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강상중의 번역본만년의 집의 원서이다. 작년 12월 번역본으로 감동깊게 읽은 책이기에 원서로 읽고 싶어서 올해 2월 나고야 여행을 갔다가 사온 책이다.

 

 고희를 바라보는 저자가 아들을 잃은 후 가루이자와로 이사를 하고 채소를 심어 가꾸고 정원을 가꾸며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자신의 70년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가족들을 걷어 먹이려고 산으로 들로 나물을 채취하러 다녔던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걸어다니는 식도라고 했다는 어머니는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고 한다.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닌 가족들에게 챙겨주기 위한 집착이었다. ‘강상중이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자이니치로 살아간다는 것, 영원한 디아스포라로 산다는 것이 마음적으로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싶었다. 그래도 고원의 삶은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가루이자와는 이름난 휴양지로 알려진 곳이며 메이지 유신 이래로 선교사를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이다.

 

<아버지의 치아에 대하여>

 

 여기서는 머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쌉쌀한 맛이 나는 머위를 살짝 데쳐서 밥을 싸서 된장을 얹어 쌈으로 먹었다는 이야기다. 호박잎쌈을 먹듯이 한 것 같다. 머위는 아린 맛이 있어서 너무 많이 먹으면 간에 좋지 않다고 한다. 어린 개구쟁이였을 때 이 머위 쌈은 먹기 싫은 음식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쓴 맛이 강하니 당연했겠지. 재미있는 표현이 나왔다. ‘옛날을 뭉쳐서 싸놓은 듯한느낌이 드는 것이 머위 쌈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잊을 수 없는 맛이 되어 언제까지고 기억하게 되는 음식이라고 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음식을 먹으면서 풀었던 건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일본에도 머위가 있었구나 신기한 마음도 들었다. 두릅 이야기도 나왔는데 먹는 방법이 한국과 일본이 서로 다른 차이도 흥미로웠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을 찍어먹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튀김으로 많이 먹는다고. 그 맛을 튀김을 좋아하는 아내로부터 알았다는데, 그 두릅 튀김이 얼마나 맛있는지 예찬을 멈추지 않는다. 나중에 튀김으로 만들어 꼭 먹어보고 싶을 정도다.

 

 

아내와 장모님 이야기, 두릅 튀김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 차이도 알게 된다.

 

각종 야채 튀김이 우동에도 올려지는 걸 보면. 배고픈 시간인가 군침이...(ㅎㅎ)

 

 어머니가 잘 챙겨 주신 덕분에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도 치과에 간 적이 없다고 했다. 사람에게 있어 음식은 정말 중요하구나 싶다. 아버지가 음식을 씹는 경쾌한 소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음식을 먹을 때 턱을 사용하는 방법, 씹는 소리까지 아버지를 닮았다면서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은 신기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음식에 대한 강인한 집착은 결국 이국(異國) 땅에서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꺾이지 않는 의지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고양이로소이다>

 

강아지파였던 저자가 고양이파로 바뀌어 고양이를 키우게 된 이야기가 재미있다. 일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면 혼자 있게 되는 아내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서였고 시험 삼아 키워보다가 안 될 것 같으면 도로 갖다 주자고 했는데... 알고 보니 아내는 거의 작정하고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는 거였다. 아내의 뜻에 떠밀려 고양이를 키우게 된 사연이다. 덩치 큰 고양이가 두려움인지 낯을 가리는 건지 커텐 뒤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을 처음 보게 되고 거둬들이게 된다. 고양이를 괴물로 여기던 어머니가 보신다면 아마도 기절초풍을 하실 거란다. 고양이 루크를 키우게 된 것이 유일하게 어머니의 말씀을 거스른 일이 되었다고 한다. 점점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과정을 보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고양이 이야기는 누가복음과 예수와 세례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고() 김대중 대통령 이야기로 이어진다. 보복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던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며 현재 정치 이야기까지 언급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간, 북미간의 중재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남북정상회담도 북미정상회담도 이루어지지 못했을 거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 모르는 단어가 이렇게 많아서야...

 

저자가 어렸을 때 집에서 키우던 개 보스를 집에서 함께 살던 아저씨가 애지중지 키웠던 추억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더구나 그렇게 기가 약한 고양이에게 루크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은 강한 이름을 지어 불러 줌으로써 강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속세와 떨어진 듯한 고원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풍경처럼 다가왔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바뀌기도 하면서 좀 유연해 지기도 할까. 좋은 쪽으로는 작정하고 바뀌는 것도 좋겠지.

 

 

 언어 공부란 할 때마다 새로운 단어를 만나게 된다더니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이 많았다. 역시 지식인이 쓴 이야기라서 더욱 어렵게 느껴진 걸까. 형용사, 부사, 의성어, 의태어 등 처음 보는 단어를 찾아보느라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한 권 한 권 읽다보면 좀 나아지겠지.

