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사랑한다 2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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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외모만큼 그에 따른 인품이나 행적도 걸맞다면 얼마나 그 사람이 아름다울까. 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다 몰아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모양이다. 바뀌기로 결심한 세자 원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백성의 원성을 듣는 부왕처럼 살지 않으려고 빈민가의 사람들에게 쌀죽을 제공하는 등 선행을 베풀기도 했는데, 선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분노를 풀기 위한 건수를 찾기 위해 혈안이다. 아직 왕의 위치는 아님에도 원성공주의 힘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른다. 권력 앞에서는 부모자식의 관계도 결코 용납이 되지 않는다.


 왕실의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무엇인가. 화려함 겉모습 속에 숨어 있는 눈물과 한숨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자의 정비가 되었다고, 아이를 먼저 가졌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명의 여인들이 세자 한 사람을 보고 왕실의 가족이 된다. 저마다 사랑을 갈망하지만, 엇비슷한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부자관계’ 자체를 증오한다는 원. 결과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없는 부모를 보면서 자란 원에게 깊이 심겨진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무비와 방탕하게 놀아나며 국정을 돌보지 않고, 썩어빠진 관료와 환관들로 둘러싸여 있는 부왕에게 환멸을 느끼지만, 어느새 그것을  따라하고 있다. 미워하면서 닮는다더니.


 ‘환자가 앓은 지가 오래됐으면 의원을 바꾸어야 한다’는 송인의 뜻을 이용하여 모후의 사망을 계기로 왕좌를 차지하려 한다. 있지도 않은 역모죄를 뒤집어씌워서 피바람을 일으킨다. 우아한 미소 뒤에 숨겨진 잔혹함이 치를 떨게 한다.


 무능한 왕실이 이렇게 허점을 보이는 틈바구니에서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조정에서는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 기회를 노리는 자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손아귀에 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최고의 권력자를 꿈꾼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한 나라의 명운이란 리더의 행보에 걸려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세자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벗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는 린.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질투로 인해 우정도 금이 간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어디서부터였을까. 뒤늦게 산에 대한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원. 떠나고 싶다는 린의 말은 하늘이 무너지는 배신으로 여긴다. 원에 대한 린의 너무 충직한, 한편으로는 융통성이 없는 충직함에 한숨이 나온다. 충성, 신의도 도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한 왕에게만 적용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미(美)를 탐하고 그 대상을 소유하려는 검은 마음의 근원은 어디에서 나올까.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잔혹함은 그 끝이 어디일까. 소름끼치는 잔인함에 전율을 느낀다. 고혹적인 아름다운 겉모습 속에 숨겨진 야욕은 누구와도 화합할 수 없다. 모두를 파멸로 끌고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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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사랑한다 1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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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오랜 침입에 견디다 못해 항복한 지 십 수 년이 흘러간 때가 이 작품의 배경이 된다. 왕실과 무인 권력자들 귀족들은 강화로 도망을 갔지만, 몽골에 끈질기게 항거했던 것은 민초들이었다. 전쟁 중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백성들의 고초가 큰 법이다. 더구나 조정에서는 전쟁 전이나 전쟁 중이나 똑 같이 세금을 거둬들였다니 그 고통으로 인해 오히려 항복을 내심 반겼다는데, 얼마나 팍팍한 삶이었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다. 그렇게 몽골제국의 부용국(附庸國)이 되어 공물과 공녀의 부담까지 떠맡아야 했다. 무신 집권자들의 횡포와 착취, 국왕의 폐신들이 백성들을 상대로 등쳐먹는 일도 허다하여 민초들의 하루하루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이 보인다.


 정략결혼으로 맺은 몽골의 원성공주인 왕비는 고려 최고의 권력자였다. 탐욕으로 똘똘 뭉친, 표독스럽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그녀에게 설설 기는 왕을 보고 백성들은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그럼에도 서민들은 험담을 하며 쌓인 분노를 풀었으니 그것 또한 아이러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사랑은 싹튼다. 사랑이야말로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해 주는 위대한 일이 아닐까. <왕은 사랑한다>는 백작약 같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고려의 세자 원, 고아한 분위기의 미청년으로 원의 둘도 없는 벗이자 호위 무사인 린, 고려 제일의 거부인 영인백의 딸 산의 사이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아울러 빚어낸 작품이다.


