전, 한 작업실에 상을 세 개를 펴놓고 세 작품을 동시에 완성해 간다는 말을 들었다. 이 작품 쓰다 저 작품이 생각나면 자리를 옮겨 그 작품을 쓰고 또 쓰다가 다른 생각이 나면 다른 자리로 가 그 작품에 대한 글을 쓰고. 이렇게 자리를 옮겨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고운 시인이나 되니까 가능하지 않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맞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작업 방식엔 왕도가 없다는 얘기다. 적어도 난 안 되는 것 가지고  진빼지 말자는 말처럼 들린다.  어떤 식으로든 그 일을 하기로 했다면 언제가 됐든 하는 것이다. 이 책도 꼭 피카소의 작업 방식을 쫓아서 하라고 강요하기 위해 쓰이진 않았을 것이다. 각자는 각자에게 맞는 일에 대한 철학과 작업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자극하기 위해 이 작품은 쓰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참고할만 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5-10-18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카소가 모딜리아니의 재능을 무척 질투했다지요...저는 피카소 그림보다는 키리코의 그림이 훨씬 더 좋습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입체파와는 잘 안 맞는듯...

어릴 적에 저도 피카소의 그림을 봤다면 스텔라님과 비슷하게 생각했겠지요..ㅎ 그냥 하루종일 투덜댔을거 같습니다..ㅋ

stella.K 2015-10-18 15:0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아마도 입체파 좋다고 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단지 이렇게 그리기도 쉽지 않겠다는 것과
피카소의 열정,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함 때문에 피카소를 20세기 거장이라고
하지 않나 싶어요.
키리고...? 좀 낮선 이름이네요.
내가 이 사람의 그림을 한 번이라도 봤던가...? 갸우뚱;;

페크pek0501 2015-10-1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작업 방식과 동일하군요. 저는 미완성의 글을 모아 놓은 폴더가 있어요. 수십 편은 될 거예요. 어느 날은 이 글을, 어느 날은 저 글을 가지고 완성해 나가는 식이에요. 몇 줄씩 보충해 나가는 건데 이렇게 쓰는 작가들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죠. 저와 똑같아서요. 저는 작가들은 글을 완성하는 게 쉬운 줄 알았어요. 제가 능력 부족이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어떤 날은 그것들을 놔두고 새 글을 한 편 쓸 때도 있으니,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한다고 볼 수 있어요.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stella.K 2015-10-18 15:07   좋아요 0 | URL
언니도 그러시군요. 저는 반대로 완성된 폴더만 따로 둘 만큼
미완성이 더 많죠.ㅠ
그런데 전 지금까지 한 작품을 붙들면 계속 그것만 붙들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또 흔히 그렇게들 많이 말하거든요.
물론 저도 미완성이었다 다시 붙들고 또 다시 포기하고를 반복했지만....ㅠ
일에 있어서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2015-10-18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8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도 여기저기서 이석원, 이석원하길래 (드디어)나도 그의 책을 펼쳐 들었다. 그것도 신간을. 나는 글을 쓴다면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인간이지만, 소설은 워낙에 호불호가 갈리는장르인지라 아무리 평이 좋아도 선뜻 손을 내뻗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에세이는 대체로 무난하게 잘 읽힌다. 그래서 별 부담없이 읽기 시작했다.

 

에세이는 편하면서도 작가의 사유가 담겼다는 것인데, 그런 에세이도 그 모습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걸 목격한 건 일본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의 <삶의 힌트>라는 책에서였다. 우리나라엔 그다지 많이 알려진 것 같지는 않은데, 일본에서는 나름 존경 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인 것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뭐 조정래나 김주영 급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그의 책을 읽었을 때, 기존에 에세이와는 다소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기존의 에세이가 정제된 문장이라면 이츠키 히로유키의 글은 좀 더 서술적인 느낌이어서 약간의 소설 분위기도 연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여느 에세이의 한 편의 지면 할애가 3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면 그의 글은 4, 5 페이지를 넘는 것이 보통이라 작가의 포스가 남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그런데 이석원의 글은 이츠키 히로유키의 독특함을 훨씬 뛰어 넘고 있었다. 그야말로 에세이의 신세계를 경험했다고나 할까?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놀라웠다. 하긴, 에세이가 꼭 정해진 룰이나 규격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여러 형태의 글을 접할 수만 있다면 독자로서는 읽는 즐거움이 배가가 될 것이다. 