 

 

 

 

 

 

 

 **이 책도 상품 검색이 안되어서 마이페이퍼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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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ろ (文庫)
나쓰메 소세키 / 巖波書店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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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쓰메 소세키의 이 작품을 번역본으로 두 번 읽었고 이번에는 원서로 읽어보았다. 갖고 있는 번역본이 있어서 중간 중간 원 문장과 대조하며 읽었다. 역시 문학 작품이라 그런지 직역보다는 문학적 감수성이 느껴지는 문장이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원 문장을 읽으면서는 맨 처음 작가가 쓴 날 것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그 사람을 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왠지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과거형이라서 그럴 것이다. 화자인 나는 친구와 함께 가마쿠라의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그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 후 도쿄로 돌아와서 선생님 집에 자주 놀러가면서 조금씩 친해진다. 나는 선생님과 자주 만나며 이야기하면서 무언가 침울하고도 경계하는 듯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자신은 친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선생님은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를 멀리하려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다가올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는 선생에게 다가가게 되고 점점 친한 사이가 되어 나중에는 선생님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게 된다.

 

 ‘사랑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말이 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선생은 인간을 믿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모님도 마찬가지냐고 되묻는 나에게 조금 망설이는 듯 하면서도 단호하게 자신은 인간 자체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다는 걸 감지할 뿐이다.

 

 나는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다. 다행인지 생각보다는 아버지의 상태가 나쁜 것 같지 않아서 안심이 된다. 아버지와 장기를 두면서 심심치 않게 해 드리지만 마음은 도쿄의 선생님에게 가 있다. 그러다가 한 통의 간단한 안부 편지를 받고 나중에는 장문의 편지를 받는다. 두 번째 상당히 두꺼운 편지를 받고 의아했는데, 이 편지를 도착했을 때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는 말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버지보다는 선생의 안부가 걱정이 되고 불안에 휩싸여 도쿄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 안에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계기와 그 집에서 대학생 때 하숙을 함께 했던 K와의 이야기. K의 죽음까지 모두 들어있었다. 도쿄에서 처음 만나러 갔던 날 조시가야의 묘지에서 마주치고 섬뜩한 표정을 짓던 선생님을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서로 삼각관계 인 것처럼 보였고 선생이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선언했을 무렵 갑자기 K는 죽음을 선택한다. 그 후 선생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사회에 나가 일을 하지도 않고 은둔자처럼 생활을 한다. 물론 갑자기 그가 돌변한 것에 대해서는 아내도 아무 영문을 모른다. 혼자서만 끙끙 앓고 있을 뿐 아내에게 내색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는 자신의 과거를 화자인 에게 이야기해 주기로 했었는데 공교롭게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향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편지로 고백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화자가 고향에 내려간 사이에 선생은 K의 뒤를 따라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K의 죽음과 선생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거론된다고 한다. 일전에 읽은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접했다. 그러니까 단순한 삼각관계에 의한 것보다는 K가 선생님과의 우정 이상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거였다. 하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선생님의 경우를 보면 K의 죽음에 대해서 일말의 죄책감이 컸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자리를 얻으려 애쓰지도 않고 세상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K의 뒤를 따라서 죽음으로 죄책감을 갚아야 했을까 싶기도 하다. 아내에게 있어 유일한 남자는 선생님 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의지하고 살았다는데. 여기에는 시대적 배경인 메이지 시대에 대한 과오를 씻고 싶어 하는 지식인으로서 소세키의 고뇌가 느껴지기도 했다. 노기 장군이 순사한 것처럼 메이지 시대가 가는 것과 함께 선생님의 과오를 씻는 어떤 의식을 담으려고 했던 건 아닐까. 어렵게 읽은 터라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야 다른 생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 상품 검색을 해보니 출판사는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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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6년도 일본 여행을 갔다가 진보초 고서점가에서 사 온 책이다. 도쿄를 산책하듯이 느리게 걸으며 본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여행을 하면 잘 알려진 곳이나 번화가를 위주로 돌다보면 그 뒤에 가려진 골목에 위치한 풍경은 놓치기 일쑤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가 모르는 도쿄의 구석진 곳, 에도시대부터 이어진 전통과 분위기 있는 상점 등을 알려준다. 그리고 특징이라면 도쿄 시타마치(상업지역 번화가)의 명소를 메이지 시대에 제작된 목판화와 석판화에 담겨진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오즈마바시, 긴자, 니혼바시, 우에노, 무코지마, 히비야공원 등 아사쿠사(淺草)의 센소지(淺草寺)까지.

 

많은 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내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나중에 가보고 싶은 곳을 위주로 쓰려고 한다.

