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혼자가 되다
이자벨 오티시에르 지음, 서준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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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제베 고속 전철 안에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연인이 된 루이즈와 뤼도비크.

두 사람이 ‘제이슨’호를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섰다. 젊은 혈기와 약간의 치기어린 일탈의 마음과 같이.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어 설레던 마음도 잠시, 루이즈는 잿빛으로 흐려진 하늘을 보며, 그만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걱정한다. 하지만 뤼도비크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기회도 없을 거라며 강행한다. 등반대에서 경험으로 심각함을 느끼고 루이즈는 다시 한 번 돌아가자고 설득하지만. 그러면서도 둘은 화구호(호수인 듯하다)의 얼음 기둥들 사이를 헤매고 돌아다니며,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게다가 얼음 기둥은 이미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 얼른 돌아가지. 무슨 일 생기기 전에. 두근두근 마음이 동요되면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날씨는 돌변하여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고, 야생 그대로 사나운 폭풍우가 휩쓸고 간 후 그들의 배가 없어진 것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가벼운 산책처럼 생각했지만, 산책이 아닌, 생사를 알 수 없는 사지의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순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배를 쇠사슬로 몇 미터 더 감았더라도, 돌풍이 다른 쪽으로 비켜갔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극한상황에 놓인 사람의 불안한 마음의 심리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 사람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에서 두려움이 고조된다. 섬세하면서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 여정에 같이 동행하는 듯 실감이 난다. 스크린이 연상될 정도로 선연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루이즈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던 뤼도비크, 서서히 연인이 되고 여행을 계획하며 떠나면서 환희에 빛나던 설레임의 순간이 머지않아 분노와 충격에 빠지게 되는 것을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을 찾다니. 서서히 루이즈의 마음에는 뤼도비크에 대한 원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등반대를 이끌어본 경험으로 여기서 더 험악해지는 지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양식은 다 떨어져가고 고립되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두려움을 넘어 서로에 대한 분노로, 밥 먹듯이 싸우게 된다. 그야말로 서스펜스다!


 예기치 않게 이러한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먹을거리도 연락할 방법도 배도 모두 사라졌다. 게다가 무인도 접근 금지된 자연보호구역의 섬이다. 그들은 위법행위의 공범자다. 그나마 보이는 낡은 건물들은 방치된 지 오래되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서로를 비난하며 으르렁거린다. 당연히 더욱 두려운 공포가 엄습할 것이다.


 이 섬 스트롬니스는 한때 강치와 바다코끼리 등 동물들의 낙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풍요를 위해 무자비하게 도륙하여 동물들의 씨가 말랐고,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기지들은 생기를 잃고 사체 더미의 폐허가 된 채 폐쇄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인간의 탐욕을 부린 결과, 이곳은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었다. 인과응보다. 거센 바람만이 들락거리며 황폐함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망망대해 말고는 나갈 길이 없으니, 동선은 제한되어 있다. 섬에서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뭔가 기적이 일어날 만한 일을 찾아서 헤매고 다닌다. 1954년 이후 완전히 사람의 발길이 끊긴 섬에서 그들의 흔적을 느끼며 위안을 느끼기도 한다. 기계에서 짜낸 동물들의 기름으로 파리는 ‘빛의 도시’로 불렸다는데. 온갖 폐기물을 산더미처럼 남기고. 지금 그런 것을 비난할 때가 아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참된 모험을 하여 살아남았노라고 강연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곧 허망함에 사로잡힌다. 이제 원하지 않아도 진짜 로빈슨 크루소 같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인다. 펭귄 사냥을 시도한다. 기아 직전에 자책이란 있을 수 없다. 눈부신 오렌지색 반점이 있는 펭귄들의 머리가 얼마나 곱고 예쁜지 감탄하지만 그뿐이다. 물을 끓여 털을 뜯어내고 식량으로 비축해야 한다.


 시일이 지나면서 이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섬에서 겨울을 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체념으로 바뀌어 강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월동준비에 돌입한다.

 

오로지 먹는 것만을 해결하면서 버텨야 할 상황이 된다면?

그들이 과연 이 섬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혼자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는 저자의 생태 환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엿보이는 동물 개체들의 특성, 행태의 묘사는 마치 동물의 왕국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빠른지, 자연스러운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어떻게 광기로 변해 가는지 분노와 두려움이 사람을 어떻게 바뀌어 놓는지 일깨워 주는 작품이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미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 풍요로운 삶을 위해 무자비한 포획으로 인해 황폐화된 자연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건 아닐까. ‘과거를 조작할 수 있는 자는 미래도 조작할 수 있다.’(P337)고. 인간은 양심을 저버리고 정상적으로 살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아직은 희망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직접 겪어보기에는 상당히 두려운 이야기다. 극한 상황의 모험의 세계를 간접체험 하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더위를 시원하게 날릴 만큼, 오싹한 스릴러물 못지않다. 아니, 그 이상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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