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순간 : 소설 - 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우리가 보낸 순간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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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소설로 동시에 등단한, ‘천재’라는 칭찬을 들은 소설가 김연수는 80년대 초 학교에서 백일장에 나갔으나 아무런 상을 받지 못하고 ‘나에겐 글쓰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계속 자책하며 살았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에 다니면서 소설이 아닌 글쓰기는 직업상 계속하게 되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매일 글쓰기를 8년 동안의 실험으로 몇 권의 책이 출판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자신을 생각하면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란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지난 팔 년 사이에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되어갔다는 점이라고 한다. 소설가로서보다 인간으로서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됐다고. 그것은 전적으로 매일의 글쓰기 덕분이라고.



 ‘날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자신을 비난하는 일을 그만두고 가장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일을 매일 연습한 셈이니까.’ ‘그 연습의 결과, 나에 대해 나의 꿈에 대해, 나의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습관이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날마다 읽은 소설 중 49편을 골라 글쓰기의 기쁨과 어려움, 문득 돌아본 나날의 기억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인생에 비추어 들려주는 작가의 추억과 인생 이야기를 해 주는 산문집이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에게 말하고, 그건 생각으로 들리고 눈으로 읽힌다. 날마다 우리가 쓰는 글은 곧 우리가 듣는 말이며 우리가 읽는 책이며 우리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잔인한 고통의 말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하겠다고 결정하지 말기를.’


 ‘……뭔가 선택해야만 한다면, 미래를 선택하기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뒤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말들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할 수 있기를. 그러므로 날마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재능이란 지치지 않고 날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게 아닐까? 평생 그런 재능을 발휘하고 산다면, 우리는 그를 천재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쓰라. 재능으로 쓰지 말고, 재능이 생길 때까지 쓰라. 작가로서 쓰지 말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쓰라. 비난하고 좌절하기 위해서 쓰지 말고,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쓰라. 고통 없이, 중단 없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세계 안에서 지금 당장, 원하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쓰라.’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응원과 위로가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읽는 것을 넘어 자신의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감히 어떻게’ 라는 생각의 장벽에 부딪혀 생각을 중단하곤 한다. 작가처럼 8년간 글쓰기를 계속하는 사람도 드물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대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놓는다. 문제는 항상 미련으로 남아서 괴롭힌다. 작가도 천재는 아니었는데 노력으로 재능을 키운 것이라고 했다. 완전히 믿고 싶지만, 겸손의 말도 들어 있겠지. 이제 작가의 말처럼 자꾸 자신을 부정으로 몰아가지 말고 긍정으로 무장하고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하여 읽고 써 보자. 꼭 작가가 목표가 아닌, 다른 분야의 꿈을 갖고 있더라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참으로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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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 5 - 두 명의 왕비 조선왕조실톡 5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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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의 역사속의 정치 이야기와 만화의 만남이다. 이 책은 제 5권으로 '현숙경패밀리'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정치란 그리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이권이 개입된 권력 다툼의 지루한 양상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이 책은 역사에 좀 흥미가 없는 사람이더라도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생활필수품인 스마트폰의 카카오톡의 대화창을 도입한 만화라서 친근하고 누구라도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다. 지은이 무적핑크는 서울대 미대 디자인과에 재학 중이다. 2009년~2014년에 걸쳐 <실질객관동화>, <실질객관영화>, <경운기를 탄 왕자님>을 네이버 웹툰에 연재했다. <조선왕조실톡>은 2014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려 독자들의 큰 관심과 언론의 주목을 받아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고 있다. 아직 학생임에도 이렇게 참신한 발상의 책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게 생각된다. 내용과 형식에서 탁월한 역사 콘텐츠로 인정받아 책, 드라마,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분야와 장르로 확대 개발 중이라 한다.

 

 

 

 

<실록 돋보기>코너에서는 사건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자세히 해설하고 있다.

 

 

 

 

<실록에 기록된 것>코너에서는 당시 실록에 기록된 사실을 항목별로 나열하고 있다.

 

 

'톡'하는 대화창을 살린 만화 부분이다. 

