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무거울 때 채근담을 읽는다
사쿠 야스시 지음, 임해성 옮김 / 안타레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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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근담(菜根譚)은 중국 명나라 말기 홍응명(洪應明)이 지은 책이며, ‘채근(菜根)’풀뿌리’, ‘나물뿌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에 대해서 많이 듣긴 했지만 제대로 읽어 본 적은 없어서 이 책을 만난 것이 반가웠다. 하얀색 표지 디자인이 단아하고 깔끔해서 마음에 든다. 요즘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계속되고 있어서 왠지 마음이 붕 뜬 듯한 느낌이었는데, 읽으면서 잊고 있던 소중한 메시지를 되새겨 주어서 좋았다. 마치 명상하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엮은 지은 사쿠 야스시는 1944년 도쿄에서 태어나 게이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중문학과 일문학을 전공한 동양 고전 해설 전문가다. 게이오고등학교에서 좋아하는 선생님’, ‘존경하는 선생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으며, 첫 책 고교생이 감동한 논어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논어해설가로서 이름을 높였다. 저서로 맹자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등 다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은 1장 사람의 품격을 생각하다 제2장 남부끄럽지 않은 삶을 생각하다 제3장 삶의 무게를 생각하다 제4장 더불어 사는 삶을 생각하다 제5장 잘 되고 싶은 나를 생각하다

 


 이렇게 다섯 가지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전집(前集) 225장과 후집(後集) 134장으로 되어있는 채근담(菜根譚)에서 전집 90장과 후집 29장을 뽑아 주제에 맞게 분류하여 119장으로 엮은 책이다. 목차를 찬찬히 훑어보니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주제의 이야기가 많아서 기대감을 갖고 읽었다.

 


 한 주제의 이야기가 두 쪽으로 되어있다. 한쪽에는 원문과 직역한 내용이 있고, 옆에는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깊이 있는 해석을 곁들인 내용이 들어있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주제별로 5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읽고 싶은 주제를 먼저 선택해서 읽어도 좋고 아무 곳이나 펼쳐서 마음이 가는 대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내려놓아야 나아갈 수 있다

 

공적과 명성, 부와 지위에 집착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도덕과 인의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전집33 (P25)

 


이 문장의 해설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풀베개의 서두에 나오는 문장이 인용되고 있다.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다른 사람들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이 발목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내세우면 옹색해진다. 어쨌든 사람 사는 세상은 살기 힘들다.”

 


 일본인들도 좋아하는 명문장이라고 하는데 소세키의 팬인 나도 이 문장이 아주 좋아해서 글쓰기에 인용한 적도 있다. 적당한 선에서 중용을 지키며 인간관계에서도 원만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건 알지만 모든 일에 사람의 욕심이 들어가게 되니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힘든 부분이다. 원래 사람 사는 세상 자체가 살기 힘들다고 인정하고 있으니 묘하게 위로되는 기분이다.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너무 세세한 곳에 감정을 소비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도 속이거나 숨기지 않는다.

궁지에 처해서도 자포자기 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전집114  (P80)


 

이 이부분의 해설에서 중국 명나라 말기에 최선(崔銑)이라는 학자가 남긴 여섯 가지 처세훈이라는 육연훈(六然訓)으로 소개하고 있다.


  • 혼자 있을 때는 초연할 것
  • 사람을 대할 때는 온화할 것
  • 유사시에는 단호할 것
  • 평상시에는 잔잔할 것
  • 성공할 때는 담담할 것
  • 실패할 때는 태연할 것    -(P81) 

 


 참 심플하고도 담백하다. 스스로를 속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의욕에 차서 어떤 계획을 세워놓고 작심삼일 하는 것도 해당되지 않을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이야말로 작은 것을 이루는 가장 기본일 것이다. 혼자 있을 때나 여럿이 어울릴 때도 이러한 태도로 살아갈 수 있다면 괴로울 일도 없고 맑은 수채화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마음을 차분히 하고 갈고 닦는 자세가 필요하겠지.

 


채우지 말고 덜어낸다

 

인생에서 한 푼을 덜어내면 곧 한 푼을 초월한다.

사귐을 덜어내면 분란을 면한다.

말을 덜어내면 허물이 줄어든다

생각을 덜어내면 정신이 소모되지 않는다.

총명함을 줄이면 본성이 보전된다.

사람들이 날로 덜어내기를 원하지 않고 오직 더하기를

구하는 것은 스스로 삶을 속박하는 것이다.

                -(P102)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라도 더 채우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것 같다. 집안에 물건을 들이는 것도 그렇다. 그렇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나중에 쓸모가 있겠지 하면서 여분을 비축하려는 생각들. 덜어내고 줄이는 것은 정리의 기술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이 문장들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 사귐과 말, 생각 등에도 미니멀니즘을 적용할 수 있다면,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생각은 결정 장애를 일으키고 말이 너무 많으면 실수가 따르니 덧셈보다는 뺄셈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깨달음을 얻는다

 

새와 벌레가 우짖는 소리는 모두 마음을 전하는 비결이다

꽃과 풀의 빛깔은 모두 도를 전하는 무늬다.

배우는 사람은 마음을 맑게 하고 가슴속을 영롱하게 해서, 듣고 보는 것마다 깨달음을 얻고자 애써야 한다.

                 -후집7 (P242)

 


 항상 새소리를 듣고 살면서도 큰 관심은 갖지 못했다. 그들끼리 서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자연의 꽃과 풀들은 돌보아주지 않아도 때가 저마다의 예쁜 자태로 피어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자연 만물을 보면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그것들만 제대로 받아들여도 인생은 훨씬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뭐든 빨리빨리 하려고 서두르느라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사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누릴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야겠다.

 


사람의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

 

눈으로 서진(西晉)의 가시나무와 개암나무를 보면서도 칼날의 푸른 서슬을 뽐낸다.

몸은 북망산의 여우와 토끼의 몫이건만 여전히 황금을 아낀다.

속담에 이르기를, “사나운 짐승은 길들일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굴복시키기 어렵고, 깊은 골짜기는 채울 수 있어도 사람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고 하였다.

참으로 그렇다.

             -후집65 (P250)

 


 위나라를 빼앗아 세운 나라가 서진(西晉)인데, 그 나라가 망했는데도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땅속에 묻힐 텐데 평생 돈만 좇는 세태를 비유한 문장이다. 99석을 가진 사람이 1석을 채워 백석을 만들려고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사나운 짐승 길들이기와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 참으로 절묘하다. 이런 마음의 본성을 알고 각자 스스로 욕심을 줄이고 지금 현재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남들을 의식하기보다는 자기 본연의 삶에 충실해지지 않을까.

 


 이 책에 들어있는 짤막한 문장들은 잘 알면서도 우리가 놓치고 있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채근담이 오래된 이야기라서 어른들이 읽는 책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많은 피로감을 느끼고 산다. 경쟁과 비교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짧은 시간에 성과를 보려는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인 처세는 물론 조직생활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폭넓은 독자층에서 읽을 수 있겠다. 짧지만 깊은 뜻을 담고 있는 문장들을 만나면서 옹달샘 같은 맑은 기운을 느껴보기 바란다.

 

 

 

 

59~99189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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