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도 여기저기서 이석원, 이석원하길래 (드디어)나도 그의 책을 펼쳐 들었다. 그것도 신간을. 나는 글을 쓴다면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인간이지만, 소설은 워낙에 호불호가 갈리는장르인지라 아무리 평이 좋아도 선뜻 손을 내뻗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에세이는 대체로 무난하게 잘 읽힌다. 그래서 별 부담없이 읽기 시작했다.

 

에세이는 편하면서도 작가의 사유가 담겼다는 것인데, 그런 에세이도 그 모습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걸 목격한 건 일본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의 <삶의 힌트>라는 책에서였다. 우리나라엔 그다지 많이 알려진 것 같지는 않은데, 일본에서는 나름 존경 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인 것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뭐 조정래나 김주영 급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그의 책을 읽었을 때, 기존에 에세이와는 다소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기존의 에세이가 정제된 문장이라면 이츠키 히로유키의 글은 좀 더 서술적인 느낌이어서 약간의 소설 분위기도 연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여느 에세이의 한 편의 지면 할애가 3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면 그의 글은 4, 5 페이지를 넘는 것이 보통이라 작가의 포스가 남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그런데 이석원의 글은 이츠키 히로유키의 독특함을 훨씬 뛰어 넘고 있었다. 그야말로 에세이의 신세계를 경험했다고나 할까?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놀라웠다. 하긴, 에세이가 꼭 정해진 룰이나 규격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여러 형태의 글을 접할 수만 있다면 독자로서는 읽는 즐거움이 배가가 될 것이다. 

 

물론 작가 이석원은 에세이를 쓴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이미 그의 책을 읽어 본 사람도 있겠지만 독자로서의 나는 이번이 처음인지라 나의 이런 반응이 다소 호들갑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에세이의 첫 부분에서 이렇게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단 말인가? 미스테리한 게 자꾸 그 다음 장을 펼쳐들게 만든다. 구성도 어느 편의 글도 완결된 것이 없다. 무슨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나 2, 30분짜리 연속극을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작가의 솔직함이다. 이혼한 것,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너무도 솔직하고 자세하게 쓰고 있다. 하다못해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상호까지도 그대로 쓰고 있다. 보통의 작가들은 그럴 경우 가명을 쓰거나 이니셜을 쓰는 것이 보통이지 않는가? 하긴 뭐 그런다고 해서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는 것인가 의아스러울 정도다. 물론 글쓰기의 기본 중 하나가 솔직함, 진솔함에 있다고 볼 때 작가는 그것에 지극히 충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솔직함 때문에 누군가는 본의 아니게 선의의 피해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래 전, 성석제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에 가서 내가 질문했던 것도 그거였다. 그렇게 누군가를 소설에서 형상화했을 때 어떤 사람이 찾아 온 적은 없었냐고. 그래서 왜 나를 이렇게 썼냐고 따져 묻는 사람은 없었냐고. 어차피 소설은 허구라고는 하나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경험 있었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등장하면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다. 특히 작가는 솔직함을 무기로 글을 썼다지만 상대의 행위가 글로 형상화 된다면 불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용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바로 이 솔직함 때문에. 

 

그런데 이렇게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 일일연속극 같은 그의 에세이는 형식은 새로워 좋긴한데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솔직히 내 나이 정도가 되면 연애는 그림 같은 거다.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그것 아닌가? 그래서 다소 김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맛은 있는데 하필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와의 이야기가 주라니. 물론 그것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다소 쉽고 흔한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더구나 작가는 자신을 가리켜 나이탐험가라고 했다. 작가는 40대 초반의 나이다. 사랑, 연애도 2, 30대나 열나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 4, 50대만 되어도 그 보단 인간관계나 노후 또는 추억 등에 관해서 얘기할 때다. 그런 것을 40대 초반에도 얘기하는 것을 보면 작가는 아직도 젊구나 싶었다.

 

하도 에세이가 별스럽게 느껴져서 궁금해 하던 차에 얼마 전, 예스24에서 그의 제법 오래 전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첫 책 <보통의 존재>를 쓰고 한 인터뷰 같은데, 책에서 본인은 못 생겼다고 적고 있지만, 같은 남자끼리는 어떨지 몰라도 여자인 내가 봤을 때 그는 결코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빠지는 얼굴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작가는 베시시 웃으며, 그럼 어떻게 스스로 못 생기지 않았다고 얘기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런 인상의 남자를 좋아할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음악을 하고 글을 쓴다지 않은가. 