 

 

 1부 현종편에서는 예송논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조의 둘째 아들 17대 왕 효종이 죽은 후 ‘옷 입는 방법’ 때문에 생긴 논쟁이다. 효종이 적장자라면 자의대비는 3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데, 서자나 둘째 이하 아들의 경우에는 1년 동안 입어야 했다. 역대 왕들을 살펴보면 세종대왕은 셋째 아들, 세조는 둘 말할 것도 없고, 성종은 예종의 둘째 조카였다. 선조도 셋째였고 광해군도 둘째였다. 이렇게 볼 때 정치적인 배경이 이유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1년을 주장하는 서인 세력과 송시열에 패한 윤선도는 20여 년을 유배생활을 하게 되고, 그의 편을 든 권시 등 관료들도 탄핵 당한다. 그 후 현종의 어머니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상복 문제로 2차 예송논쟁이 벌어진다.

 

 2부 숙종편에서는 왕들이 기거했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에 대한 이야기와 궁녀 출신으로 왕비에 등극한 장희빈의 이야기가 나온다. 숙종은 장희빈에게 빠져 조광지처인 인현왕후를 폐비에 처한다. 식량마저 주지 않았다 하니, 참으로 매정한 사람이었다. 이 황당한 처사에 서인 남인 모두가 숙종을 말렸지만, 불같은 성미를 막지는 못한다. 꽤 다혈질에 성미도 고약했던 모양이다. 남인들과 권세를 누린 장희빈은 비난의 화살을 받게 되고, 훗날 숙종은 쫓아낼 때처럼 신속하게 다시 인현왕후를 중전으로 되돌린다.

 

 3부 경종과 연잉군편에서는 신데렐라 같은 삶을 살았던 장희빈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대목이 나온다. 5년 만에 인현왕후는 다시 중전으로 복귀하고.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은 참 비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다. 어머니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고, 숙종은 세자에게 “장희빈이 낳은 자식이라 그렇다” 라는 폭언까지 퍼붓는 등 사랑을 받지 못했다. 신변에도 언어장애, 주의력결핍, 분노발작, 성기능 장애, 요실금, 경미한 지적장애를 비롯한 정신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두 왕비를 두었지만 자식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후계자는 동생인 연잉군에게 넘어간다. 왕가의 대를 잇지 못하는 굴욕감은 상당했을 것이다.

 

 역사속의 이야기를 엿보는 것은 흥미진진하다. 한 편 옛 사람들의 삶을 보면 측은하기도 하다. 더욱이 평범한 사람보다는 왕가에서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살아온 삶은 더욱 더. 지루하고 어려운 역사에 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나이어린 학생들도 볼 수 있을 만큼 새롭고 흥미로운 구성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이며, 25대 임금이 다스린 472년 동안의 방대한 기록이다. 이렇게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성공적으로 출간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 가지 좀 아쉬운 것은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가 많다. 물론 재미를 위한 설정임을 안다. 하지만 학생들이 제대로 된 어휘를 배울 수 있도록 바른 표기가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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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 흰 건반 검은 시 활자에 잠긴 시
박시하 지음, 김현정 그림 / 알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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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의 음악과 삶을 시인 박시하의 작품으로 조명해 보는 알마 출판사의 산문집이다.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검반을 상징하는 것처럼 책 속의 삽화도 흑과 백으로 표현되어 있다. 음악가를 다룬 책을 읽고 쓰는 리뷰인 만큼 유투브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로 쇼팽의 여러 곡들을 들으면서 쓰고 있다. 에튀드, 마주르카, ‘영웅’이라는 이름이 붙은 폴로네즈 6번, 녹턴, 협주곡 1번 발라드 등. 얼마나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인지. 아련하게 떠오르는 귀에 익은 반가움. 클래식 음악은 평소에 자신이 의식하지 않으면 잘 듣게 되지는 않는다. 어떤 계기가 되었을 때 듣게 되는 특별함 같은 의미가 부여되기에.