 올해 MBC 드라마로 방영될 원작이라고 한다. 전에도 대하드라마 사극을 즐겨보았었다. 이 작품도 드라마로 재미와 감동, 대리만족을 선사하기에 딱 맞는 내용이었다. 우선 맛깔난 대사와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일품이다. ‘철동 불주먹’ 개원이와 말더듬이 염복이의 역할도 대단할 것 같다. 그들은 가난한 생활 속에서 병든 노모를 모시고 권력자들에게 붙어 온갖 비리에 얽힌 심부름을 해결해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이 틀어지면 얻어맞기도 일쑤다. 쫓고 튀는 그들의 일상은 땀과 긴장으로 범벅이 된다. 표독스러운 원성공주의 역할은 누가 맡게 될 것인가 상상하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일전에 악역에 성공한 그 여배우가 제격 일 것 같은데, 하며 몰입할 수 있었다.


 왕실의 사건에서는 주변 세력과 결탁하여 피 튀기는, 권좌를 빼앗는 일이 빠질 수가 없다. 고려 왕실을 바로 세운다는 명목으로 세자 원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며서 왕과 세자가 겨루는 사냥 내기를 개최한다. 충직한 호위무사 린과 산의 도움으로 실패로 끝난다.


 세자 원은 미(美) 추구하는 기질이 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 학문, 무예, 역어(譯語), 악기를 다루는 재주, 그림을 그리는 재주 등 뛰어난 사람을 좋아한다. 외모가 특출한 사람을 좋아해서 린을 친구로 삼았다는데... 서민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놀라운 친화력이 있다. 형제, 누나들을 사랑하는데, 그를 두려워하는 상황적 분위기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부왕 같은 왕은 되지 않을 거라며, 권력을 등에 업고 백성들을 농락하는 신하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미(美)를 탐하는 파격적인 기질과 이미 가슴에 사랑의 열병으로 가득 차 있는데, 온전하게 백성을 보듬을 수 있는 왕으로 탄생할 수 있을까 염려된다.


 원, 린, 산의 우정에서 사랑으로 바뀐 이들의 삼각관계는 어떤 결말로 갈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사랑함에도 말 못하고, 몰라주는 상대에 대한 안타까움, 뒤늦게 사랑임을 알고 후회하는 이들의 사이가 어떻게 흘러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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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혼자가 되다
이자벨 오티시에르 지음, 서준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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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제베 고속 전철 안에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연인이 된 루이즈와 뤼도비크.

두 사람이 ‘제이슨’호를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섰다. 젊은 혈기와 약간의 치기어린 일탈의 마음과 같이.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어 설레던 마음도 잠시, 루이즈는 잿빛으로 흐려진 하늘을 보며, 그만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걱정한다. 하지만 뤼도비크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기회도 없을 거라며 강행한다. 등반대에서 경험으로 심각함을 느끼고 루이즈는 다시 한 번 돌아가자고 설득하지만. 그러면서도 둘은 화구호(호수인 듯하다)의 얼음 기둥들 사이를 헤매고 돌아다니며,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게다가 얼음 기둥은 이미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 얼른 돌아가지. 무슨 일 생기기 전에. 두근두근 마음이 동요되면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날씨는 돌변하여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고, 야생 그대로 사나운 폭풍우가 휩쓸고 간 후 그들의 배가 없어진 것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가벼운 산책처럼 생각했지만, 산책이 아닌, 생사를 알 수 없는 사지의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순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배를 쇠사슬로 몇 미터 더 감았더라도, 돌풍이 다른 쪽으로 비켜갔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극한상황에 놓인 사람의 불안한 마음의 심리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 사람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에서 두려움이 고조된다. 섬세하면서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 여정에 같이 동행하는 듯 실감이 난다. 스크린이 연상될 정도로 선연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루이즈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던 뤼도비크, 서서히 연인이 되고 여행을 계획하며 떠나면서 환희에 빛나던 설레임의 순간이 머지않아 분노와 충격에 빠지게 되는 것을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을 찾다니. 서서히 루이즈의 마음에는 뤼도비크에 대한 원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등반대를 이끌어본 경험으로 여기서 더 험악해지는 지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양식은 다 떨어져가고 고립되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두려움을 넘어 서로에 대한 분노로, 밥 먹듯이 싸우게 된다. 그야말로 서스펜스다!