 

물론 작가 이석원은 에세이를 쓴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이미 그의 책을 읽어 본 사람도 있겠지만 독자로서의 나는 이번이 처음인지라 나의 이런 반응이 다소 호들갑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에세이의 첫 부분에서 이렇게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단 말인가? 미스테리한 게 자꾸 그 다음 장을 펼쳐들게 만든다. 구성도 어느 편의 글도 완결된 것이 없다. 무슨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나 2, 30분짜리 연속극을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작가의 솔직함이다. 이혼한 것,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너무도 솔직하고 자세하게 쓰고 있다. 하다못해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상호까지도 그대로 쓰고 있다. 보통의 작가들은 그럴 경우 가명을 쓰거나 이니셜을 쓰는 것이 보통이지 않는가? 하긴 뭐 그런다고 해서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는 것인가 의아스러울 정도다. 물론 글쓰기의 기본 중 하나가 솔직함, 진솔함에 있다고 볼 때 작가는 그것에 지극히 충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솔직함 때문에 누군가는 본의 아니게 선의의 피해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래 전, 성석제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에 가서 내가 질문했던 것도 그거였다. 그렇게 누군가를 소설에서 형상화했을 때 어떤 사람이 찾아 온 적은 없었냐고. 그래서 왜 나를 이렇게 썼냐고 따져 묻는 사람은 없었냐고. 어차피 소설은 허구라고는 하나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경험 있었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등장하면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다. 특히 작가는 솔직함을 무기로 글을 썼다지만 상대의 행위가 글로 형상화 된다면 불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용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바로 이 솔직함 때문에. 

 

그런데 이렇게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 일일연속극 같은 그의 에세이는 형식은 새로워 좋긴한데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솔직히 내 나이 정도가 되면 연애는 그림 같은 거다.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그것 아닌가? 그래서 다소 김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맛은 있는데 하필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와의 이야기가 주라니. 물론 그것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다소 쉽고 흔한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더구나 작가는 자신을 가리켜 나이탐험가라고 했다. 작가는 40대 초반의 나이다. 사랑, 연애도 2, 30대나 열나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 4, 50대만 되어도 그 보단 인간관계나 노후 또는 추억 등에 관해서 얘기할 때다. 그런 것을 40대 초반에도 얘기하는 것을 보면 작가는 아직도 젊구나 싶었다.

 

하도 에세이가 별스럽게 느껴져서 궁금해 하던 차에 얼마 전, 예스24에서 그의 제법 오래 전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첫 책 <보통의 존재>를 쓰고 한 인터뷰 같은데, 책에서 본인은 못 생겼다고 적고 있지만, 같은 남자끼리는 어떨지 몰라도 여자인 내가 봤을 때 그는 결코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빠지는 얼굴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작가는 베시시 웃으며, 그럼 어떻게 스스로 못 생기지 않았다고 얘기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런 인상의 남자를 좋아할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음악을 하고 글을 쓴다지 않은가. 

 