 

<가츠시카의 주변에서>(쇼부엔(식물원)마을에서 시바마타, 에도가와에)

 

이번은 원행이다.

에도 사람이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외출하지 않았을까. 에도의 교외(郊外), 가츠시카 땅 호리키리, 시바마타, 타이샤쿠 텐, 그리고 에도가와, 야기리 건너. 아니 에도 시대뿐만 아니라 메이지부터 다이쇼에 걸쳐도 이 가츠시카는 도쿄의 교외(敎外)였다. 시골 교사,이불등 소설 외에도 기행문을 쓴 타야마 가타이의 도쿄근교의 1일 행락에 대한 책 한 권이 있다. 호리키리(堀切)의 쇼부엔(菖蒲園)은 도쿄의 교외이고 하루 가서 놀기에 좋은 곳이다. 호리키리(堀切)의 쇼부엔(菖蒲園)에 가는 교통수단도 안내되어 있다고 한다.

 

 도쿄 시타마치에서 자란 감각으로 도 저자는 호리키리는 꽤 멀고 시바마타라고 해도 도쿄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가츠시카, 에도가와 주변 쯤 되면 이른바 명소가 적지 않다.

호리키리(堀切) 쇼부엔(菖蒲園)은 메이지 중기에 들어서 일약 도쿄 명소로써 인기 스폿이 된다. 호리키리(堀切)의 창포는 에도 말기쯤엔 활발하게 재배되어 에도 명승지 그림책등에도 많이 그려졌지만 유신을 계기로 황폐화된다. 오늘의 호리키리 쇼부엔은 옛날의 호리키리엔을 도쿄도가 매수해서 카츠시카 구에 이관시킨 거라고 한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비오는 날도 좋고, 맑으면 더 좋아 호리키리의 마을을 빼고 쇼부엔에 이른다. 만개할 시기에 원내(園內)는 정말로 별세계’(P77)

 

 정말 시적인 분위기다. 꽃피는 봄에 그 별세계를 구경하고 싶어진다. 도쿄의 교외(郊外) 호리키리 쇼부엔을 기억하자. ‘쇼부(菖蒲)’는 창포를 의미한다. 옛 이름은 아야메라고 했다.‘창포는 5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것은 구력(?曆)의 이야기고, 요즘의 피크는 6월에 들어서부터다. 호리키리 쇼부엔은 61일부터 25일까지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개원 시간이 길어진다.

가츠시카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폿이라면 시바마타 타이샤쿠텐이라고 한다.

 

 

히비야공원의 풍경이 담긴 그림(석판화)

 

 

<히비야공원 주변>

 

 메이지 6(1903)에 히비야 공원이 개원한다. 이에 앞서 메이지 6, 우에노, 시바, 아스카야마, 아사쿠사, 후카가와 다섯 개 장소에 처음으로 공원이 탄생하지만, 히비야공원은 이 다섯 개 장소와는 탄생 기반부터 취지가 다르다. , 메이지유신 정부는 막 타도한 구체제와 인연이 깊은 풍광이 밝고 아름다운 땅, 또 신사와 절을 세우는 장소에 공원이라는 새로운 의상을 푹 뒤집어 씌웠다고 할 수 있다.

 

메이지의 시민이 처음으로 양식(서양식 문화)에 접하다

 

 음악당에서는 서양 음악이 연주되어 양식 레스토랑 [마츠모토 사쿠라]가 인기를 모았다. 도쿄 시민은 처음으로 서양음악회에 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라져 가는 에도 문화 대두하는 근대였던 것이다.

 

 히비야공원에 학 분수는 시나 소설 속에 여러 번 등장해왔지만 용감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산보가 즐거운 히비야 공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곳은 전철을 타고 지나치기만 했는데 나중에 꼭 가보고 싶다.

 

<료코쿠(??)주변>

 

 료코쿠 주변은 도쿄 여행때 가본 곳이라 반갑다. 스미다가와를 건너는 철교를 매일 건너다녔다. 스미다가와 하나비 (불꽃놀이), 료코쿠에 있는 국기관(스모 경기를 하는 장소) 등이 소개되고 있다. 불꽃놀이 축제를 즐기는 건 좋지만 강물이 더러워지고 지독한 냄새 때문에 견딜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폐수, 오수를 흘려보내는 나라는 세계에서 일본밖에 없다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야나기바시를 건너 스미다가와로 나가면 바로 료코쿠바시이다. 에도시대는 혼조, 후카가와 방면과 에도 시() 속 두 개의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료코쿠의 큰 다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목조다리였던 료코쿠 다리는 그후 메이지 37(1904)에 철교(鐵橋)가 된다.