 예기치 않게 이러한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먹을거리도 연락할 방법도 배도 모두 사라졌다. 게다가 무인도 접근 금지된 자연보호구역의 섬이다. 그들은 위법행위의 공범자다. 그나마 보이는 낡은 건물들은 방치된 지 오래되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서로를 비난하며 으르렁거린다. 당연히 더욱 두려운 공포가 엄습할 것이다.


 이 섬 스트롬니스는 한때 강치와 바다코끼리 등 동물들의 낙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풍요를 위해 무자비하게 도륙하여 동물들의 씨가 말랐고,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기지들은 생기를 잃고 사체 더미의 폐허가 된 채 폐쇄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인간의 탐욕을 부린 결과, 이곳은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었다. 인과응보다. 거센 바람만이 들락거리며 황폐함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망망대해 말고는 나갈 길이 없으니, 동선은 제한되어 있다. 섬에서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뭔가 기적이 일어날 만한 일을 찾아서 헤매고 다닌다. 1954년 이후 완전히 사람의 발길이 끊긴 섬에서 그들의 흔적을 느끼며 위안을 느끼기도 한다. 기계에서 짜낸 동물들의 기름으로 파리는 ‘빛의 도시’로 불렸다는데. 온갖 폐기물을 산더미처럼 남기고. 지금 그런 것을 비난할 때가 아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참된 모험을 하여 살아남았노라고 강연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곧 허망함에 사로잡힌다. 이제 원하지 않아도 진짜 로빈슨 크루소 같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인다. 펭귄 사냥을 시도한다. 기아 직전에 자책이란 있을 수 없다. 눈부신 오렌지색 반점이 있는 펭귄들의 머리가 얼마나 곱고 예쁜지 감탄하지만 그뿐이다. 물을 끓여 털을 뜯어내고 식량으로 비축해야 한다.


 시일이 지나면서 이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섬에서 겨울을 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체념으로 바뀌어 강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월동준비에 돌입한다.

 

오로지 먹는 것만을 해결하면서 버텨야 할 상황이 된다면?

그들이 과연 이 섬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혼자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는 저자의 생태 환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엿보이는 동물 개체들의 특성, 행태의 묘사는 마치 동물의 왕국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빠른지, 자연스러운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어떻게 광기로 변해 가는지 분노와 두려움이 사람을 어떻게 바뀌어 놓는지 일깨워 주는 작품이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미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 풍요로운 삶을 위해 무자비한 포획으로 인해 황폐화된 자연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건 아닐까. ‘과거를 조작할 수 있는 자는 미래도 조작할 수 있다.’(P337)고. 인간은 양심을 저버리고 정상적으로 살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아직은 희망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직접 겪어보기에는 상당히 두려운 이야기다. 극한 상황의 모험의 세계를 간접체험 하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더위를 시원하게 날릴 만큼, 오싹한 스릴러물 못지않다. 아니, 그 이상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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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8 - 폭군들의 피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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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812년 일본 에도막부, 청국의 제7대 황제인 가경제의 시기와 나폴레옹이 주변국과 전쟁을 벌여 영토를 확장하던 당시의 상황이 입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흔히 동양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을 등장시킨 환타지 문학이다. 역사와 환타지가 만나 어느 부분이 역사인지 픽션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흥미로운 전개에 웃음과 감탄의 연발이다. 벌써 여덟 권 째이며, <테메레르> 시리즈는 아홉 권의 완결로 구성되는 작품이라 한다.