8분 가량 되는 인터뷰 말미에 그는 자신을 가수 겸 작가로 보지 말아줬으면 하는 부탁과 함께, 자신이 기억하는 모두를 글로 쓰고 싶다고도 했다. 그래서 자신은 할 일이 너무 많다고도 했던 것 같다. 그제야 이 작가가 왜 사람의 이름은 물론이고, 상표고, 상호를 실명으로 쓰는지, 왜 솔직함을 무기로 글을 쓰는지 이해가 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오래 전부터 해 보고 싶은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사람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있다. 나는 또 에세이치고 이렇게 기승전결이 있는 에세이는 처음 본다. 하긴, 요즘엔 통섭도 많이 하는데 소설 속에 에세이가 있고, 에세이 속에 소설이 왜 없겠는가? 그렇게 안 써서 일뿐. 책 표지에도 분명 밝히고 있다.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얼핏 연애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더 정확히는 성공 보다는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그 인터뷰에서 서점에 가면 성공과 용기를 주는 자기계발류의 책이 대센데 자신은 그러기 보단 오히려 실패나 상처를 통해 공감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저건 내 얘기야 내지는,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느끼는 공감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연애의 짜릿함이나 즐거움, 기쁨 보단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이해하고 바라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고독하고 때론 신산하게 글을 썼다. 특히 어렵사리 이제 막 사랑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실연의 아픔을 절절하게 써 내려가는 것을 보면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 연속극은 어느새 사랑과 실연에 대한 다큐 드라마를 보는 것도 같다. 한마디로 '사랑 잃고 나는 쓰네.'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게 죽을 것 같은 실연도 먹고 살아야 하는 앞에서는 두 번째의 문제라고도 쓰고 있다. 

돈에 쫓기는 것만큼 영혼이 파괴되는 일은 없나니, 사랑도 연애도 그 다음이나니.  ...... 이래서 사람은 일이 있어야 하는구나. 참 안 로맨틱하고 인정하기도 싫은 너무도 현실적인 깨달음이었다.(315p)

그런데 그 일이라는 것도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경우는 없더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그의 첫 책 <보통의 존재>를 내놓고 글 쓰기가 자신을 구원했다며 좋아라 했지만 다시 밥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어쩌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못하는 자의 고백'을 나름 하소연 같이 길게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왜 그리도 공감이 되는 것일까?

 

재주가 메주여서일까? 평생 꿈이라곤 작가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꿈을 꿔 본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것도 해 봤더니 쉽지 않더라. 써야만 하는 글을 썼더니 내 자아는 어디로 가고 어느 순간 쓰는 기계가 되어있었다. 처음엔 나도 작가가 되었다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중엔  즐겁지 않았다. 그래도 이 써야할 글을 걔속 써야한다면 쓰고, 언젠가 그 일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때야 말로 본격적으로 내 글을 쓰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그때가 돌아왔을 때 왠지 김이 빠지면서 어느 샌가 지난 날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자에 속했던 시절엔 내 글을 보고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 주는 사람이라도 있지, 후자는 완전 독백일 뿐이다. 그렇다면 난 비록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니어도 끝까지 전자의 일에 매달려 있어야 했던 것일까?

 

책의 완성은 작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독자에게 달려 있다는 말을 얼마 전에 알았다. 문득 이석원 작가는 바로 위와 같은 말을 하기 위해 그처럼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에 다큐 드라마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연애를 할 때 얼마나 부주의한 인물이며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자책하듯 절절하게 쓰고 있지만, 결국 그는 그가 하는 일인 글 쓰기를 포함해서 인생을 어떻게 가꾸어 갈 것인가에 대해 조근조근 중저음의 톤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선배나 친구가 해 주는 조언이나 충고 보다 좋다. 특히 작가의 연애 실패담은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까? 순수한 연애를 갈망하는 남자들은 더더욱 참고할만 하다. 사실 연애할 때처럼 자신이 적나라하게 발가벗기워질 때가 또 있을까? 그것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그래서 연애를 하지 않겠다거나, 손해 보는 연애는 하지 않겠다거나, 요즘에 순수가 어딨냐고 일갈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뭐든 공짜는 없다. 연애를 하든 안하든 그건 어디까지나 선택이다. 이 에세이는 또 해피 엔딩을 암시하는 반전도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로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준다는 말도 되겠다. 

