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 혼도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어. 서로에게 말을 거는 법을 알지 못하면서, 다만 온 힘을 기울여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고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어. 마침내 체념한 듯 그것이 떨어져나가자 난 다시 혼자가 되었어. - P48

넌 여기 없을 뿐 아니라, 아직 살아 있었어. 그러니까 혼이란 건가까이 있는 흔들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면서, 누군가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만은 온 힘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거였어.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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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우묵해진 그녀의 눈언저리를 유심히 보다 너는 생각한다. 사람이 죽으면 빠져나가는 어린 새는, 살았을 땐 몸 어디에 있을까. 찌푸린 저 미간에, 후광처럼 정수리 뒤에, 아니면 심장 어디께에 있을까. - P27

정대의 책상 앞에 앉아보았다가, 차가운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고통이 느껴지는 가슴뼈 가운데 오목한 곳을 주먹으로 눌렀다. 지금 정미 누나가갑자기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달려나가 무릎을 꿇을 텐데. 같이도청 앞으로 가서 정대를 찾자고 할 텐데. 그러고도 네가 친구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정미 누나가 너를 때리는 대로 얻어맞을텐데 얻어맞으면서 용서를 빌 텐데. - P36

그녀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너는 금세 알아들었다. 차갑고 부드러운 헝겊으로 겹겹이 감싼 것 같은 손끝으로, 뭔가를 겁내는 듯 조용히 두드리는 소리, 얼른 문을 열고 나간 너에게 그녀는 물었다. - P38

그렇게 잠깐 궁금했을 뿐인데, 그후로 자꾸 떠올랐다. 잠든 정대의 머리맡에서 네 교과서를 펼칠 통통한 손. 조그만 입술을 달싹여외울 단어들. 세상에 너는 머시매가 어쩌면 이렇게 착실하냐....
생글거리던 눈. 고단한 미소, 부드러운 천으로 겹겹이 손끝을 감싼것 같은 노크 소리. 그것들이 가슴을 저며 너는 깊은 잠을 이루지못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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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그 밤 빽빽이 강당을 메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문득 둘러보며, 마치 이곳에 집결하기로 약속한 군중 같다고 너는 생각했다. 소리치지도 움직이지도 손을 맞잡지도않는, 지독한 시취만을 뿜어내는 군중 속을, 너는 장부를 겨드랑이에 끼운 채 빠르게 걸어다녔다. - P21

임종은 조용한 것이었다.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눈을 감고 있던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새 같은 무언가가 문득 빠져 나갔다. 순식간에 주검이 된 주름진 얼굴을 보며, 그 어린 새 같은 것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몰라 너는 멍하게 서 있었다.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놀란 그 새들은 어디 있을까.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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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처럼. 공기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 - P7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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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8-24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야 할 텐데, 이 책이 나오고 열해가 넘었더군요 지난해가 열해째였어요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가다니... 더워도 시간은 가고 팔월 얼마 남지 않았네요

모나리자 님 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희선

모나리자 2025-08-26 21:58   좋아요 0 | URL
소설은 써 두면 언젠가 평가를 받게 되는군요. 시간은 정말 빠르죠.
오늘 비가 내리더니 저녁 온도가 달라진 것 같아요.
희선님도 항상 건강하시길 바래요.^^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 - 지혜에 관한 작은 책, 엥케이리디온
에픽테토스 지음, 노윤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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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에픽테토스가 남긴 지혜의 말씀을 읽었다. 이 책은 에픽테토스의 제자인 아리아노스가 그의 강의와 대화를 엮어 대신 집필한 것이다. 원제는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이며, ‘손에 들고 다닐 만한 작은 것이라는 뜻으로 에픽테토스 철학의 정수만을 담은 요약집이다. 노예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당대 최고의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알려진 무소니우스 루푸스에게 철학을 배웠고 이후 자유인으로 해방되었다. 그 후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93년경 도미티아누스가 철학자 추방령을 내리자 니코폴리스로 건너가 학교를 세우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철학을 가르쳤다. 에픽테토스의 철학 사상은 몽테뉴, 데카르트, 애덤 스미스, 칸트에게 삶의 지침을 준 불멸의 고전이며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본문에는 53가지 철학적 지혜가 담겨 있다. 원문에는 제목이 없었는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부에서 추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모든 얘기가 주옥같은 얘기지만 그중 몇 가지 문장을 소개해 보겠다.