 셀레스티얼 품종의 용을 원했던 청국 황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포튼테이트 호로 항해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난파를 당하게 된다. 좌초된 그 배에서 떨어져 나가사키의 해안을 표류하던 로렌스는 가네코 히로마사에게 구조된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친절을 베풀지만, 외부인에게 의심이 많은 그들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 가네코측은 여기에 침투한 목적이 무엇이냐며 의심하고 심문하는 사이 많은 날이 흘러간다. 하지만, 로렌스는 기억이 없다. 거대한 폭풍우를 맞은 충격의 영향으로 8년의 기억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자신 스스로도 더욱 놀란다.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까.


 테메레르는 수컷 용이며, 로렌스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윌리엄 로렌스는 원래 해군 함장이었는데, 지금은 테메레르의 비행사이다. 그런 단짝 로렌스가 실종된 것에 애석함을 금치 못하며 아픈 몸으로 로렌스를 찾으러 가려고 한다.


 한편 로렌스는 그 곳을 하루빨리 탈출하여 영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애타는 마음만 커질 뿐 좀처럼 기회를 노릴 수가 없어 답답해한다. 특별한 죄목을 찾지 못했음에도 풀어주지 않자, 탈출을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준이치로의 도움으로  함께 탈출하는 여정에 서게 된다. 준이치로의 도움은 의외다. 가네코를 섬기면서 낯선 이방인 로렌스를 무시하며 투덜댄 점에 비하면.


 탈출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일본 강용(江龍) 기요미즈 아씨는 문학에 조예도 깊다 영국시를 듣고 싶다고 하며, 로렌스에게 요청을 한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들려준다. 여기 용들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의사소통은 물론 외국어도 구사한다. 기요미즈 아씨는 로렌스와 준이치로가 무사히 나가사키항으로 갈 수 있도록 등에 태우고 바다를 건넌다.


 전에 알던 무서운 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을 따르고 서로 돕는다. 기요미즈의 등을 타고 바다를 이동하는 도중에 로렌스는 놀란다. 기요미즈를 발견하고 사람들은 납작 엎드려 절을 한다. 일본어로 대화를 하고 화기애애하다. 용 비행사나 용 선장도 없이 다니는 것도 더욱 놀라워한다. 영국에서라면 길들여지지 않은 용은 성격이 흉포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의 이 광경은 정 반대의 풍경이다. 농작물에 끼어있는 차가운 서리를 입으로 물을 뿜어내어 녹여주는 기요미즈. 거대한 용을 수호신처럼 여기는 것 같다. 마을 전체의 어려움을 해결해 준다. 이쯤 되면 파괴하는 용이 아닌 인간을 보살펴 주는 용이다.


 테메레르는 로렌스가 꼭 살아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을까. 준이치로와 로렌스의 탈출의 과정은 만만치 않다. 목적지인 나가사키에 가까이 왔을 무렵 가네코와 아리카와 아씨와 맞닥뜨리게 된다. 분노의 설전이 한창일 때 무시무시한 크기의 용이 나타난다. 테메레르! 아픈 몸을 완전히 회복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로렌스를 구하러 날아온 것이다. 로렌스는 청국 황제의 양자이자, 왕자이고 내 비행사라며 테메레르는 호통을 친다.


