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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니체 ㅣ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니체의 <짜라투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 건 십대 말이었다. 뭘 알아서 읽었던 건 아니고, 어찌나 어렵고 난해 하던지 그냥 나도 그 책을 읽었다는 이름 하나 짓고 싶어서 였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나이에 맞지 않은 지적 허영. 하지만 그 책을 읽고 내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책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무익한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 정도였다. 즉 책의 수준에 나를 맞추다 열등감을 느끼기 보다, 이렇게 어려워 읽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라면 그 저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별로 유익한 책을 쓴 건 아닐 것이라고 자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은지 얼마 안 되서 니체는 기독교에선 거의 적그리스도로 매도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바로 '신은 죽었다'라고 했던 니체의 말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그 책을 읽었던 80년 대는 한창 우리나라 기독교 부흥기를 맞이했던 때였다. 그러니 니체의 그 말이 얼마나 가당치 않게 들렸겠는가. 신은 이렇게 살아 계셔서 성령의 은혜를 폭포수와 같이 부어주고 계시는데 신이 죽었다니! 그건 신성모독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나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그래 뭐, 니체 아저씨는 시대를 잘못 만나 적그리스도로 매도 됐다고 쳐도 철학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니체가 이단의 수괴었다면 그렇게까지 고민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철학잔데 철학이란 학문은 신에게 배치되는 학문일까? 물론 철학이란 학문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내가 믿는 신과 배치된다면 난 철학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스운 생각이긴 하지만 이건 확실히 (적어도 그때의)철학과 기독교가 잘못한 바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다양성이 결여된 시대이기도 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었고, 권위의 시대였다. 한 번 그런 식으로 매도가 되면 영원히 낙인된 것처럼 인식이 되던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날 어떠한 학설이나 사고가 재해석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니체 역시 마찬가지다. 무조건 적그리스도라고 매도하기 보다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왜 그가 그렇게 얘기를 했어야 했는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 그의 나머지가 그 말 때문에 사장되지 않고 후세에도 전해질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그가 그렇게 외쳤던 건 1800년 대 기독교적 윤리관은 지나치게 내세만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그 보다 현재를 온전히 살게 하는 진리와 선, 그리고 도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 날 그의 말은 기독교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납득이 가능한 말이다. 기독교가 발전되어 온 발자취가 그렇지 않은가? 내세만 강조하고 기복의 잔재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사관이 기독교의 질을 떨어 트려왔던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또 다른 기독교 진영에선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기도 하고 그것은 니체가 주장하는 것과 일맥 상통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니체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런 각성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떨치지 못한 1800년 대식 기독교가 적그리스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는 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죽였다고 해야 옳은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니체가 그렇게 웅변했던 것은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철학계의 책임이 아주 없다고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철학은 철학대로 어찌나 어렵고 까탈스러운지.도무지 상아탑에 갇혀서 나올 줄을 모른다. 그래서 권위는 있을지 모르나 대중과 소통할 줄 모르고 학문으로 전락한 것도 사실 아닌가. 물론 그나마 요즘엔 대중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노력들을 많이 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이런 책도 나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냥 에세이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것도 니체의 아폴리즘을 인용한 에세이 말이다. 저자는 정말 니체를 사랑하는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짜라투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를 하도 어렵게 읽어 그후 지금까지 니체를 읽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그의 책에서의 잠언을 인용해 저자 특유의 생각을 자유자제로 풀어 쓰고 있다. 결국 읽으면서 니체가 새롭게 보인다.
특히 니체가 불행한 삶을 살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정신까지 불행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항상 향상심을 독려했고,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과연 그렇게 말하는 게 타당한가 의문스럽기도 했다. 뭔가 모순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맞겠다 싶기도 하다. 누구나 고난을 겪으면 그 삶은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는 법이다. 더구나 그는 철학자다. 얼마나 깊은 고독 속에서 그런 잠언을 끌어 올렸겠는가? 그러므로 고독을 두려워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하지는 마라. 항상 편안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아 온 사람에게선 결코 얻을 수 없는 인간 심연 깊은 곳을 그는 이미 여행하고 그 같이 설파했다.
그의 삶을 보면 왠지 반 고흐의 삶과도 닮았다는 느낌든다. 특히 그렇게 많은 저작을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그의 사후에 조명을 받았다고 하니 더욱 그렇지 않은가.
처음엔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자기계발류의 느낌도 없지는 않다. 하긴, 심리학이 자기계발에서도 쓰이고 있으니 철학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확실히 좀 박식해 보인다. 니체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어 니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만큼 쉽게 쓰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고. 하지만 이런 책은 그야말로 입문을 위한 책일뿐 이왕 니체에 빠져 보겠다면 그의 저작물 내지는 그의 사상을 다룬 책을 읽어야 진짜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딱 그만큼의 책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