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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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표지의 망가진 마트료시카 인형이 시선을 끈다. 겉의 인형 안에 작은 인형들이 속속들이 들어가 한 세트를 구성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야기도 마치 인형 세트처럼 하나씩 하나씩 밝혀진다. 한 겹 한 겹 벗겨내어도 계속 껍질만 나오는 양파처럼 의구심을 주고는 마지막에 가서야 퍼즐조각 맞추 듯 윤곽이 뚜렷해진다.


 12년 전 핀과 레일라가 므제브로 스키여행을 떠났다가 도로변 주차장에서, 핀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레일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사건을 경찰서에서 진술한 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그런데 진술한 내용이 온전한 진실은 아니었다는 묘한 뉘앙스를 남긴다. 마치 사건의 전모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독자를 혼선에 빠뜨리기도 한다.


 3부로 구성된 이야기인데 1부는 핀이 화자가 되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일기와 고백의 형식으로 사건의 경위를 밝혀주고 2부와 3부는 레일라와 핀의 시점으로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현재는 실종된 레일라는 미궁속에 빠진 채 추모식에서 만난 레일라의 언니 엘런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실종된 동생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결혼을 한다니. 그것도 동생의 연인이었던 남자와 함께. 보편적인 관습상 쉽지는 않은 일인데, 어디에 함정이 있는 것일까, 놓치지 않으려고 몰입하게 된다.


 결혼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어느 날 레일라를 보았다는 토머스 영감의 제보가 핀에게 전해지고, 엘런은 집 밖에서 주웠다는 마트료시카 인형을 보여주는데. 마트료시카 인형이 상징하는 것은 레일라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태연한 척 하지만 핀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은연중에 핀은 레일라와 엘런을 비교하게 되고, 둘 사이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 삐걱거린다. 동생이 살아있다는 것에 희망을 품는 것일까 불안한 것일까, 핀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려는 듯 엘런 또한 예민해진다. 레일라에 비하면 조용하고 수수한 편인 엘런이 이 과정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그러다가 두 번째 인형을 발견하게 되고 수상한 이메일까지 도착한다. 데번에서 살만한 집을 찾고 있다는 메일이다. 매물로 내놓지도 않았는데 팔지 않은 것은 어떻게 알고? 나중을 위해 혹시나 하고 짧은 답장을 보내는데 놀랍게도 바로 답장이 온다. 이메일 주소의 루돌프 힐을 분석하며 루비를 의심하기도 한다. 성격적으로 다혈질인 핀이 분노를 참느라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급기야는 뭉개진 마트료시카 인형이 도착하고 요구사항이 점점 늘어가는 이메일은 핀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레일라는 왜 없어졌을까.

핀과 동거 중, 레일라는 친구들과 놀러갔다가 분위기에 말려들어 다른 남자와 자게 된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분노로 일그러진 핀에게 사실을 말했다가, 분노로 폭발하는 핀에게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흔적 없이 사라진다. 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이메일의 주인공은 정말 레일라일까. 아니면 레일라를 납치한 범인일까.


인간은 가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기도 하잖아. 안 그래?

너도 그래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P138)


레일라가 실종된 후 과거를 떠올리는 핀의 속마음에서 안스러움이 묻어난다. 엘런과 살면서도 레일라를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엘런도 그걸 핀의 모습에서 읽어내는 것일까.


 의아한 건 12년 동안이나 실종 상태인데 납치범과 대치하는 상황이나 유력한 제보가 없다는 점이다. 그것도 왜 핀과 엘런이 결혼을 앞둔 시점에 자신이(레일라)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알리려 했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3부의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혼란은 계속된다. 급기야는 엘런을 없애라는 요구까지 하게 되는데... 과연 핀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직도 잊지 못하는 레일라를 잊지 못하는 핀은 자신의 분노로 인해 엘런을 잘못되게 할까봐 전전긍긍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복잡해진다. 브링 미 백, 그렇게 간절하게 바랐건만. 막판의 반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 안타까운 점은 아버지의 잔인한 폭력을 피해 도망쳤지만 첫눈에 서로 반한 남자에게서 아버지의 폭력을 보았다는 것. 또 한 가지는 행복한 결혼을 앞두고 있었음에도 사랑을 확인하려는 집착이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녀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한눈에 알아봤어야 했다는핀의 말이 가슴에 파고든다. 등잔 밑은 정말 어둡다는 사실도.