 

8분 가량 되는 인터뷰 말미에 그는 자신을 가수 겸 작가로 보지 말아줬으면 하는 부탁과 함께, 자신이 기억하는 모두를 글로 쓰고 싶다고도 했다. 그래서 자신은 할 일이 너무 많다고도 했던 것 같다. 그제야 이 작가가 왜 사람의 이름은 물론이고, 상표고, 상호를 실명으로 쓰는지, 왜 솔직함을 무기로 글을 쓰는지 이해가 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오래 전부터 해 보고 싶은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사람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있다. 나는 또 에세이치고 이렇게 기승전결이 있는 에세이는 처음 본다. 하긴, 요즘엔 통섭도 많이 하는데 소설 속에 에세이가 있고, 에세이 속에 소설이 왜 없겠는가? 그렇게 안 써서 일뿐. 책 표지에도 분명 밝히고 있다.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얼핏 연애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더 정확히는 성공 보다는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그 인터뷰에서 서점에 가면 성공과 용기를 주는 자기계발류의 책이 대센데 자신은 그러기 보단 오히려 실패나 상처를 통해 공감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저건 내 얘기야 내지는,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느끼는 공감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연애의 짜릿함이나 즐거움, 기쁨 보단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이해하고 바라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고독하고 때론 신산하게 글을 썼다. 특히 어렵사리 이제 막 사랑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실연의 아픔을 절절하게 써 내려가는 것을 보면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 연속극은 어느새 사랑과 실연에 대한 다큐 드라마를 보는 것도 같다. 한마디로 '사랑 잃고 나는 쓰네.'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게 죽을 것 같은 실연도 먹고 살아야 하는 앞에서는 두 번째의 문제라고도 쓰고 있다. 

돈에 쫓기는 것만큼 영혼이 파괴되는 일은 없나니, 사랑도 연애도 그 다음이나니.  ...... 이래서 사람은 일이 있어야 하는구나. 참 안 로맨틱하고 인정하기도 싫은 너무도 현실적인 깨달음이었다.(315p)

그런데 그 일이라는 것도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경우는 없더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그의 첫 책 <보통의 존재>를 내놓고 글 쓰기가 자신을 구원했다며 좋아라 했지만 다시 밥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어쩌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못하는 자의 고백'을 나름 하소연 같이 길게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왜 그리도 공감이 되는 것일까?

 

재주가 메주여서일까? 평생 꿈이라곤 작가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꿈을 꿔 본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것도 해 봤더니 쉽지 않더라. 써야만 하는 글을 썼더니 내 자아는 어디로 가고 어느 순간 쓰는 기계가 되어있었다. 처음엔 나도 작가가 되었다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중엔  즐겁지 않았다. 그래도 이 써야할 글을 걔속 써야한다면 쓰고, 언젠가 그 일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때야 말로 본격적으로 내 글을 쓰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그때가 돌아왔을 때 왠지 김이 빠지면서 어느 샌가 지난 날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자에 속했던 시절엔 내 글을 보고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 주는 사람이라도 있지, 후자는 완전 독백일 뿐이다. 그렇다면 난 비록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니어도 끝까지 전자의 일에 매달려 있어야 했던 것일까?

 

책의 완성은 작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독자에게 달려 있다는 말을 얼마 전에 알았다. 문득 이석원 작가는 바로 위와 같은 말을 하기 위해 그처럼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에 다큐 드라마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연애를 할 때 얼마나 부주의한 인물이며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자책하듯 절절하게 쓰고 있지만, 결국 그는 그가 하는 일인 글 쓰기를 포함해서 인생을 어떻게 가꾸어 갈 것인가에 대해 조근조근 중저음의 톤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선배나 친구가 해 주는 조언이나 충고 보다 좋다. 특히 작가의 연애 실패담은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까? 순수한 연애를 갈망하는 남자들은 더더욱 참고할만 하다. 사실 연애할 때처럼 자신이 적나라하게 발가벗기워질 때가 또 있을까? 그것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그래서 연애를 하지 않겠다거나, 손해 보는 연애는 하지 않겠다거나, 요즘에 순수가 어딨냐고 일갈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뭐든 공짜는 없다. 연애를 하든 안하든 그건 어디까지나 선택이다. 이 에세이는 또 해피 엔딩을 암시하는 반전도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로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준다는 말도 되겠다. 

 

그가 말하는 언제들어도 좋은 말은 그의 애인이 언제나 자신을 찾을 때 묻는 말 '뭐해요?'의 스마트폰의 문자 메시지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예전에 이 비슷한 문자를 가끔 보내줬던 후배가 있었다. 젊은 시절 함께 일하며 그 어려운 인간관계의 전장을 함께 굴렀던 들꽃 같은 후배였다. 분명 나와 맞지 않는 데가 있어 난 그 후배를 그리 많이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나에게 언니, 언니하며 먼저 손 내밀어 주고  챙겨준 후배였다. 가끔 그 친구가 뭐하냐고 물어 오면 그건 만나자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러면 우린 서로 만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또 가끔은 맥주도 마시며, 영화나 연극도 같이 보았다. 알고 보면 그 친구와의 추억이 그 어떤 사람과의 관계 보다 많았던 것도 같은데  어떤 계기로 멀어졌다. 내가 선배이기도 하니 다소의 아쉬운 마음을 접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을 해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난 '그렇지 뭐. 처음부터 서로 맞지 않았던 사람끼리 끝까지 좋을 리 있겠어?'하며 씁쓸한 마음으로 냉소하고 멀어져 갔다. 