 

 어쨌든 불꽃놀이, 뱃놀이, 스모 구경이라는 것은 에도 이래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지역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름다운 스미다가와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에 이견이 없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읽은 일본어원서 중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지명과 인명 그리고 시()를 인용한 문장이 많아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특히 시에 나오는 한자어는 왜 그렇게 어려운지...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다 보면 좀 나아지겠지.

 

 

참 일본스럽기도 한 그림...

 

 

 


​알라딘에서 상품 검색이 안 되어서 이 코너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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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참선 1~2 세트 - 전2권 참선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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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좋아한다. 그곳에서는 급할 것도 없고 서둘러야 할 것도 없고 시간의 흐름도 다르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지친 마음을 좀 내려놓고 평온한 시간을 가져보라고 산사의 바람도 속삭여주는 듯하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스님의 낭랑한 염불 소리나 목탁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는 것도 그렇다. 무엇이 그렇게 산사의 풍경 속으로 이끄는 걸까. 오래 전에 읽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쓴 현각 스님이 떠올랐다. 오직 진리, 즉 베리타스(Veritas)를 찾기 위해 애쓰던 벽안의 외국인이 숭산 스님을 만나 불교에 입문하고 수행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곳도 끊이지 않은 마음의 번뇌가 일렁이는 다른 모습의 사회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참선을 주제로 이 책을 쓴 저자 테오도르 준은 미국으로 유학한 한국인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난 재미교포 2세이다. 그는 환산 스님으로, 방송에서 오랫동안 참선을 가르치기도 했다는데 TV와 담을 쌓고 살아서인지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앞서 현각 스님의 경우와는 불교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좀 달라서 왠지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진리를 찾다가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스님이 되고 싶었다는 경우에 비하면, 그는 마음속에 들끓던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나 어렸을 때부터 쌓여온 온갖 마음의 고통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계속되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송담 스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던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마치 한 편의 성장 소설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관점으로 타인들을 바라보기 마련이어서 그럴까. 화려한 스펙과 안정된 진로가 약속되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의지대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호기심을 갖게 된다. 다른 분야보다 종교계에 대한 입문은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보통사람들의 삶에 회의적이었다. 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웃사이더로서 정체성을 고민했고, 풀리지 않는 인간 존재의 목적과 본성에 관한 의문으로 고통 받고 있던 듯하다. 이민자인 부모님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당혹감을 느꼈다는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감수성과 이타심도 보였고 강한 것 같으면서 여린 마음으로 내면의 고통이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간으로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정말 피와 살로 이루어진 물질적 존재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그 이상의 것이 있을까?

육신이 죽은 뒤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냥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 몸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어떤 것이 있을까?

인간은 정말로 어떤 존재일까?(1권 p40~41)


  그의 내면에는 항상 이런 질문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도 한번 쯤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생각이지만 대개는 더 이상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승려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할 생각도 아니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선불교 모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송담 스님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졸업하기만을 기다린다. 송담 스님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정신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한 절박함 이었다.


  10년간 묵언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송담 스님을 향한 저자의 마음은 마치 인기 아이돌을 향한 소년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2년을 기다린 끝에 친견하던 날, 스님의 아우라에 완전히 압도되고 이후 출가하여 수행자 생활을 하는 내내 마음속을 지배하게 된다. 스님을 향한 존경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선불교 모임에 참여한 부류에 세련된 젊은 대학생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할 때 딱히 종교라는 이미지보다는 문화로서 향유하지 않았나 싶다.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겠다는 일념으로 송담 스님을 만났지만 스님은 그것을 말이나 개념으로 전달할 수 없고 참선 수행을 통해서 알 수 있도록 도와 줄 수는 있다는 말을 듣는다. 어차피 세상의 어떤 공식 같은 삶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참선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분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삭발을 하고 절에서 발우 공양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불경을 소리 내어 일고 각종 의례를 진행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한국어도 한자(漢子)도 몰랐던 상황에서 스님의 법문이나 전문적인 불교용어를 어떻게 다 익혀나갔을까. 배움에 대한 지원이 없어서 혼자서 터득해야 했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일상의 활동들을 해나가면서도 종종 낯선 자신을 발견한다. 권위와 복종을 보았고 폭력적인 기운 속에 숨겨진 두려움과 절망을 발견하면서 동료애를 느끼기도 한다. 그들과 자신의 공통점이 있다면 세상이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밖에도 전통적인 종교 문화의 측면에서 알지 못하는 것믿는 것사이의 혼란으로 힘들어 하며 연극적으로 보이는 종교에 위선을 느낀다. 한 달에 한번밖에 볼 수 없는 송담 스님을 학수고대하며 보낸 순수한 마음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송담 스님에게 홀딱 반했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하는 부분에서 묘한 연민이 느껴졌다.