 이야기의 도입부터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마지막 장까지도 종잡을 수 없었다. 전작 비하인드 도어브레이크 다운을 모두 읽었지만 이 작품의 가독성 또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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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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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왕자와 거지를 비롯한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 최고의 걸작이자 미국 현대문학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미완성인 채 발견된 것을 칼데콧상을 받은 작가 필립 스테드와 삽화가 에린 스테드에 의해서 완성된 작품이다. 무려 100년 만에 발견되었다는데. 1879년 어느 저녁, 파리의 한 호텔에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대는 딸들에게 잡지에서 아무 사진이나 골라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유일하게 조니의 이야기만 기록되었고 이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 과연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따뜻함과 재치가 묻어나는 그림이다.

 

 

 

  간단한 줄거리는 주인공 조니가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 닭, ‘전염병과 기근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오라는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면서 모험이 시작되는 이야기다. 생전 처음 길을 나선 조니에게 바깥세상은 낯설기만 하다. 가두행렬을 만나기도 하고 정신없이 걷고 또 걸어 시장에 도착한다.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부딪혀 상인한테 혼나고 정신이 없다.

이때, “한 푼만 주세요.”라고 구걸하는 노파를 만나는데, ‘전염병과 기근이 잘 살기를 바라면서 할머니에게 내어준다.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담청색 씨앗을 조니에게 건네는데...

 

이 씨앗은 엄청 힘든 상황이 왔을 때에만 심어야 돼요. 심고 나서는 확신을 갖고 결과를 기다려요. 봄에 씨앗을 심고, 동이 틀 때와 밤 12시 정각에 물을 줘요. 항상 씨앗을 돌봐 주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요. 불평하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꽃이 피면 그 꽃을 먹어요. 그 꽃이 당신을 배부르게 해 줄 거고, 당신은 두 번 다시 허기를 느끼지 않을 거예요.”(P59) 

 

  지금 당장 힘들고 굶주린 조니에게 이 씨앗이 어떤 힘이 되어 줄까.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서 읽은 것처럼 위기를 만난 조니에게 마법이 펼쳐질까. 할머니의 이야기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지혜를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힘든 상황이 왔을 때 믿음을 가지고 씨를 뿌리고 정성을 들여 가꾸고, 그 과정에서의 마음은 순수함과 절실함을 갖고 결국은 견뎌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도중 화자인 작가와 마크 트웨인이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의 방향을 결정하는 부분은 위트가 느껴진다. 마크 트웨인의 생각을 읽어내고 공감을 나누며 이야기를 완성하려는 의지가 엿보여서 신선한 느낌이다.

 

조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먹을 것은 사오지 않고 담청색 씨앗을 내미는 조니는 호되게 혼이 난다. 씨앗을 씹으면서 욕지기를 내뱉는 할아버지를 마크 트웨인은 자리에 누운 채로 그대로 죽고 말았다고 처리한다. 개연성은 별로 없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에 유머가 느껴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상심한 조니는 주머니에서 담청색 씨앗 하나를 발견하고는 할머니의 말씀처럼 정성껏 키우고 가꾼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꽃을 뿌리까지 뽑아서 먹어버렸지만 허기를 채울 수 없었고 비참한 마음에 죽어버리자고 황야로 걸어간다.

 

  꽃을 먹으면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걸까.

하늘을 향하여 땅에 누워 전염병과 기근이 잘 살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던 조니는

무슨 문제 있니?” 하며 말을 거는 스컹크를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뜬다.

드디어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마법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 와서 기뻐.” 짧지만 진심이 담긴 조니의 말에 동물들은 환호성으로 화답한다.