 

그런데 이 나이쯤 돼서 돌이켜 보면 나에게 있어 쉬운 관계는 없었다. 뭔가 코드도 맞고, 스타일도 비슷해 잘 맞을 것 같은 관계도 어느 순간 뒤돌아서면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사랑하는 관계를 크리스탈 유리잔이 비유하곤 한다. 그만큼 세심하게 잘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꼭 사랑하는 관계만을 두고 하는 말이겠는가? 모든 인간관계는 다 어렵고, 언제든지 깨지기 쉬운 크리스탈 같은 것이다. 지금 깨닫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읽으면서 나도 그 친구가 어제 만나고 헤어졌던 것처럼 "뭐해요?"하고 물어봐 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가까이 있어 뭐해요라고 묻는 건 지금 만나자는 뜻이 되겠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뭐하며 지내니라고 묻는다면 그건 안부가 될 것이다. 언젠가 이 친구를 두고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석원처럼.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도 하루에 단 한 두 시간도 집중해서 쓰지 못하는 나에게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석원같이 글을 쓰더라도 짝퉁이라고 놀리지 마시길. 그리고 언젠가, 언젠가는......

그리고 작가의 이 말도 기억해야겠다.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천천히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 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앞서 간다고도 생각지 않구요.

 

오늘도 감사히 보내시길.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선물은 아닙니다.             (345P)            

작가들의 글은 대개 뭔가의 불만과 부조리함 또는 불안과 회의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는다면 뭐 때문에 작가가 되겠는가?) 이석원 작가도 그렇게 글을 쓰다가 마지막은 이렇게 글을 맺는다. 그런 것으로 봐 작가는 글을 잘 써서 이렇게 쓰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뭔가 어려움을 극복했거나, 일이  잘 풀리거나, 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초월했거나. 어쨌든 책의 마무리가 좋다. 

 

작가의 은밀하고도 솔직함에 독자인 나로선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작가는 허투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 같아 신뢰감이 느껴진다.이 책은 언젠가 외롭거나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다시 한 번 펼쳐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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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10-0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책이 그렇게 좋다는 말이죠? 언젠가 다시 한번 읽게 될 것 같은 책이라니.
그런데 저는 이석원이 누군지 몰라요 <보통의 존재>라는 책을 썼다는 것은 아는데 그것도 그 책의 저자로서만 아는데 원래 글쓰는게 직업인 사람은 아니죠? 아닌가요? ㅠㅠ

stella.K 2015-10-03 14:39   좋아요 0 | URL
가수래요. 언니네 이발관이란 인디 밴드 리던가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이 처음인데 <보통의 존재>가 성공을 거뒀던 것 같아요.
말에 의하면 <보통의 존재>가 좋긴한데 굉장히 무겁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에세이가 그래도 밝다고 하는데 이미 밝혔듯이
중저음톤이라 나인님껜 또 어떨지 모르겠어요.
근데 프랑스 영화 같은 느낌도 들고 어쨌든 전 좋았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0-03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이 글 오늘의 당선작이다, 했는데 당선작되었던데.. 또 조심스럽게 점쳐봅니다. 으 글도 오늘의.. 아, 아니구나. 이 달의 당선작 추천합니다. 독자선정위원회는 이 덧글 읽으면 추천 누르시오 ! 명령이오...

stella.K 2015-10-03 14:4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곰발님 땡!
저번에 당선작이 될 것 같다고 한 그 글 실은 안 됐어요.
대신 다른 것이 됐지롱.
그런데 이 리뷰 열심히 쓴 건 사실이어요.
가끔 저의 생각에 불을 집혀주는 책이 있지요.
이 책이 그랬어요. 이번에도 되면 좋겠군요.^^

페크pek0501 2015-10-0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 님의 명령에 따라 추천 눌러야 할 것 같군요. 제가 독자위원은 아니지만... 하하~~

요즘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더라고요. 소설은 쭉 이어져서 한꺼번에 읽어야 될 것 같고
에세이는 딱 딱 끊어지니까 아무 때나 읽어도 될 것 같은 건 에세이 독서의 장점.

˝짝퉁이라고 놀리지 마시길.˝
- 저, 안 놀릴 거예요. 뜨겁게 응원해 드리는 쪽이에요. ㅋ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 그러니 미래의 성공을 향해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의 삶을 어떻게 가꾸는가가 중요한 거군요.
명심하겠습니다. (빨리 나의 화단을 가꾸러 가야지.)

stella.K 2015-10-03 14:47   좋아요 0 | URL
고맙슴돠, 언니.
이미 쓰기도 했지만 전 소설은 호불호가 좀 심한 편이라
선뜻 읽기가 두렵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언니 이 에세이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아마도 읽으면 끝까지 읽으셔야 할 거예요. 안 끊어져요.ㅠㅋ

묘하게 이 책 읽고 나도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 말 정말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