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 - 최정예 전투기 조종사의 추락, 포로 생활 그리고 귀환
조라 롬 지음, 전용우 옮김 / 이담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을 보고 무거운 마음이 느껴졌다. 전에 읽었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자연스럽게 겹쳤기 때문이다. 어느 고통이 더 큰지 경중(輕重)은 따질 수 없다. 저자 조라 롬은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적기 5대를 격추하여 이스라엘 최연소 최정예 조종사 칭호를 얻었다. 이 책이 한국 독자와 인연이 된 것은, 역자가 사업협의차 이스라엘을 방문했다가 저자와 저녁식사 만남의 기회가 되어『독방(Solitary)』을 선물로 받게 된 덕분이다.

 

 이 이야기는 저자의 실화이다. 1969년 9월 11일 그가 탄 미라쥬기가 이집트군의 미사일 폭격을 받아 격추된다. 그리고 이집트군의 포로가 되어 3개월간의 감금과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후로 그 후유증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고통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와 유대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만 피트 상공에서 낙하산에 매달려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 왼쪽 팔꿈치는 골절, 오른쪽 다리는 몸에서 떨어져 나간 채 전투비행복 지퍼에 의해 겨우 고정되어 있었다.

 

 적국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오른쪽 다리는 보철기안에 왼쪽 팔은 완전히 석고 깁스로 끼워지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으로 옮겨진다. 물을 마시기 위해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에서 30분을 넘게 버둥거리며 이동해야 했다. 끊임없이 이스라엘군의 기밀 정보를 캐내려고 신문하는 자들과 입씨름 하며 계속 거부했지만, 그들이 우선 몸을 치료하고 나서 협조할 것을 제안하자 그에 응한다.

 

 1961년 4월, 홀로코스트에 대해 아직 몰랐던 군(軍) 기숙학교 11학년 때, 학교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라디오로 듣게 된다. 이스라엘 존속에 있어 군 복무는 필수적인 것이며 진정 명예로운 조직이었고 어떤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또한 그는 처음부터 직업군인을 희망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글에서 조국에 대한 진한 사랑과 사명감이 절절히 느껴졌다.

 

 특별한 사명감과 조국애로 무장한 그가 군사기밀을 털어놓는 것은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는 나름대로 가공의 세계를 구축한다. 거짓말임이 들통 나고, 그들은 그를 독방에 수감시킨다. 석고 깁스 안에 몸이 끼워진 채로. 이중의 감옥이었다. 창공을 누비던 비행기 조종사에게 독방 수감이라니...두려움이 엄습한다. 할 수 있는 것이 누워서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생명같이 여기고 있는 군사정보를 모두 불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면 어쩌나. 다시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끔찍한 구타도 ‘나는 살아 있다’를 되뇌며 견디어낸다. 또 하나의 시련을 이겨낸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신체적 고문보다 힘든 것은 외로움, 굴욕, 완전한 불확실성, 외부 세계와의 끝없는 단절, 포로생활이 끝날 날이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것 같은 느낌들이라고 했다. 이것이 사람의 핵심적인 부분을 서서히 파괴한다고.

 

‘한 손에는 임무의 완수가 있고, 또 한 손에는 소중한 생명의 손실이 있다.

이것이 전쟁이라는 짐승의 본색이다’(p102)

 

 아마도 30년 같지 않았을까. 3개월 동안의 감금 생활 뒤에 양국의 포로교환으로 조국 이스라엘 땅을 밟게 된다. 억류된 경험이 이제는 악몽으로 나타난다. 밤마다 끊임없이 쫓기면서 막다른 골목에 갇혀 어쩌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린다. 형편없이 망가진 몸. 왼쪽 팔은 구십도로 꺾여 있고, 다리 한 쪽은 짧다. 생환된 조종사를 만나려고 각계각층의 방문자들은 줄을 이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방문자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털어 놓음으로써 마음이 훨씬 가벼워짐을 느낀다.

 

 그러나, 완전히 치료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다시 한 번 우뚝 높게 솟는 것이 목표였다. 날아가는 전투기를 바라보는 것도 고통이다. 이것을 치료하는 최고의 약은 비행이다, 고 생각한다. 여러 번의 수술을 거치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면서 다시 비행기를 탄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지 13개월 만에 미라쥬기를 타고 단독비행을 하면서, 아드레날린이 불끈 솟는 기쁨을 느낀다. 천상 공중의 영웅이었다.

 

 외로운 비행의 경험, 공중에서 위기의 상황에 처한 심리 등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결국 악몽같은 트라우마를 치료한 최고의 약은 비행이었다. 포로 경험이 있는 조종사가 다시 비행에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다고 한다. 그만큼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뿌리뽑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인간이 일으킨 전쟁으로, 동료나 친구가 포로가 되고 전사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비애가 절절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한숨과 턱 막히는 무기력과 환호가 교차했다. 차분함을 잃지 않은 유려하면서도 위트,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는 문체는 감동이었다. 한 편의 감동적인 소설 느낌도 난다. 강인한 정신력은 그를 다시 하늘의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위대한 인간승리였다. 어느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자포자기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며 차분하고 냉철한 판단을 먼저 해야 한다. 경쟁사회에서 무기력해지는 마음을 다잡는데 더없이 좋은 책이다. 학생, 군인은 물론 모든 한국인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역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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