 

 

맨 처음 친구가 된 스컹크 수지는 많은 동물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며 함께 파티를 열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인간에게 말을 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야. 인간들이 하는 말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따분하기만 해.”(P84)

 

…… 오직 인간만 우리 말을 못 알아들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굉장히 무지하고 성장도 더디고, 외롭고도 슬픈 존재야. 인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생명체가 극히 드물거든.”(P85)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동물이나 자연이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조니와 동물 친구들은 참나무 줄기에 박힌 오레오마가린 왕자를 찾는 포고문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왕자를 찾을 수 있을까.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이사이 이어지는 두 작가의 대화는 우리가 자주 잊고 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진심어린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 일깨워 준다.

 

세상 사람들은 동물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거고.”(P120)-마크 트웨인의 말.

 

조니는 깊게 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마침내 할 말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어리석은 폭력에 휘말리는 인간들을 구원해 낼 절호의 말을. 인간들이 어쩌다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니는 말했다.’

여러분을 알게 돼서 정말 기뻐요.”(P152)

 

 

 

  점점 각박해져가는 시대에 진심을 담은 따뜻한 대화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겨진다. 파스텔톤의 화사한 그림이 가득 실려 있어 금세 읽을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못 박힌 포고문에 아파하는 나무와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는 공상에 빠진 소가 있고 거짓말의 역사와 탐욕스런 전쟁을 꼬집는 작가의 말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조니의 모험을 통해 폭정에 맞선 선량한 인간들의 명예와 용기를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문명의 이기에 젖은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뜨끔한 일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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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새 아시아 문학선 22
메도루마 슌 지음, 곽형덕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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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미지의 세계, 신비와 환상의 섬이라는 오키나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무참히 깨주는 작품이었다. 비교적 짧은 소설임에도 느낌은 강렬했다.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의 목록에 있던 오키나와의 눈물의 작가라는 것을 알았고 이벤트를 통해서 만나게 된 책이다. 메도루마 슌은 오키나와 현 출신으로 1983어군기로 등단한 후 1997물방울로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2000년에혼 불어넣기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과 기야마 쇼헤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5년은 메도루마 슌 문학의 전환점이 되는 해인데, 당시 오키나와 북부 나고에서 13살 소녀가 미군 세 명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 이후 미군기지와 관련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 무지개 새를 시작으로희망,』『기억의 숲으로 이어진다. 특히 무지개 새는 구상에서부터 연재, 출판까지 총 9년이나 걸려 나왔다는데 그만큼 작품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잔혹하고 끔찍한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폭력의 당사자나 대상자에게 연민이나 응징의 말은 없다. 그저 피사체처럼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이것을 제대로 응시하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여지를 남겨주는 듯하다.


 폭력조직의 절대적 권력자 히가, 히가의 명령에 순종하며 성매매 여성을 관리하며 상대 남자들의 사진을 찍어서 넘기는 가쓰야,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마유가 히가 그룹에 들어와 그야말로 폭력의 지옥도를 펼쳐나간다. 열일곱 살 왜소한 체구의 마유는 학교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찍힌 사진을 되찾기 위해 히가에게 예속된다. 가쓰야는 중학교 시절부터 선배 히가의 상납금을 관리하면서 친구들과 멀어지고 더 많은 돈을 바치며 히가의 눈에 들어 안전한 삶을 유지해 간다. 폭력을 당하고 돈을 뺏기면서 왜 말하지 않는 걸까. 돈 걱정 없는 집안이지만 외도를 일삼는 아버지, 그것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자신의 가게를 갖는 꿈을 이루는 어머니, 거의 파친코에서 살아가며 자립 의지가 없는 두 형 등 소원한 가족의 분위기는 더욱 히가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소통의 부재와 함께 무엇이 중요한 삶의 척도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족 중 가장 의지가 되는 누나 히토미에게라도 털어놓았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히가의 절대적인 권력은 졸업을 하고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폭력, 상납금 근절을 위해 교사들이 나섰지만 교사의 어린 아이를 향해 자행한 폭력으로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만다. 결국 부모와 선생님 모두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건의 예가 되는 데모 장면이 나오는데 85천명의 군중이 모여 미군 철수를 외친다. 무대에 선 여학생을 보고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마유를 떠올리는 가쓰야. ‘한 순간의 차이로 다른 운명이 된 마유의 삶이 교차된다. 이전에 품지 못한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돈을 낳는 생물을 사육하는일을 하는 거라고 했던 히가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나쁜 일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가쓰야를 계속해서 보는 것은 답답했다. 사람의 굳어진 생각이나 습관을 깨뜨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버지의 돈을 받아 도박으로 삶을 낭비하는 두 형들을 혐오하면서도 자신을 안전하게 해 주는 을 받는 것을 뿌리치지 못한다. 누나 히토미의 독립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뿐이다. 그의 부모는 군용 용지 대여료를 받아 부유하게 살아간다. 사건이나 사고가 있어야 군용지 대여료가 인상된다는 가쓰야의 아버지, 데모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엄마를 보며 소학교 시절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딸 히토미, 한 울타리에 살아도 이렇게 모를 수도 있구나 하는 마음에 싸해졌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과 소통의 부재는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는지. 예의 외부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성매매 산업, 학교폭력 등 내부적인 폭력구조가 얽히고설켜 오키나와 전체에 만연해 있는 일상과 연계시켜 보여준다.