 잘 알다시피 쇼팽은 예민하고 수줍고 섬세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우유부단한 성격이라고도 했다. 건강면에서도 평생 기침, 각혈에 시달렸다. 사랑하는 여동생 에밀리아를 폐결핵으로 잃은 것을 시작으로 인생에 커다란 상실을 경험한다. 연인이었던 콘스탄치아, 마리아 보진스카, 조르주 상드와도 사랑의 좌절을 겪는다. 그 중 조르주 상드는 쇼팽을 아들처럼 생각할 정도의 모성과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보는 생활이 10여 년 이어지기도 했지만,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짧은 인생 39세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조국 폴란드도 러시아에 함락되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을 고국을 향한 그리움에 젖어 살았다. 음악을 들으면 그 명성에 걸맞게 시적이다. 감미롭고 우아하다. 때로는 밝으면서도 그 속에서 섬세한 슬픔이 느껴진다. 병약한 인생, 사랑의 끈으로 이어지지 못한 인생에 대한 애잔함인가. 그의 심장은 고국의 바르샤바 성십자가 교회에 묻혔으며, 그의 몸은 파리의 페르 라세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쇼팽은 제안하고, 가정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고, 유혹하고, 설득한다. 그가 딱 잘라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p19 앙드레 지드의 <쇼팽 노트>)

위의 문장은 쇼팽과 그의 음악의 이미지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불우한 삶에서 한시도 놓지 않았던 음악. 그 위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의 숨결과 고뇌를 느낀다. 음악에서만은 불우하지 않았다. 수많은 명곡 속에 그의 사랑, 기다림, 이별에 대한 고통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의 음악에 매료된 것은 아니라는 저자는 조금씩 알게 될수록, 쇼팽을 들을수록 그의 음악이 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읽는 동안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아픔, 어둠, 슬픔, 고통, 우울, 밤 등. 모든 것이 회색빛이었다. 시인인 저자가 감상에 너무 도취된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쇼팽을 다룬 책을 읽은 덕분에 그의 음악은 전보다 자주 듣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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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할까요? 7 - 허영만의 커피만화
허영만.이호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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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하면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 하나. 여고시절 이었다. 친구와 이야기에 빠져 걷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건물 지하의 다방에 들어가게 된 일이 있었다. 교복을 입은 채로.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어 부끄러워서, 아마도 한 잔을 시켜서 둘이 나눠 마시고 얼른 나왔던 것 같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둥근 테이블마다 어른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시절만 해도 남녀가 결혼하기 전 맞선을 보는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기도 했다. 병커피가 명절 선물세트로 판매된 적이 있었는데, 어느새 온데간데없고 믹스커피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이다. 자판기 커피나 믹스커피는 편리함과 가격의 편안함의 극치라고 할까. 그러더니 또 몇 년 전부터는 동네의 골목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카페를 볼 수 있다. 스타벅스같은 대형 체인점도 있지만, 작고 아담한 카페도 많다. 친구, 연인 등 각종 모임들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공부를 하거나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앤K롤링도 카페에서 해리 포터를 쓰지 않았던가. 이렇게 카페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처음 접해 보는 허영만 화백의 <커피 한 잔 할까요?>는 이번이 7권 째이다. 흔히 커피 이름에 붙는 ‘모카’라는 말은 15~16세기 유일한 커피 수출 항구로서 예멘의 모카 항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카 항구는 생두의 집결지였다. 생두는 보관할 때 온도와 습도에 따라 맛과 향이 결정되므로 중요시 여기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친구와 만나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은은한 커피향은 그간 쌓인 마음의 피로를 치유해 준다. 잔잔한 음악이 들리고 정갈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카페는 그 자체로 기분전환의 장소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게 되어 못 마신다는 허영만의 만화 일기, 45화<유수와 쌀의 차이> 46화 <모카 키스> 47화 <비터스위트> 48화 <삼대 라테> 49화 <게이샤도 소용없어> 50화 <커피 향기 은은하게>의 취재일기에서 잘 몰랐던 정보를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묘미이다. 특히 ‘삼대 라테’와 ‘신의 선물’이라는 게이샤를 마셔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건물주 남편의 간섭, 잔소리, 감시에 지친 사모님은 남편의 건물에 입주한 유명 커피숍 대신 2대커피를 찾는다.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으로 카페 운영을 꿈꾼다. 그 만큼 많이 생겨나고 경쟁은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다. 주변에서 보면 지인의 지인이 카페를 차렸다가 힘든 상황에 부딪친 이야기들을 종종 듣게 된다.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손님을 대하는 마음과 정성도 못 지 않게 중요하다. 은은한 커피향이 솔솔 피어오른다. 커피향은 스트레스 완화, 긴장 이완, 집중력 향상, 탈취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니 커피는 마시고, 추출한 찌꺼기는 냄새제거에 활용하는 지혜도 발휘해 보자. 다음 8권은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매우궁금하다.


