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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처럼 생각하라 - 과학적 사고와 수학적 상상력의 비밀
오가와 히토시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피카소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건 중학교를 들어가고 나서였다. 그때 세종문화회관이라고 기억하는데 그것에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단체 관람을 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더라면 결코 가 보지도 않았을 그 전시회를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갔다가 완전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모름지기 미술 작품이라면 대중이 이해 가능하고 좋아할만 해야 하지 않는가? 뭔지도 모를 그림을 그려놓고 어떻게 이걸 예술이라고 하는 것인지? 사람들의 눈이 삐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망 정도가 아니다. 은근 화가 났다. 그래 이걸 보자고 버스 타고 힘들게 여길왔나 싶고, 피카소의 얼굴은 더 화가 났다. 날카롭고 고집불통 같이 생겨 가지고 친절하지도 않게 이해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라는 식인 것 같았다. 그 이후 난 한번도 피카소를 좋아해 본적이 없다.
좋아하지 않기로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이해 못할 그림을 예술이라 부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보면 볼수록 기하학적으로 생긴 것이 이렇게 그리기도 쉽지 않을거란 생각을 한참 뒤에 했다. 이해 가능하고, 친밀한 그림을 그렸더라면 그는 이만큼 위대한 화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친절한 큐레이터나 미술 교사쯤 됐겠지. 하지만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혁명 그 자체였다.
요즘들어 부쩍 예술가들(물론 주로 작가들에 국한되있긴 하지만) 그들의 삶이나 작업 방식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들의 생각을 훔치랬다고, 예술가가 되고 싶으면 예술가의 생각을 훔쳐야 할 것이다. 특히 그들의 작업 패턴, 방식 등을 아는 것은 나름 유용해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피카소를 심도있게 파헤치기 보다 자기계발류의 하나다. 뭐 굳이 말하면 피카소의 일에 대한 철학과 작업 방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다.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이 필요한 사람들이 참고해서 볼만하다.
하지만 자기계발이 필요한 사람에겐 유용하긴 하겠지만 나 같이 예술가의 그것에 관심은 많으나 자기계발은 별로인 사람에겐 당장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나와 같은 욕구가 있다면 차라리 피카소 평전을 읽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도 작가가 허투로 쓰진 않았다. 난 이런 실용서는 우리나라 보단 일본이 좀 더 앞서 있지 않나 싶다. 더구나 저자가 철학을 전공하고 이런 책을 썼으니 그 재능은 가히 인정해 줄만 하다. 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자국의 철학을 옹호한다든지 자기 자랑도 살짝 곁들여 있어서 글쎄 나도 어느 새 반일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점은 약간 김이 빠져 보인다. 마치 자국의 철학과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닐 텐데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피카소가 어떤 작업 방식으로 자신의 미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는지는 일단 이 책의 목차만 보아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읽다 눈에 띈 건, 피카소가 작업을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하고 다음으로 전진해 나갔다는 것(79p~)이다. 우리는 흔히 한 가지 일을 끝내야 다음 일도 할 수 있다는 묘한 강박관념이 있다. 그런데 피카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완성하지 못한 것은 못한 것 대로 놔두고 다음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다음 작품 역시 완성하지 못할 거라는 일말의 불안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는데 그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데 왜 그리도 마음이 편안해지던지. 또 주위에서 그렇게 조언한다. 하나를 붙들었으면 끝장을 봐야지 끝장도 보기 전에 또 새로운 일을 벌이면 이도저도 안 된다고.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메일 것도 아니다.
그 부분을 읽는데 문득 고운 시인의 작업 방식이 생각났다. 그는 오래 전, 한 작업실에 상을 세 개를 펴놓고 세 작품을 동시에 완성해 간다는 말을 들었다. 이 작품 쓰다 저 작품이 생각나면 자리를 옮겨 그 작품을 쓰고 또 쓰다가 다른 생각이 나면 다른 자리로 가 그 작품에 대한 글을 쓰고. 이렇게 자리를 옮겨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고운 시인이나 되니까 가능하지 않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맞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작업 방식엔 왕도가 없다는 얘기다. 적어도 난 안 되는 것 가지고 진빼지 말자는 말처럼 들린다. 어떤 식으로든 그 일을 하기로 했다면 언제가 됐든 하는 것이다. 이 책도 꼭 피카소의 작업 방식을 쫓아서 하라고 강요하기 위해 쓰이진 않았을 것이다. 각자는 각자에게 맞는 일에 대한 철학과 작업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자극하기 위해 이 작품은 쓰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참고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