 가쓰야는 뭔지 모를 약을 먹이는 등 히가의 명령을 수행하면서 천천히 무너져가는 마유를 지켜본다. 결국 마유가 손님을 받지 못하자 가쓰야는 상납금을 마련하러 어머니 가게에 가는데... 네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누나의 진실 된 조언도 자신의 발등의 불을 끄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느 덧 미군 세 명에게 제압당한 소녀의 얼굴에서 소학생 시절 누나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이르렀지만, 안타까움은 어쩌지 못한다. 얀바루 숲의 무지개 새를 떠올린다. 본 사람만 살아남고 다른 동료는 모두 죽게 된다는. 바뀌지 않는 현실을 누가 바꾸어주었으면 싶다.


 자신의 성매매 대상인 교사에게 가한 마유의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행위는 보복이었을까. 가정과 사회가 막아주지 못해 받은 고통과 상처를 자신이 직접 응징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처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라도 해서 폭력의 가혹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 죽어가던 소녀 마유의 마지막의 변화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인과응보라더니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정당한 행위는 아니지만 폭력의 위험성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전설의 새, 무지개 새 이야기를 내세워 마유와 가쓰야를 새 삶으로 꺼내주는 이야기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무수한 동식물의 보고라는 얀바루 숲의 생명력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아름다운 섬 제주가 많은 상처를 품고 있듯이 그와 닮은 섬 오키나와의 정치적 현실과 역사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야기라서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작가의 다른 작품을 만날 일이 정말 기대된다. 폭력으로 점철된 이야기였지만 여운이 아름답게남는 건 왜 일까. 아마도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삶을 파괴해야만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모두 죽어 없어지면 된다.

몸 깊숙한 곳에서 웃음이 치밀어 오른다. 백미러에 비친 마유의 잠든 모습은 아름다웠다

액셀을 더욱 세게 밟으며 가쓰야는 얀바루 숲에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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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태도 - 꾸준히 잘 쓰기 위해 다져야 할 몸과 마음의 기본기
에릭 메이젤 지음, 노지양 옮김 / 심플라이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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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에릭 메이젤(Eric Maisel)은 미국의 저명한 창의력 컨설턴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심리치료사, 오리건대학과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등에서 심리학, 문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창의적 글쓰기로 석사학위를,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년 넘게 작가, 미술가, 음악가 등 예술가들을 상담하고 코치해 오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일상 예술화 전략등 다수 있다.

 

 이 책은 수많은 글쓰기 방법론에 관한 책과 달리 글쓰기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가로막는 무수한 이유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또 자신이 상상하고 창조했던 그 공간에서 마법이 일어나게 만들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이야기 한 꼭지가 끝나면 LESSONTO DO에 해야 할 목록을 정리하여 실천할 수 있게 도와준다.