  참선, 하면 고요한 법당에 정좌하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계를 받은 지 2,3년이 지난 어느 날 방송실에 망연하게 앉아 있다가 송담 스님과 마주친다. 반갑기도 하고 내면의 갈등을 들킨 것 같아 복잡한 마음이 된 환산 스님은 자신을 바라보는 송담 스님의 표정을 감지한다. 흐뭇한 애정, 염려와 연민, 약간의 슬픔까지 깃들어 있는 그 표정을. 항상 제자의 내면을 꿰뚫는 듯이 간파하고 있던 송담 스님은, 뭐든지 배울 수 있는 세상이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속상할 때나 화가 날 때나 슬플 때나 두려울 때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해?”

                                            (1권 p158)


  참선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참선은 수행자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속상해도 화가 나도 아닌 것처럼 위장하고 그것을 풀지 못해 앙금을 쌓으며 세월을 보내지 않았는가. 인간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감정의 상처를 수도 없이 받는다. 그때그때 바로 밀어낼 수 있다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정신의 건강을 온전히 지켜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우리가 이뭣고?”를 읊조리며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를 타고 흙먼지 속을 달릴 때 먼지로 뒤덮인 유리창을 와이퍼로 한 번 닦아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간단한 한 번의 작동으로 앞이 환해지듯이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을 참선으로 막을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참선에는 요중선(움직이는 참선)과 정중선(앉아서 하는 참선)이 있다고 하는데 일상생활에서도 참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놓으면 스트레스, 충격 등 정신적인 안정을 빨리 되찾고 평화로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명상법은 참선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올바른 자세, 올바른 호흡, 올바른 생각 이렇게 세 가지면 어디서든지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원래 참선의 기본자세는 가부좌 자세지만 현대인이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자세이므로 의자에 앉아 참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권한다. 이 자세는 학교, 직장은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스트레스와 불안한 마음을 제거할 수 있는 실시간 참선이며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참선법이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준비단계로 감정 치유를 위한 호흡을 먼저 하고나서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복식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라는 화두를 들어 질문하면 된다이뭣고이것이 무엇인가?’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이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내면의 이것에 대해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란다. 짧은 말의 이뭣고가 리듬감 있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도 모르게 이뭣고를 읊조리곤 했는데 뭔지 모를 붕 떠있는 듯한 불안한 마음들이 사라지고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챙김 명상[ mindfulness meditation ] 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신의 속마음이 변화되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뭣고는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화두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 전에 그러지 않도록 막아주는 경고등처럼 말이다. 감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순간에 이뭣고를 말하며 현실로 돌아와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참선을 활용하면 좋을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문명의 혜택 속에 살고 있지만 그에 비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많은 업적을 올려야 대우 받는 세상이다. 삶이라는 과정 자체에서 마주하는 외로움, 우울, 불안, 중독적인 생활습관, 갈망과 혐오, 화와 집착 등 온갖 감정을 마음속에서 물리치는데 사용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없애버릴 수 있는 예방 차원의 개인 맞춤형 정신 건강 프로그램이라고 하니 배워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마음에 남는 문장들>


우리는 건강을 위해 몸을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는 건 알면서 왜 마음에 대해서는 그리지 않을까?”(P182)


'참선은 살아가는 방식이다.’(P248)


양동이가 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올바른 해결책은 안에서 구멍을 막는 것이다. 바깥에서 막으려고 해서는 소용이 없다.”(P315)


'참선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억누르는 대신에 그 불안의 에너지를 연료처럼 이용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면 이뭣고?” 화두에 더 강렬하게 집중할 수 있다. 사실 이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참선이 정말로 생명력을 갖게 된다.’(P320)

                                  -이상은 1-


참선으로 각자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선을 통해 우리 모두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2P257)


