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가 묘한 끌림이 있었다. 주인공은 천재 기타리스트 마키노 사토시와 프랑스 RFP 통신에 근무하는 기자 고미네 요코. 게다가 남자는 독신, 여자는 미국인 약혼자가 있다. 뭔가 애틋한 로멘스가 펼쳐질 듯한 분위기가 풍긴다. 음악은 사랑으로의 연결을 용이하게 해 주는 윤활유의 역할이 충실하다. 이들은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데, 마키노는 요코에게 연정을 품은 뒤 음악생활의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요코 또한 바그다드에서 취재 도중에 테러사건을 겪고 그 일로 인해 심각한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메일을 통해서 언어로 친해진 이들은 파리에서 재회를 한다.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은 속에서 끓어오르지만, 사회적인 신분이나 약혼자가 있는 상황이어서인지 직접적인 확신은 멀어져가고 대화는 좀 겉도는 편이다. ‘뭔가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조급함으로 바뀌어 “지구 어딘가에서 요코 씨가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도 죽을 거예요.”라는 마키노의 말로 인해 이야기는 진전을 보인다. 역시 남자 쪽에서 먼저 보이는 적극성은 여성을 꼼짝 못하게 하는, 또는 그것을 확신으로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꼭 전통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말이다. 서로의 사랑은 확인되고, 요코는 기다려왔던 말이었음을 깨닫고 기쁨도 느꼈지만, 이리저리 재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까 생각한다. 어쨌든 마키노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시원하게 다 했다. 어떻게 요코가 받아들이지 모르지만...



 기타에 대한 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결혼 전에 통기타를 배우고 싶어서 세고비아 기타를 구입한 적이 있다. 기타교본을 구입해서 어렵게 연습을 반복해서 ‘로망스’라는 곡을 치며 신기했던 경험이 있다. 내 손 끝에서 이런 곡이 들리다니! 그 후 어찌어찌하다가 시들해졌지만. 살다보니, 우리 아들은 기타리스트가 되고.(아직은 한참 더 성장해야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삶은 이런 우연한 일들이 속속 자리를 잡으며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비록 클래식이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지만, 아들 덕분에 나는 많은 곡들을 들었다.(무슨 곡인지 모르는 게 많지만) 항상 음악이 내 귀를 떠나지 않았다고 할까. 클래식에도 관심이 많은 아들은 클래식 CD 음반을 전질로 사서 듣는 공부를 엄청나게 했었다. 그래서 여기 이 책의 배경에 나오는 기타 선율과 공연 현장의 분위기가 전혀 낯설지 않다.



 마드리드 콘서트는 요코의 부재와 함께 실패로 끝났다. 연주를 멈춰버린 손은 천재 기타리스트에게 비극의 순간이었다. 리처드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사랑의 확신을 얻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감이 있다. 음악이 인생의 근간인 마키노는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택한 요코에게서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음악적 정체(停滯) 상태에서는 요코와의 사랑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리처드 쪽에서도 요코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지루한 싸움이 꼬리가 물고 늘어진다. 불안한 마음을 반영이라도 하듯 바그다드에서 겪은 일은 악몽으로 꿈에 나타난다. 이도 저도 아닌 일이 되어가는 것인가.



 잃어버린 휴대폰은 이야기의 반전을 가져 온다. 이것이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연애소설이라고?  ‘베니스에서 죽다’ 증후군을 내세운 파멸적인 사랑의 설정은 좀 그렇다. 뭔가 꼬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걸 풀어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면서 오로지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겠다는 미적지근한 마키노의 태도에는 실망이다. 비현실이 된 사랑과 전쟁터의 상황 세계적 금융위기 등의 세상의 굵직한 사건들을 알려주는 현실의 이야기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속도감이 있다. ‘뭔가 좀 더 할 수 있었’다면 오해와 어긋남으로 점철된 사랑은 아니었을 텐데...



 이러한 경우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도 서문에서 밝혔지만,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호하며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그만 두게 되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음이 오히려 낫지 않았을까. 분명히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사랑의 감정으로 들뜬 분위기에서 생각지 않은 상황을 맞게 되면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작용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안타깝다. 둘 다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문제해결에 노력하지 않은 것은, 그 사랑에 대해 조금은 가볍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도 흔치 않은 세상에. 이루어지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계산적인 마음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지 않았을까. 마티네의 끝에 연주되는 아르페지오를 들으며,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하지만, 그 장면은 처연하다.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사랑이라니. 중요한 건 ‘사랑했었던’이 아니라 지금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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