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2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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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을 처음 접한 건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란 책에서 였다. 그 책은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접해왔던 책이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에 관한 생각들과 향수를 풀어낸 책으로  한 개인이 향유한 문화를 통해 하나의 자서전 내지 연대기로도 읽혀  재미있으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저자는 참 부지런한 사람인가 보다. 앞서 말한 책이 올봄에 나왔는데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한 권의 책을 더 냈다. 바로 이 책이다. 사실 문학을 나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그 스펙트럼이 그리 넓지 못한 나는 기껏해야 순수 문학에 한정되어 있을 뿐, 하드보일드 문학을 말할 때 따라 나오는 레이먼드 챈들러나 헤밍웨이는 아직 읽지도 못했다. '하드보일드' 문학라...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부터가 하드보일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말하자면 저자가 읽은 이쪽 방면의 책에 대한 정리를 하고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나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있을까? 그런데 왠걸, 내가 이 하드보일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나 보다. 막상 책을 펴보니 저자가 읽어 온 장르문학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하드보일드는 '창작의 한 태도로 현실의 냉혹하고 비정한 일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하는 수법'을 의미하지 않는가? 하긴, 책 제목에 하드보일드 대신 장르문학을 넣으면 조금은 없어 보이긴 할 것이다.    

 

요즘 심심찮게 명사들의 책 읽기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장르문학만을 따로 엄선해서 보여주는 것도 나름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그 시도는 이 책의 저자가 처음은 아닌 듯 싶다. 이미 2011년 장르문학 매니아였던 고 홍윤 씨가 실아생전 '물만두'란 닉네임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쓴 리뷰들를 모아 펴낸 <물만두의 추리책방>이 더 앞서고 있으니. 또한 이전에 장르문학 서평집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 본적이 없으니 우리나라 최초는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은 꽤 오랫동안 변방의 문학으로 취급 받아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지난 90년 대를 거쳐오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지금은 인식이 꽤 많이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국내 작가가 주목 받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고, 주로 외국 작가를 소개하는 정도여서 그 점은 아직도 아쉽다.  

 

그런데 나는 왜 책을 고르려 할 때 장르문학은 마지막까지 선택을 미루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꼭 장르문학이 다른 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이유에서만도 아닐 것이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봤더니, 나는 이 분야에 대해 지극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무서운 영화를 보면 그날 밤 가위 눌린다는 속설이 있는 것처럼 장르문학을 읽으면 내 영혼이 나쁜 악마에게 점령 당할 것만 같아 읽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게다가 책을 읽을 때 생을 관조하고, 통찰하는 이야기를 읽어도 부족한 판에 그렇게 음습하고, 칙칙한 이야기를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인가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난 이 분야의 책을 아직도 쉽게 좋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장르 문학은 영화나 드라마에선 액션이나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붙일 법한데 이런 분야도 극히 가려 보는 마당에 내가 장르문학을 볼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물만두님이 살아계셨을 때 이렇게 장르문학에 쑥맥인 나 같은 독자에게 추천할만한 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물만두님은 정말 매니아답게 나를 위한 추천 목록을 알려 준  기억이 난다. 더불어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귀 기울여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범죄는 그 시대를, 그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읽기에 가장 좋은 재료다. 범죄를 통해서 언제나 서로를 죽여왔던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범죄란 가장 흥미진진한 이 시대의 축소판이다(7p). 

 

무엇보다 나는 저자의 앞선 책에서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는데 이 분야에 관해서도 이토록이나 많은 책을 읽어 왔을 줄은 몰랐다. 이 책에서 다룬 책은 40권 쯤 되지만 굴비를 엮듯 관련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상당하다 싶다. 특히 요즘 장르문학에서 핫한 작가의 작품을 다룰 땐 아예 작가론에 버금하는 글을 쓰고 있어 나 같은 장르문학 문외한에겐 적지않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국내에 가장 많이 번역되고 있는 작가 중 하나인 히가시노 게이고나, <87분서> 시리즈 또는 <살인의 쐐기>를 쓴 나에겐 다소 생소한 에드 맥베인에 관해 쓴 글은 가히 탁월하다 싶고 당장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에 비하면 읽는 맛은 다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분야의)책을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을까, 특별히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안내서로 손색이 없다. 저자의 성실한 책 읽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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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9-1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북풀러 이웃분들도 대단 대단..ㅎㅎㅎㅎ

stella.K 2015-09-19 19:10   좋아요 0 | URL
고인이 되신 물만두님은 정말 이 방면에선 거의 타의추종을
불허하셨죠. 그분의 책이 나오고 모처에서 출판 기념회에 초대되서
간적이 있었는데 역시 초대되어 오신 어떤 분이 이런 서평집은
우리나라에선 거의 전무후무 하다면서 일본에 번역 출판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번역이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cyrus 2015-09-1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게 많아서 행복하면서도 절반을 읽지 못하는 상황이 애서가의 아이러니한 운명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분야의 독서에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 대단해요.

