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일이다.
예고없이 손님이 들이닥친다는
전갈을 받았다.
아 ~ 안되는데를 연발하며
책장을 봤다.
너무 지져분 했다.
올리고 쌓고 억지로 꼽아넣고.
더이상 올리고 쌓고 억지로 넣을
자리가 없는 책들은 아무렇게나
쌓여만 가고..
책들이 하필 안방에 자리하고 있어서
안방에서 하룻밤 자고 간다는 손님들에게
나에 나태한 게으름을 들키는 것만 같아
노심초사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쇼핑백과 상자까지 동원해 책을 집어넣으며
괜히 울컥한 기분도 들었었다.
늘 보고 싶은 친구처럼 손닿는 곳에 있던 책등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 공간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아서.
'책들이 모두 문고본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수없이 생각하며
손님들을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책들이 모두 문고본이면 좋겠다.
아직 애서가 축에 낄 만큼 장서는
아니지만 책을 쌓아둘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날로 한숨이 늘어간다.
이런 생각이 깊어지고 있을때
마음의 산책에서 문고본을 냈다는
소식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작가의 이름은 요네하라 마리라니.
처음에 이름을 듣고는 서양 작가이려나 했는데
그녀가 도교 출신의 러시아 동시통역사라는 직업을
갖었었다는게 흥미로웠다.
궁금함에 책소개 코너를 살피다가
' 그녀는 하루 일곱권의 책을
읽어치우는 자유로운 인문주의자' 라는
글귀에 딱 멈췄다.
하루에, 하루만에 일곱권이라고?
언어, 역사, 문화인류학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이 있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부터 검색해봤다.
<미식견문록>
이란 표지에 히라가나로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부재 역시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미리보기 코너로 살짝
들여다봤다.
아찔했던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읽었는데도
뒷 페이지가 못내 궁금해진다.
언어와 음식이라는 어울림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필이면 문고본을 발견했고
또 하필이면 일본어 공부 중에
일본 작가를 발견했으며
또 하필이면 그녀가 언어적 감각이
남다른 여성이라니.
세가지의 우연이 겹치면 인연이 된다고
하던데, 이 책은 나와 인연인가보다.
문고본인터라 뭐 부담없이 사서 놔도
되지 않을까? 책장의 작은 부분을
차지할테지만 내 마음은 가득 찰테니까.
그런데 왜!
멋진 여성들은 모두 암으로 일찍 떠냐느냔 말이다.
사노요코도 그렇고.... 참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