 

그가 말하는 언제들어도 좋은 말은 그의 애인이 언제나 자신을 찾을 때 묻는 말 '뭐해요?'의 스마트폰의 문자 메시지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예전에 이 비슷한 문자를 가끔 보내줬던 후배가 있었다. 젊은 시절 함께 일하며 그 어려운 인간관계의 전장을 함께 굴렀던 들꽃 같은 후배였다. 분명 나와 맞지 않는 데가 있어 난 그 후배를 그리 많이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나에게 언니, 언니하며 먼저 손 내밀어 주고  챙겨준 후배였다. 가끔 그 친구가 뭐하냐고 물어 오면 그건 만나자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러면 우린 서로 만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또 가끔은 맥주도 마시며, 영화나 연극도 같이 보았다. 알고 보면 그 친구와의 추억이 그 어떤 사람과의 관계 보다 많았던 것도 같은데  어떤 계기로 멀어졌다. 내가 선배이기도 하니 다소의 아쉬운 마음을 접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을 해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난 '그렇지 뭐. 처음부터 서로 맞지 않았던 사람끼리 끝까지 좋을 리 있겠어?'하며 씁쓸한 마음으로 냉소하고 멀어져 갔다. 

 

그런데 이 나이쯤 돼서 돌이켜 보면 나에게 있어 쉬운 관계는 없었다. 뭔가 코드도 맞고, 스타일도 비슷해 잘 맞을 것 같은 관계도 어느 순간 뒤돌아서면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사랑하는 관계를 크리스탈 유리잔이 비유하곤 한다. 그만큼 세심하게 잘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꼭 사랑하는 관계만을 두고 하는 말이겠는가? 모든 인간관계는 다 어렵고, 언제든지 깨지기 쉬운 크리스탈 같은 것이다. 지금 깨닫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읽으면서 나도 그 친구가 어제 만나고 헤어졌던 것처럼 "뭐해요?"하고 물어봐 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가까이 있어 뭐해요라고 묻는 건 지금 만나자는 뜻이 되겠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뭐하며 지내니라고 묻는다면 그건 안부가 될 것이다. 언젠가 이 친구를 두고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석원처럼.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도 하루에 단 한 두 시간도 집중해서 쓰지 못하는 나에게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석원같이 글을 쓰더라도 짝퉁이라고 놀리지 마시길. 그리고 언젠가, 언젠가는......

그리고 작가의 이 말도 기억해야겠다.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천천히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 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앞서 간다고도 생각지 않구요.

 

오늘도 감사히 보내시길.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선물은 아닙니다.             (345P)            

작가들의 글은 대개 뭔가의 불만과 부조리함 또는 불안과 회의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는다면 뭐 때문에 작가가 되겠는가?) 이석원 작가도 그렇게 글을 쓰다가 마지막은 이렇게 글을 맺는다. 그런 것으로 봐 작가는 글을 잘 써서 이렇게 쓰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뭔가 어려움을 극복했거나, 일이  잘 풀리거나, 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초월했거나. 어쨌든 책의 마무리가 좋다. 

 

작가의 은밀하고도 솔직함에 독자인 나로선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작가는 허투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 같아 신뢰감이 느껴진다.이 책은 언젠가 외롭거나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다시 한 번 펼쳐들게 될 것 같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5-10-0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책이 그렇게 좋다는 말이죠? 언젠가 다시 한번 읽게 될 것 같은 책이라니.
그런데 저는 이석원이 누군지 몰라요 <보통의 존재>라는 책을 썼다는 것은 아는데 그것도 그 책의 저자로서만 아는데 원래 글쓰는게 직업인 사람은 아니죠? 아닌가요? ㅠㅠ

stella.K 2015-10-03 14:39   좋아요 0 | URL
가수래요. 언니네 이발관이란 인디 밴드 리던가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이 처음인데 <보통의 존재>가 성공을 거뒀던 것 같아요.
말에 의하면 <보통의 존재>가 좋긴한데 굉장히 무겁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에세이가 그래도 밝다고 하는데 이미 밝혔듯이
중저음톤이라 나인님껜 또 어떨지 모르겠어요.
근데 프랑스 영화 같은 느낌도 들고 어쨌든 전 좋았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0-03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이 글 오늘의 당선작이다, 했는데 당선작되었던데.. 또 조심스럽게 점쳐봅니다. 으 글도 오늘의.. 아, 아니구나. 이 달의 당선작 추천합니다. 독자선정위원회는 이 덧글 읽으면 추천 누르시오 ! 명령이오...