 

 총 8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상황에 필요한 태도부터 최적의 글쓰기 공간 만들기, 잡념, 불필요한 감정 다스리기, 쓰고 싶지만 쓰지 못하게 하는 내면 심리, 상상력을 회복하는 법, 자기검열과 존재감 사이의 갈등, 글이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이야기한다. 저자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와 재치와 유머가 느껴졌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일침을 놓는 듯한 조언이 마음에 들었다. 글쓰기를 하고 싶지만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나 새롭게 글쓰기로 시작하려는 사람이 읽는다면 자신의 상황을 진단하고 지속적인 글쓰기로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창작에 적합한 사람으로 존재하려면

가장 먼저 일상적 자아를 벗어버려야 한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날씨와 사과 가격을 걱정하는 사람,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에게 창피를 당했던 사람,

지난 20년 동안 흡족할 만큼 충분히 글을 쓰지 못한 사람,

손님이 온다며 미친 듯이 집 안을 청소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 무게도 없으며

한계도 없는 영혼이 되어야 한다.(P25)

 

나는 오늘 글을 쓰기로 선택했다이 말은 곧         을 하겠다는 뜻이다.”(P32)

 

 

 창작에 적합한 작가로 살아가려면 일상적인 자아에서 벗어나야 한단다. 쓰는 사람의 시선으로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무런 무게도 없으며 한계도 없는 영혼이 되어야 한다고. 아래에 있는 문장은 글을 쓰기로 결심을 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다짐을 되뇌는 방법이다. 빈칸에 자신이 결심한 내용을 넣어보고 실천함으로써 지속적인 습관으로 굳어지도록 하는 암시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첫 번째 단계는 재료를 모으는 일이다. ……

더 근본적인 것은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

욕망에 집중하자

욕망에만 집중하면 눈은 언제나 아이디어와 글이 샘솟는 근원지를 바라보게 된다.‘(P143)

 

 하루에도 우리 머릿속에서는 오만 가지 쓸데없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느라고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오직 욕망에 집중하라고 한다. ‘수백 가지의 의심과 실망 밑에 묻어’(P147)둔 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괜찮은 문장을 하나 만든 후 그대로 실천하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은 거짓에 가깝다. 그렇지만 누가 알겠는가? 시도해서 잃을 게 뭐가 있겠는가?’(P176)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면이 불안감과 열등감으로 얼룩져 있다면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한 단계 성숙한 자아를 그려보라고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엉망진창인 자신의 내면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런던 북서부의 햄프스테드에 있는 낭만파 시인 키츠 하우스 앞 벤치 이야기다. 창작자의 몽상이 피어오르는 이런 공간을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할 것 같다. 다만 복잡한 마음을 고요하게 달래지 못하거나 이런 대단한 공간에서도 평범한 생각들로 채우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무언가 세상 속에서 창조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면 아무리 영감을 줄 법한 좋은 공간도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생각을 잠재워야 한다. 그리고 연습이 필요하다.’( P191)

 

 상상력의 문을 여는 것은 자동으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일상적인 생각을 잠재우고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걱정하는 일도 시간과 장소를 정해 두어야 한다는 말을 접한 것 같은데 이처럼 상상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오로지 글쓰기만을 위한 휴가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그 자체로 설레게 했다.


그 공간이 당신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면, 그곳을 여행하며 글 쓰는 상상을 할 때 가슴이 사정없이 두근거린다면 그곳이 바로 당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장소다.’(P202)


그곳에서 머물고, 앉아 있고, 바라보고, 걷고, 글을 쓰는 상상이 당신 마음을 휘젓는다면 그곳이 바로 글을 쓰기 위해서 꼭 가야 하는 장소라고.

 

인생은 선물인 동시에 의무이며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최고의 이미지로 우리 자신을 창조할 의무가 있다.’(P235)


 꾸준히 잘 쓰도록 독려하는 글쓰기의 태도에 관한 여러 사례와 풍부한 경험의 이야기에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선물 같은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려보고 계획하고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더욱 의미가 있겠지. 앞으로도 자주 들춰 보게 될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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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만 알려 주고 싶은, 무결점 글쓰기 - 나를 이해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이은화 지음 / 피어오름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작가를 만드는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이은화 저자는 처음 만났다. 20대 시절 일본어, 영어, 여행, 독서에 목매며 지독하게 자기계발을 했다는 작가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열중하던 자기계발의 이면에 껍데기만 남은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느껴 삶의 본질을 찾아 나서다 글로 지난 시간을 기록하고 현재를 담기 시작했다. 현재는 다양한 강연과 코칭 활동을 통해 글쓰기의 시작부터 출판까지 이끌어주며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부제는 나를 이해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고 되어 있다. 글쓰기야말로 자신을 돌아보며 얼룩진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1변화에서는 자신의 글쓰기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나, 왜 글쓰기를 어려워하는지,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진짜 이유 등 글쓰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워밍업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진단해 준다. 2부는 생명력이라는 주제로 단어에서 문장으로 넓혀가는 준비하기 단계이다. 평서체로 써야 할지 경어체로 써야할지 그 특징을 알려주고, 맞춤법은 어느 선까지 갖춰야 하는지 등 글은 읽힐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남들이 자기의 글을 읽는 것이 부끄럽다는 글쓰기 수강생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 것이었다.