stella.K 2015-09-13 19:07   좋아요 0 | URL
맞아. 그게 딜레마야.
사람들은 편독을 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나는 어느 한 분야라도
재대로 파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저자는 뭐 이 분야만 팠던 사람은 아니지만 대단한 사람 같아.

곰곰생각하는발 2015-09-12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장르 문학 접하게 되면 생경해서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그 튝유의 클리쉐가 있어요.
그때부터 재미집니다.... 장르소설은 약간의 마니아적 너그러움이 있어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요..

stella.K 2015-09-13 19: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몇년 전 북유럽 장르문학 서평 이벤트에
당첨이 되서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 뭐 이런 작품이 있냐고
깠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볼 땐 별로 대단치도 않은데
잔뜩 분위기만 잡을 뿐 빵 터뜨려주는 뭔가가 없더라구요.
다른 사람은 좋다고 하는데 저만 안 좋다고해서 얼마나 민망하던지...
그후 장르문학 서평 이벤트 참가는 함부로 못하겠더라구요.ㅠ

yamoo 2015-09-1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르 문학과 별로 친하지 않은데, 유일하게 빠진 장르가 무협이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ㅎㅎ 에스에프는 빠지려는 찰나에 그냥 관심이 흐지부지...

스텔라 님께서 장르적특성에 적응하시면 시시한 것도 대단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장르만의 아우라라는 게 있거든요. 예컨대 공보영화의 대명사인 헬레이저의 경우 저는 되게 재미없게 봤지만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명작으로 회자됩니다. 평점도 아주 높고요.

스텔라 님의 장르 문학 섭렵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9-14 20:4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맞습니다. 헬레이져는 공포 마니아 사이에서 거의 신적 언급...
헬리이저 싫어하면 마니아 아니라는 정서가 있죠. 전 사실 헬레이저 안 좋아하거든요.그런데 그런 태도를 비판할 수는 없더라고요......

제가 애마부인을 열렬히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죠. 전 이 영화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에로 영화인데 티븨에서 하길래 봤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ㅎㅎㅎ

stella.K 2015-09-15 11:45   좋아요 0 | URL
장르문학은 아직도 저에겐 낮설고 친하게 지낼 자신이 없어요.
그래도 책 표지가 반이라고 요즘엔 장르문학도 인상적인 게 많아서
마음이 가기도 해요. 혹시 읽고 리뷰 올리면 냉큼 와서 좋아요를
눌러 주세요.ㅋㅋㅋ

페크pek0501 2015-09-1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편식하는 독서를 하는 것 같아요. 한쪽으로 치우치게 돼요.
독서 취미가(혹자는,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고 하는데 저는 독서도 취미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수명이 긴 이유는 한 분야의 책을 읽다가 싫증나면 다른 분야의 책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인 것 같아요. 책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 새로 출간될 것이므로 신간의 유혹은 끝이 없고
그러니 독서 취미도 끝이 나지 않는 점도 있고요.

취미가, 시간이 흐르면 바뀔 수 있는 것인데 제가 알기론,
독서 취미에 한 번 빠져 버린 사람은 끝까지 갈 걸로 보입니다.

stella.K 2015-09-17 15: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초등학교 때부터 길들여진 독서가 지금까지 가는 것을 보면
아마도 늙어 죽을 때까지 계속 가지 않을까요 싶어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에 대한 관심이 줄지 않는 것을 보면...

저는 편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어차피 다양한 분야를 다 알 수는 없으니.
또 그렇게 편식을 하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게되고
어느 한 분파만을 알게 되지는 않잖아요.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건드리기만 하는 것 보다야 한 분야를 깊이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그런 의미에서 언니의 독서를 편식이라고
누가 감히 말하겠습니까?^^

푸른기침 2015-09-17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머리가 말랑말랑해졌음 좋겠습니다. ㅎㅎ (뭔소리 ㅎㅎ)
즐겁고도 즐거운 가을 되세요.^^

stella.K 2015-09-18 13:49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십니다. 잘 지내십니까?
자주 뵈면 좋을텐데 너무 뜸하십니다.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