 



통제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라

 

세상에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충동과 욕망과 혐오는 자아에 속한 것이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지만, 질병과 부와 명예는 자아에 속한 것이 아니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P25)

 



우리가 사는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일어난다. 일일이 마음 쓰며 살 수 없다. 코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도 바쁜 일상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충동, 욕망, 혐오는 우리 마음속에서 들끓는 흔한 감정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반면 스스로 통제하기 힘든 외부의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것은 껍데기일 뿐, 보이는 것이 실체가 아니야.”(P27)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자신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보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면 과감히 멈춰야 한다는 얘기다.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다

 

우리가 모욕을 느끼는 것은 누군가의 욕설이나 폭력이 아니라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때문이다.’(P62)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위의 문장을 보면 다른 건 문제가 아니고 오로지 우리의 마음이 문제가 된다고 했다. 전에 마음공부를 하면서 반야심경 강의를 들은 적 있다. 마음은 실체가 없는데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며 괴로워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라는 말이다. 과연 공감할 수 있는 얘기였다. 상대의 모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닌데 그걸 받아들여서 나를 괴롭히는 모습이라니. 이처럼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라고 핑계 대기 바쁘다. 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활용하여 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저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명예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살게 되겠지요.”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 괴로워하지 마라. 명예가 없는 것이 악이라면 타인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P69)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부자로 살고 싶고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고 명예로운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 자신의 실력과 재능을 바탕으로 노력해서 원하는 위치에 오른다면 좋겠지만 노력은 하지 않고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가지려고 한다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우선 자신이 좋아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작은 성취를 하나씩 이루어가면서 당신이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해 주면 된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 것이다.

 



결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지금이다

 

최선의 것을 당신만의 규칙으로 삼으라. 결코 위반해서는 안 된다. 고통과 쾌락이, 혹은 영광과 치욕이 당신 앞에 드리워져 있는 이 삶 자체가 전투 중인 전쟁터이다. 결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지금이다. 올림픽 경기를 앞둔 선수처럼 당신의 성공과 실패가 단 하루, 단 하나의 행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라.‘(P134)

 



성공과 실패가 단 하루, 단 하나의 행위에 달려 있다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참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무런 긴장감이나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차일피일 미루기 마련이다. 오늘만 날이냐 내일이 또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오늘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관찰해야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최선의 것을 찾아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것, 그런 적극적인 행동만이 원하는 나로 바꾸어 줄 것이다.

 



왜 지금 에픽테토스를 읽어야 할까. 오늘의 현대인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피로한 사회를 살고 있다. 성공한 인생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가운데 타인의 눈치를 보며 휘둘리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행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데 먼 데서 찾으려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 진리는 평범함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에픽테토스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스토아 철학을 삶의 원리이자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남에게 휘둘리는 인생은 진짜 인생이 아니다. 내가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나아갈 때 진정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스토아주의의 이론과 실천이 함께 제시된 이 핸디북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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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8-15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 내용이 엄청 많네요.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모나리자 2025-08-15 18:02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에픽테토스는 차신의 철학을 삶의 원리이자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에 맞게 지혜의 말씀을 썼기에 확 와 닿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리 어렵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실천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겠지요.^^

희선 2025-08-16 0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픽테토스가 좋은 말을 많이 했군요 그런 걸 생각하고 에픽테토스는 그대로 살았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기도 하는군요 그게 괴로운 일일 텐데... 결국 자신을 괴롭게 하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네요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면 좋을 텐데, 그것도 쉽지 않군요 자신과 잘 지내야 할 텐데 싶습니다

모나리자 님 어느새 주말이에요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모나리자 2025-08-21 16:50   좋아요 0 | URL
네 에픽테토스는 그랬겠지요. 보통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자신을 많이 힘들게 하는군요. 저도 예외는 아니었군요. 그래서 좋은 지혜의 말씀을 들으면 좋은 쪽으로
변화가 오는 거지요.

연일 더운 날씨네요. 마음만은 시원하게 보내세요. 희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