 하지만, 8년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 로렌스는 승무원과 공군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 절친 단짝 테메레르에 대한 기억도 없다. 로렌스를 향한 테메레르의 우정, 애정은 진지해서 웃음이 날 지경이다. 청국과 영국이 동맹을 맺기 위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편 사건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영국인 로렌스. 사라진 기억의 조각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역사와 상상이 어우러진 환타지는 우리의 삶과 거리가 먼 이야기는 아니다. 그 속에도 정의와 인정이 있다. 선함과 악함이 공존한다. 번역 작품임에도 술술 읽혀지는 흥미로운 스토리의 전개는 역사와 상상 속에 풍덩 빠져 또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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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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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부터가 묘한 끌림이 있었다. 주인공은 천재 기타리스트 마키노 사토시와 프랑스 RFP 통신에 근무하는 기자 고미네 요코. 게다가 남자는 독신, 여자는 미국인 약혼자가 있다. 뭔가 애틋한 로멘스가 펼쳐질 듯한 분위기가 풍긴다. 음악은 사랑으로의 연결을 용이하게 해 주는 윤활유의 역할이 충실하다. 이들은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데, 마키노는 요코에게 연정을 품은 뒤 음악생활의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요코 또한 바그다드에서 취재 도중에 테러사건을 겪고 그 일로 인해 심각한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메일을 통해서 언어로 친해진 이들은 파리에서 재회를 한다.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은 속에서 끓어오르지만, 사회적인 신분이나 약혼자가 있는 상황이어서인지 직접적인 확신은 멀어져가고 대화는 좀 겉도는 편이다. ‘뭔가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조급함으로 바뀌어 “지구 어딘가에서 요코 씨가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도 죽을 거예요.”라는 마키노의 말로 인해 이야기는 진전을 보인다. 역시 남자 쪽에서 먼저 보이는 적극성은 여성을 꼼짝 못하게 하는, 또는 그것을 확신으로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꼭 전통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말이다. 서로의 사랑은 확인되고, 요코는 기다려왔던 말이었음을 깨닫고 기쁨도 느꼈지만, 이리저리 재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까 생각한다. 어쨌든 마키노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시원하게 다 했다. 어떻게 요코가 받아들이지 모르지만...



 기타에 대한 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결혼 전에 통기타를 배우고 싶어서 세고비아 기타를 구입한 적이 있다. 기타교본을 구입해서 어렵게 연습을 반복해서 ‘로망스’라는 곡을 치며 신기했던 경험이 있다. 내 손 끝에서 이런 곡이 들리다니! 그 후 어찌어찌하다가 시들해졌지만. 살다보니, 우리 아들은 기타리스트가 되고.(아직은 한참 더 성장해야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삶은 이런 우연한 일들이 속속 자리를 잡으며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비록 클래식이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지만, 아들 덕분에 나는 많은 곡들을 들었다.(무슨 곡인지 모르는 게 많지만) 항상 음악이 내 귀를 떠나지 않았다고 할까. 클래식에도 관심이 많은 아들은 클래식 CD 음반을 전질로 사서 듣는 공부를 엄청나게 했었다. 그래서 여기 이 책의 배경에 나오는 기타 선율과 공연 현장의 분위기가 전혀 낯설지 않다.



 마드리드 콘서트는 요코의 부재와 함께 실패로 끝났다. 연주를 멈춰버린 손은 천재 기타리스트에게 비극의 순간이었다. 리처드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사랑의 확신을 얻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감이 있다. 음악이 인생의 근간인 마키노는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택한 요코에게서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음악적 정체(停滯) 상태에서는 요코와의 사랑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리처드 쪽에서도 요코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지루한 싸움이 꼬리가 물고 늘어진다. 불안한 마음을 반영이라도 하듯 바그다드에서 겪은 일은 악몽으로 꿈에 나타난다. 이도 저도 아닌 일이 되어가는 것인가.



 잃어버린 휴대폰은 이야기의 반전을 가져 온다. 이것이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연애소설이라고?  ‘베니스에서 죽다’ 증후군을 내세운 파멸적인 사랑의 설정은 좀 그렇다. 뭔가 꼬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걸 풀어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면서 오로지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겠다는 미적지근한 마키노의 태도에는 실망이다. 비현실이 된 사랑과 전쟁터의 상황 세계적 금융위기 등의 세상의 굵직한 사건들을 알려주는 현실의 이야기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속도감이 있다. ‘뭔가 좀 더 할 수 있었’다면 오해와 어긋남으로 점철된 사랑은 아니었을 텐데...



 이러한 경우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도 서문에서 밝혔지만,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호하며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그만 두게 되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음이 오히려 낫지 않았을까. 분명히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사랑의 감정으로 들뜬 분위기에서 생각지 않은 상황을 맞게 되면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작용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안타깝다. 둘 다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문제해결에 노력하지 않은 것은, 그 사랑에 대해 조금은 가볍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도 흔치 않은 세상에. 이루어지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계산적인 마음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지 않았을까. 마티네의 끝에 연주되는 아르페지오를 들으며,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하지만, 그 장면은 처연하다.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사랑이라니. 중요한 건 ‘사랑했었던’이 아니라 지금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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