  맑고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참선부터 사는 동안 두렵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참선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상생활에서 조용한 참선과 활동적인 참선이 균형 있게 이루어지면 우리의 몸과 마음 정신은 평화롭고 맑은 상태가 될 것이고, 세상이 조화롭고 나아가서 우주와도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참선을 접하게 된 초심자라면 인내심을 갖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매 순간을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수시로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마음의 평온을 유지 할 수 있으며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행복하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작용으로 인해 베푸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 국가, 세계로 넓혀갈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평화로운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참선이 추구하는 미래상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 두 살의 청년은 송담 스님을 만나 영감과 감동을 받고 그분처럼 되고 싶었던 환산 스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30년 가까이 수행자 생활을 하는 중 7년 전에 활구 참선을 가르치라는 송담 스님의 권유로 TV방송을 시작하며 유명세를 얻고 성공적인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보다 앞서 이미 환산 스님의 마음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출가하게 되면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절의 운영방식에서 군대라는 조직의 모습을 보았고 비영리 중소기업에 취직한 것처럼 느껴졌단다. 자신이 싫어했던 세상의 모습을 피해서 왔는데 절에 와서 다시 만났다고 할까. 계파와 파벌이 생겼다 흩어지고 불만과 갈등, 경쟁과 논쟁, 동정과 연민의 감정들, 일반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나 싶다.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광대라 여기며 환멸을 느끼고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 했던, 원래의 자신의 삶으로 돌아 갈 결심을 한다. 당시 척추전방전위증이라는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터라 여러 보직에서 물러날 이유도 타당했지만 심경은 복잡해 보인다. ‘물과 산소같은 존재였던 스님에 대한 애착과 추종자노릇을 그만 두고 떠나야 한다는 확신 사이에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불교를 믿어서가 아니라 스님을 믿기 때문에 스님이 되었고 자신은 언제나 송담 교도였다는데. 믿었던 사람, 믿었던 세계에서 빠져 나오며 무엇을 보았을까. 마치 환상에서 깨어난 것처럼 황망하게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슬프면 이상하게 그 슬픔 한가운데서 기쁨이 느껴진다. 온 힘을 다해 꽉 붙들고 있던 뭔가를 잃어버리고 나니 아니, 놓아버리고 나니 비로소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었다.(2-p57)


그 정원에서 마침내 깨달았다. 성인이 된 후로 줄곧 엉뚱한 곳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기준과 관점에 연연해왔다는 것을. 더 나은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땅속에서 금을 찾다가 결국 그 땅을 놓쳐버린 꼴이다.(2-p75) 



  한때 무관심했던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 살아가기 위해 가게를 열고 출근을 하기 위해 서두르는 사람들을 보며 진짜 살아가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있을 때는 주위의 사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평범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한 것이다. 절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대부분의 청춘을 보냈으니 그 감회도 남다를 법하다. 요가를 배워 참선에 접목하기 위해 발리와 우붓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지난날의 자신을 떠올린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오래 걸렸고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 등,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부모를 두고 떠난 긴 세월을 뒤늦게 안타까워하고 승려로 살았던 30년을 놓아버린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 여행의 과정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삶을 맞이하여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치르는 통과의례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다소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종교에 귀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서 빠르게 회복하도록 돕는 참선을 우리의 삶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나누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혁신과 자기 진화의 혜택을 누리도록 돕는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고도의 경쟁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도 없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상태에 처했을 때 참선을 배워서 실천한다면 위기도 극복할 수 있고 좀 더 행복하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진정한 참선은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다.” 

                                                           -본문 중-



  나는 1년 반 전부터 108배 운동을 하고 있다. 무릎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심신 건강에 탁월하다는 한의사의 체험 이야기를 읽고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했던 때는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이었는데 약 100일 정도를 하루도 쉬지 않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의식적으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횟수는 세지 않고 15분 내외로 몸을 굽혔다 펴는 동작을 반복 하다보면 몸도 따뜻해지고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마음의 평온은 물론 근육 단련에도 좋은 효과를 보았다. 참선은 복식호흡을 하며 내면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생각되는데, 두 가지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심신의 건강에 더욱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30년 가까이 한 사람과 한 세계를 믿고 따르며 살아가다가 그 세계에서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믿고 사랑했던 스님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의 끝과 시작을 아름답다고 혹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가볍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사람이 인생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고 각자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에게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추종자로서 살아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깨달았을 것이다. 참선을 화두로 이 책을 쓴 것도 자신의 지난날을 통해서 변화된 삶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계획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영감과 사랑을 받았던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은 21세기 도시 수행자가 되어 참선을 가르치고 강연을 하는 등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굽이굽이 세월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행복은 물론 온 인류의 안녕을 위해 참선을 널리 알리고 소통하는데 이바지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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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 빛과 색으로 완성한 회화의 혁명 클래식 클라우드 14
허나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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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도쿄 여행을 갔다가 우에노 공원에 있는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보고 나왔는데,  돌아오는 일정 중에 시작하는 모네와 르느와르의 전시회 예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림에 거의 문외한이던 내가 조금씩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미술 관련 책에서 말로만 듣던 명화 등을 접하고는 학창시절의 미술 시간이 떠올랐다. 화가들이 어느 유파에 속하는지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았던 일 등. 화가 이름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작품은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화가 모네의 전시회 소식을 보고 반가웠지만, 아쉬움 가득 안고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 11<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를 만났다. 이번엔 모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겠지 했는데, 모네 외에도 많은 화가와 그림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모네의 작품 수련이 각인되어서인지 다른 그림은 떠오르지 않았다. 런던의 국회의사당을 그린 그림을 처음 보게 되었다. 그 소감을 솔직히 말하면 당황스러움이었다. 안개의 나라인 영국을 떠올릴 때 충분히 그림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어떤 의도로 그려진 걸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과 함께 모네의 작품 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시간대별로 다른 <런던 국회의사당> 연작이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나는 선명하고 보기에도 예쁜 그림이 좋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모네는 을 쫓는 사냥꾼이라고도 했다. 모네가 자신의 그림에 빛의 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스승 부댕의 영향을 받은 덕분이다. 당시만 해도 화가들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나가서 대략의 스케치를 한 다음 화실로 들어가서 완성했다는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모네의 그림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파스텔톤으로 불리는 화사하고 부드러운 색감 때문이란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예쁜 그림으로만 생각해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당시 고전적인 미술을 추구하던 파리 미술계의 회화에 대한 통념과 선입견을 깨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 모네의 그림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모네는 대상 자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상 사이에 있는 것을 그린다고 했다. 예를 들면 루앙대성당이라는 대상이 아니라, 루앙대성당과 자신 사이에 있는 공기, 바람, 안개, 온도, 습기, 시간 그리고 빛 등의 요소들을 그리고자 했다. 분명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거나 만질 수 없어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던 요소를 주목하고 그것을 덮개(enveloppe)’라고 불렀다. 의식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되는 여러 요소들을 그림에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건초더미>, <포플러 나무>, <루앙 대성당> 연작까지 하나의 대상을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물감의 색으로 구현하면서 모네는 점차 자신이 추구했던 회화의 이상에 가까워져 간다. 모네가 추구했던 신념을 알고 나서 들여다보니 그림이 이해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살아있는 그림으로 보였다.