stella.K 2015-10-03 14:4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곰발님 땡!
저번에 당선작이 될 것 같다고 한 그 글 실은 안 됐어요.
대신 다른 것이 됐지롱.
그런데 이 리뷰 열심히 쓴 건 사실이어요.
가끔 저의 생각에 불을 집혀주는 책이 있지요.
이 책이 그랬어요. 이번에도 되면 좋겠군요.^^

페크pek0501 2015-10-0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 님의 명령에 따라 추천 눌러야 할 것 같군요. 제가 독자위원은 아니지만... 하하~~

요즘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더라고요. 소설은 쭉 이어져서 한꺼번에 읽어야 될 것 같고
에세이는 딱 딱 끊어지니까 아무 때나 읽어도 될 것 같은 건 에세이 독서의 장점.

˝짝퉁이라고 놀리지 마시길.˝
- 저, 안 놀릴 거예요. 뜨겁게 응원해 드리는 쪽이에요. ㅋ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 그러니 미래의 성공을 향해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의 삶을 어떻게 가꾸는가가 중요한 거군요.
명심하겠습니다. (빨리 나의 화단을 가꾸러 가야지.)

stella.K 2015-10-03 14:47   좋아요 0 | URL
고맙슴돠, 언니.
이미 쓰기도 했지만 전 소설은 호불호가 좀 심한 편이라
선뜻 읽기가 두렵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언니 이 에세이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아마도 읽으면 끝까지 읽으셔야 할 거예요. 안 끊어져요.ㅠㅋ

묘하게 이 책 읽고 나도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 말 정말 좋죠?^^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2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의 책을 처음 접한 건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란 책에서 였다. 그 책은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접해왔던 책이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에 관한 생각들과 향수를 풀어낸 책으로  한 개인이 향유한 문화를 통해 하나의 자서전 내지 연대기로도 읽혀  재미있으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저자는 참 부지런한 사람인가 보다. 앞서 말한 책이 올봄에 나왔는데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한 권의 책을 더 냈다. 바로 이 책이다. 사실 문학을 나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그 스펙트럼이 그리 넓지 못한 나는 기껏해야 순수 문학에 한정되어 있을 뿐, 하드보일드 문학을 말할 때 따라 나오는 레이먼드 챈들러나 헤밍웨이는 아직 읽지도 못했다. '하드보일드' 문학라...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부터가 하드보일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말하자면 저자가 읽은 이쪽 방면의 책에 대한 정리를 하고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나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있을까? 그런데 왠걸, 내가 이 하드보일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나 보다. 막상 책을 펴보니 저자가 읽어 온 장르문학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하드보일드는 '창작의 한 태도로 현실의 냉혹하고 비정한 일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하는 수법'을 의미하지 않는가? 하긴, 책 제목에 하드보일드 대신 장르문학을 넣으면 조금은 없어 보이긴 할 것이다.    

 

요즘 심심찮게 명사들의 책 읽기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장르문학만을 따로 엄선해서 보여주는 것도 나름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그 시도는 이 책의 저자가 처음은 아닌 듯 싶다. 이미 2011년 장르문학 매니아였던 고 홍윤 씨가 실아생전 '물만두'란 닉네임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쓴 리뷰들를 모아 펴낸 <물만두의 추리책방>이 더 앞서고 있으니. 또한 이전에 장르문학 서평집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 본적이 없으니 우리나라 최초는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은 꽤 오랫동안 변방의 문학으로 취급 받아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지난 90년 대를 거쳐오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지금은 인식이 꽤 많이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국내 작가가 주목 받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고, 주로 외국 작가를 소개하는 정도여서 그 점은 아직도 아쉽다.  