‘아무리 비싼 커피라도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다르다.

커피는 미각과 후각 이전에

감성이 먼저 맛을 느끼고 판단한다'(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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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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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칭 밥벌이용 글을 써야 하는 ‘문필하청업자’라는 저자는 우선 글을 참 잘 쓴다. 간결하면서 재치 있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시원시원함이 있다. 말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거침없다. 읽기 시작한 거의 초반부터 매우 공감하며 울다 웃다 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고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의 온갖 역할 속에서 한 평생 살아간다. 성격이나 가치관 자라온 환경이 다른 사람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산다. 남자의 역할보다 여자의 역할이 훨씬 많고 고되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다. 그로인해 병을 앓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오죽하면 여자가 속 썩히던 남자와 헤어지면 전보다 훨씬 젊어지고 예뻐진다는 말도 있는가.



 저자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남편이 혼자서 아내 몰래 집을 처분하여 재산은 물론 신뢰까지도 몽땅 없어진 상황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대단하다. 짧은 별거도 있었지만,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 울분과 슬픔을 글쓰기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리라. 쓰지 않고는 도저히 나날을 견뎌낼 수 없었겠지.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말 속에서 상처받는 소수자도 있음을 알았다. 예를 들면 세월호 사건을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한 대통령을 보고 ‘애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는 말이 나왔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한 듯 수긍했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애를 낳고 안(못)낳고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적인 지적, 정서적 무능이라는 말, 그리고 그것은 애 낳지 않은 여자들에 대한 집단적 모독이라는 말로 일침을 가했다. 또 하나 ‘남자는 개’라고 생각하면 전혀 싸울 일이 없다는 김제동의 말은 남자를 비하하고 여자를 치켜세우는 말 같지만, 결코 아니라는 것. 관계의 개선이나 유지를 위해서 온전히 여자가 참아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한 쪽은 힘든 참음을 견뎌야 하고 한쪽은 편안함에 무임승차하는 꼴이다. 이 얼마나 가부장적 사고인가. 우리는 사고는 이렇게 무의식에 잠식당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외동딸로 태어나 쌀 씻는 것조차 해 본 적이 없던 그는 결혼과 함께 가부장적 사회로 편입되어 ‘집안일부터 세상일’까지 수시로 울컥한다. 평등하지 않은 일상. 평소 니체와 시를 읽으며 세상을 향해 질문을 쏟아낸다. 2011년부터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글쓰기 강좌를 시작해 현재 학습 공동체 ‘말과활’ 아카데미‘와 글쓰기 모임 ’메타포라‘에서 정기적인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놀랍도록 폭넓은 책읽기의 편린들이 보인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물‘을 먹지 않은 채 책을 쓰는 작가, 그 ‘평범하지 않음’을 가진 그가 대단하게 여겨진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지금은 절판된 저자의 첫 산문집 <올드걸의 시집>에서 추린 글들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보와 <한겨레>에 가장 최근까지 연재한 칼럼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시를 좋아한 저자라서 그런지 시들과 어울려 울컥 했던 심상을 완만하게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눈물 많고 감성이 풍부한,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그의 살아온 이야기가 ’온갖 노릇과 역할‘에 지친 여성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줄 것이다. 한 가지 아쉽게 생각되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세상에 쏟아내는 말이 강하다보니 삶에 대한 애착이나 행복감은 뒤로 한 채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사회의 모든 병폐를 원한다고 다 뜯어 고칠 수는 없다. 누구나 고통 없는 삶은 없으며 ‘살아있는’ 자체로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갈 때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싸움만 하고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좀 더 푸근한 마음과 눈으로 삶의 아름다운 면도 풀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에.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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