 

 저자 허나영을 따라가는 여정은 모네의 생애와 예술적 공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주 활동 무대였던 파리부터 카미유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아르장퇴유, 가난과 상실의 장소 베퇴유, 예술적 이상을 완성한 지베르니, <루앙대성당>을 그린 루앙, 유년의 기억이 있는 센강 하구, 예술적 영감의 장소,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을 피해서 갔던 런던 템즈강까지의 여정이 들어있다. 특히 런던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 터너의 작품을 보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고, 평생의 후원자인 뒤랑뤼엘을 만나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올랐다. 생전에 한 점의 그림도 팔리지 않았던 가난한 열정의 화가 고흐. 대개의 부모가 그렇듯이 그의 아버지도 모네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열일 곱 살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힘든 시간이 찾아온다. 학교를 감옥 같이 여겼다는 모네가 맞닥뜨린 이런 암담한 상황에 르카드르 고모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부유했던 그의 고모는 모네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으며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이후, 화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평생을 동생 테오에게 의지하며 그림을 그리며 열정을 불태웠지만 짧은 생을 마감하고 사후가 되어서야 열광적인 찬사를 받게 되는 고흐와 너무 대비되는 이야기다.

 

 <생타드레스의 테라스> 캔버스에 유채. 1867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미국

 

<아르장퇴유의 양귀비밭> 캔버스에 유채, 1873년. 오르세미술관, 프랑스

 

왼쪽 <디에프 절벽> 캔버스에 유채, 1882년. 취리히미술관, 스위스

오른쪽 <푸르빌 절벽 위 산책> 캔버스에 유채, 1882년, 시카고미술관, 미국

카미유와 아들 장이나 알리스의 딸 등 가족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 많았다.

 

  주변에 항상 도움을 주는 이가 끊이지 않았던 것을 보면 모네는 행운아였던 것 같다. 초기에 고모의 지원으로 화실에 들어가서 만난 장 프레데리크 바지유, 바지유가 죽고 나자 카유보트가 나타나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며 컬렉터가 되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도 모네가 화가로서 부와 명성을 얻기까지는 런던에서 만난 화상 폴 뒤랑뒤엘의 활약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뒤랑뒤엘은 모네와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사들여 전시회를 계약하는 등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파리에 있는 미국인들과 교류하기 시작한다. 정작 모네를 비롯한 화가들은 그러한 뒤랑뤼엘의 행보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그때까지 세계 미술과 문화의 중심이 파리였고 미국의 새로운 중산층과 상류층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뒤랑뒤엘은 1886년 미국미술가협회 뉴욕지부에 전시를 개최해줄 것을 제안했고 결과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을 보면 한 사람의 성공이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만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댄디기질이 있던 모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생활은 어렵더라도 하녀를 고용했으며 겉모습은 우아하게, 기차를 타고 나가 도시 풍경을 즐기는 파리지앵을 말한다. 양복은 반드시 파리에 가서 맞춰 입고 나중에 지불할 수 없게 되자 예술가인 자신이 입어주는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뻔뻔하게 설득했을 정도란다. 아무튼 화가로서의 자긍심은 꽤 상당했던 듯하다. 유행에 민감했던 그런 모네에 의해 <생라자르역>이라는 작품을 보게 된다.