 

그런데 나는 왜 책을 고르려 할 때 장르문학은 마지막까지 선택을 미루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꼭 장르문학이 다른 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이유에서만도 아닐 것이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봤더니, 나는 이 분야에 대해 지극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무서운 영화를 보면 그날 밤 가위 눌린다는 속설이 있는 것처럼 장르문학을 읽으면 내 영혼이 나쁜 악마에게 점령 당할 것만 같아 읽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게다가 책을 읽을 때 생을 관조하고, 통찰하는 이야기를 읽어도 부족한 판에 그렇게 음습하고, 칙칙한 이야기를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인가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난 이 분야의 책을 아직도 쉽게 좋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장르 문학은 영화나 드라마에선 액션이나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붙일 법한데 이런 분야도 극히 가려 보는 마당에 내가 장르문학을 볼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물만두님이 살아계셨을 때 이렇게 장르문학에 쑥맥인 나 같은 독자에게 추천할만한 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물만두님은 정말 매니아답게 나를 위한 추천 목록을 알려 준  기억이 난다. 더불어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귀 기울여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범죄는 그 시대를, 그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읽기에 가장 좋은 재료다. 범죄를 통해서 언제나 서로를 죽여왔던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범죄란 가장 흥미진진한 이 시대의 축소판이다(7p). 

 

무엇보다 나는 저자의 앞선 책에서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는데 이 분야에 관해서도 이토록이나 많은 책을 읽어 왔을 줄은 몰랐다. 이 책에서 다룬 책은 40권 쯤 되지만 굴비를 엮듯 관련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상당하다 싶다. 특히 요즘 장르문학에서 핫한 작가의 작품을 다룰 땐 아예 작가론에 버금하는 글을 쓰고 있어 나 같은 장르문학 문외한에겐 적지않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국내에 가장 많이 번역되고 있는 작가 중 하나인 히가시노 게이고나, <87분서> 시리즈 또는 <살인의 쐐기>를 쓴 나에겐 다소 생소한 에드 맥베인에 관해 쓴 글은 가히 탁월하다 싶고 당장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에 비하면 읽는 맛은 다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분야의)책을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을까, 특별히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안내서로 손색이 없다. 저자의 성실한 책 읽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5-09-1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북풀러 이웃분들도 대단 대단..ㅎㅎㅎㅎ

stella.K 2015-09-19 19:10   좋아요 0 | URL
고인이 되신 물만두님은 정말 이 방면에선 거의 타의추종을
불허하셨죠. 그분의 책이 나오고 모처에서 출판 기념회에 초대되서
간적이 있었는데 역시 초대되어 오신 어떤 분이 이런 서평집은
우리나라에선 거의 전무후무 하다면서 일본에 번역 출판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번역이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cyrus 2015-09-1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게 많아서 행복하면서도 절반을 읽지 못하는 상황이 애서가의 아이러니한 운명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분야의 독서에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 대단해요.

stella.K 2015-09-13 19:07   좋아요 0 | URL
맞아. 그게 딜레마야.
사람들은 편독을 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나는 어느 한 분야라도
재대로 파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저자는 뭐 이 분야만 팠던 사람은 아니지만 대단한 사람 같아.

곰곰생각하는발 2015-09-12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장르 문학 접하게 되면 생경해서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그 튝유의 클리쉐가 있어요.
그때부터 재미집니다.... 장르소설은 약간의 마니아적 너그러움이 있어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요..

stella.K 2015-09-13 19: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몇년 전 북유럽 장르문학 서평 이벤트에
당첨이 되서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 뭐 이런 작품이 있냐고
깠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볼 땐 별로 대단치도 않은데
잔뜩 분위기만 잡을 뿐 빵 터뜨려주는 뭔가가 없더라구요.
다른 사람은 좋다고 하는데 저만 안 좋다고해서 얼마나 민망하던지...
그후 장르문학 서평 이벤트 참가는 함부로 못하겠더라구요.ㅠ

yamoo 2015-09-1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르 문학과 별로 친하지 않은데, 유일하게 빠진 장르가 무협이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ㅎㅎ 에스에프는 빠지려는 찰나에 그냥 관심이 흐지부지...

스텔라 님께서 장르적특성에 적응하시면 시시한 것도 대단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장르만의 아우라라는 게 있거든요. 예컨대 공보영화의 대명사인 헬레이저의 경우 저는 되게 재미없게 봤지만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명작으로 회자됩니다. 평점도 아주 높고요.

