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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그녀는 연주회 동안 시몽이 자기 손을 잡으려 들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자신이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두렵기도 했다. 언제나 그런 기대가 사실로 확인되면, 떨쳐 낼 수 없는 권태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녀가 로제를 좋아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로제는 모든 것이 너무나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언제자 그녀의 예상에서 조금 어긋나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p58)
폴은 지쳤다. 사랑하는 연인 로제의 거짓말에도 그 거짓말 속에 숨은 수 많은 여자들과의 희희낙낙거림도. 그럴때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며 다가온 스물 다섯살의 청년 시몽.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의 무한 애정공세는 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데, 그런 폴이 혼란스럽게 생각하던 장면에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익숙함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발견과 새로움에서 발견되는 권태 중에 뭐가 더 좋은걸까 하고.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새로운 것보다도 익숙함에서 발견되는 새로움이 좋긴하더라. 자주 쓰던 컵의 그림이 더 예뻐보이는 날. 읽던 페이지의 글이 새롭게 느껴지고 특히나 매일 보아온 신랑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을때. 아~ 저런 모습도 있었구나 싶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좋긴하다.
그래서 폴에게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저렇게 사랑해주는 시몽을 놔두고 어떻게 나쁜 남자인 로제에게 갈 수 있냐며 화를 내지도 못했다. 언젠가부터 사랑은 채우는게 아니라 만족하는 것임을 배웠기에. 폴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데... 그렇다면 나도 폴처럼 이렇게 외쳐야 하는 것일까?
" 시몽, 시몽"
"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p150)
아! 슬프다. 나도 늙은 것같아~~
소설에서 시몽이 폴에게 보낸 메세지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다가 문득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워킹맘 수연(송지효)은 미팅 약속 장소인 커피숍에 헐레벌떡 나가보니 상대가 나타나지 않아서 앉아 기다리다가 울리는 휴대폰 메세지를 확인하는데.
매일 가방에 넣어다니지만 읽지 못했던 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어보세요'
라던 메세지에 무너지던 장면이 떠오른다.(물론 저 대사가 정확하지가 않다) 마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시몽의 메세지에 흔들려버린 폴의 마음처럼. 폴이 오래도록 잊고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환희를 끄집어내준 것처럼. 슈퍼맘이 되고 싶었지만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어 위태로웠던 수연의 마음을 흔들어 깨워준 저 책이야기(특히나 책이라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와 수연의 심정이 이해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어쨌거나 사람은 익숙한 환경을 매일처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직장, 익숙한 가족, 익숙한 친구, 익숙한 지인, 익숙한 장소들을. 그럴때 시몽의 속삭임처럼 브람스를 떠올리며 익숙함을 환기 시키는 활동이나 즐거움을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