<생라자르역> 캔버스에 유채. 1877년. 오르세미술관. 프랑스

  생라자르역은 프랑스에 증기기관차가 들어오면서 1837년에 최초로 생긴 기차역이다. 화가의 꿈을 안고 파리나 노르망디 지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아르장퇴유와 지베르니 등에 터를 두고 파리를 오갈 때에도 항상 생라자르역을 거쳐야 했는데 그로 인해 그 곳은 자연히 모네 삶의 일부이자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된다. 생라자르 역사와 증기기관차가 그림의 소재로 많이 활용되었지만 역시 모네는 다른 관점으로 그렸다. 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서 탄생한 그림이다.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에 주목한 모네는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짧은 시간에 그려낸다. 허락해 준 것은 물론 플랫폼에서 사람들을 내보내고 역사 안에 있는 기차들이 일제히 증기를 뿜어 올리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니 모네의 열정에 끌렸던 모양이다. 덕분에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남게 된다.

 

  혹자는 모네를 두고 굉장히 수완이 좋고 정치적인 인물이라고 하며 세잔은 돈을 밝히는 인물로 평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예술인들이 경제관념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적인 관계망에 취약한 사례가 많아서 모네가 특히 눈에 띌 수도 있다. 영감을 주었던 뮤즈 카미유가 병을 얻어 죽어갈 때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오슈데 부부가 파산 지경에 이르러 알리스가 여섯 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데리고 모네의 집으로 들어온다. 세간에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껄끄러운 동거는 결국 부부가 되고 가족이 되어 화목하게 지낸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냈던 화가들이 많았던 것을 볼 때 여덟 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보살피는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화가로서 부와 명예를 얻게 된 것은 어쩌면 처세를 알았고 강한 삶의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상이라고 확신한다. 나도 그 작품(모네의 <인상, 해돋이>) 앞에서 인상을 받았으니까. 이 얼마나 자유롭고 쉬운 작업인가! 이 바다 풍경보다는 벽지 패턴을 위한 기초적인 드로잉이 더 완성도가 있겠다’(P110)

 

  초기에 저널리스트 루이 르루아의 이런 혹평을 받았던 모네의 그림은 1895<루앙대성당> 연작 전시를 본 클레망소에게 모네의 삶도 그 석조 건물만큼 오래 보존되어야 하며 그만큼 훌륭한 모네의 그림은 우주를 지각하는 우리의 능력을 더욱 깊고 정교하게 만들어준다는 칭송을 듣게 된다.

 

  옛것에 얽매이지 않고 급변하는 현재를 들여다보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려 노력했던 모네에게 역사는 그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동료들은 떠나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결국은 인상주의의 대표 주자가 된다. 말년에는 시력이 나빠져서 힘들었지만 86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고, 항상 곁에서 보필하던 사랑스런 딸이자 며느리인 블랑슈와 모네 예술의 가치를 잘 알고 보존하기 위해 애써준 클레망소가 마지막을 함께 했으니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행복한 화가임에 틀림없다.

 

<수련> 캔버스에 유채. 1908년. 알퐁스조르주풀랭미술관, 프랑스

 

모네는 자연이 빛을 반영한 색의 효과로 만들어내는 온갖 다양한 모티프들을 연구해온 끝에, 그의 긴 생애의 마지막에서 가장 부드럽고도 모든 것을 관통할 수 있는 요소인 을 다뤘다. 물은 투명한 동시에,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바뀌며, 다른 사물을 비춘다. 물 덕분에 그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그는 빛이 반사하여 흩어지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표면을 드러낸다. () 모네는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든 장인처럼 색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 물의 밑바닥으로부터 몽상에 잠겨 소용돌이치며 색이 떠오른다.(P250)-당시 기자인 폴 클로델의 묘사-(‘물의 풍경)

 

 명상의 공간, 오랑주리 미술관 '수련방'

모네가 처음 대장식화 <수련> 연작을 구상했을 때, 그는 수련이 떠 있는 물의 풍경 속에서 사람들의 강박과 긴장을 내려놓고 평화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 꿈이 실현된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방'의 모습.

 

  모네의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되어 세계적인 화가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알게 되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모네의 그림 앞에 서서 감상하는 일만 남았다. 파리에 가서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도쿄의 어느 미술관에서 모네의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이 책으로 완벽하게 공부했으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유유자적하며 미술관의 분위기 속에 취해 있는 내 모습...

 

<모네의 정원>

자연 그 자체를 화실로 삼았던 모네에게 있어 지베르니의 정원은 평생 꿈꿔온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수많은 <수련> 연작이 탄생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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