스텔라 님의 장르 문학 섭렵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9-14 20:4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맞습니다. 헬레이져는 공포 마니아 사이에서 거의 신적 언급...
헬리이저 싫어하면 마니아 아니라는 정서가 있죠. 전 사실 헬레이저 안 좋아하거든요.그런데 그런 태도를 비판할 수는 없더라고요......

제가 애마부인을 열렬히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죠. 전 이 영화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에로 영화인데 티븨에서 하길래 봤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ㅎㅎㅎ

stella.K 2015-09-15 11:45   좋아요 0 | URL
장르문학은 아직도 저에겐 낮설고 친하게 지낼 자신이 없어요.
그래도 책 표지가 반이라고 요즘엔 장르문학도 인상적인 게 많아서
마음이 가기도 해요. 혹시 읽고 리뷰 올리면 냉큼 와서 좋아요를
눌러 주세요.ㅋㅋㅋ

페크pek0501 2015-09-1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편식하는 독서를 하는 것 같아요. 한쪽으로 치우치게 돼요.
독서 취미가(혹자는,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고 하는데 저는 독서도 취미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수명이 긴 이유는 한 분야의 책을 읽다가 싫증나면 다른 분야의 책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인 것 같아요. 책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 새로 출간될 것이므로 신간의 유혹은 끝이 없고
그러니 독서 취미도 끝이 나지 않는 점도 있고요.

취미가, 시간이 흐르면 바뀔 수 있는 것인데 제가 알기론,
독서 취미에 한 번 빠져 버린 사람은 끝까지 갈 걸로 보입니다.

stella.K 2015-09-17 15: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초등학교 때부터 길들여진 독서가 지금까지 가는 것을 보면
아마도 늙어 죽을 때까지 계속 가지 않을까요 싶어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에 대한 관심이 줄지 않는 것을 보면...

저는 편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어차피 다양한 분야를 다 알 수는 없으니.
또 그렇게 편식을 하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게되고
어느 한 분파만을 알게 되지는 않잖아요.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건드리기만 하는 것 보다야 한 분야를 깊이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그런 의미에서 언니의 독서를 편식이라고
누가 감히 말하겠습니까?^^

푸른기침 2015-09-17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머리가 말랑말랑해졌음 좋겠습니다. ㅎㅎ (뭔소리 ㅎㅎ)
즐겁고도 즐거운 가을 되세요.^^

stella.K 2015-09-18 13:49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십니다. 잘 지내십니까?
자주 뵈면 좋을텐데 너무 뜸하십니다.ㅠㅠㅠ
 