 또 글을 쓸 때 스토리텔링과 인용을 적절히 사용하면 글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조언이 있었다. 글에 사례가 없이 저자의 생각만으로 채워진다면 지루하고 딱딱하기 때문에 오만한 글이 될 수도 있는데, 사례를 포함시킴으로써 분량까지 채워주니 글의 재미와 분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필수 요소라고 했다.

 

내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것이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껏 맛보지 못한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살아 있음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혼자만 고립된 글쓰기가 아니라 독자들과 만나는 글쓰기를 할 때 더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다.’(P99)


 읽히지 않는 글은 아무런 힘을 얻지 못하며, 글은 읽힐 때 생명력을 얻는다는 말은 위에 인용한 문장을 보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또 문장에서 문단으로 나아가는 글쓰기의 맨 처음 이야기는 내 글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를 묻는 게 나왔다. 즉 나를 위한 것이냐, 독자를 위한 것이냐는 것이다. 글쓰기 자체는 이미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한 행위이므로, 경험한 것을 많은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글을 쓸 때는 내가 아닌 독자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글의 첫인상은 첫 문장이 아니라 제목이라고 했다.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이 되어 읽고 싶은 제목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단다. 원래의 제목이 바뀌어 출간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법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를 예를 들고 있는데, 제목의 중요성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지 않나 싶다. 점점 기발하거나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책 제목이 눈에 띄는 것 같다. 이 외에도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면 고치고 또 고치라고 했다. 불멸의 진리, 글쓰기 TOP SECRET 3가지를 소개한다.

 

1. 매일 쓴다.

2. 고쳐 쓴다.

3. 이를 반복한다.(p143~p144)


이렇게 간단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가 좋은 글을 쓰는 비밀이었다.

 

 3지속성에서는 집필하기나를 완성하는 완벽한 글쓰기에 대해 알려준다.

여기서 책의 작가, 출판사, 독자를 책의 3박자로 세 가지 접점을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있어서 유익했다. 그 세 가지 접점은 작가가 쓰고 싶은 책, 출판사에서 원하는 책,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을 말한다. 일상이 책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가슴 뛰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 예로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는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었다. 블로그에서도 꽤 리뷰가 올라왔던 것 같은데 에세이보다는 언어 쪽 이야기인가 했었다. 일상이 활자화 된다는 건 그 일상마저 특별함이 되는 것이고 또 다른 감성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책은 많은 사람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장 쉬운 자기계발 도구 중 하나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세상을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 경험하기도 하고, 빠르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다. 다만 읽기만 해서는 그 내용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p196)

 

무엇보다, 읽기는 쓰면서도 할 수 있다.(P197) 


 천 권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쓰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쓰는 것이야말로 나를 완성하는과정이라는 것이다.

 

어렵게 쓰는 사람들은 남을 설득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진정으로 소통하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논리와 생각을 전하고 싶다면 그렇게 쓰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 어렵게 쓰냐면, 사기 치려는 사람이 어렵게 씁니다.”(P202~P203)


 30년 전부터 글 잘쓰는 비결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받았다는 유시민 작가의 말이다. 쉽게 쓰고 정성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에 위트까지 들어 있어 웃음과 공감을 자아낸다.

 

글은 나를 찾고 나를 위로해주는 가장 좋은 도구다.’(P219)

 

요즘 글쓰기 관련 책을 자주 들여다보고 있는데 나름 유익한 내용이 많아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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