곁에 두고 읽는 니체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니체의 <짜라투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 건 십대 말이었다. 뭘 알아서 읽었던 건 아니고, 어찌나 어렵고 난해 하던지  그냥 나도 그 책을 읽었다는 이름 하나 짓고 싶어서 였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나이에 맞지 않은 지적 허영. 하지만 그 책을 읽고 내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책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무익한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 정도였다. 즉 책의 수준에 나를 맞추다 열등감을 느끼기 보다, 이렇게 어려워 읽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라면 그 저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별로 유익한 책을 쓴 건 아닐 것이라고 자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은지 얼마 안 되서 니체는 기독교에선 거의 적그리스도로 매도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바로 '신은 죽었다'라고 했던 니체의 말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그 책을 읽었던 80년 대는 한창 우리나라  기독교 부흥기를 맞이했던 때였다. 그러니 니체의 그 말이 얼마나 가당치 않게 들렸겠는가. 신은 이렇게 살아 계셔서 성령의 은혜를 폭포수와 같이 부어주고 계시는데 신이 죽었다니!  그건 신성모독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나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그래 뭐, 니체 아저씨는 시대를 잘못 만나 적그리스도로 매도 됐다고 쳐도 철학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니체가 이단의 수괴었다면 그렇게까지 고민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철학잔데 철학이란 학문은 신에게 배치되는 학문일까? 물론 철학이란 학문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내가 믿는 신과 배치된다면 난 철학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스운 생각이긴 하지만 이건 확실히 (적어도 그때의)철학과 기독교가 잘못한 바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다양성이 결여된 시대이기도 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었고, 권위의 시대였다. 한 번 그런 식으로 매도가 되면 영원히 낙인된 것처럼 인식이 되던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날 어떠한 학설이나 사고가 재해석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니체 역시 마찬가지다. 무조건 적그리스도라고 매도하기 보다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왜 그가 그렇게 얘기를 했어야 했는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 그의 나머지가 그 말 때문에 사장되지 않고 후세에도 전해질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그가 그렇게 외쳤던 건 1800년 대 기독교적 윤리관은 지나치게 내세만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그 보다 현재를 온전히 살게 하는 진리와 선, 그리고 도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 날 그의 말은 기독교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납득이 가능한 말이다. 기독교가 발전되어 온 발자취가 그렇지 않은가? 내세만 강조하고 기복의 잔재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사관이 기독교의 질을 떨어 트려왔던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또 다른 기독교 진영에선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기도 하고 그것은 니체가 주장하는 것과 일맥 상통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니체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런 각성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떨치지 못한 1800년 대식 기독교가 적그리스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는 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죽였다고 해야 옳은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니체가 그렇게 웅변했던 것은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철학계의 책임이 아주 없다고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철학은 철학대로 어찌나 어렵고 까탈스러운지.도무지 상아탑에 갇혀서 나올 줄을 모른다. 그래서 권위는 있을지 모르나 대중과 소통할 줄 모르고 학문으로 전락한 것도 사실 아닌가. 물론 그나마 요즘엔 대중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노력들을 많이 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이런 책도 나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냥 에세이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것도 니체의 아폴리즘을 인용한 에세이 말이다. 저자는 정말 니체를 사랑하는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짜라투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를 하도 어렵게 읽어 그후 지금까지 니체를 읽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그의 책에서의 잠언을 인용해 저자 특유의 생각을 자유자제로 풀어 쓰고 있다. 결국 읽으면서 니체가  새롭게 보인다.

 

특히 니체가 불행한 삶을 살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정신까지 불행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항상 향상심을 독려했고,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과연 그렇게 말하는 게 타당한가 의문스럽기도 했다. 뭔가 모순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맞겠다 싶기도 하다. 누구나 고난을 겪으면 그 삶은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는 법이다. 더구나 그는 철학자다. 얼마나 깊은 고독 속에서 그런 잠언을 끌어 올렸겠는가? 그러므로 고독을 두려워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하지는 마라. 항상 편안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아 온 사람에게선 결코 얻을 수 없는 인간 심연 깊은 곳을 그는 이미 여행하고 그 같이 설파했다.

 

그의 삶을 보면 왠지 반 고흐의 삶과도 닮았다는 느낌든다. 특히 그렇게 많은 저작을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그의 사후에 조명을 받았다고 하니 더욱 그렇지 않은가.

 

처음엔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자기계발류의 느낌도 없지는 않다. 하긴, 심리학이 자기계발에서도 쓰이고 있으니 철학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확실히 좀 박식해 보인다. 니체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어 니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만큼 쉽게 쓰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고. 하지만 이런 책은 그야말로 입문을 위한 책일뿐 이왕 니체에 빠져 보겠다면 그의 저작물 내지는 그의 사상을 다룬 책을 읽어야 진짜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딱 그만큼의 책인 것이다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8-22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 고흐와 니체가 서로 은근히 닮은 점이 있어요. 일단 두 사람 다 수염이 있죠. 아버지가 목사에요.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어요. 매독에 걸려서 고생했어요. 고흐의 남동생이 형의 그림과 편지를 정리했고, 니체의 여동생이 오빠의 저작물을 관리, 편집했어요.

stella.K 2015-08-23 09:34   좋아요 0 | URL
완전 평행이론이군!ㅎㅎ

yureka01 2015-08-26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니체의 여자들도 한번 보세요.재미난 슬픈 사랑들...

stella.K 2015-08-26 12:10   좋아요 0 | URL
앗, 그런 책이 있습니까?
니체가 루 살로메를 좋아했다 요즘 시쳇말로 까였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는데 말이죠.
읽어 봐고 싶단 생각이 불끈 드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